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것들의 비밀
 
지은이 : 윤정원
출판사 : 라곰
출판일 : 2022년 04월




  • 전 세계를 무대로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시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시장의 확장’과 ‘새로운 가치’를 담아야 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70%는 디지털 전환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CEO들의 DX 컨설턴트’ 윤정원이 기업과 개인을 살리는 디지털 생존을 말합니다!


    살아남는 것들의 비밀


    기술로 경계를 무너뜨려라 : 기술 X 경계

    스타벅스에서 커피가 사라진다 _ 빅블러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애정은 엄청나다. 시내 중심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고, 웬만한 골목에도 커피숍 없는 곳이 없다.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온 빌딩은 임대료가 올라가고, 유명 커피숍 하나가 골목 상권을 살리기도 한다.


    서울은 그 어떤 글로벌 도시보다도 카페가 많기로 유명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커피전문점 현황 및 시장 여건 분석>(2019)에 따르면, 한국의 커피숍은 치킨집보다 3배나 많다고 한다. 또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 역시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한국인은 연간 353잔의 커피를 마신다고 하니, 국민 모두 매일 한 잔씩 마시는 셈이다.


    타인과의 거리두기가 일종의 사회적 미덕이 된 유례없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스타벅스’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스타벅스는 매장마다 손님으로 북적거렸다. 실제 스타벅스는 2021년 대한민국에서 역대 최고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년 대비 2조 3000억여 원의 초과 매출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1999년 스타벅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20년여 만에 처음으로 2조 원의 매출을 달성한 것이다.


    사실 자영업자들에게 최근 2년은 잔인하리만큼 가혹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했던 탓에 골목 상권의 소규모 커피숍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스타벅스만큼은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해나갔다. 2020년에만 1404개의 매장을 신설해, 전국의 매장 수가 3만 2660개에 달한다. ‘스세권’이 한때 주거 만족도를 표현하는 하나의 작은 프리미엄이었다면, 이제는 스타벅스 없는 동네를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스타벅스의 성공에는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카페 문화의 도입, 가성비 좋은 공간서비스, 한국인들의 유별난 커피 사랑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오프라인 매장을 생태 기반으로 삼는 전통적 제조업종인 커피 전문점이 어떻게 온라인 커머스로 빠르게 대체되는 현재의 시장 상황에서 생존을 넘어 성장의 날개를 달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 해답은 스타벅스가 발 빠르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스타벅스 앱을 들여다보면 그 변화의 구조가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 스타벅스 앱은 옴니채널(omni-channel)을 지향하며 산업군의 경계를 넘나든다. 커피 산업의 본질은 제조업이지만 금융까지 아우르며 기존 산업군의 정의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것이다. 단순히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수준이 아니라 커피를 팔아 막대한 현금 유동성(선불 충전)을 확보하게 됐다는 의미다.


    ‘모든 것’을 의미하는 옴니와 유통 경로를 의미하는 채널의 합성어인 옴니채널은 온라인 커머스와 오프라인 매장을 결합한 환경을 뜻한다. 소비자가 항상 같은 매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쇼핑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 A지점이나 지방 어느 도시에 있는 스타벅스 B지점이나 똑같은 매장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멀티채널이 판매처를 다양화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방식이라면, 옴니채널은 다양한 유통 채널을 하나로 연계해 고객 편의를 높이는 방식이다. 멀티채널의 경우, 같은 제품이라도 해당 채널이 어떤 콘셉트냐에 따라 제품에 대한 고객 경험이 달라지지만, 옴니채널의 경우에는 어느 채널에서 구매하든 고객의 경험치는 같다. 또 옴니채널은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픽업하거나, A지점에서 구매한 제품을 B지점에서 반품하는 등의 일이 가능하다.


    스타벅스는 옴니채널 생태계를 구현한다. 앱을 통해 사이렌 오더로 음료를 주문하고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에서 음료를 픽업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디지털 서비스 경험을, 기업에는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편을 제공하는 셈이다.


    스타벅스는 옴니채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바로 선불 충전이라는 결제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스타벅스 카드는 앱에 삽입되는 모바일 카드와 실물 카드의 두 가지 형태로 구입이 가능한데, 모바일 카드의 경우 지갑 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커피를 미리 주문해 기다리지 않고 바로 픽업할 수 있다는 편의성 덕분에 불티나게 팔렸다. 2018년 스타벅스가 많은 사람의 우려 속에서 시작한 ‘현금 없는 매장’도 스타벅스 카드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현금 결제가 아닌 카드 결제만 받는 ‘현금 없는 매장’ 덕분에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리워드가 더 많고, 편리한 스타벅스 앱으로 갈아탔다.


