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에너지원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미래의 부와 힘의 주인이 결정될 것이다. 과거 석유가 인류, 산업, 투자의 역사를 뒤바꿨듯 새로운 에너지원이 전혀 다른 세상,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열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주제인 ‘에너지’의 힘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우리 일상과 경제 구조를 뒤바꿀 에너지 패권의 향방을 미국과 중국, 중동 관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 유럽의 재생에너지 전략 등 국가별 사례와 주요 이슈를 통해 날카롭게 전망한다.
■ 저자
양수영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에 근무하면서 한국 자원 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인 미얀마 쉐(Shwe·황금) 가스전 프로젝트를 직접 발굴하고 개발한 석유·가스 개발 전문가다. 1996년 대우인터내셔널에 입사해 에너지개발팀장, 미얀마E&P사무소장, 자원개발부문장(부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석유공사 사장으로 일하면서 석유뿐 아니라 해상풍력 및 수소 산업을 신성장 사업으로 추진한 경험이 있다. 2022년부터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부산고와 서울대학교 사범대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텍사스A&M대학교(Texas A&M University)에서 지구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지웅
에너지 전환, 석유시장, 탄소중립 등에 대해 연구하며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2008년 입사해 개발생산처, 유럽아프리카사업처 등에서 근무했고, 2015년 회사의 위탁교육생으로 선발돼 영국 런던 코번트리대학교(Coventry University)에서 석유·가스 MBA 과정을 밟았다. 실무와 배움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 베스트셀러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펴냈다. 이후 KBS 〈최경영의 경제쇼〉, 〈홍사훈의 경제쇼〉,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등에 출연해 에너지 관련 이슈에 대해 쉽게 설명하며 주목을 받았다. 현재 한국석유공사 공식 블로그 〈오일드림〉 을 통해 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시험을 통과했고, 서울 대성고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 차례
들어가며 | 미래를 결정지을 두 가지 요소, 에너지와 탄소
제1부 석유의 탄생, 현재, 미래
제1장 오늘의 에너지, 석유를 말하다
석유는 부(富)의 원천이다| 우리 일상과 꿈을 지배하는 석유| 석유는 여전히 많은 것을 결정한다
제2장 국제유가를 움직이는 요인들
음모론과 예측 사이에 놓인 국제유가| 핵과 석유가 얽혀 있는 미국-이란 관계| 러시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 석유와 천연가스| 아프가니스탄은 왜 제국의 무덤이 되었을까?| 시장의 주인공이 된 셰일오일과 OPEC+
제3장 석유는 언제까지 주요 에너지원일까?
미국과 유럽의 엇갈리는 석유 수요 예측| 석유 공룡 BP는 왜 석유 시대가 끝났다고 할까?| 재생에너지가 늘어도 석유 소비는 줄지 않는 이유| 석유 고갈, 지금부터 대응해야 한다
제2부 ‘검은 황금’을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
제4장 재생에너지는 한국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낮은 이유| 유럽이 탄소중립에 앞장서는 속셈| 메이저 석유회사가 재생에너지에 적극적인 이유| 한국은 어떻게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것인가?
제5장 환상적 스토리의 주인공, 수소
수소가 세계를 지배할까?| 일본 수소 전략의 넘버와 내러티브| 호주와 중동, 한국의 수소시장을 노린다
제3부 탄소중립이 바꿀 미래의 패권 지도
제6장 기후변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탄소중립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탄소감축의 첫째 목표가 탈석탄인 이유| 탄소감축 속도는 중국에 달려 있다| 게임체인저가 될 탄소국경조정, 어디까지 왔나?
제7장 에너지와 탄소가 결정할 미래
탄소감축은 산업 구조를 어떻게 바꿀까?| 탄소감축은 도시와 교통을 어떻게 바꿀까?| 탄소감축 시기에 석유가 더 중요한 이유| 탄소중립은 의무와 불만 사이의 예술
나오며 | 에너지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특별 대담 | 포스트 석유의 시대, 에너지의 미래에 대해 (최준영 박사, 저자 양수영)
주
19세기 석탄, 20세기 석유… 인류, 산업, 투자의 역사가 뒤바뀐 결정적 순간 뒤에는 늘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2050 탄소중립, ESG 강화의 움직임으로 다시 한번 거대한 대전환의 순간을 맞이한 세계 경제! 앞으로 30년, 부와 권력의 지형도를 뒤바꿀 에너지의 미래와 경제를 전망합니다.
