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유가증권의 가장 큰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기업’이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경영자와 주주, 주주와 채권자, 주주 중에서도 지배주주와 일반주주들 간의 이해관계와 셈법을 낱낱이 살펴본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재무경제학의 오래된 질문을 던지면서 핵심을 탄탄하게 짚어보고 있다.
아주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주식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신문에서 떠들썩했던 기업 관련 뉴스들에 대해서도 다루며, 그 이슈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쉽고 핵심적으로 짚어냈다. 이렇게 이 책에서 짚어준 사례들만 따라가다 보면, 이후 뉴스에서 나오는 기업 소식을 접해도 이 사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경영자 혹은 주주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것인지를 꿰뚫어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식 투자를 할 때에도 언제 어디에 투자를 할지,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지 손쉽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기업 내부의 생태계에 관한 입문서”라고 칭하며 학교 밖 대중들을 위해 강연을 펼친 이유와 목적이다.
■ 저자 이관휘
혼란한 시장의 오해와 진실을 가려내는 재무경제학자
서울대학교 경영대학과 노스캐롤라이나대 통계학과,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공부했고 럿거스뉴저지주립대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하나은행 석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과 매경이코노미스트상을 비롯해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우수 연구상, 우수 강의상, 우수 논문상 등을 수차례 수상했다.
그동안 미국과 전 세계 주식시장을 대상으로 주식가격결정 등 투자론 분야를 주로 연구했고, 현재 학문적인 경계를 기업지배구조까지 확장하는 중이다. 지배구조 이슈들을 모르고 한국의 주식시장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임을 깨달은 탓이다. 그간의 연구와 통찰을 알리는 활동에도 힘쓰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지배구조와 대리인 문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지식과 사례들을 다룬다. 논문을 읽고 쓰는 게 업이지만, 저술 활동으로 대중과 소통하기도 한다. 지은 책으로는 『이것이 공매도다』가 있다. 덕분에 시사 주간지 《시사IN》 고정 칼럼에서 ‘이관휘의 자본시장 이야기’를 맡아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 차례
이 책을 읽기 전에 학문의 분류
주요 키워드
들어가는 글 개미를 위한 기업 생태계 입문서
1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다?
주주우선주의란 무엇인가
경영자는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
현재냐 미래냐, 단기성과냐 성장성이냐
상장기업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
2부 얽히고설킨 대리인 문제와 그 해법
주주와 경영자 간의 동상이몽
경영자에게 성과급을 주지 마라
이사회는 과연 독립적인가
사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독이 든 알약을 먹어라
3부 갈등은 어디에나 있다
서로 다른 두 입장, 주주와 채권자
회사 금고 밑에는 터널이 있다
기업분할, 쪼개고 밀어주기
4부 기업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
법과 대리인 문제
모니터링은 주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가는 글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다
주석
참고문헌
전 국민 주주 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그러나 주식 투자는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서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흐름을 알아야 어떤 기업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다?
주주우선주의란 무엇인가
돈의 흐름을 다루는 재무경제학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는 재무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 중 하나다. 재무경제학은 경제학의 한 분야로서 돈의 흐름을 다루는 학문이며,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하나는 돈의 흐름을 기업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기업재무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투자론이다.
자본을 조달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회사가 현금이 많아서 보유하고 있는 돈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간단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주식을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물론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할 수도 있다. 기업은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투자하고, 그 결과로 벌어들인 돈을 그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되돌려준다. 채권자들에게는 빌린 돈을 갚는 것이고, 주주들에게는 배당금을 주는 것이다. 벌어들인 현금의 또 다른 일부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재투자되거나 연구개발에 투자되어 나중에 더 큰 이익을 도모하는 용도로 쓰인다. 이 모든 과정이 기업재무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이다.
투자론은 기업재무와는 또 다른 분야다. 예를 들어오는 한 기업의 주가가 5만 원이라고 해보자. 이때 우리는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이 기업의 주가가 5만 원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주가는 왜 매일, 매시간, 매초 달라질까? 왜 어떤 주식은 주가가 높고, 어떤 주식은 낮을까? 사람들은 주식에 투자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종목을 선택할까? 향후 많이 오를 가능성을 염두에 둘까, 아니면 배당을 많이 주는 주식을 선택할까?
