공간의 변화가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고 부의 전환을 몰고 오는 사례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하는 공간이 분산되면서 인터넷상의 가상 오피스 혹은 원격근무 협업 툴을 제공하는 IT 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화상 회의, 원격 의료, 배달, 콘텐츠 스트리밍, 홈 피트니스, 온라인 리테일, 데이터 서버 및 클라우드와 같은 서비스들은 2020년 이후 급격한 성장을 보인 반면, 항공 및 여행업, 외식업, 그리고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은 실적 감소에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부의 재편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했고, 이 같은 부의 재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간이 만드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지금, 다양한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변화를 꼼꼼하게 관찰함으로써 트렌드를 파악하고, 앞으로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해보는 것이다.
■ 저자 정희선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의 켈리 비즈니스 스쿨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MBA 학위를 취득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인 L.E.K. 컨설팅의 도쿄 지사에서 근무하며 일본과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경영 컨설팅을 진행했다. 현재는 일본의 경영데이터 플랫폼 회사에서 세계 각국의 산업과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우리 생활과 밀접한 소비재와 리테일 산업에 관심이 많다.
《동아비즈니스리뷰》와 《패션포스트》 등에 비즈니스 트렌드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 일본의 경제와 산업에서 발견한 인사이트를 다양한 콘텐츠로 발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지 않고 삽니다》(2021),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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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들어가며: 공간의 변화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1장. 공간의 패러다임이 바뀌다
- 공간 혁명의 가속화, 그 배경은?
- 왜 우리는 공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할까?
2장. 공간 혁명을 가져온 변화의 시작점, 업무 공간
- 사무실이 분산되고 있다
- 하이브리드 근무, 엔데믹 시대의 표준이 되다
- 사무실과 경쟁하는 미술관, 사우나, 열차
- 오피스를 벗어난 사무 공간, 새로운 시장을 열다
- 미래의 사무실은 어떤 모습일까?
- 업무 공간을 둘러싼 거대 비즈니스의 탄생
3장. 집에 대한 모든 상식을 뒤집다, 주거 공간
-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가 열리다
- 호텔이 집이 되는 세상, 주거의 고정 관념을 깨다
- 전국에 내 집이 있다, 다거점 생활의 확산
- ‘하우스’에서 ‘홈’으로, 미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 1인 가구를 위한 공간에 주목하라
- 홈트부터 홈텐딩까지, 홈코노미의 무한 확장
4장. 리테일 아포칼립스 시대의 생존 전략, 상업 공간
- 유통 공룡의 예견된 몰락
- 분산: 크기는 줄이고 접점은 늘려라
- 이동: 고객이 있는 곳으로 매장이 찾아갑니다
- 언젠가 오프라인 매장은 사라지게 될까?
- 체험형 매장, 유통 채널이 아닌 미디어 플랫폼으로
-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5장. 공간 혁명이 불러올 미래의 모습
- ‘집중’에서 ‘분산’으로, ‘도심’에서 ‘교외’로
- 도시의 모습이 달라진다, 다핵 분산형 도시의 등장
- 동네의 재발견, 로컬이 뜬다
- 미래의 공간, 미래의 삶
나가며: 공간, 트렌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렌즈
주
팬데믹으로 인해, 부의 재편이 이뤄지고, 이 상황에서 공간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카페가 사무실이 되고, 호텔이 집이 되고, 고객이 있는 곳이 매장이 되는 시대입니다. 공간의 해체와 이동, 그리고 분산!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변화의 시작점, ‘공간’을 이해하여 트렌드와 미래를 예측해봅니다.
공간, 비즈니스를 바꾸다
공간의 패러다임이 바뀌다
왜 우리는 공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할까?
