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람들의 환호와 열광 속에 가려진 인플루언서의 모습을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한다. 매끈하게 보정되어 있고, 포토샵과 같은 필터링과 음향효과로 꾸며져 있는 인플루언서의 장밋빛 썸네일 뒤의 모습은 어떠한지, 친구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댓글로) 고민을 주고받고 (랜선) 집들이에 초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일상을 공개하면서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지 등 그동안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인플루언서의 세계를 경제ㆍ사회ㆍ문화적인 측면에서 최초로 분석했다.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장단점과 경제적 효과, 문화적 파장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며 인플루언서에 대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볼프강 M. 슈미트(Wolfgang M. Schmitt)
유튜버와 팟캐스터, 그리고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이데올로기 중심의 유튜브 영화비평 채널 〈영화분석(Filmanalyse)〉을 개설했고, 〈새로운 20년대(Die Neuen Zwanziger)〉라는 팟캐스트 채널도 운영 중이다. 월 1회 업로드하는 해당 팟캐스트에서 슈미트는 슈테판 슐츠(Stefan Schulz)와 호흡을 맞추며 정치와 시대정신에 대해 각종 담론을 펼친다. 〈모두를 위한 번영(Wohlstand f?r Alle)〉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에서는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올레 니모엔과 함께 자본과 경제사상사, 정치학적 관점에서의 경제 등 경제 전반에 대해 논한다.
올레 니모엔(Ole Nymoen)
예나(Jena)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현재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 역자 강희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독과를 졸업했다.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수학이 만만해지는 책》, 《직관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리얼리티 쇼크》, 《통계의 거짓말》, 《나는 괜찮지 않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 등이 있다.
■ 차례
서문
1. 인플루언서 예고편
2. 스러져가는 자본주의의 구원 투수
3. 새로운 광고 도구의 탄생
4. 창의력인가, 흉내 내기인가
5. 시들지 않는 외모 비즈니스
6. 다시 쓰는 핑크와 블루
7. 댓글을 달아주세요
8. 친절하고 다정한 인플루언서
9. 인증샷으로 떠나는 여행
10. 아메리칸 드림의 마지막 주자
인플루언서는 "자신만의 콘셉트로 각종 상품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SNS 스타"를 의미합니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인플루언서의 세계를 경제,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최초로 분석한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장단점과 경제적 효과, 문화적 파장은 무엇인지 들여다보며 인플루언서에 대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플루언서
인플루언서는 영어 동사 ‘인플루언스(Influence)’에서 파생된 말로 인플루언스는 ‘영향을 미치다’라는 의미다. 인플루언서의 역할도 바로 그런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모두가 인플루언서는 아니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이들 모두를 인플루언서라 부른다면 특별히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07년 무렵 마케팅 분야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인플루언서’라는 용어는 자신만의 콘셉트로 각종 상품을 홍보하는 콘텐츠(사진, 동영상, 텍스트 등)를 만들어내는 SNS 스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단 한 개 브랜드만을 위한 홍보 대사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상품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광고 대상 제품과 자신을 어떻게든 연관시킨다는 점이다. 본인이 해당 제품을 어떻게 얼마나 유용하게 쓰고 있는지를 최대한 잘 설명하고, 소비자인 동시에 광고 모델로서의 이중적 역할을 그럴싸하게 연출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주력하는 어느 광고 대행사는 “타깃그룹에 속한 사람보다 더 사실적이고 진정성 넘치는 확대 재생자는 없다”라며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성의 가면’은 수위가 어디까지일까?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서부터 감춰야 감쪽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아직은 최적의 경계가 어디인지 정해지지 않았다. 이 부분은 인플루언서 마케팅 전문가들이 앞으로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 중 하나다.
새로운 광고 도구의 탄생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한 인플루언서들을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은 ‘돈벌이’다. 물론 자신의 목표가 돈벌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인플루언서들은 거의 없다. 자신들의 역할을 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 인플루언서들이 더 많다.
