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
 
지은이 : 김다영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일 : 2022년 07월




  •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여행 산업은 거대한 위기를 맞았지만, 그만큼 없던 것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많은 여백을 그려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여행의 변화, 그 변화 속에 있는 의미, 그리고 이를 통해 읽는 소비 메가 트렌드와 만나보세요.


    여행을 바꾸는 여행 트렌드


    팬데믹 이후의 여행, 어떻게 바뀔까?

    코로나 19 사태가 일어난 2020년, 전 세계의 여행자 이동량은 약 30년 전인 1990년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국제 관광객 수가 갑자기 10역명 이상 줄어들며 발생한 여행 업계의 피해 규모는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의 11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렇게 세계 여행 업계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매출이 증가해 흑자 전환까지 이뤄낸 여행 업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야놀자와 여기어때다. 2021년 4월 야놀자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매출은 1,920억 원(영업이익 161억 원)으로, 2019년의 1,335억 원 대비 매출 성장과 흑자 전환을 기록했다. 여기어때도 2020년의 매출이 1,287억 원(영업이익 114억 원)으로, 전년 매출인 1,027억 원보다 더 나은 실적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단순히 ‘국제 이동의 감소로 인한 국내여행의 증가’로만 분석한다면 왜 수많은 여행 업체들을 제치고 이들만 성공 가도를 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야놀자의 경우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한국인이 여행 예약에 가장 많이 사용하던 플랫폼이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이후에는 야놀자와 여기어때에 이어 여행 사업자도 아닌 국내 포털 네이버가 여행 플랫폼 순위 3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오랫동안 여행 예약 시장을 장악해온 부킹닷컴과 스카이스캐너 등 글로벌 OTA들의 순위는 크게 떨어졌다.


    코로나19사태를 전후로 뚜렷해진 국내 플랫폼의 강세에서 여행에 대한 소비자의 관점이 변화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익스피디아가 8개국의 여행자 8,000명을 대상으로 여행에 대한 가치와 기대치를 측정한 ‘2021년 여행자 가치 지수(Traveler Value Index)’에 따르면 여행 예약 단계에서 가격의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75%가 이전에 가본 적이 없는 여행지를 선택하고 싶다고 답했고, 특히 40세 이상의 응답자와 비교했을 때 2030세대가 예약 취소에 대한 환불이나 변경 가능 여부보다는 프리미엄 혜택이나 비대면 서비스 유무, 친환경 경험 가능 여부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더 신경 쓴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오랜 세월 동안 최저가를 검색해주는 데 집중해온 글로벌 OTA에게는 실로 위협적인 변화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것이 야놀자와 여기어때, 그리고 국내에서 탄생한 호텔 OTA 트립비토즈의 서비스 메인화면이다. 이들의 메인 화면에는 해외 OTA들의 것과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계절, 유행, 특정 시즌 등을 고려해 내수 고객의 소비 변화에 최적화된 인기 액티비티나 숙소를 전면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트렌드에 매우 민감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의 2030 소비자에게는 ‘지금 기꺼이 돈을 낼만 한 가치가 있는’ 상품이 접속하자마자 바로 보이는지의 여부가 구매 결정에 매우 중요하다. 즉 최근 국내 OTA 인기의 배경에는 소비자가 원하는 여행 상품이 달라진 가운데 각국의 변화에 최적화하기 어려운 글로벌 OTA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국내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국내 OTA의 강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19 사태 이후 야놀자, 여기어때 등 국내 숙박 예약 서비스가 소비자의 달라진 여행 행태를 정확히 노리는 데 성공하며 오래도록 큰 변화가 없었던 시장점유율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투어와 액티비티로 시작해 숙소와 항공 예약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마이리얼트립, 전 국민이 이용하는 막강한 사용자 시장을 기반을 여행 시장에 뛰어든 카카오와 네이버 또한 여행 예약 업계의 강력한 플레이어로 떠오르는 중이다.


    그러나 특정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공급자는 플랫폼에 종속되고 수수료 상승 등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2019년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호텔이 OTA를 통해 벌어들이는 매출 비중은 평균 64%로, 체인 호텔처럼 직접 예약 시스템을 원활하게 구축할 수 없는 독립 호텔들의 OTA 의존도가 특히 더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모텔이나 펜션과 같은 독립 숙소들은 마케팅력의 부재와 느린 디지털 전환이라는 취약점이 있는데, 이를 겨냥해 성공을 거둔 업체가 바로 야놀자와 여기어때다. 야놀자의 경우 공급자가 부담하는 판매 수수료가 매출의 10%를 차지하고, 노출을 위한 광고료는 최저 45만 원부터 최고 500만 원에 달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래서 공급자와 소비자(여행자)가 플랫폼 비즈니스의 본질과 고유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야만 이를 역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효용을 높일 수 있다.