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
석유의 탄생, 현재, 미래
오늘의 에너지, 석유를 말하다
우리 일상과 꿈을 지배하는 석유
*우리 일상의 기본값이 된 석유
많은 이의 버킷리스트에 해외여행 혹은 세계일주가 있다. 또 고가의 자동차가 성공의 상징이 된 세상이다. 그러나 현재 여행과 교역을 가능하게 하는 항공기와 선박은 석유 외 다른 에너지원으로 구동할 수 없다. 석유나 가스가 없다면 개인의 여행과 국가 간 물자 이동이 멈춘다. 차를 타지 않고,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무역을 하지 않으며, 석유화학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시대를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활동을 조금만 줄여도 우리 일상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 석유가 있어 누리는 것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공연을 감상할 때 무대를 비추는 조명과 의상이 석유에서 나왔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각종 의료기기와 약품이 석유화학 제품을 원료로 만들어졌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물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현대인은 석유 속에서 살고 있다.
석유는 여전히 많은 것을 결정한다
*패권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통제 수단, 석유
국제관계에서 무력을 쓰지 않는 제재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은 석유, 가스, 석탄 등 에너지 자원의 공급을 막거나 자원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만큼 한 나라의 생존을 위협하는 제재 수단은 없다.
최근 국제뉴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소식이 미국과 이란과의 핵 협상이다.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로 통칭되는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한 이후, 미국 정부는 이란에 대해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실시하고 있다. 그중 핵심이 이란의 원유 수출 금지다. 2021년 출범한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와 달리 전향적으로 이란과 핵 합의 복원 협상을 재개하리라 예상됐다. 또 원유 수출 중단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란이 핵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주리라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감 속에서 2021년 4월에 이란 핵 합의 복원 협상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후 2022년 1월까지 일곱 차례 협상이 있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원유 수출 금지와 해외 자산 동결 등 강도 높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4년 가까이 버틸 수 있는 배경에는 석유와 중국이 있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은 2021년 연중 지속적으로 하루 40만~60만 배럴의 원유를 이란에서 수입했다. 2021년 이란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250만 배럴인데, 그중 약 5분의 1을 중국이 사준 것이다. 이란의 내수로 소비되는 물량을 고려할 때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중국이 구매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란 경제의 파멸을 막는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오만산 원유 등으로 둔갑해 이란산 원유를 들여오고 있었다. 이에 미국은 지속해서 중국에 이란산 원유 구매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오히려 중국은 조금씩 수입을 늘리는 추세를 보였다. 이것은 미국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국제유가를 움직이는 요인들
핵과 석유가 얽혀 있는 미국-이란 관계
역대 아카데미 수상작 중 유독 한국 관객에게 낯선 영화가 하나 있다. 2013년 수상작 <아르고>인데, 이 영화는 작품상 등 3관왕을 달성했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14만 관객이라는 초라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밴 애플렉이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한 이 영화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다룬다. 1979년 11월 발생한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그것이다.
당시 미국인 52명이 444일간 이란에 억류된 상태로 장기간 사건이 해결되지 않자 카터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최고조에 달했다. 더욱이 그 기간 중 2차 오일쇼크가 장기화되며 미국 경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이란은 미국을 악마로 규정하고 이후 미국도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적대적인 관계를 이어간다.
1979년의 이 사건 이후 오늘날까지 40년 넘게 두 나라의 관계는 중동 정세를 좌우하는 중요 요소이면서, 세계 현대사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즉 오늘날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빈부 격차만큼이나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주제이면서 동시에 석유시장과 국제유가의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 석유와 천연가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정세의 가장 중대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줄곧 한 가지 경고를 덧붙였다.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Nord Stream2)’를 폐쇄할 것이라고 했다. 군사적 위협을 높이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는 러시아를 제재할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는 노르트스트림이라는 가스관의 폐쇄였던 것이다. 이 가스관은 2021년 9월 완공되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면서 EU의 사용 승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호르메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가 그렇듯 석유와 가스가 지나는 통로는 단순히 에너지 공급의 의미를 뛰어넘는 정치적·외교적 영향력을 갖는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도 예외가 아니다. 이 가스관이 개통될 경우 기존 노르트스트림1을 함께 쓰면서 러시아는 유럽의 연간 가스 수요의 절반 정도를 수송할 수 있다.
