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일 후의 세계
 
지은이 : 케빈 켈리 외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22년 06월




  • 언어, 인종, 국경의 벽을 뛰어넘을 새로운 시대, 디지털 기술이 창조하는 미러 월드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래 예측자, 케빈 켈리가 5,000일 후에 펼쳐질 미래를 예측합니다. 테크놀로지가 가져올 변화,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미리 그려봅니다.


    5000일 후의 세계


    미러 월드 시대의 개막

    나는 세계를 상당히 기술적인 시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을 촉구하는 주요 원동력이 테크놀로지이며 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가 아닌, 일정한 인과 관계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인 결정론에 따라 움직인다. 전기를 발명하면 그 다음은 필연적으로 전파를 발명하게 된다는 식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어떤 혹성의 어떤 문명이라고 해도 전기를 발명하면 잇달아 전파가 등장하고 그다음에는 와이파이로 이어진다.


    물론 그 특성을 결정하는 선택지, 이를테면 누가 규제하고 소유할 것인가, 단체의 소유물로 할 것인가 전체에 개방할 것인가, 비즈니스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 아닌가, 또는 국내에만 국한할 것인가 아니면 전 세계를 아우를 것인가와 같은 것들 가운데 어는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동화 기술의 파급력은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자동화를 채택해야 할지 아닌지를 선택할 여지가 없다. 마찬가지로 AI에 관해서도 선택의 자유는 없다.


    AI는 앞으로 50년에 걸쳐 자동화와 산업혁명에 견줄 만한 아니 훨씬 큰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AI기술이 발달하면 앞으로는 일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한다. 내 눈에 보이는 미래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100만 명 단위의 사람이 동시에 하나의 프로젝트로 함께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AR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글라스다.


    AR은 같은 일을 함께 진행할 때 물리적인 교류를 수월하게 해주는 기술이다. 스마트글라스라는 특수 안경을 쓰고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끼리 같은 자리에서 대면하고 있는 것 같은 상태인 텔레프레전스 상태에서 디자인이나 사이즈 등 자료를 공유하면서 일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누군가가 제안한 아이디어를 채택해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도구를 고안해 참가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공동 작업이나 프로젝트에 비즈니스로서 자금이 투입되었다면 처음에 발안한 사람에게도 환원되는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무엇으로든 대가를 지급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때,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로 화제가 되고 있는 블록체인 같은 기술이 유용하다.


    나는 앞으로 AR세계인 미러 월드가 다가올 것이라고 최근 여러 해 동안 주장하고 있는데, 이 AR 세계도 세심한 공동 작업이 필요한 분야다. 미러 월드를 가장 기본적으로 설명하면 ‘현실 세계 위에 겹쳐져 형성된, 그 장소에 관련된 정보 층을 통해 세계를 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VR은 바깥 세계가 보이지 않는 고글 속에서 펼쳐지는 가상의 세계이지만 AR은 스마트글라스를 통해 현실 세계를 본다. 그러면 현실의 풍경에 겹쳐진 형태로 가상의 영상과 글자가 나타난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스마트글라스는 어떤 의미에서 스마트폰의 뒤를 이어 다가올 발명품으로, 태블릿을 함께 갖고 다닐 필요 없이 스마트글라스를 몸에 지녀 화면을 표시하는 웨어러블 장치로 사용한다. 가까운 미래에 현실 세계의 도로와 집, 건물 등 현실 세계에서 수집한 다양한 데이터를 마치 쌍둥이처럼 컴퓨터상에 재현하는 기술인 디지털 트윈이 미러 월드에 나타나게 된다.


    미러 월드란 세계를 기계로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1플랫폼인 인터넷은 전 세계에 있는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검색해서 답을 찾을 수 있게 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웹이다. 그다음 세대의 거대한 플랫폼은 인간의 행동과 관계성을 인식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웹상에서 여러 사람의 상관관계나 유대를 의미하는 개념인 ‘소셜 그래프’라고 불리며 기계가 인간관계를 판독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인간관계나 행동에 대해 AI나 알고리즘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의 거대 플랫폼 SNS의 출현이다.