    국내 스타벅스의 2020년 선불 충전금은 1801억 원에 달했다. 토스(1214억 원)나 네이버파이낸셜(689억 원)보다도 큰 금액이다. 전 세계로 범위를 확대해보면 스타벅스 앱에 충전된 금액은 약 20억 달러(2조 4800억 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내 은행의 87%가 총 자산이 10억 달러(1조 2400억 원)가 안 되니, 웬만한 기업이나 은행보다 커피 전문점이 훨씬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스타벅스를 단순히 커피 전문점만으로 볼 수 없다. 스타벅스는 막대한 규모의 선불 충전금을 은행에 예치해 이자를 받거나 투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거대한 금융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성공적인 온라인 커머스를 이룬 유통업으로, 강력한 팬덤을 지닌 오프라인 제조업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스타벅스는 빅블러(big blur)현상을 대변한다. 빅블러는 기존의 산업 간, 업종 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생산자의 소비자의 구분이 사라지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지며, 제품과 서비스의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은 바로 이 빅블러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더욱 빠른 속도로 업종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하게 하며, 고객을 오랫동안 꾸준히 우리 기업에 묶어 두는 것이다. 이것을 디지털 기술 기반이 모든 곳에 연결된다(All is connected)는 원리로 이해하면 쉽다. 고객을 우리 기업에 묶어두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제조는 유통으로, 유통은 제조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그 강력한 무기는 금융 서비스 부분까지 선점하게 한다.


    아마존, 애플, 알리바바, 알파벳, 텐센트 등 시가총액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글로벌 기업 가운데 이미 7개 기업이 스타벅스와 같이 금융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아마존은 아마존 페이, 아마존 고, 아마존 알렉사 등을, 애플은 애플 페이를 출시했다. 국내에서도 IT기업들이 금융업에 진출해 기존 금융 회사와 경쟁하며 산업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특정 사업에 대한 기존 정의로만은 미래 시장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제조업이라고 해서 제조업 안에서만, 서비스업이라고 해서 서비스업 안에서만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그 경계를 뛰어넘게 도와줄 기술들이 가까이에 있다. 어떤 기술이 우리 기업에 필요한지, 판을 뒤집는 전력을 하루라도 빨리 구상하고 도입해야 할 때다.



    데이터로 라이프에 들어가라 : 데이터 X 라이프

    아마존이 전자레인지를 파는 이유 _ 디지털 집사

    오늘 저녁은 어떤 메뉴로 할까, 고민하다가 앱을 켠다. 앱에서는 나의 식습관에 맞춘 맞춤형 식단과 레시피를 제공해준다. 가족에게 재료를 오븐에 넣어달라고 말한 뒤, 나는 앱을 통해 내가 원하는 조리 모드와 시간, 온도를 설정해 오븐으로 자동 전송한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메뉴가 완성돼 있다.


    마치 공상과학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이제 현실에서도 가능하다. 바로 인공지능 스마트홈 가전 이야기다.


    코로나19이후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것은 다름 아닌 ‘집’이다. 집은 일터이자 학교로, 운동과 영화 관람은 물론 각양각색의 소모임이 가능한 취미 활동의 공간으로, 때로는 안전한 은신처이자 편안한 쉼터로 그 기능이 무한대로 확장됐다. 기능의 확장은 공간을 채우는 물건에도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 덕분에 생활 가전 시장도 급속히 성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사회의 재화 및 서비스 시장은 대부분 노동량과 시간을 절약하는 쪽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여성을 과도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 세탁기를 비롯하여 냉장고, TV로 대변되던 신혼 가전 3대 품목은 식기세척기, 건조기, 로봇 청소기로 바뀐 지 오래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편리함을 넘어 소비자가 개인의 사용 패턴까지 고려한 스마트 가전, 스마트홈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아마존은 이미 2018년 알렉사를 이용해 소비자들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알렉사는 아마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AI 스피커 등에 들어가는 인공지능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마존은 알렉사를 스피커는 물론 전자레인지, 시계, TV등 집 안 곳곳에 있는 기기에 적용했다.