어떤 주식의 가격이 향후 오를 거라고 기대한다면 이는 해당 주식이 현재 과소평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의 적정 주가가 7만 원인데 현재 5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주식을 매수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 주가가 과대평가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까? 그 주식을 갖고 있다면 갖고 있는 주식들을 가격이 떨어지기 전에 매도하려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보유하고 있는 이들로부터 빌린 후 이를 매도하는 공매도를 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투자 행위의 결과로 주가는 또다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투자론은 주식이나 채권 혹은 파생상품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는 분야다. 과소평가 또는 과대평가된 주식들을 찾아 자산 배분 등의 투자 전략을 세우고 투자 성과의 평가까지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분야가 투자론이다. 그리고 기업재무와 투자론 모두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기업이다.
주주가 정말 기업의 주인일까
주주우선주의는 말 그대로 주식을 갖고 있는 사람, 즉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내가 한 기업의 주식을 사는 순간, 나는 딱 그 지분만큼 그 기업의 주인이 된다. 기업과 연관된 무수한 주체들 가운데 주주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고가 주주우선주의다. 이런 생각은 어디서 왔고, 어떤 이미를 가지고 있을까? 주주우선주의에는 아무론 문제도 존재하지 않을까?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일본 기업 교세라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자신의 책 『아메바 경영』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내가 창업한 교세라의 경영 이념을 ‘전 직원의 물심양면의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류와 사회의 진보 및 발전에 공헌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그의 이런 경영철학에는 주주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각오가 녹아들어 있다. 심지어 주주보다 직원들을 더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특이한 예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들 수 있다. 경영자와 노동자, 즉 노사가 주요 의사결정을 함께 내릴 수 있도록 도입된 제도다. 이 제도의 바탕에 깔린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유 경쟁과 기업 자유 등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에 분배를 통한 사회적 정의를 혼합한 체제를 추구한다. 이를 토대로 노동자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데, 기업 차원과 사업장 차원, 두 가지 채널로 참여하게 된다.
사업장 차원에서는 경영참여권을 부여한 사업장협의회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도록 하고, 기업 차원에서는 노사 동수로 구성된 감독이사회를 두어 경영이사회를 꾸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경영이사회에서는 노동이사 등을 선임하고 이들은 실제로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집행한다.
독일에서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전후 재건과 복구를 위해 노동자들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했고, 이에 노동자와 경영자가 힘을 합쳐 기업을 살리자는 문화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경영의 목적은 주주뿐 아니라 기업에 관계된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이와 달리 주주우선주의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며 기업을 소유한 주체라고 본다. 이 경우 경영자는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고용한 사람이다. 주주들이 경영자를 고용해 의사결정을 맡기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때 경영의 목적은 당연히 주주들의 부를 극대화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주가를 올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경영의 목적은 주가를 올리는 것이 된다. 꽤 단순한 결론 같지만 여기에는 아주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
경영자는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
기업은 오직 이윤 극대화만 책임지면 된다? 프리드먼 독트린
주주가, 또는 주주만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많은 기업재무 이론은 처음부터 다시 쓰여야 한다. 설령 그렇게까지는 밀고 나가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고 했을 때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점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주주우선주의가 주주들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것은 꽤 단순한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소송 등에서 실제로 경영 의사결정이 주주우선주의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당연히 처벌을 하거나 판결을 내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여러 판례들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경영 판단의 원칙’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만약 이사회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게 판단하고 성실하게 의사결정을 했다면 어떤 프로젝트가 설령 손해를 발생시켰다 하더라도 그것을 승인한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요즘처럼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가 빠르고 클 때는 어떤 프로젝트의 성공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과감히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 프로젝트가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승인한 책임을 묻지 않도록 의사결정을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얽히고설킨 대리인 문제와 그 해법
주주와 경영자 간의 동상이몽
이해 상충과 정보불균형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면 경영자는 주주들이 경영을 맡기려고 임명한 주주들의 대리인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는다.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해 상충과 정보불균형이다.
이해 상충은 주가가 오르기를 바라는 주주들과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기고자 하는 경영자 간의 충돌을 말한다. 처한 입장이 다르다 보니 각자의 바람도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한정된 자원을 나누어 가져야 하니 충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해 상충의 본질이다. 정보불균형은 쉽게 말해 회사에 대한 많은 것들을 경영자가 주주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을 일컫는 말로 ‘정보 비대칭’이라는 용어로도 자주 쓰인다. 성장성이나 현재가치, 프로젝트의 특성 등 회사의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주주들은 경영자보다 더 잘 알기 어렵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대리인 문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상황이라면 기업에서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치 분야를 생각해보자. 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대리인이다. 그러나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양쪽의 정보력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인 국민과 대리인인 정치인 사이에 이해 충돌과 정보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민들은 항상 정치인이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이는 기업에서 주주들이 항상 경영자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것과 같다.