특정 제품을 광고함으로써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인플루언서들은 왜 자신들이 마케터가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그저 ‘영감’을 주는 ‘친구’일 뿐이라고 착각하고 있을까? 혹은 알면서도 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업로더에 불과한 것처럼 자신을 포장할까? 돈벌이라는 목적을 감추고 오락적 요소만 강조해야 시청자들의 주머니를 쉽게 털 수 있다는 전략일까?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논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뒤에는 더 복잡한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인플루언서들이 스스로 바라보는 관점과 돈벌이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플루언서의 역할에는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스포츠나 연예계에서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라면 초단기에 수백만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예외적인 경우다. 대중적 인기를 이미 얻은 셀럽이 아닌 이상, 힘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인플루언서가 된다. 짧게는 몇 달, 때로는 몇 년에 걸쳐 재미있는 동영상이나 여행지의 멋들어진 풍경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비로소 커뮤니티의 ‘네임드’, 즉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다. 제품 광고는 그 이후부터 가능하다. 팔로워가 20~30명쯤 되는 인스타그램 사용자에게 자사 제품의 광고를 맡기는 업체는 없다.
유튜버 1세대들이 올린 동영상을 지금 다시 보면 방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감이 올 것이다. 그 시절, 업로더들이 목적은 돈이 아니라 관심과 인정이었다. 지금 그 영상들을 다시 보면 “이야, 그땐 저랬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지금은 인플루언서가 되어 클릭 장사로 거금을 챙기고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그 시절 올린 영상 속 미소는 순진무구했고, 편집이나 조명도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들은 순식간에 진화했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꽤 큰돈을 투자하고, 편집도 순식간에 해내며, 영상의 퀄리티도 발전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게 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설립 2년 후인 2007년부터 ‘파트너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콘텐츠를 감상하기 전에 광고부터 감상하게 만드는 ‘윈-윈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아직 인플루언서라 부를 수 없는 그 시절 유튜버들은 광고 수익의 일부를 받는 것만으로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상황은 금세 달라졌다. 스타 유튜버들에게 협찬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인이 자신의 매우 평범한 일상 속에 이런저런 제품들을 사용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으면서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시작되었다.
인플루언서의 진화 과정은 두 단계로 볼 수 있다. 1단계는 순수한 목적으로 동영상을 올리다가 수만, 수백만 팬을 거느리게 된 온라인 스타들의 등장이다. 이후 그들이 인플루언서로 진화한 것이 2단계다. 지금도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스타 유튜버들이 많은데, 1단계를 거쳐 2단계로 넘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 그룹에 속하는 인플루언서들은 자신들이 기본적으로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한다. 엔터테이너로 일을 하다 보니 돈이나 유명세가 따라 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온라인에 데뷔하는 이들은 손가락에, 머리에 불이 나도록 계산기를 두드린다. 한편, ‘자본’은, 다시 말해 타깃그룹을 공략하려고 혈안이 된 기업들은 인플루언서들을 재미있는 엔터테이너, (본인들도 모르는) 자신들의 욕구를 백 퍼센트 넘게 채워줄 ‘광고 도구’로 인식한다.
이중적인 인플루언서의 사회적 지위
인플루언서들 중에는 돈벌이를 위해 육체와 영혼을 자본에 파는 이들이 많다. 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만큼 높은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결국 인플루언서도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버는 사람이고, 그런 면에서 착취의 주체보다는 착취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를 연발하게 만드는 영상, 제품의 가성비를 약속하는 영상은 광고 가치를 높이고 광고주의 이미지를 개선한다. 잘하면 판매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수입 대부분은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광고주의 지갑으로 들어간다(광고주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인플루언서에게 지급해야 할 보수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고 모든 인플루언서가 자본의 발밑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유명세와 인기도, 전문성을 인정받은 뒤부터는 자신이 직접 자본가가 될 수도 있다. 대형 코스메틱 업체와 손을 잡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샴푸나 화장품을 출시할 수 있다. 이 경우, 인플루언서는 비록 제품을 직접 유통하지는 않지만 업체와 거의 대등한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착취의 주체라 할 수 있다.
스타 인플루언서들은 더 이상 거대 자본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쇼핑몰을 만들고, 각종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자신만의 티켓몰을 오픈하며, 1인 출판사를 직접 설립한 뒤 다양한 레시피가 담긴 요리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렀고, 직접 광고주를 섭외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자본가와 인플루언서 그리고 인플루언서 밑에서 하청작업을 하는 이들의 착취 구조는 이렇듯 복잡하고 다양하다. 인플루언서들은 인기도나 판매, 유명세와 전문성에 따라 착취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되기도 한다.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신흥 중산층들을 ‘착취자인 동시에 피착취자인 계층’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라이트는 또 현대 자본주의 속 착취와 피착취의 불분명한 역학관계 때문에 모순적, 양면적 계층구조가 탄생한다고 주장한다.