    알렉사가 탑재된 아마존 베이직 전자레인지는 사용자의 식습관을 기억한다. 그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가 가장 좋아할 만한 상태로 음식을 가열해주고, 음식이 덜 데워졌다 싶으면 사용자가 말로 하는 명령에 즉시 반응한다. 더 놀라운 건 2018년 출시 당시 가격이 59.99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아마존 디바이스 책임자인 데이브 림 수석 부사장은 “전자레인지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여전히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면서 아마존이 전자레인지를 만든 이유를 밝혔지만 그 너머에는 집 안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정형성 데이터가 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하면 사용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파악해 아마존 내에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전자레인지를 통한 음식 구매와 배달까지도 가능해진다. 전자레인지를 매개로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사람을 모으기 위한 똑똑한 전략이다.


    삼성은 ‘비스포크’도 스마트홈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브랜드 명인 비스포크(bespoke)는 원래 맞춤 정장에 사용되는 용어였지만, 이제는 그 사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맞춤형 생산’을 뜻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상품 제작 전에 의뢰하여 ‘나만의 물건’을 만드는 것이 비스포크의 핵심. 어느 집이든 브랜드 로고 말고는 외관상 차이를 딱히 알아채기 힘들던 냉장고에, 그것도 문짝 하나하나마다 색색의 컬러를 내 마음대로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상이다.


    이 디자인 혁명 하나로 삼성 비스포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경쟁사를 제치고 생활 가전 부문 판매 1위를 달성했다. ‘가전을 나답게’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집스타그램 대홍수 시대와 맞물리며 그야말로 생활 가전 시장에 일대 전환기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에 기반한 스마트홈 기능까지 더해지며 생활 가전은 전례 없는 진화를 보여주는 중이다. 기존의 스마트홈 가전은 기기 간의 연결 또는 앱을 통한 간단한 작동 등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소비자 맞춤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기술도 비스포크가 가능해진 것이다.


    비스포크 큐커는 전자레인지, 오븐, 에어프라이어의 기능이 하나로 합쳐진 신개념 조리 기기다. 큐커는 ‘스마트싱스’가 탑재돼 식재료 구매부터 조리까지 전 과정을 개인의 성향에 맞출 수 있게 했다. 사용자의 식습관을 생각한 맞춤형 레시피를 제공하기도 하고, 그 음식에 필요한 식재료나 조리도구 등을 냉장고 스크린이나 모바일 기기로 보내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도록 돕는다. 레시피와 조리 과정이 데이터화되어 있기 때문에 큐커가 음식을 하는 동안 조리 시간과 온도 등이 자동 조절된다. 삼성전자 스마트홈 서비스를 아우르는 스마트싱스 이용자 수는 한 달 600만 명(2020년 4월 기준)을 돌파하기도 했다.


    LG전자도 인공지능 브랜드 ‘LG 씽큐’를 앞세워 소비자들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LG 씽큐는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 33종의 가전과 센서를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비서다. 특히 LG전자는 식품 회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식품 구매를 돕는 것은 물론 조리법까지 알려준다. 가령 사용자가 협력사인 동원 F&B의 간편식과 김치를 구매한 뒤 간편식에 있는 바코드를 찍으면 전자레인지가 자동으로 최적의 조리법을 찾아주고, 김치에 있는 바코드를 찍으면 냉장고가 자동으로 제품을 인식해 가장 적합한 온도와 시간을 설정해준다.


    이제 소비자가 제조사와 유통사를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려서는 생존할 수 없다. 소비자들보다 한 발 먼저 니즈를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주문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야 한다. 집은 이를 위한 너무나도 매력적인 공간이다. 집 안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그것만큼 강력한 바운더리가 있을까.



    새로운 디지털 경험으로 가치를 선점하라 : 메타버스 X 가치

    어른들의 새로운 놀이터, 자동차 _ 인카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연간 평균 729시간을 운전에 할애한다. 1년 중 꼬박 한 달을 차 안에서 운전만 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율주행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정교해진다면 무의미해 보이는 그 한 달이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운전할 필요가 없어지면 차 안에서 보내는 4만 3740분의 잉여 시간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는 이미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동차 제조 회사가 아닌 ‘디자인 회사’로 설정했다. 자동차가 아닌 ‘미래형 모빌리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차 안에서의 시간’이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영역을 담당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자동차에 대한 인식 변화와 함께 차 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더욱 중요해지는 지금, 주목해야 하는 키워드는 바로 ‘인카 엔터테인먼트(in-car-entertainment)’다.