    그리고 이를 잇는 제3의 거대한 플랫폼이 물리적인 저 세계를 디지털화한 것, 즉 미러 월드다. 미러 월드의 뛰어난 점은 만들어낸 가상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대상이 디지털화되어 있어 기계가 그 대상들을 읽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미러 월드를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미러 월드를 움직이는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 우선은 현재의 인터넷이나 SNS처럼 광고 수익이 될 가능성도 있다. 장기적으로 미러 월드는 매월 정액을 지불하는 서브스크립션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AR 세계에서의 승자는 가파(Google, Apple, Facebook, Amazon) 가운데 그 어느 기업도 아닐 것이다.


    파괴적 테크놀로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느 분야에서 지배적이었던 자가 다음 시대의 플랫폼으로서 그대로 남아 있던 예는 없었다. 한때 컴퓨터를 만드는 IBM에 맞서 굉장히 많은 경쟁사가 제품을 출시하였으나 그 어느 회사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IBM조차 컴퓨터 본체인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가 그 지위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컴퓨터 운영체제인 윈도(Windows)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승리였다.


    그런데 그 마이크로소프트를 밀어낸 기업은 어디인가? 바로 검색 엔진을 선보인 구글이다. 그들은 OS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니라 검색 회사를 설립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이 필사적으로 검색 분야에서 구글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구글을 밀어낸 것은 누구인가? SNS회사인 페이스북이다.


    다음번 승자는 AR 기업일 것이다. 그래서 IBM,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이 모두 AR 세계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역사를 참고해 예측하건대, 그들 중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성공하는 기업은 분명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SNS의 외부에 있는 소규모 회사일 것이다.


    미러 월드는 이미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업무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글라스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약 25년 이내에 더욱 실용적인 스마트글라스가 개발되어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AI와 접속되는 세상이 온다

    우리는 인간 이외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AI 시대’의 첫 단계에 와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AI는 50년에 걸쳐 자동화와 산업혁명에 견줄 정도로 거대한 트렌드가 될 것이다. 다양한 것에 지성과 감정을 불어넣어 새로운 산업혁명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다. 앞으로는 ‘몰입형 컴퓨팅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모두 컴퓨터화되어 이른바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고도 불리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또한 앞으로 백 년의 범위에서 생각한다면 ‘신생물학적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AI 등의 도구가 우리의 신체나 생물학적 현상을 개조하는 데 사용되는 시대가 될 거라는 의미다.