공간 혁명은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고 부의 전환을 몰고 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거대한 변화, 대표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홈코노미의 등장은 공간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일하는 공간이 분산되면서 가장 오피스 혹은 원격근무를 가능케 하는 툴을 제공하는 IT 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온라인 회의, 원격 의료, 배달, 콘텐츠 스트리밍, 홈 피트니스, 온라인 리테일, 데이터 서버 및 클라우드와 같은 서비스들은 2020년 급격한 성장을 보인 반면, 항공 및 여행업, 외식업, 그리고 백화점과 오프라인 유통은 실적 감소에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1~2년 동안 우리는 부의 재편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했고, 이러한 부의 재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편,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의 변화는 소비자의 니즈와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었다. 당연히 사람들의 니즈와 라이프스타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그렇기에 많은 기업은 발 빠르게 트렌드를 읽고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공간 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가 여태까지 겪어본 적 없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전개됐다. 이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소비 패턴이 등장하게 됐다.
우리는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한다. 소비자들이 새롭게 갖게 된 니즈는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떤 산업이 성장할 것인지 등을 논리적으로 예측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주제인 공간의 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을 뒤엎은 커다란 변화이기에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그에 따른 새로운 가치관 그리고 기존 상식을 깨뜨리는 공간 활용의 새로운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짧게는 수년부터 길게는 10년 뒤의 모습까지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인류의 역사는 코로나가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코로나 이전의 소비 행태와 이후의 소비 행태는 사뭇 다르다. 현재 매스컴에서는 감염병이 풍토병으로 굳어지는 엔데믹(endemic)시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예측해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간 혁명, 즉 공간을 사용하는 방법의 변화와 이로 인한 사람들의 움직임 그리고 이동 패턴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소비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급작스럽게 바뀐 원격근무라는 라이프스타일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기업들은 기존의 오피스를 축소하고 거점 오피스를 늘려야 하는가? 거점 오피스를 늘린다면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인가? 도심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지금, 도심 내 오프라인 매장을 비싼 임차료를 지불하면서 유지하는 것이 맞는가?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기업들이 어떠한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해야 할 것인가? 평범한 회사원도 일과 여행이 뒤섞인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다면 여행업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호텔은 앞으로도 관광객만으로 사업이 유지될 수 있는가?
공간 혁명은 기업의 인사 정책부터 오피스 임대 시장, 리테일 산업, 여행 업계, 그리고 소비 트렌드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공간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세상에서 이전과 동일하게 사고해서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비즈니스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비즈니스의 존속 자체가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공간 혁명을 가져온 변화의 시작점, 업무 공간
미래의 사무실은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 확산 이후 많은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나의 근무 방식으로 인정했다는 점은 커다란 변화지만, 사무실을 완전히 없애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는 원격근무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를 인류가 함께 공생해야 할 엔데믹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2022년 들어서 구글, 애플, 씨티그룹,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과 같은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사무실로의 복귀를 요청하고 있다. 한편, 트위터와 모바일 결제 플랫폼 블록(BLOCK)은 2020년 5월 전 세계 직원들의 무기한 재택근무를 허용했지만, 이들도 사무실을 아예 없애지는 않는다. 사무실에는 일정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줌과 같은 화상 채팅 서비스를 통해서도 충분히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일부분 맞는 말이지만 줌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우연한 만남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발생하기 어렵다. 스타트업의 장점인 팀워크 정신이 옅어지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또한 업무의 특성상 한곳에 모여 일해야 하는 부서들도 있다. 앞으로는 사무실 출근과 재택근무를 조합해 자신에게 맞는 일하는 방식을 찾는 ‘최적화’ 작업이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오피스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감염 리스크 방지는 기본
미래 사무실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무엇보다 감염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직원들의 건강관리, 그리고 출입 기록 관리일 것이다. 코로나 확산 이후 건물이나 공공 기관 입구에 설치된 열화상 카메라를 흔히 볼 수 있다. 건물 입구에서 체온 측정 및 마스크 착용 여부를 검사하는 것 또한 당연한 절차가 되고 있다.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본인 인증이 가능한 안면 인식 기술, 0.3초 만에 얼굴을 인식하는 워크스로(walk-through)형 안면 인식 게이트 등 생체 인식 기술이 코로나로 인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직원들의 건강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코로나 이후 더욱 크게 성장할 것이다. 이미 많은 IT기업들이 관련 제품을 개발해, 자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제안하고 있다. 만약 코로나가 종식되면, 출근 전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질까? 절차의 횟수나 강도를 줄일 수는 있지만 이러한 절차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대규모 공간은 누가 들어왔고 나갔는지 출입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전염병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사무실 건물뿐만 아니라 학교나 호텔 그리고 대규모 콘퍼런스 등이 진행되는 전시 컨벤션 센터에서도 개인 정보를 수집하여 전염병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바로 대응이 가능하도록 대비할 것이다.