대리인 문제의 두 가지 조건인 이해 상충과 정보불균형 중 더 중요한 것은 정보불균형이다. 만일 경영자가 오로지 주주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주주들이 굳건히 믿고 있다면 이해상충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경영자가 오로지 주주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주주들이 그런 경영자의 본심을 믿고 안 믿고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니 이해 상충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보불균형 상황에서는 대리인 문제가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보불균형은 대리인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조건이 된다. 그럼 그로 인한 ‘비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보불균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라면 주주들은 경영자들이 제안하는 프로젝트가 실제로 좋은 것인지 아닌지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이유로 인해 좋은 프로젝트를 승인하지 않은 결과 궁극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생긴다.
경영자들의 이와 같은 행태는 주주들의 이익에 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주들은 경영자들이 자신들을 속이고 이런 해로운 프로젝트에 투자할 인센티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제 경영자들이 포지티브-NPV 프로젝트를 가지고 와서 승인을 요청한다고 해보자. 그 프로젝트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주주들은 경영자들이 자신들을 속이려는 인센티브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나머지 때론 양질의 프로젝트조차 승인하지 않으려 한다. 만약 승인했다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이 늘어 주가도 상승하게 될 터였으나 이런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주주와 경영자의 갈등은 이처럼 큰 비용을 낳는다. 좋은 프로젝트를 스스로 걷어차버린 탓에 발생하는 기회손실은 대리인 비용의 좋은 예다.
사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독이 든 알약을 먹어라
대리인 문제를 줄일 방법, 인수합병
인수합병은 대리인 문제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경영자가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회사의 주가가 낮아질 테고, 주가가 낮아지면 쉽게 기업 인수합병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회사가 인수합병되면 경영자부터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경영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회사의 주가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샤프스타인 교수는 인수합병이 대리인 문제를 줄여주는 또 다른 채널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보불균형은 주주들보다 경영자가 더 잘, 더 많이 알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정보불균형이 존재하면 주주들은 경영자의 성과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다. 성과가 좋았을 경우에야 주주들도 경영자에게 보너스를 지불하는 데에 흔쾌히 동의하겠지만 성과가 나쁜 경우에는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무엇보다 성과가 좋지 않은 이유가 경영자 탓인지 아닌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지난 1년 동안 성과가 좋지 않아 기업의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자. 성과가 좋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주주들은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좋지 않은 성과의 더 큰 원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정보불균형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면 성과 기반 보상 체계도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경영자는 이제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 결과 대리인 문제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수합병은 이때 필요한 정보, 즉 경영자의 잘못이 얼마만큼인지를 알려준다. 주가가 낮은 이우가 경영자에게 있는지 아니면 경영자도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상황 때문인지 주주들은 알 수 없지만, 인수합병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주주들보다 훨씬 더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그 기업에 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검토하고 분석해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진 이유, 다시 말해 성과가 나빴던 이유가 만약 경영자에게 문제가 있어서라고 판단된다면 기업사냥꾼들은 인수합병을 시도할 것이다. 주가가 떨어졌으니 싼 값에 기업을 인수한 뒤 더 나은 경영자로 교체하면 주가를 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자가 어쩔 수 없는 어려운 경제 상황이 그 원인이었다면 인수합병을 하더라도 그 기업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경영자의 잘못이 아니니 경영자를 교체한다고 해서 기업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인수합병 시도가 있었다는 자체가 경영자가 성과가 나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시그널이 된다.
그러니 누군가가 인수합병을 제의해왔다면 주주들은 그 사실을 경영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 탓에 기업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주주들은 이처럼 인수합병 시도의 유무를 통해 경영자에게 올바르게 책임을 묻고 성과 보수를 보다 정확하게 지급할 수 있게 된다. 인수합병이 정보불균형을 해석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갈등은 어디에나 있다
서로 다른 두 입장, 주주와 채권자
주주와 채권자의 엇갈리는 셈법, 채무발 해이
돈을 빌리면 당연히 채무관계가 발생한다. 채무는 빌려온 돈과 이자를 갚아야 할 의무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돈을 빌리면 채무뿐 아니라 또 다른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업에는 주주와 경영자뿐만 아니라 여러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문제들이 존재한다. 주주와 채권자 간의 갈등도 그중 하나다.