    플랫폼의 영향력에만 의존하는 것에 위협을 느낀 숙박 업체는 점차 직접 판매 전략인 D2C(Direct to Consumer)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호텔의 탐색과 발견에는 플랫폼이 압도적으로 편리하지만, 일단 마음에 드는 호텔을 찾았다면 최저가 객실이나 부가서비스를 포함한 패키지 상품은 해당 호텔의 공식홈페이지에서 체크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의 특이한 현상은, 팬데믹 기간에 인기를 끈 전국 각지의 독채형 숙소 중 일부러 플랫폼에 등록하지 않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만 사전 예약을 받는 케이스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반드시 플랫폼에 등록해야 숙소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 최근 들어 인스타그램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숙소의 오픈 준비 단계부터 미완성 상태의 숙소를 공개해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후, 잠재 고객이 모이면 사전 예약을 공지하고 고객을 유치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런 호텔 및 독립 숙소들의 전략은 숙박이 아닌 다른 분야의 여행 공급자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이드 투어나 지역 특화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소규모 여행사들은 플랫폼 입점에만 집중하면 자체 홈페이지와 예약 시스템 구축에 소홀해질 수 있다.


    온라인상에서 소비자와의 관계를 꾸준히 관리하고, 기업이나 서비스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경쟁자와의 차별성을 가지기 위한 전략을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들은 편리함과 효용을 무기로 부당한 시장을 형성하는 플랫폼을 소비자가 무비판적으로 애용하는 시절은 지나갔음을 인지해야 한다.


    MZ세대의 경험 소비가 바꾸는 여행</P> 지난 2021년 11월, 대전에서 처음으로 빵 축제 ‘빵모았당’이 개최됐다. 당시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대기 줄 풍경이 소셜미디어에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며 전국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19 방역 수칙 때문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었음에도 이 축제는 기간 내내 도무지 줄이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그런데 대전이 어떤 도시인가? 오랫동안 ‘노잼(재미없는) 도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을 만큼 관광 분야에서 유독 주목받지 못했던 곳이다. 제주나 부산처럼 관광 인프라가 풍부하지도, 경주나 부여처럼 역사적 서사를 갖추지도 못한 대전은 교통의 요충지이자 교육 특화 도시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 도시에 전국 모든 도시들이 꿈꾸는 2030 여행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축제가 탄생했다는 사실은 타 지자체에서도 성공 비결을 궁금해 할 만큼 큰 이슈가 됐다.


    대전 빵모았당 축제의 성공 비결은 지역 고유의 스토리를 담아내는 동시에 MZ세대의 여행 목적과 접점이 있는 요소를 찾아낸 것에 있다. 대전은 밀가루 음식이 특히 발달한 지역이다. 한국 전쟁을 겪으며 미국 구호물자로 대량의 밀가루가 국내에 들어오게 됐고, 중간 기착 지점인 대전에 물류 창고들이 다수 생기면서 대전 시내에 밀가루가 많이 보급됐다. 그 과정에서 칼국수나 가락국수집과 빵집들이 생겨났는데, 그중에는 오늘날 우리가 ‘대전’하면 흔히 떠올리는 토착기업 성심당도 있었다. 성심당은 지금까지도 대전 이외의 지역에 체인 지점을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로 지역 고유의 특산물이나 브랜드를 희소하게 만들어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전략이다. 성심당은 빵 축제에서도 주축 역할을 맡았고 다른 대전 로컬 빵집 34곳과 함께 축제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대전의 빵 축제에는 로컬 문화와 브랜드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들이 단순히 ‘MZ세대가 빵을 좋아한다니 우리도 빵 축제를 열자’라는 식으로 접근할 수 없다. 더불어 ‘SNS에서만 봤던 대전의 유명 빵들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라는 경쟁력은 여행의 목적이 아닌 경험인 MZ세대에게 더없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덕분에 대전은 더 이상 노잼 도시가 아닌 ‘유잼(재미있는) 도시’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물론, 축제는 단기간 동안 진행되는 일회성 이벤트이므로 꾸준히 여행자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대전 빵 투어’처럼 유사한 경험을 상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MZ세대의 달라진 여행 목적을 반영한 국내의 대표적인 여행지를 또 하나 꼽아보자면 강원도 양양이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 양양은 주변의 인기 관광지인 속초나 강릉에 비해 뚜렷한 차별점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서핑’이라는 트렌디한 레저 활동이 양양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전국을 대표하는 서핑 여행지로 거듭나게 됐다.