    인카 엔터테인먼트는 이동 시간 동안 탑승자가 차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콘텐츠를 아우른다. 세계 최대의 소비자 가전 박람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19에서는 특히나 인카 엔터테인먼트가 각광받았고 그중 두드러진 것이 바로 디즈니와 협업한 아우디였다. 자동차 제조업체 아우디가 콘텐츠 기업 디즈니와 손을 잡은 것부터가 이전까지는 없었던 신선한 시도였다.


    아우디가 디즈니와 함께 개발한 것은 자동차 안에서 즐길 수 있는 VR 콘텐츠다. 탑승자가 VR 안경을 쓰면 자동차는 우주선으로 바뀌고 우주여행이 시작된다. 차의 움직임을 우주선으로 바꾸는 기발한 발상에 디즈니만의 강점인 애니메이션을 십분 활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자동차의 움직임이 VR에도 그대로 반영돼 운전자가 더욱 실감나게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자동차가 우회전을 하면 VR 속의 우주선 속도도 빨라지는 식이다. 실감나는 우주여행을 한 번 하고 나면 탑승자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일론 머스크의 말처럼 차 안에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인카 엔터테인먼트는 제법 구체화 단계에 들어섰다. 아우디를 시작으로 각국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저마다 특화된 인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볼보는 자사의 최신 자동차에 구글 플랫폼을 탑재해 차량 내의 모니터를 통해 유튜브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하게 했고, BMW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2에서 뒷좌석 탑승자를 위한 31인치 차량용 스마트TV를 공개했다. 영화 콘텐츠 등에 최적화된 32대 9의 화면 비율을 자랑한다. 5G 접속을 통해 고해상도 영상 스트리밍을 지원함으로써 뒷좌석에 앉아 있으면 마치 영화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뒷좌석을 전용 시네마 라운지로 꾸민다는 전략이다.


    역으로 제조업이 아닌 다른 산업군에서 인카 엔터테인먼트 시장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음악 스트리밍을 제공하는 스포티파이는 프리미엄 사용자 가운데 일부를 선정해 자체적으로 만든 차량용 하드웨어 ‘카싱’을 제공했다. 스마트폰처럼 생긴 카싱은 자동차 운전자에 특화된 제품으로서 자동차 대시보드에 거치해 사용할 수 있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 바로 쇼핑이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데도 결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면 소비자는 운전 대신 여가를 즐기며 차 안에서 쇼핑까지 해결하게 된다. 차량 한 대가 움직이는 지갑이 되는 것이다. 이에 소비자들이 좀 더 편하게 지갑을 열 수 있도록 ‘인카 페이먼트(in-car-payment)’가 가시화되고 있다.


    실제 2022년형 르노삼성자동차의 XM3와 SM6등에 인카 페이먼트 시스템이 도입됐다. 차량에 탑재된 애플리케이션을 운전자의 스마트폰과 동기화해 작동시키는 방식이다. 먼저 서비스가 도입된 곳은 운전자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주유소와 편의점이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편의점에서 구매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도에서 인카 페이먼트 서비스가 가능한 편의점을 찾은 뒤 클릭하면 된다. 그러면 편의점이 판매하는 물건과 재고 수량이 뜨고, 운전자는 이 중 구매할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은 뒤 결제만 하면 끝이다.


    픽업도 운전자에 최적화했다. 별도의 픽업 존을 만들어 물건을 수령하게 하고, 픽업 존이 따로 없는 편의점이라면 ‘도착 알람 메시지’를 신청해 차 안에서 직원이 가져다주는 물건을 수령하게 한다. 아직까지 서비스의 영역이 한정되어 있지만 아이가 있어 차에서 내릴 수 없거나, 몸이 불편한 운전자들에게는 차 안에서 결제하고 물건까지 수령할 수 있는 인카 페이먼트 서비스의 만족도가 높다.


    시간과 경험이 곧 돈으로 치환되는 미래 사회에서 인카 엔터테인먼트의 확장성은 매우 크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연결된 거대한 전자 기기가 되고, 그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여가의 영역이 되어버리면 차량 내의 생태계는 더더욱 확장될 것이다.