예를 들어 당신이 한 회사의 주주이고, 그 회사는 많은 부채를 갖고 있다고 해보자. 이런 경우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당신 회사의 사업이 어떻게 운영되든 빌려준 돈의 원금과 이자만 제때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주주인 당신의 회사의 가치가 부채가치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에만 채권자에게 빌린 돈을 갚고 남은 잔존가치 모두를 챙길 수 있다. 다시 말해 주주 입장에서는 기업가치가 높아질 경우에만 높아질수록 좋고, 채권자 입장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빌려준 돈만 받을 수 있으면 상관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처럼 기업가치를 대하는 서로 다른 입장은 주주와 채권자 사이에 생기는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기업가치가 클수록 유리한 경우에는 원하는 기업가치에 상한이 없다. 그러므로 리스크가 매우 큰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기대수익이 높으면 이를 감행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채권자들은 주주들과 달리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업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투자를 원치 않는다. 이렇게 위험을 가수할 인센티브가 주주와 채권자 간에 다르게 작동하면서 주주와 채권자 사이에 갈등과 다툼이 생긴다.
기업분할, 쪼개고 밀어주기
지주회사의 등장
기업지배구조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보통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시스템, 이사회의 역할과 기능, 경영자와 주주와의 관계 등을 총칭한다. 다시 말해 경영진, 소액주주, 채권자, 종업원 등 기업 이해당사자들의 역학관계를 총칭하는 말로 기업을 다스리는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지배구조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크게 바뀌었다. 순환출자 체제로 있던 우리나라의 지배구조 대부분이 IMF사태를 거치면서 지주회사로 바뀐 것이다. 지주회사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회사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회사를 말하며, 지배하는 회사를 모회사, 지배받는 회사를 자회사라고 한다. 자회사 아래에 손자회사를 두어 자회사를 중간지주회사로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모회사는 자신이 고유한 사업을 영위할 수도 있지만 주된 사업은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해 자회사의 영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회사들의 주식을 쥐고 있는 이런 지주회사가 왜 필요할까? 그리고 이런 지주회사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주주는 자회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이는 지주회사가 흔들리면 자회사들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법은 지주회사가 안정적인 경영을 하고 건실한 재무 구조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지주회사는 자기 사업을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자회사 주식 보유가 가장 우선적인 비즈니스다. 그래서 지주회사 자산 중 절반 이상은 자회사 주식으로 이루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지주회사는 자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주식은 가질 수 없다.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면 큰 돈이 필요하다. 자회사들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끔 기업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지주회사는 상장한 자회사의 경우에는 적어도 30%의 지분을, 그리고 비상장 자회사의 경우에는 적어도 50%이상의 지분을 부유해야 한다. 이는 자회사의 자회사, 즉 손자회사에까지 적용된다. 만약 지주회사를 세우고 나서 2년 안에 이 최소 지분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한다.
지주회사, 자회사, 손자회사 간 지분출자는 촘촘하고 복잡하게 규제된다. 예를 들어 자회사가 지주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상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자회사들끼리 상호 출자하는 것도, 두 개의 자회사가 하나의 손자회사에 공동으로 출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주회사, 자회사, 손자회사로 순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기업이 살아야 지구가 산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래서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수십 년에 걸쳐 해온 이 질문을 여전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주인은 더 이상 주주가 아니라고 하면 과연 맞는 답일까?
실제로 여기에 대한 반성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기업 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의 대두, 빈부 격차 심화, 자본시장 발달, 기업지배구조와 노사관계의 변화 등과 함께 법과 규제도 다양해지고 복잡해졌으며, 사람들의 인식과 감성 또한 달라졌다. 기업의 형태에 있어서는 협동조합이나 파트너십을 도입하려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기존이 주식회사와 달리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시도되거나 계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까지 고민하는 거대한 ESG의 물결까지 몰아치고 있다.
이제 기업가치 극대화가 어떻게 지구와 환경의 이슈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그래서인지 2019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모인 경영자들이 서명한 “기업의 목적은 더 이상 주주만을 위한 게 아니라 고객, 직원, 납품업체, 커뮤니티 등 모든 이해당사자의 번영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는 성명서의 내용은 매우 고무적이며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ESG의 마지막 글자 G는 기업지배구조, 즉 거버넌스(Governance)를 의미한다. 재벌이라는 특이한 기업지배구조 시스템이 아직도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오늘날의 한국에서 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특히 중요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선진국들 중에서도 거버넌스 측면에서 아주 박한 점수를 받는 나라다. 일반주주들의 이익이 지배주주들의 이해에 가려지거나 침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주주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었을 때 엄격하게 법으로 책임을 묻는 다른 선진국의 예를 보고 있으면 특히나 아쉬움이 크다. 다른 나라들에서 환경이나 사회의 이익과 기업의 목적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요즘, 아직도 주주의 권리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을 보는 심정이 착잡하다.
지금껏 우리는 주주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에 대해 알아봤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갈등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는 실제로 기업재무에서의 핵심 요소들이며, 많은 경제학자와 재무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이런 고민들은 지속되어야 하고, 더 깊고 넓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도 그렇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