    2015년에는 양양에 국내 최초의 서핑 전용 비치 ‘서피비치’가 문을 열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해마다 여름이 되면 70만~80만 명의 서핑 여행자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그 결과 양양은 동해안의 수많은 해변 도시 중에서도 MZ세대가 열광하는 차별화된 관광지가 됐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한화리조트는 2021년 7월에 기존의 자사 체인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브리드 호텔 양양을 론칭했다. 서핑을 테마로 하여 관련 셀렉트숍부터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야외 레스토랑과 바까지 갖춘 이 호텔은 서핑의 자유로움을 선망하는 여행자들을 타깃으로 한다. 꼭 서핑을 하지 않고 호텔에서 머물기만 해도 서핑 여행지의 무드를 만끽할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사례에서 우리는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지금 MZ세대가 모여드는 지역은 기존의 관광지들이 누리던 유명세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에 로컬 기업들이 해당 지역의 희소성을 발굴해내고, MZ세대의 니즈와의 교집합을 끌어내어 이전에는 없던 매력을 상품화하고 있다.


    둘째는 ‘유잼’ 도시로 떠오르는 지역은 경험을 ‘공유’하려는 MZ세대의 성향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트렌드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기존 관광 산업의 틀 안에서는 예측하거나 대응하기가 불가능하다. 해마다 전국 각지의 지자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SNS관광홍보단을 모집하고 영상 콘테스트를 진행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여행 콘텐츠는 입소문을 타지 못하고 홍보 효과도 미미하다.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여전히 기관이 홍보하고 싶은 관광 명소에 집중된 미션을 주거나 영상을 제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노잼 도시가 젊은 층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더 잘 아는 소비자와 로컬 기업에게 더 많은 주도권을 주고 역동적인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래야 위의 도시와 같은 긍정적 결실을 거둘 수 있다.



    트래블테크가 판을 뒤집는다. 여행의 디지털 전환

    2016년, ‘포켓몬을 잡겠다’며 몰려든 이들로 주말마다 강원도 속초 일대가 붐비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속초에서 포켓몬이 많이 잡힌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이들이 앞 다투어 속초로 몰려갔던 일은 MZ세대가 본인에게 가치 있는 주관적인 경험과 액티비티를 위해 여행지를 선택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단 대표 사례다. 그러나 포켓몬 고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약 1년 남짓 만에 사그라들었다. 지역과의 연계성이 전혀 없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한 지역에 가서 포켓몬을 잡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그뿐, 해당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거나 재방문을 이끌어내는 수단은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여의 시간이 지난 2021년 5월의 어느 날, 나는 서울 성수역 일대에서 스마트폰을 든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메타버스·AR 게임 플랫폼인 리얼월드가 성동구청과 함께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배경으로 만든 AR 게임 ‘프로젝트 슈즈’를 실행하는 중이었다.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퀴즈를 풀며 다니는 게임이 아이가 아닌 어른에게도 과연 재미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어 직접 가본 것이다. 그런데 챗봇의 자동 답변 기능과 간단한 AR 기능만으로도 여행 정보의 집중도가 강화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게임에 도전한 수많은 사용자들이 질문·답변 방에서 일종의 공략법을 서로 공유하고 있어 미션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이를 참고하며 수행해내는 재미가 있었다. 고가도로 밑 담벼락에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 모습이 낯설고 우습게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좀처럼 게임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기존 관광 비즈니스와는 달리 리얼월드가 가지고 있는 차별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 차별점은 한정된 관광자원에 새로운 스토리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광자원들은 이미 그 정보가 고정되어 있어 여행자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기 어렵다. 특히 역사·문화 명소들이 그렇다. 리얼월드는 이런 장소들에 경험과 미션을 중심으로 접근하게 만들어 여행자로 하여금 흥미를 갖게 한다. 게임 속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 가느냐에 따라 한 장소에서도 여러 스토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확장성을 지닌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다. 이와 같이 스토리 기반의 게임 콘텐츠는 더 이상 관광자원으로서 매력을 어필하지 못하는 역사·문화유산에 강력한 방문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