    사실 오늘날 인간의 지능이나 인공지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지닌 뇌의 인지능력은 다양하며, 현재 알파고나 기계 학습 같은 것은 그 가운데 하나의 유형인 인지능력을 인공적으로 만든 데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AI는 패턴을 인지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있을 뿐이다. 그 패턴을 인식하도록 훈련하면 몇 백만 건의 사례를 학습시켜야 하므로 그러한 지식 이전 작업이 지금 한창 이루어지고 있다. 즉, 우리가 뇌 속에서 하고 있는 극히 일부를 합성해서 만드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재는 진입 장벽이 매우 낮아서 전문가가 되기도 굉장히 쉽다. 뉴럴 네트워크에 관해 조금 알고 있어도 세계적인 권위자로 등극할 수 있을 정도다. 단지 어떤 AI시스템을 만들어 그에 관련된 무언가를 하기만 해도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데이터를 통합하고 관리하는 중개 회사와 같은 시스템이 등장하리라고 본다. 누구나 자신에 관한 데이터를 스스로 관리한다는 사고다. 자신의 개인 정보에 관해 걱정이 있어도 자신이 스스로 관리하기에는 꽤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들기 때문에 부동산 거래를 할 때처럼 대리인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빅데이터의 가치가 매우 상승해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앞으로 약 10년간 AI를 훈련하기 위해 몇 백만 규모의 빅데이터가 필요해진다. 최대급 AI회사가 빅데이터 회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재는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하고서는 AI로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AI에 최초로 영향을 받는 분야는 대량의 데이터를 취급하고 있는 금융업계와 의료, 소매업계다.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에 AI에 영향을 받는다. 즉, 빅데이터는 소비자와 기업의 제품제조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AI를 움직이는 데도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현재 개인 정보의 이용 규약이 많은 사이트에 오랫동안 쓰여 있지만 대부분 규약을 일일이 읽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당신을 대리해줄 회사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찾아내 가장 좋은 조건을 알려준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데이터 대리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변호사처럼 문제를 해결하고 필요한 사항을 찾아내 이익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소비자가 타인과 공유하고 있는 데이터에서 더욱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러한 가치를 가파를 비롯한 거대 기업들이 가로채고 있다. 그래서 그중에서 우리가 돌려받을 방법을 고심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데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실행해야 한다. 이는 어떤 기술이 발명된 시점에서는 그 기술이 어떻게 활용되고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테크놀로지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합의도 끌어내지 못한 채 졸속으로 규제하는 것은 위험하다. 규제를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합의에 따르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미래가 현재의 정부나 회사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정부가 있고 플랫폼이 있고 회사가 있는 형태다. 그리고 플랫폼 발흥의 바로 앞에 미래의 자본주의가 있다. 근래에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가파나 중국의 텐센트, 바이두 등 대기업이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플랫폼은 회사도 정부도 아닌 중간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대까지는 회사와 정부, 그리고 NPO가 있었고, NPO는 제3섹터로 불렸다. 그러므로 플랫폼은 이 세 가지 형태의 부분에 더해 제4의 요소가 되었다. 플랫폼은 회사가 경영하지만 정부와 같은 기능을 한다. 개방적인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보장 번호 같은 ID도 발행해준다. 플랫폼은 예전에 정부가 해온 일도 대행해준다.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는 이러한 플랫폼을 이해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가파 등의 세계적 기업은 정부와 비슷해서 그에 비견할 권력을 갖고 있지만 정부와 같은 책임을 지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모두 그들의 역할과 정부와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중이다. 이 새로운 플랫폼이 정부처럼 공평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완수할지는 미지수다. 나도 아직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자본주의의 미래는 플랫폼의 진화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시대를 선도할 승자는 누구인가

    앞에서 이 시대를 ‘AI 시대’, ‘몰입형 컴퓨팅 시대’, ‘신생물학적 시대’라고 설명했는데,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앞으로의 시대는 ‘아시아의 세기’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아시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빈곤했으나 중산계급 화되고 성장하는 시기를 거치며 그들 대다수는 매우 윤택해졌다. 사실 이러한 아시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졌다. 오늘날의 미국은, 자국 정부가 예외적인 존재이며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는 거대 권력이자 전 세계의 경찰로서 리더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고가 더 이상은 통용되지 않게 되었음을 느낀 것이다.


    중국과 인도, 한국, 베트남의 변모는 아직 계속되고 있으며 이들 국가는 다음 세대에 완전히 근대화될 뿐만 아니라 많은 측면에서 미국과 유럽이 이룩한 성과를 상회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과 인도, 이 구 국가만으로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데, 이들의 세계에 대한 영향력은 미국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이 에너지 문제와 공해, 이산화탄소 배출,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전 세계에 미국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문화적으로도 큰 변모를 이룰 것이다. 아시아인들은 전 세계 사람이 구매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음악과 영화를 창조할 것이다.


    아시아 문화가 지닌 다른 문화와의 차이점은 개인주의와 사회와의 관계다.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개인주의보다 사회적 계약을 중시한다. 일본에서는 그 경향이 특히 강한데, 커뮤니티의 합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크게 작용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사회의 움직임을 강하게 의식해서 행동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미국인은 사회의 구조에 맞추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으니까 한다는 자기중심적 성향이 있다.


    세계를 다니며 알게 된 것은, 공업화 시대 이전에 국가나 지역이 동떨어져 있는 데서 생겨난 매우 다양한 문화가 지금은 글로벌화로 통합되고 어떤 단계에서 인간의 문화가 점점 수렴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렴 탓에 다른 단계에서는 분기가 가속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우리는 전 세계적인 규모로 수렴하고 있다.