    처음에는 기술력으로 앞서가는 기업들이 나오겠지만 문제는 과연 어떤 경험으로 새로운 가치를 주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다. 기술은 결국 평등해질 수밖에 없고,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경험밖에 남지 않기에.



    지속가능한 판을 깔아라 : 플랫폼 X 시장

    “아마존에서 판매중인 모든 상품을 철수합니다” _ D2C

    2019년 11월, 나이키 신임 CEO 존 도나호는 그야말로 폭탄선언을 했다. 미국의 가장 큰 유통 플랫폼인 아마존에서 판매 중인 모든 나이키 상품을 철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어느 기업이든 미국에서 제품을 팔 때 유통 시장 1위 기업인 아마존을 배제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나이키는 아마존을 포함한 인터넷 소매 업체를 통한 매출이 전체 매출의 84%에 달할 정도로 채널 의존도가 높았다.


    의아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의 유통 플랫폼에서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마케팅일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을 과감히 포기하다니, 아무리 세계적인 팬덤을 지닌 브랜드라 하더라도 이런 선택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존 도나호는 확고했다. 그는 아마존 철수를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앞으로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 기존 소매업체와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자체 웹사이트와 모바일, 오프라인 판매에 집중해 전 세계 소비자에게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나이키가 탈(脫) 아마존을 선언한 것은 사실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로벌 스포츠웨어 기업 중에서 브랜드 가치나 매출 규모에서 줄곧 1위를 기록했던 나이키의 성장률은 2016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7년에는 경쟁 기업인 아디아스에게 부동의 1위 자리까지 내어주고 말았다. 나이키로서는 대대적인 브랜드 개혁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주요 전략 중 하나가 유통구조의 혁신이었다. 나이키는 독자적인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D2C(Direct To Customer), 소비자 직거래 사업 전략을 세웠다. 제조업체가 직접 유통까지 책임지는 D2C 방식으로 전환하면 우선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각종 수수료는 물론 물류비, 인건비 등 보이지 않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나이키가 D2C 전략으로 선회한 더 주요한 이유는 제조업체가 직접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면 소비자의 반응을 데이터로 실시간 파악해서 맞춤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판매구조에 따르면 제품은 제조업체-도매업체-유통업체-소매업체를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지만, D2C로 가면 도매업체-유통업체-소매업체의 세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 이는 제조업체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직접 하고, 고객 접점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가진다. 브랜드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전달하고 브랜드가 원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이키는 탈아마존을 선언한 이후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탈아마존을 선언한 이듬해 9월에서 11월까지 3개월간 나이키 매출은 전년보다 9% 늘어난 112억 달러(13조 8880억 원), 영업이익은 30% 증가한 15억 달러(1조 8600억 원)를 기록했다. D2C 매출만 43억 달러(5조 3320억 원)로 온라인 판매가 84%나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점포의 판매가 줄어든 영향도 있었지만 D2C 전환의 효과는 매우 컸다.


    어쩌면 나이키의 D2C 전략은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를 이미 확보한 덕분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나이키가 단순히 운동화를 판매하는 측면에서만 D2C 전환을 했다면 생존 경쟁에서 도태되었을지 모른다. 나이키는 소비자의 브랜드 충성도를 그대로 이어갈 방법을 고민했다. 비즈니스 생태계를 확대할 수 있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고민한 것이다.


    ‘나이키 런 클럽’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이키 주소비자층의 니즈는 운동이다. 그런데 이 운동이라는 것이 꾸준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의욕을 가지고 시작해도 게을러지기 십상이다. 이럴 때 나이키 런 클럽이 운동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조깅을 하는 동안 얼마나 빠른 속도로 뛰고 있는지, 얼마나 뛰었는지를 알려주며 동기부여를 해준다. 처음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운동 가이드도 설계해준다. 자신이 열심히 뛴 기록을 보며 기뻐하고, 서로의 기록을 공유하며 독려할 수도 있다.


    제품 판매를 넘어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 자사 제품을 사용하면서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 그것이 나이키가 독자적으로 D2C로 전환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 시장이다. 그리고 수요자, 즉 고객의 니즈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에 있다. 나이키의 성공적인 D2C 전환이 기존의 충성 소비자층을 넘어 새로운 소비자층의 니즈까지 포괄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존의 유통구조에서 한계를 느낀다면 나이키가 구축했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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