터치리스 오피스의 등장
기업은 사무실 내 밀집을 피하고 움직임을 분산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버튼이나 패널 등을 직접 접촉하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는 ‘터치리스(touchless)’ 기술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터치리스 기술은 사람들 간의 접촉을 줄이는 언택트 트렌드에 더해서, 개인과 물리적 공간 간의 접촉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감염 위험을 낮추는 기술로 현재 많은 기업이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바이오메트릭 기술(Biometric technology), 즉 생체 인식 기술은 향후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은 지문 인식 정도만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코로나 이후 안면 인식, 정맥 인식, 홍채 인식과 같은 비접촉형 생체 인식 기술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의 출입이 많은 공간에서 접촉 없이 빠르게 신원 확인 및 체온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I 및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사무실의 혼잡을 예방할 수도 있다. 소프트뱅크의 본사가 이전한 ‘도쿄 포트시티 다케시바(Tokyo Portcity Takeshiba)’는 2020년 9월 오픈한 오피스 빌딩이다. 빌딩 개발사인 도큐부동산과 통신 기업인 소프트뱅크가 협력해 탄생한 이 오피스에는 AI 카메라와 센서 등 1천여 대가 넘는 최첨단 장비가 설치돼 건물의 혼잡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입주사 직원들에게 전달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출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분산시킴으로써 혼잡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바이러스 감염 리스크를 줄인다. 빌딩 내 매장이나 화장실의 혼잡도 또한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무실의 새로운 역할을 고민한다
코로나 이후 경영자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비싼 임차료를 지불하고 있는 사무실이 텅텅 비어버린 것이다. 하루에 몇 백만 원 혹은 몇 천만 원씩 들여 임차한 공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무실을 아예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직원들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은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이제 ‘직원들이 가고 싶은 곳’이 되어 선택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단지 책상에 앉아 일하기 위해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원들은 줄었다. 그들은 사무실에 출근해야만 하는 분명한 목적이 없으면 출퇴근 시간이 아깝다고 느낀다. 사무실은 앞으로 단순한 ‘업무 환경’ 그 이상이 되어야 하며, 직원들이 가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의 사무실이 담당해야 하는 역할은 직원 간의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고객사와 의견을 교환하며,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업무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이러한 니즈가 충족될 때만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네트워킹이 탄생하는 곳
지금껏 대부분의 사무실은 부서나 팀 단위로 책상을 배치하여 해당 조직을 섬처럼 만드는 공간 구성이 많았다. 개인 업무 공간이 사무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회의실과 공용 공간은 일부였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코로나로 인해 뒤바뀌고 있다. 사용자가 지정된 개인 업무 공간은 최소화하고 오히려 공용 공간은 확충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개인이 집중해서 해야 할 업무는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도 언제든지 동료를 만나서 의견을 나눌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 옆에 앉아 있을 때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쉽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무실에는 직원 간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뤄질 수 있는 공유 공간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직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곳으로서 사무실의 네트워킹 역할이 강화되는 것이다.
사무실의 모습은 회사와 산업에 따라 다르며, 직원들의 니즈에 맞춰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무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업무 공간을 개방형으로 만들어 팀 간, 팀원 간의 협업을 촉진한다. 그리고 개방형 업무 공간에 더해 직원이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콰이어트 구역(quite zone)’을 만들어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또한 편안한 느낌의 공간과 자연 친화적인 인테리어로 아늑한 공간을 조성하며, 공간의 레이아웃을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유연함을 포함한다.
사무실을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지에 대한 확실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일하는 방식이 크게 바뀐 지금, 어떤 공간에서 직원들이 팀워크를 최대한 발휘하며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한다. 근무 방식이 유연해짐에 따라 업무 공간도 함께 유연해져야 하는 것이다.