    누구나 냉난방기라든지 수돗물, 와이파이를 원하고 이러한 현상은 세계 어디에서도 똑같다. 그리고 나아가 학교에 다니면 같은 교과를 배우게 된다. 특히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대도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욕구 단계의 최하위 단계에서 수렴이 일어남으로써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고 결국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러한 것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화가 촉진된다. 생활양식 면에서도 수렴이 일어나는 한편으로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사고의 다양성이 점점 늘어나는 분기가 일어난다. 즉, 문화적으로 생존의 기본단계에서는 수렴이 일어나고 그 의미 해석에서는 분기가 일어날 것이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는 경제도 글로벌화되어 다른 문화를 지닌 국가들이 모여 자국의 역할을 모색하고 타국과 비교해 우위점을 찾는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지구상의 인구가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이동하는 시대에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미래에는 큰 도시를 선호하고 그 밖의 지역은 식량 생산을 위한 평지로, 나머지는 자연인 채로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우 효율적인 도시에서 살고 교외의 자연 속에 있는 농원에서는 로봇이 일하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된다.


    현재 선전에서 일어나고 있듯이, 장기적으로는 어떤 종류의 산업에 특화된 도시의 클러스터가 생겨날 것이다. 선전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제조업에 특화되고, 실리콘밸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집약하는 식이다. 이번 세기에는 산업별로 중심 도시가 생겨나므로 그 분야를 목표로 한다면 그곳에 가면 된다는 뜻이다. 디자인 분야라면 암스테르담이 중심지가 되고 전 세계의 디자이너가 그곳을 목표로 꿈을 꾼다. 메가시티의 클러스트가 형성되고 재능과 자금을 서로 주고받는다. 메가 클러스터란 인구가 수천만 명 이상의 규모로 도시를 둘러싼 일대를 말한다. 개개의 도시보다 넓은 지역이다.


    예전에 ‘국가는 작은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크고 큰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작다’는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나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가 주도권을 쥐어야 더욱 좋은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도시가 더욱더 성장해 도시 인구가 훨씬 증가한다고 한다. 현재 도시 인구의 비율은 전 세계 인구의 약 50퍼센트를 넘어섰으며 앞으로는 75퍼센트 가까이로 전망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에 맞는 정책이 필요해진다.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 후의 먼 미래에는 이동에 대한 인권이 국제적으로 더욱 보장되어 현지의 법이나 세제에 따르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지구상의 어느 도시에서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7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그 경향이 매년 계속되어 간다. 그러면 도시는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꿈일지도 모르지만, 그로부터 훨씬 먼 미래에는 도시가 국가보다 큰 힘을 갖게 되는 시대가 온다. 이는 현재 캘리포니아주가 미국의 정책을 선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일에도 해당된다. 유럽이 세계의 다른 지역보다 엄한 개인 정보 보호법을 만들면 다른 국가도 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그러므로 도시가 이러한 선도력을 갖게 될 것이다.



    테크놀로지에 귀를 기울이면 미래를 알 수 있다

    테크놀로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테크놀로지가 인간과 관계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비공식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관찰한다. 발명가는 자신의 발명품이 어떻게 사용될지를 예측하지만, 대부분 그 예측은 빗나간다. 사람들이 그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게 되었을 때 원래 발명가가 의도했던 용도와 다르게 사용되는 현상을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나 범죄자가 테크놀로지를 거리에서 남용하고 있는 모습에 주목한다. 그러면 그 테크놀로지가 어떤 방향으로 이용되는지 자연스러운 추세나 경향을 알 수 있다. 최하 계층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살펴보면 전체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즉, 발명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용되는 상황을 확인해 보면 테크놀로지가 지닌 자연스러운 방향성이 어느 정도 잘 보인다.


    글로벌화나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점점 가속되고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세계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간의 교육에서 ‘학습법을 배운다’는 기본적인 스킬을 익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고교졸업단계에서 자신에게 최적화된 학습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어떻게 익힐지를 배우는 것은 궁극의 스킬이며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할 때까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일생 동안 여러 차례 직업이나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일단 예전에 했던 일과 방식을 잊고 새롭게 몇 번이나 다시 익혀야 한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적응하고 학습하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스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는 이러한 스킬을 배울 수 있는 학교나 커리큘럼이 없으며 미지의 것이다. 학습 방법을 배우려면 우선 개별 분야를 배워야 하며 그때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기초적인 습관을 익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 교육은 전문적이 아니라, 가능한 한 폭넓은 분야를 대상으로 해 제너럴리스트를 길러내야 한다. 전 교육과정에 걸쳐, 더욱이 대학교 교육은 가능한 한 넓은 범위에 이르러야 한다. 흥미를 느끼는 것에 관해서는 깊이 파고 들어도 괜찮지만 전체적으로는 폭넓은 시점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제너럴리스트로서 일반적이고 넓은 분야에 대한 사고가 조금이라도 발판을 이루고 있다면 예기치 못한 일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대개는 관련 없는 두 가지 분야를 자기 나름대로 연결 지을 수 있다.