*노르트스트림이 바꿔 놓은 두 나라의 역학 관계
러시아는 자원 강국이다. 천연가스는 세계 2위, 원유는 세계 3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특히 천연가스는 2020년 기준 세계 생산량의 17%에 달하며 미국과 함께 세계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핵심 이익은 원유와 가스의 안정적 공급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경제와 정치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는 중요한 경제적 이익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이를 이용하려는 시도와 서방의 그것을 견제하려는 노력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이 생기기 전,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들을 사용해야 했다. 반면 노르트스트림은 러시아 서부 연안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로 연결된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고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대형 가스관의 개통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먼저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전쟁 억지 수단을 잃는 결과를 갖는다.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군사적 수단을 제외하고, 상대를 가장 강력하게 타격할 수 있는 것은 석유와 가스 거래를 막는 것이다. 공급자는 가장 큰 경제적 이윤을 잃게 되고, 수입자는 산업과 일상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자원을 잃기 때문이다. 과거 우크라이나도 러시아가 위협할 경우 자국 경유 가스관을 잠그거나 파괴하겠다는 카드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노르트스트림 1,2 가스관은 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는다. 2021년 9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이 완공되고, 그 직후인 10월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15만 병력을 배치하며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국가 주력 산업의 손실 없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석유는 언제까지 주요 에너지원일까?
재생에너지가 늘어도 석유 소비는 줄지 않는 이유
왜 재생에너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석유 소비량은 줄지 않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재생에너지와 석유는 그 쓰임이 달라서 서로의 대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둘은 마치 장화와 하이힐처럼 용도가 판이하게 다르다.
많은 사람이 우리가 쓰는 전기는 석유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석유를 이용한 발전 비중은 3~5% 수준이며 화력발전은 대부분 석탄과 천연가스를 사용한다. 석유의 가장 큰 용도는 휘발유, 항공유 등으로 가공되어 차량, 선박, 항공기 등의 연료로 쓰이는 것이다. 수송용 연료로 전체 석유의 약 50~60%가 소비되며, 그다음으로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등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로 약 15~20%가 소비된다. 그리고 남은 일부가 산업용, 난방용 연료나 기타 용도로 활용된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전기 생산을 위한 발전용으로 대부분 사용된다. 재생에너지 중 비중이 가장 큰 수력으로 전기 생산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항공기와 선박의 연료는 될 수 없다. 풍력과 태양광 역시 전기 생산의 원료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역시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석유 화학 제품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한마디로 재생에너지는 발전용 에너지로 비중을 늘려갈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할 테지만 그것이 석유를 대체할 수는 없다.
물론 전기차가 확산되면 전기가 석유를 대신해 자동차의 동력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가 열린다고 해도 석유 소비가 감소하기 쉽지 않다. 우선 전기차는 소형차에 한정해 보급되고 있다. 전기차가 연료 소비가 많은 대형화물차 등 상용차 분야에서 쓰이기 위해서는 배터리 용량과 동력이 한 단계 더 발전해야 한다. 게다가 소형차 부문에서도 아직 의미 있는 비중이 아니다. 전기차 비중이 높은 독일과 영국의 상황을 살펴봐도 석유 소비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석유 고갈, 지금부터 대응해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석유는 아직 50년간 사용 가능한 매장량이 남아 있다. 잠재적 자원량을 고려하면 그 기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50여 년은 대단히 짧은 기간이며 석유를 대체할 만한 자원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그리고 50년분의 매장량도 생산하기 위해서는 시추를 하고 육상과 해상에 생산 설비를 건설하는 투자가 있어야만 한다.