    두 번째 차별점은 리얼월드가 기술을 기능이 아닌 ‘경험 퀄리티’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여러 산업에서 벌써 널리 쓰이고 있는 챗봇이나 QR코드 등의 기술과 달리 AR기술은 뛰어난 잠재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관광 업계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해 계륵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리얼월드는 AR기술을 기능이 아닌 경험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하고, 나아가 이를 상품화하여 비대면 여행이 가능하게끔 설계함으로써 코로나 시국에 인기를 모으는 핵심 요인과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리얼월드의 세 번째 차별점은 단일 플랫폼을 넘어 생태계 형성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리얼월드는 단순히 게임의 일반적인 개발과 유통에서 멈추지 않고 자체 저작도구 ‘리얼월드 스튜디오’를 무료로 공개하여 플랫폼을 ‘생태계화’했다. 그 결과 스토리는 있지만 기술력이 없는 관광 분야의 수많은 종사자들이 리얼월드 스튜디오를 활용해 지역 기반의 게임을 제작할 수 있게 됐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상 선발 주자가 공급자 규모를 빠르게 늘려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 뒤에는 후발 주자가 유사 플랫폼을 구축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앞으로 AR이나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관광 게임 업체들이 계속 등장할 테지만, 유저들이 자사의 기술로 직접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을 다시 자사의 플랫폼 내에서 유통하게 만든 리얼월드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게다가 리얼월드에는 100% 가상공간에서 이뤄지는 것보다 현실 장소에 기반한 게임이 많아 엔데믹 이후에 어떤 성장세를 보일지 더욱 기대된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도 들려오는 것을 보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여행할 때도 리얼월드와 함께 게임하듯 즐기는 시대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크리에이터 경제가 여행의 미래에 가져올 변화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다시금 폭증하던 2021년 8월, 유튜브에 해외로 떠나는 ‘출국’ 영상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험적인 여행으로 12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모은 유튜버 빠니보틀을 시작으로 해외여행 전문 유튜버들이 ‘코시국 해외여행’ 콘텐츠를 만든다며 미국, 러시아, 유럽 등지로 향한 것이다. 관광 목적의 외국인 입국을 금지한 국가가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이들의 해외여행은 곧장 이슈가 됐고 유럽 현지에서 방역 수칙을 위반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대중의 이목이 쏠렸다. 이는 여행이 중단된 시기에는 해외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모험이며, 그 모험은 자동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MZ세대가 여행을 콘텐츠화하는 현상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자 직업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여행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채우는 무형의 자산으로 기능하고, 타인의 반응과 조회 수는 사회적 평판과 경제적 가치로 연결된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지는 콘텐츠에 담긴 메시지들은 미래 소비자로 꼽히는 Z세대의 여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크리에이터 경제’란 유·무형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생태계를 가리킨다. 여기서 콘텐츠는 지식, 기술, 추종자 즉, 팬을 통해 돈을 버는 독립적인 비즈니스를 모두 아우른다. 크리에이터 경제는 MZ세대, 특히 진화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경제적 가치 창출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Z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은 온라인 학습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고, 좋아하는 일로 수입을 창출하는 일에 익숙하며, 직업뿐 아니라 여행에 대해서도 이전 세대와는 다른 관점을 갖는다.


    짧은 휴가 기간 동안 가지고 있는 정보력을 최대한 활용해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밀레니얼 세대의 여행과 달리, Z세대에게는 여행의 매분 매초가 소셜미디어에 공유랄 만한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Z세대에게는 소셜미디어에 어떤 ‘영구적인 순간’을 남길 수 있는지가 여행 소비의 결정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꼭 크리에이터가 아니더라도 여행의 기록과 공유에 큰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는 소셜미디어에서 접한 여행 콘텐츠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인다.


    정리하자면, Z세대는 여행을 경험 공유와 기록의 ‘재료’로 활용하고 능숙한 플랫폼과 영상 생산력을 바탕으로 무형의 경험을 가치 창출로 연결시키는 첫 세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행이 제한되며 여행의 희소성이 증가하면서 모험적인 여행을 콘텐츠화하는 여행 유튜버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들의 영상 콘텐츠는 대체로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특이한 지역을 가거나, 현지인과의 에피소드가 발생하는 순간을 포착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콘텐츠에는 여행보다는 여행을 수행하는 크리에이터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특징이 있으며, 크리에이터 역시 개인의 캐릭터나 세계관을 솔직하게 보여줘야만 기존 콘텐츠와 차별화하면 고정 팬덤을 확보할 수 있다. Z세대는 여행 콘텐츠에서 어떤 정보를 제공하느냐보다 그 여행을 ‘누가’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플랫폼을 활용해 콘텐츠로 업을 삼는 새로운 창작자의 시대가 여행 업계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



    지속가능성과 여행이 공존할 수 있을까?

