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경제학
 
지은이 : 윌 페이지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출판일 : 2022년 05월




  • 낡은 줄기를 버리고 새로운 줄기를 붙잡을 준비가 되었나요? 세계 최대 음원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스포티파이 수석 경제학자가 오늘날 개인과 조직, 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파괴적 변화를 인정하고 적응하는 방법에 관한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타잔 경제학


    타잔 경제학

    20년 전 CD 판매량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을 당시(가격도 계속 상승했다) 음반 업계 경영자들은 수익을 저울로 잴 수 있었다. 그저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그들은 음악이 아니라 무게를 기준으로 대량의 CD를 거래하곤 했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디스크의 끝없는 수요가 예측 가능했으므로 출고되는 CD 한 무더기는 곧 수익을 발생시키는 예측 가능한 현금을 의미했다.


    화물 운반대에 쌓인 CD 상자들에 내용물 정보를 표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음반 회사에게는 롤링스톤스인지 킬러스인지보다 무게가 스톤 단위냐 킬로그램 단위냐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당시 업계 풍경을 비웃고 싶어질지 몰라도 CD의 시대에 음반 시장은 이후 다시 못 누릴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에 글로벌 음악 산업의 규모는 250억 달러에 육박했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그 수치보다 10퍼센트 이상 낮은 상태다. 이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당시 음반 업계는 최고 절정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얼마나 깊이 침체될 수 있는지 곧 깨달을 날을 앞두고 있었다. 얼마나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또는 적어도 얼마나 무게가 나가는지)는 잘 알았을지 몰라도 얼마만큼 잃을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음반 업계가 낡은 줄기를 쉽사리 놓지 못했던 이유를(그리고 일부 사람들이 지금도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산업의 황금기에 도를 넘은 풍경이 얼마나 만연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도를 넘은’이란 표현이 중요하다.


    이 업계의 자만과 도를 넘은 풍경은 결국 CD라는 물리적 상품의 희소성(디지털 파일과 달리 CD 개수는 한정돼 있다), 공급을 통제할 수 있는 데서 오는 레버리지, 업계 관계자들의 두려움과 탐욕 같은 요인들이 한데 버무려져 빚어진 결과였다. 언젠가 나는 ‘비정상이 정상’이라는 표현을 듣고 씁쓸한 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낡은 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방식을 표현한 말이었다.


    비정상이 정상인 사례 1: 페이올라

    이는 음반사가 자사의 신곡이 라디오 전파를 타게 만들기 위해 ‘독립 라디오 프로모터’에게 돈을 건네는 것이다. 라디오에 많이 나오면 곡 인지도와 앨범 판매 수익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때 ‘독립’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독립 라디오 프로모터는 음반사 소속도 라디오 방송국 소속도 아니었으며, 이 양방향 협상에서 먼저 접촉할 파트너를 고를 수 있었다.


    다음으로 프로모터는 음반사를 찾아가 이 기회를 판매했다. “당신들이 2만 달러만 내면 지역 최대 라디오 방송국에서 이 곡이 밤낮으로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프로모터가 아니더라도 해당 곡은 어차피 라디오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그는 방송국의 의중을 아는 상태에서 그것을 모르는 다른 쪽인 음반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음반사는 프로모터에게 돈을 지불했고, 방송국은 내부 정보를 알려준 대가로 두둑한 사례금을 챙겼으며, 노래는 페이올라가 종종 야기한다고 여겨지는 시장 질서 왜곡 없이 라디오 방송을 탔다. 음반사는 이미 방송될 예정이던 곡을 내보내는 데 돈을 쓴 것이다.


    비정상이 정상인 사례 2: 차트 조작

    음반사가 차트를 조작해 노래를 40위권 안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모종의 판매 촉진 전술을 사용했다. 41위와 40위의 차이는 40위와 39위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한 음반사 간부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밴드왜건(퍼레이드 앞에서 분위기를 띄우며 행렬을 이끄는 악대 마차. 이 마차를 뒤따라가는 군중처럼 유행에 따라 상품을 소비하는 현상을 ‘밴드왜건 효과’라 한다-옮긴이)’이라 말했다.