집에 대한 모든 상식을 뒤집다, 주거 공간
호텔이 집이 되는 세상, 주거의 고정 관념을 깨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근무 형태가 확산되면서 밴을 이용해 돌아다니는 디지털 노마드족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반 직장인들이 이보다 더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은 바로 휴가지에서 머물며 일하는 워케이션일 것이다. 원격근무로 인해 강원도 양양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일하다 서핑을 즐기는 삶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니즈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니즈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곳은 바로 호텔업계다. 이들은 호텔의 개념을 ‘여행하면서 짧게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집처럼 편안하게 머무는 곳’으로 새롭게 포지셔닝하면서 다양한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워케이션이다. 매일매일을 돌아다니며 살 수는 없더라도 1년에 두세 번은 한 달 살기를 떠나거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장소와 분위기를 바꿔 근무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해졌다. 이러한 트렌드를 배경으로 국내 호텔 업체는 적극적으로 한 달 살기와 같은 장기 숙박 서비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관광객들이 주로 여행과 휴식을 위해 이용하던 호텔의 역할이 ‘주거’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거주지’의 유형에 아파트나 주택뿐만 아니라 호텔도 하나의 선택지로 포함해야 할지도 모른다. 국내 호텔들은 장기 투숙객을 위해 아예 공간을 재구성하거나 생활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아파트인데 호텔이라고?
한편 호텔이 주거 시장에 진입하는 것과 정반대의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바로 아파트가 호텔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미국에 등장한 신종 부동산업은 그 정체가 살짝 모호하다.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시작해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손더(Sonder Corp)는 아파트면서 호텔이기도 한 주거 공간을 임대해주는 플랫폼이다. 손더는 아파트 전체를 빌려서 호텔식 서비스를 접목한 ‘아파트 호텔’이라는 명칭의 장기 및 단기 임대 상품을 제공하는데 현재 8개국, 38개 도시에서 1만 개가 넘는 아파트 호텔 객실을 운영 중이다.
손더는 아파트 건물의 일부를 임차하고 세탁기 등을 설치한 후 주변 4성급 호텔보다 약 20~30% 정도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비즈니스로 언뜻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에어비앤비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손더가 직접 아파트를 관리하면서 숙박 서비스의 질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에어비앤비는 집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서비스의 차이가 크며 이는 지금까지도 주요한 고객 불만 요인 중 하나다. 손더는 아파트를 직접 관리함으로써 이러한 리스크를 없앴을 뿐만 아니라 피트니스 센터 간은 편의 시설도 갖춰 이용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한국에서도 최근 다양한 주거 형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코리빙이다. 코리빙은 화장실과 작은 부엌, 침대와 같은 기본 시설을 갖춘 개인실을 더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용하는 다양한 공용 공간이 마련된 공유 주거의 형태다. 때로는 호텔처럼 청소나 조식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혼자 살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니즈가 높아지면서 등장한 새로운 주거 공간이다.
이쯤 되면 뭐가 뭔지 복잡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공유 주거 공간이 호텔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호텔을 장기 숙박 상품을 통해 주거용으로 변신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호텔은 여행 시 잠깐 머무르는 공간이고 집은 장기로 거주하는 곳’이라는 개념으로 양분화됐던 숙박 및 주거 시장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테일 아포칼립스 시대의 생존 전략, 상업 공간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인 온라인으로 쇼핑의 주 무대가 이동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가진 힘이 약해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코로나는 입지가 좋은 곳에 많은 종류의 물건을 대량으로 쌓아놓고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리테일의 공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오히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소위 ‘입지가 좋은 곳’이 도리어 감염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곳’이 돼버렸다.