    2022년 이후 글로벌 여행 소비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트렌드 중 하나는 정신건강의 회복과 유지를 위해 ‘이주’를 함으로써 적극적인 환경 변화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CEO 브라이언 체스키 역시 ‘어디서나 머무르기’를 새로운 여행 경향으로 제시하며, 2021년 7월부터 9월 사이의 예약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카테고리가 ‘한 달 또는 그 이상의 장기 예약’이라고 밝혔다.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코로나 시국에 현재 거주지보다 더 안전하거나 자연환경이 나은 장소로 이동해 일과 생활을 영위하려는 현상은 더욱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여행 소비자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여 있다. 여행을 개인의 선택이자 소비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이전보다 더 커진 여행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할 것인가? 카리브 해의 휴양지인 영국령 케이맨 제도(Cayman Islands)에서 일어나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여행자의 인식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또 관광 산업을 중시하는 국가들이 여행자를 선별 및 관리하는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케이맨 제도는 2020년에 단 40명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만 발생한 청정 지역이었다. 엄격한 입·출국 관리와 현지 주민의 희생으로 지켜온 이곳의 안전은 2020년 12월에 한 외국인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미국 조지아 주 출신의 여대생 스카일라 맥은 남자친구가 출전한 제트스키 대회를 관람하러 케이맨 제도로 향했다. 그녀는 2주간의 자가 격리를 위반하고 격리 이틀 차에 추적 팔찌를 풀고 대회장으로 향했다가 목격자의 제보로 체포되어 4개월 구금형을 받았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케이맨 제도에 또 다른 미국인 린 웨스터가 입국했다. 비영리재단의 강연자로 연중 300일을 출장지에서 보내던 그녀에게 3개월의 록다운은 불안 장애라는 병을 가져왔다. 그러던 중 케이맨 제도에서 원격근무자를 위한 체류 프로그램 ‘글로벌 시티즌 컨시어지(Global Citizen Concierge)’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왔고, 웨스터는 복잡한 지원 절차 끝에 합격할 수 있었다. 여느 디지털 노마드 비자가 그렇듯, 이 제도 역시 현지 일자리를 빼앗지 않는 원격노동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10만 달러 이상의 연소득 증명서를 비롯한 각종 서류를 제시해야 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관광 산업의 비중이 큰 국가라 할지라도 현지 문화와 경제를 존중하는 여행자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과잉 관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대안적 여행인 ‘살아보는 여행’은 오히려 현지 문화의 다양성을 해치는 새로운 부작용을 낳았다. ‘힙’한 문화가 고유의 문화를 대체하고 현지인이 이용할 수 없는 비싼 가격의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현상은 이제 발리뿐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지 제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여행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넓어지려면 제도적인 지원과 기업의 변화도 동반되어야 한다. 2021년 2월에 하와이의 비영리단체인 ‘하와이 이그제큐티브 컬래버레이티브 (Hawaii Executive Collaborative)’는 원격근무자와 현지인의 연결을 촉진시키는 프로그램 ‘무버스 앤 샤카스(Movers and Shakas)’를 선보여 9만여 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등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최종 선발된 50명의 원격근무자는 두 달 동안 하와이에 체류하며 지역 단체와 기업에 기술과 경험을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원격근무자 그룹과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된 현지인에게 수백 개의 원격 일자리가 창출됐고, 무버스 앤 샤카스는 2021년 6월에 두 번째 참가자를 모집하며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한국의 협동조합 소셜비즈N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선보인 ‘이생망청년 리셋 프로젝트, 타임아웃 라이프스타일 여행’은 여행과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선순환할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다. 이는 취약 계층 청년이 여행을 통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상품으로, 펀딩 후원자가 직접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후원자에게 마을재생 사업으로 운영되는 숙소의 숙박권이 제공된다. 후원금은 취약 계층의 여행에 쓰이고 후원자의 여행은 마을 재생 숙소를 동원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식이다. 공정 여행 또는 책임 여행처럼 여행자 개인에게 높은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는 ‘캠페인성’ 여행은 그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여행자와 현지인이 상생하면서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본질을 잃지 않는 새로운 여행 모델이 계속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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