    테크놀로지에 관해서 비관적인 사람이나 또는 테크놀로지가 두렵다고 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어떤 의미에서는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가 직면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더욱 강력하게 그 기술을 악용하고 오용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를 나는 어째서 낙관적으로 보는 것일까. 테크놀로지가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는 비책은 결코 테크놀로지를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더 좋은 테크놀로지를 더 많이 만드는 일이다. 낙관론에는 미리 모든 사물을 시각화할 수 있는 효과가 있으며, 영화업계가 하고 있듯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사전에 보이는 형태로 해 놓을 수 있다. 또한 비관론이나 비판도 반드시 필요하다. 자동차 운전에 비유한다면, 도로를 나아가는 데는 낙관론으로서의 엔진이 필요하지만, 비관론은 커브를 돌거나 멈춰 설 때의 브레이크 같은 것이므로 브레이크가 없으면 운전할 수 없다. 그렇지만 결국은 엔진이 브레이크보다 더 가치가 있다.



    앞으로의 5,000일을 위하여

    앞으로는 ‘항상 질문을 계속하는’ 일종의 연습과 습관이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가치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것은 기계에 물으면 된다. 사람에게 가치가 있다면 답을 모르는 물음에 대해서 ‘이렇다면 어떨까?’라든가 ‘이것은 어떠한가?’하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일이다. 옳은 것을 묻고 추구하는 데서 가치가 생성된다. 그것이 바로 이노베이션이며 탐색이나 과학, 창조성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지고 불확실성을 다루는 것이 사람의 일이 될 것이다.


    ‘물음’을 생각하기 위한 나의 사고법은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에 의문을 품고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식으로 불리는 것은 옳지만, 개중에는 역시 잘못된 정보도 섞여 있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새로운 통찰이 된다. 그러므로 상식에 대해 의문을 갖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새로운 스토리나 가설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또 한 가지는 증거를 찾는 일이다. 미래의 스토리를 생각할 때,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하자. 그 후에 해야 할 일은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찾는 일이다. 그와 관련된 연구 논문이나 증거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있다면 그밖에 더 증명해줄 자료가 있는지 없는지 철저히 탐색해 그 스토리를 뒷받침해줄 증거를 확보하면서 진짜 예측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래를 구상하는 과정의 절반은 착상, 바로 그 아이디어이며 나머지 절반은 계획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증거와 방법을 찾는 일이다.


    앞으로 일어날 대부분의 변화는 정신적인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나 여가를 보내는 방법,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인생관, 타인을 비롯한 다양한 대상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등 다양한 의미를 바꿔나갈 것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사물을 이해할 것인지, 과학을 변화시켜 어떻게 진리를 추구할 것인지 등의 측면에 관한 변화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의 변화가 앞으로 5,000일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발명된 기술이 초래한 나쁜 점을 문제 삼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법한 위해만을 판단하려고 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인해 일어날 것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지금까지의 테크놀로지가 야기한 많은 폐해와 비교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태양광 발전, 가상화폐, 유전자공학이나 AI 등 모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더욱 공정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테크놀로지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한다. 새로운 방법으로 상대를 상처 입힐 수도 있고 도울 수도 있다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선택지가 늘어난다면 그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가치가 있다. 그때 생기는 단 몇 퍼센트의 이점이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면 그때마다 그에 맞춰 대응해 나가면 된다. 왜냐하면 제대로 관리해서 안정시키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내년에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기대한다. 테크놀로지가 초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테크놀로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좋은 테크놀로지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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