요컨대 자원량이 매장량으로 전환되고 매장량이 생산량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낮은 투자 수준에서는 탐사를 통해 새로운 유전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이미 찾아 놓은 매장량과 자원량조차 적기에 충분한 공급량으로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은 세계 5위의 거대 원유 수입국이라는 점에서 세계 석유 수급의 변화는 국가경제에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과 도전이 절실하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감축 필요 때문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남아 있는 석유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도 에너지 전환은 필요하다. 기후변화 못지않게 새로운 에너지원의 부재도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새로운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과 도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석유는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여가기도 해야 하지만, 현재와 같은 석유 개발 부진과 탄소감축을 추구하는 환경에서는 타의에 의해 석유 소비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탈석유의 과정, 혹은 석유 피크 이후의 시간들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어떤 자산이든 피크를 찍고 감소하는 상황에서 시장의 불안과 수급의 혼란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계의 석유 공급 능력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석유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적, 사업적 역량도 유지하고 확보할 필요가 있다.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에너지 전환 과정도 기본적으로 거대한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따라서 막대한 에너지 소비가 수반된다. 산업과 운송이 절대적으로 석유에 의존한 현실에서는 에너지 전환에서도 석유의 역할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것이 석유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한마디로 장기적 에너지 전환과 지금 당장의 석유 수급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탄소중립이 바꿀 미래의 패권 지도
기후변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탄소중립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가장 많이 채택하고 선언한 단어가 바로 탄소중립이다. 탄소중립이란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하여 순 배출량을 제로로 한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말은 아니다. 탄소감축이 어떤 행위들의 ‘중립’으로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말이 문제의 핵심에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대지 못하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탄소 배출원만큼이나 그것을 상쇄할 수단도 많아서 ‘중립’의 방법으로 탄소제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 그러나 사실 탄소를 흡수할 수단은 조림(造林) 사업과 초기 단계에 있는 CCS 기술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 결국 탄소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에너지를 덜 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립으로 탄소제로를 추구하는 것은 탄소 배출에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분야는 경제의 동력으로서 성장 및 고용과 연관되어 있다. 전기요금과 휘발유 가격도 민감한 부분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탄소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한 채 ‘중립’이라는 포지션을 취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애매한 프레임 속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인식된다. 물론 재생에너지 확대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원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수십 배로 늘어나야 한다. 이것은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간과하게 한다. 바로 재생에너지 자체도 탄소를 줄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재생에너지도 소량이나마 탄소를 배출한다.
탄소감축의 첫째 목표가 탈석탄인 이유
탄소감축을 위한 노력에서 에너지 사용 절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석탄의 퇴출이다. 화석연료 중 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에너지원은 석탄으로, 천연가스 대비 약 두 배의 탄소를 배출한다. 현재 에너지원이 내뿜는 탄소의 44%는 석탄에서 배출된다. 돌려 말하면 석탄을 퇴출하면 탄소 배출량의 44%를 줄일 수 있다. 석탄은 탄소뿐만 아니라 메탄, 이산화황 등 기타 온실가스 배출도 훨씬 더 많다. 수시로 찾아오는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도 석탄이다.
탄소감축 속도는 중국에 달려 있다
중국은 에너지 분야에서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에너지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중국은 세계 6위의 산유국(2020년 기준)이지만 생산량은 자국 소비량의 약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필요한 원유의 약 70%를 수입에 의존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지나치게 많은 탄소 배출량이다. 인구와 경제 규모를 감안해도, 미국의 두 배에 달하는 너무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중국의 탄소 배출이 많은 이유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고 할 정도로 제조업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의 제조업 비중은 약 26.8%로, EU의 16.4%, 미국의 11%에 비해 훨씬 높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석탄 사용량이다. 중국은 신재생에너지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석탄 화력발전의 비중(62.9%)이 높아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다. 이렇게 중국의 석탄발전 비중이 높은 이유는 중국 내 석탄 매장량이 풍부해서 비용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압도적 세계 최대의 석탄 생산국이자 소비국으로, 2020년 생산량이 약 39억 톤에 달했다. 이는 전 세계 석탄 사용량의 절반 수준이면서 석탄 생산량 2위인 인도의 7.6억 톤의 다섯 배에 이르는 수치다.
에너지와 탄소가 결정할 미래
탄소감축 시기에 석유가 더 중요한 이유
탄소감축의 핵심은 에너지를 ‘전기화’하는 것이다. 산업, 운송, 일상에 쓰는 모든 에너지원을 전기화해야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열에너지는 연소를 동반하고 연소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는 연소를 통해 열에너지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전기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활용이 가능하다. 수소도 사용 단계에서는 연료전지를 통해 전기로 변환된다. 결국 화석연료의 사용이 줄어든다는 의미는 에너지 사용 전 분야가 전기화된다는 뜻이다.