    차트는 밴드왜건에 해당하는 곡들의 인지도를 더 높였고 따라서 인기도 끌어올렸다. 소비자가 어떤 음반을 구매했는지에 대한 전체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는 전자 판매시점관리 시스템이 없던 과거에는 차트 회사가 불완전한 정보로 순위를 집계했다.


    음반사가 곡을 차트에 진입시키는 수법은 이랬다. 차트 회사의 음반 판매량 조사에서 대상이 되는 매장들에 가짜 구매자들을 보내 음반을 대량 구매함으로써 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더 효과적인 방법도 있었다. 음반사의 판촉 담당자가 영향력 높은 몇몇 대형 음반 소매상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한 뒤, 그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앨범에 덧붙이는 사은품이나 연말연시 할인 행사를 지원했다. 세일이 시작되면 판매량이 올라가기 마련이었다. 일단 곡이 차트에 진입하면 투자 대비 수익을 뽑아내는 데 충분한 홍보 효과가 발생했다.


    비정상이 정상인 사례 3: 음반 판매량 인증

    앨범 판매량이 50만 장을 넘으면 ‘골드’, 100만 장을 넘으면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이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일그러진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출하량과 판매량을 구분해야 한다. 음반 판매량 인증은 후자가 아니라 전자를 기준으로 했다. 팔리지 않은 음반이 반품되어 음반사 창고로 돌아갈 때 유통 업체는 손해를 보지 않았다. 유통 업체는 ‘팔든지 반품하든지’하면 되므로 이는 과잉 출하를 초래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음반사 경영진이 받는 보너스도 실판매량이 아니라 출하량을 기준으로 책정됐다. 만일 앨범이 잘 안 팔려서 유통 업체가 50만 장을 반품 처리하면 음반사의 재정은 타격을 받아도 플래티넘 등급이나 경영진 보너스는 영향을 입지 않는다. ‘플래티넘만큼 출하, 골드만큼 반품’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생겨났다.



    주의력 경제학

    스웨덴 사람들은 타고난 얼리어답터다. 남보다 먼저 시도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즐긴다. 그들은 먼저 불법 다운로드 시장을 개척했고, CD를 먼저 없앴고, 합법적 스트리밍을 먼저 시작했고, 이제는 어느 국가보다도 먼저 현금을 없애는 정책을 진행 중이다. 또한 그들은 코러스에도 먼저 도착했다. 스웨덴에서 스트리밍이 성장하기 시작하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노래가 짧아지고 코러스가 앞쪽으로 이동했다.


    내가 이것을 처음 알아챈 것은 2012년 스톡홀름에 있는 스포티파이 본사에 들어선 때였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디제이 겸 프로듀서 아비치의 음악이 로비에 틀어져 있었는데 첫 부분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초반부터 코러스로 듣는 이를 확 사로잡아 놔주지 않았다. 시작 부분부터 강렬한 인상을 주는 노래는 내게 조금 낯설었다.


    그 코러스가 매우 효과적인 까닭은 노래의 3분 23초 지점에서 조가 바뀌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전조’다. 보컬이 이 지점에서 앞에 나온 코러스보다 키를 높여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전조는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의 균형을 갑자기 무너트리면서 곡에 입체감을 만들어내는데, 여기에는 절묘한 타이밍이 한몫한다. 


    노래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힙합에서 컨트리 음악에 이르기까지 장르에 상관없이 전반적으로 곡 길이가 짧아지는 추세다. 코러스는 더 빨리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첫 15초 안에 코러스가 나오는 히트곡 비율이 10~20퍼센트 정도였다. 2018년 이 수치는 40퍼센트로 높아졌으며 이런 추세가 약해질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주의력 경제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용어를 둘로 쪼개 먼저 ‘주의력’부터 보자. 사운드라운지 CEO 루스 시먼스는 피어뮤직의 나이절 엘더튼과 더불어 190년대 TV 광고에 음악을 활용한 전략의 선구자였다. 그녀는 아이들의 주의력을 붙잡아두는 지속 시간에 따라 마케팅 성과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약속 전달(5초), 기대감 조성(15~20초), 긍정적 브랜드 이미지 형성(30초 이상)이 그것이다.