디지털 기술이 마치 공기처럼 일상에 스며들고 있는 지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별개로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필요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장점을 융합함으로써 고객에게 더욱 개선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로 오프라인 경험을 개선하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오프라인 리테일의 대표적인 사례는 무인 매장이다. 코로나 확산 후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높아지면서 무인 매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할 대안으로 선진국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아마존이 선보인 세계 최초의 무인 매장 아마존고에서는 구매하고 싶은 물건을 골라서 그대로 나오기만 하면 저절로 계산이 된다.아마존고의 슬로건인 ‘줄 없음, 계산대 없음(No lines, No checkout)’이라는 말 그대로,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설 필요도 없고 신용 카드를 지갑에서 꺼낼 필요도 없다. AI, 머신러닝 등과 같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고객 편의성을 극대화한 매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오프라인 공간을 ‘피지털(Physital)’이라고 부른다. 오프라인 공간을 의미하는 단어인 피지컬(physical)과 정보통신 용어인 디지털(digital)의 합성어로 디지털을 활용해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경험을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뷰티 브랜드의 체험형 매장에서는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고객이 자신에게 딱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간단한 설문을 통해 최적의 스킨케어 제품을 제안해주는 디지털 패널이나 색조 화장품을 실제로 발라보지 않아도 메이크업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오프라인 매장에 도입해 고객에게 더욱 향상된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편, 아마존은 2022년 5월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패션 매장인 ‘아마존 스타일(Amazon Style)’을 전격 오픈했다. 아마존 스타일은 여느 패션 매장과 다르게 품목당 하나의 샘플만 진열하고 있다. 고객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하면 QR 코드로 스캔한 후 입어 보고 싶은 옷의 사이즈과 색상을 선택해 ‘피팅 룸으로 보내기’ 버튼을 클릭한다. 편하게 모든 옷을 둘러보고 피팅 룸에 들어가면 입어 보고 싶은 옷이 미리 준비돼 있다. 다른 사이즈나 색상의 제품을 가지러 나갈 필요도 없다. 피팅 룸 안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으로 요청하면 몇 분 내로 그 자리에서 받아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패션 큐레이터의 의견이나 고객 피드백 및 선호도 등을 고려해 AI가 스타일링을 제안해주기도 한다. 마치 나만을 위한 옷장인 퍼스널 쇼퍼 룸을 연상케 한다.
이렇듯 오프라인 매장의 다양한 영역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온라인과 연계함으로써 한층 진화된 오프라인 경험을 설계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공간 혁명이 불러올 미래의 모습
미래의 공간, 미래의 삶
데이터, 스마트 공간의 핵심
지금 많은 산업에서 부가 가치의 축이 제조에서 서비스로 옮겨가고 있다. 제품을 만들어서 한 번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안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비즈니스의 축이 서비스로 옮겨가면서 필요해진 원재료는 단연 데이터다. 우리가 행동하는 모든 것은 데이터가 된다. 걸음걸이를 분석해 내 발에 가장 맞는 신발을 제안하고, 업무 중 자세를 분석해 스트레칭을 유도한다. 쇼핑몰에서는 내 시선이 특정 제품에 몇 초간 머물렀는지를 분석해 제조사에 전달한다.
업무, 주거, 상업 공간 모두 사물 인터넷으로 연결돼 우리의 행동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스마트 오피스, 스마트 주거, 온‧오프라인이 융합한 상업 시설 등 ‘스마트 공간’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상황과 목적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최적의 경험을 제공한다.
스마트 오피스는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최적의 업무 환경을 제안한다. 상업 공간에 설치된 AI 카메라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해 고객에게 최적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안한다. 첨단 공조 시스템이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고, 허용 인원수를 조정해 밀집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한다. 간단한 스캔을 통해 개인의 건강 상태까지도 쉽게 체크할 수 있다.
앞으로의 비즈니스는 ‘누가 더 많은 소비자 데이터를 모으는가’의 싸움이 될 것이다. 기업에 있어 이제 공간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모든 공간에서 기업들은 소비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데이터를 얻는다. 수집하고 분석한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안한다. 공간에 머물기만 해도 건강 검진이 이루어지고, 필요한 영양소를 확인해 빠르게 처방해준다. 사무실에 머물기만 해도 업무 집중도나 효율성을 파악해, 집중력이 가장 높은 시간을 제안해주는 서비스가 곧 등장할지도 모른다. 공간이 인간과 상호 작용하며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서비스와 제품을 제안해주는 것이다.
지금, 공간이 스마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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