탄소감축 사회에서 석유의 역할
에너지 사용의 전기화가 진행되면서 전기차의 숫자가 늘어나고 탈물질화를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석유 소비를 줄이려는 노력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CCUS 기술 등이 흡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면서 배출량과 흡수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탄소중립의 큰 그림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줄일 수 없는 석유 수요가 있다. 가령 수많은 가전제품의 구성 요소가 되는 플라스틱은 내구성을 개선하고 교체 주기를 늘려감으로써 소비를 줄일 수 있지만, 인명을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는 주사기와 의료용 장갑 등 의료기기는 그렇지 못하다. 전기차와 전철 등은 전기와 배터리가 있는 환경에서 구동할 수 있지만 군사용 차량은 전력 인프라가 붕괴된 상황에서도 가동이 가능해야 하므로 전기화가 불가능하다. 일반인의 해외여행은 줄일 수 있어도 인력과 필수 물자의 교류를 위한 활동은 유지해야 할 수도 있다.
요컨대 석유의 사용이 최소화되는 상황일수록 석유는 필수 분야의 사용으로 제한될 것이다(그것이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회 안전, 필수 경제활동, 국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석유 소비는 유지될 것이다. 과거 비필수 분야에서 석유가 쓰이는 환경에서는 석유 수급이 악화됐을 때 비필수적 소비가 석유 수급 악화로 인한 충격을 완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유 소비가 최소화되는 상황에서는 완충 수요가 없다. 석유 소비가 필수 용도로 축소될 때 석유 수급의 안정은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석유공사와 에너지기업의 석유 비축물량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해외 석유 개발을 통한 지분 원유의 확보도 그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
한국과 에너지 환경이 비슷한 일본은 꾸준히 해외 석유가스 개발 사업을 확대하며 자원 확보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2021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일본 기업이 해외 사업을 통해 확보한 석유·가스 물량은 일 175만 배럴이다. 이는 일본이 그해 소비한 물량의 40.6%에 달한다. 2010년에 이 비율이 23.5%였으니 일본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해외 석유 사업을 확대해 온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원유시장에서 일방적 구매자 역할에 머물지 않고 석유와 가스 사업의 참여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제고하고 있다. 또한 필요한 원유의 약 70%를 수입하는 중국도 2016년 이후 5년 연속 국영 석유회사를 통한 석유 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물론 석유 소비는 줄여가야 한다. 그러나 자발적 다이어트와 외부 환경에 의한 굶주림이 다르듯, 소비 감축은 한국이 주도하는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에너지 공급난 또는 오일쇼크와 같은 외부 충격에 의한 소비 감소는 그 피해도 크거니와 에너지 전환의 동력도 약화시킨다.
탄소중립은 의무와 불만 사이의 예술
*의무와 불만 사이의 줄타기
탄소제로로 가는 길은 ‘의무와 불만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것이다. 의무에 대한 의식 수준도 커지고 있지만 그에 따라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때 생기는 불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 비용은 휘발유 가격 인상이나 전기료 인상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동반해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에너지 비용이라는 경제적 부담 외에, 과도하게 소비하는 사람을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 보듯 하고, 무소유와 검약을 인격의 잣대로 판단하는 문화도 필요할지 모른다.
정리하면 탄소감축은 우리 시대의 흐름이자 의무다. 지금 시점에 이보다 높은 이상과 가치를 가지는 것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적 손실과 대중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대중은 경제적 고통과 손실에 민감하므로 지나친 환경주의적 관점에서 산업과 경제를 고려하지 않는 전략도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작용은 반작용을 부르기 마련이고, 그것이 국민의 불편과 불만을 누적시킨다면 성공할 수 없다.
또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필요한데, 이 역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역량을 한곳으로 모으고 도전을 자극하는 것은 자본의 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탄소중립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에너지 비용 증가와 물질 소비의 감소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비용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고 너무나 가치 있는 것임을 끊임없이 설득하는 정치적, 사회적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의 석탄발전 비중, 한국의 탄소 배출량,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 한국의 석유 소비량 그리고 CCS 투자 규모 등 에너지와 관련한 객관적 수치를 냉정하게 볼 때 한국의 노력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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