    요컨대 광고를 보는 시청자가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기 전에 약속을 제시하고, 기대감을 불어넣고,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시키기 위해 브랜드 판매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30초다. 즉 노래는 멜로디를 특정한 방식으로 완성한 결과물이고 그것을 반복해서 들으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시먼스와 헌트의 말을 종합해보면 노래 앞부분에 코러스를 넣는 것은 청취자의 주의력이 아직 분산되지 않은 30초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라는 얘기가 된다.


    주의력의 경합성이 앞으로 맞이할 미래에 대한 힌트를 보여주는 곳은 최근의 게임 산업이다. 게임은 사람들의 주의력을 얻기 위한 혁신적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왔다. 많은 경우 현실을 모사함으로써, 때로는 현실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말이다.


    현재 게임 산업은 코로나 19라는 ‘블랙 스완’을 맞닥뜨렸다. 코로나19로 업계를 막론하고 모두가 코앞으로 다가온 냅스터 순간을 응시하고 있으며 이런 현실은 주의력을 포함해 그야말로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사용한 주의력 대비 최대한 많은 가치를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감안할 때, 이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 컴퓨터 게임 산업이 어느 때보다 크게 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주의력 전쟁에서 게임이 승리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라들의 희소한 주의력을 끌어오는 원리가 다른 그 어떤 미디어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즉 게임은 애초부터 노력과 보상을 통한 장기적 즐거움을 유지시키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사람들은 더 많은 포인트를 쌓고 싶어 하고, 다음 레벨을 깨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이스포츠(eSports) 중계에서 전문 플레이어의 경기를 보고 싶어 하고, 그들 같은 실력을 쌓고 싶다는 열망을 갖는다. 이처럼 게임에는 콘텐츠를 소비하려는 장기적인 동기를 갖도록 촉진하는 의도적 장치들이 내재돼 있다. 이는 오디오나 영상 콘텐츠에는 없는 무엇이다.


    주의력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상현실은 주의력 쟁탈전에서 승리할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른바 ‘퍼스트클래스 경험’ 창출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업그레이드’에 대한 욕망을 갖고 있다. 우리는 더 좋은 것을 좋아하고,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미디어를 좋아하게 돼있다. 그러므로 가상현실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에서 가치 있는 업그레이드 상품이 되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현재 게임은 영화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가치를 지닌 산업으로 성장 중이며 곧 영화보다 더 많은 청중을 확보할 것이다. 음악 스트리밍이 라디오와 TV보다 먼저 청중을 늘리는 데 성공했듯이 변화의 순서에 티핑 포인트가 발생할 것이다. 즉 게임 산업이 먼저 움직이고 영화 산업이 뒤이어 움직일 것이다.


    오늘날 주의력을 사용해 집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주의력은 희소한 자원인데 사방에서 그 자원을 차지하려고 애쓴다. 이는 곧 무언가는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신은 운전을 하는 도중 날씨가 험악해지기 시작하면 왜 라디오를 끄는가? 사용할 수 있는 주의력의 양에 한계가 있으므로, 차 외부 상황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내부의 오락거리의 주의력을 쏟을 수 있는 능력을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계에 도달하면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하루는 24시간뿐이므로 어떤 주의력 상인이 대중의 주의력을 가져가면 다른 상인들이 가져갈 양은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언제나 제로섬 게임인 것은 아니다. 주의력을 놓고 당신과 경쟁하는 대상이 친구인지 적인지 파악하는 것은 이 퍼즐에서 간과하기 쉬운 결정적인 한 조각이다.


    주의력의 경합성을 이미 간파한 기술 플랫폼의 리더들은 자사의 기기와 상품으로 소비자의 주의력을 확실하게 끌어올 수 있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 생태계에 들어와 경쟁하기 힘들도록 진입 장벽을 세우거나, 잠재 경쟁자를 인수해버림으로써 자신을 파괴할 기회를 미리 차단한다. 페이스북은 주의력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사용자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는 세력들을 끊임없이 차단해야 하는(그리고 가능한 경우 인수해야 하는) 전쟁에 직면해 있다.



    전환적 사고

    세상의 문제들을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일테면 올바른 데이터를 찾아내 올바른 방정식에 끼워 넣어서)해결할 수 있다면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합리적 해결책을 찾지 못한 사회, 경제, 정치 영역의 수많은 문제에 둘러싸여 있다. 현실 세계에는 이론적 프레임워크나 A, B, C 순서의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허다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생각의 피벗, 즉 전환적 사고다.


    전환적 사고는 ‘좋은 아이디어를 뒤집어도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두 가지 ‘로리즘’ 증 첫 번째다. 로리즘은 오길비(Ogilvy) 부회장이며, 잘 팔리는 마법은 어떻게 일어날까?>의 저자인 전설적인 광고 디렉터 로리 서덜랜드의 이름을 따서 만든 용어다.


    영국의 쇼핑 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여기에는 최근 흥미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는데, 같은 소비자들이 알디(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는 독일 슈퍼마켓 체인)와 막스앤드스펜스(영국의 고급 소매 업체)를 모두 즐겨 찾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패자는 누구일까? 그 중간에 위치한 업체들이다. 대표적으로 테스코(중간 수준의 슈퍼마켓)가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저렴한 상품과 고급 상품에서는 만족을 느끼지만 중간의 상품은 외면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월 9.99파운드라는 정액제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 이용료는 2022년 이래로 바뀌지 않았다. 음악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같은 돈을 내고도 점점 더 유리한 조건으로 세상 모든 음악에 접근할 수 있다.


    한편 10년 전부터 판매량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20파운드짜리 바이닐 음반이 현재도 계속 부활세를 이어가고 있다. CD에 밀려 퇴출되다시피 한지 30년이 흐른 후에 말이다. 사람들은 월 10파운드(10달러)를 지불하면서 저렴한 서비스가 주는 만족감을 즐기고 20파운드(25달러)짜리 바이닐 음반을 구매하면서 비싼 상품이 주는 만족감을 즐기지만, 그 중간에 있는 상품(CD와 다운로드)에는 돈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합리적 사고의 관점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전환적 사고는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요즘 우리는 스마트폰 덕분에 언제나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급 잡지나 간행물에는 여전히 고급 시계의 화려한 광고가 양면 페이지에 걸쳐 실린다. 아이러니하게도 합리적 사고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코노미스트> 독자들을 타깃으로 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광고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에도 불구하고 2019년 스위스의 시계 수출 규모는 217억 프랑(170억 파운드)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2.4퍼센트 증가한 것이고 2000년대 초반보다는 두 배 늘어난 수치다. 전환적 사고에는 중요한 것은 ‘추정치’를 포착하는 일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측정할 수 없는 것 말이다.


    오늘날 독점 빅테크 기업들을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서치의 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일하는 법에서 노는 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힘이 계속 커지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점점 더 많이 들려온다. 의회에서는 이들 독점 기업을 분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가져오는 이로움보다 피해가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독점은 나쁜 것이며 더 이상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반사적인 반응을 보이는 듯하다.


    독점이라는 개념은 경제학을 가르치고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업 경영자라면 누구나 경쟁에서 이겨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독점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일반적으로 경제학 수업에서는 독점이 나쁜 것이므로 해체돼야 한다고 배운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겨난다. 만일 자신이 일군 황금 같은 사업이 몇 년 후에 해체되고 말 것이라면 그 누가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 시장을 만들고 승리자가 되려 하겠는가? 이것은 내게 늘 풀리지 않는 딜레마였다. 경쟁 규제 기관이 두 개 있어야 한다던 스크리밍 로드 서치의 주장은, 깨트려야 할 것은 독점 자체가 아니라 독점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 틀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오늘날 독점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그것을 규제해야 하는지,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스미스는 독점이 다음 세 단계를 거쳐 형성된다고 말했다. (1) 강한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이 진입 장벽을 세워 경쟁자의 진출을 막는다. (2) 경쟁이 제한되므로 해당 독점 기업은 시장에 공급되는 상품의 양을 결정할 힘과 (3) 가격을 고정할 힘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애덤 스미스 시대에도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었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특히 경제학 책이 가르쳐주는 것과 달리 독점 기업이 더 높은 편리함을 제공하려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디지털 시대 이전에, 예컨대 1990년대 이전에 독점 기업은 사회에 해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정부에서는 반독점 정책으로 그런 결과를 막고자 애썼다.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들의 발전은 독점이 단순히 공급을 통제하고 가격을 끌어올리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 혁신적인 디지털 플랫폼은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 모두를 위한 편리함을 창출하므로 종종 ‘양면 시장’이라 물린다.


    페이스북은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이용자 집단들을 만들어내며 이용자 집단이 증가할수록 그 하위 집단도 많아진다. 유튜브는 이용자가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어 국경에 구애받지 않는 문화적 교류를 가능케 하며 이는 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독점 기업은 만들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문화가 서로 연결된다. 이들은 모두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주는 ‘매치메이커’다. 이는 네트워크 효과로 제로 한계비용을 활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모델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불러야 마땅해 보인다.


    전환적 사고에는 ‘행동을 통한 학습’이 필요하다. 방관자적 태도를 버리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실제로 결과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손을 번쩍 들고, 바보처럼 보일까 봐 교실 안의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질문을 던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어릴 적 스코틀랜드 해변에서 총리가 됐다고 상상하고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아버지의 질문을 받고서 전환적 사고의 방법을 배웠다. 해결책이랍시고 제안한 아이디어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추정치’를 측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이것은 추정치를 포착하고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우리의 현재 상태 판단하기

    요즘 세상에서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의 가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가치보다 더 높다. 즉 현재 지적 재산에 대한 투자(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산업)가 주거용 부동산(유형의 건물을 토대로 한 산업)보다 미국 경제에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렇게 흐름이 바뀐 것은 불과 20년도 안 됐다. 과거 주거용 부동산은 지적 재산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계속 가격이 상승했다.


    하지만 주택 시장 붕괴가 가져온 나비 효과로 결국 글로벌 경제가 위기에 빠졌고 이후 10년간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현재는 아이디어 산업의 규모가 주택 시장 규모를 꾸준히 앞지르고 있는 뉴노멀 시대가 됐다. 그러나 그런 아이디어 산업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우리의 능력은 여전히 우려스러울 만큼 제한적이다.


    타잔 경제학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낡은 줄기를 손에서 놓고 새로운 줄기를 붙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1999년 여름 냅스터라는 불청객을 마주한 음반 업계도,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참혹한 여파를 마주한 정부도 그런 변화의 기로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줄기로 옮겨 탈 시점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려면 현재 자신의 상태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줄기로 옮겨 타는 모험을 하기보다 낡은 줄기와 오랫동안 익숙해진 특정한 방식을 고수하는 편이 나은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상태를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는 전통적 경제학에 기반을 둔 경우가 많고, 그런 도구가 새로운 줄기로의 이동을 더 주저하게 만들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낡은 도구는 우리의 현재 상태에 대한 판단을 바꿔놓을 수 있다.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자신감을 커지고 불필요한 두려움을 줄어든다.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과장되게 보도되는 부분적 이유는 기술의 이로움이 과소평가되기 때문이다.


    현재 겪고 있는 코로나19 위기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려는 변명에 더는 의존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자 경제를 측정하려는 모든 시도가 무의미해졌다. 공교육 영역의 소득 지표는 해고된 교사가 없으므로 안정되게 나타났겠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았으므로 산출물(교육 성과) 지표는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GDP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이 이질적인 두 수치를 결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수축을 과거의 대공황에 비견했지만 주식 시장은 일시 하락 후 전에 없던 기세로 빠르게 회복했다.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


    우리는 중요한 것은 제대로 측정되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측정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눈앞의 통계에 의심이 드는 순간 재빨리 머리를 작동시켜 우리의 현 상태를 판단하기 위한 더 신뢰할 만한 무언가를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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