양쪽 계층 모두에 속하는 이들의 간절한 목표는 지배계층, 착취계층에 합류하는 것이다. 착취를 하는 입장이 되어 열매를 따먹으면서 자본을 축적하고 이로써 자본가들에게 ‘한 방을 날리고’ 싶은 것이다.
인플루언서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인플루언서들은 추락을 두려워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한순간에 더 깊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것을 걱정한다. 자신이 이용하는 플랫폼을 비난할 때도 있다. 이상한 규정을 만들어서 수입이 확 줄어들었다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엔 플랫폼이 정한 게임의 법칙을 비교적 얌전하게 따른다. 그래야 신분상승의 고리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적어도 더 이상 추락은 하지 않을 수 있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인플루언서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시들지 않는 외모 비즈니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다
예전 스타들은 무대에 올랐다가 커튼이 닫히면 사라졌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들의 몸은 언제든지 볼 수 있다. 어떤 피트니스 앱을 사용하는지, 어떤 운동 장비를 쓰고 어떤 건강 보조제들을 복용하는지 등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다.
인플루언서들은 늘 자신의 몸을 업그레이드 대상으로 설명한다. 한 편의 동영상이 끝난다 해서 업그레이드가 끝나는 일은 결코 없다. 영상의 마무리 단계에서 어제보다 약간 나아진 결과만 보여줄 뿐이다. 내일도 나를 가꾸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새로운 협찬사가 나타나면 또 다른 결점들이 새록새록 등장한다.
여성 인플루언서들은 매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각종 ‘생활의 지혜’를 올린다. 어떻게 하면 가슴이나 눈매를 더 강조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 어떤 옷이 더 어울리는지, 어떻게 하면 섹시미를 더 부각할 수 있는지 등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패션 아이템이나 광고주들에게서 받은 제품들을 소개한다. 인스타그램에 가면 일 년 365일이 패션위크다.
오프라인에서 개최하는 패션소의 의미가 쪼그라들고 있다. 패션쇼는 인플루언서와 손을 잡은 거대 브랜드들이 신상품을 소개하는 무대일 뿐이다. 이제 많은 브랜드들이 ‘인스타그램에서 통하는’ 옷들로 컬렉션을 채우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옷, ‘척하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옷에만 집중하고 있다.
인플루언서들에게도 인지도는 목숨만큼 중요하다. 어떻게든 ‘튀어야’ 살아남는다. 그러기 위해 비현실적인 몸매, 한눈에 봐도 튀는 패션, 특이한 액세서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알록달록, 휘황찬란한 커다란 귀걸이를 착용하기도 하고, 블링블링한 가방을 들기도 하며, 번쩍번쩍 빛나는 버클이 달린 벨트를 두르기도 한다. 그 모든 게 다 플랫폼 자본주의를 홍보하는 네온사인 광고판이다. 스니커즈 굽은 점점 더 두꺼워지고, 비즈나 태슬, 리본이나 스터드 등 신발을 장식하는 아이템의 개수나 크기도 커진다. 왜일까?
스마트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가 업로드한 포스팅은 모두들 스마트폰으로 감상한다. 스마트폰을 보는 사진의 사이즈는 TV나 패션잡지로 접하는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오드쿠튀르 패션쇼가 한때 표방했던 ‘디테일에 대한 애정’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플루언서는 늘 볼거리를 던져줘야 한다.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에 과장된 몸짓이나 기괴한 표정, 우스꽝스럽게 눈동자를 굴리거나 입술을 비트는 영상이 넘쳐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몸을 꺾어서 몸매 굴곡이나 근육을 부각한 콘텐츠도 많다. 그걸로 부족하면 보정 속옷까지 동원한다. 보정 속옷으로 군살과 지방은 가리고, 가슴과 엉덩이는 부풀린 뒤 만족스러운 몸매 사진을 찍는다.
외모를 조금 더 아름답게 가꾸려는 인간의 욕구에는 끝이 없다. 요가나 줌바댄스를 아무리 열심히 한들 그 효과가 영구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손을 좀 봐야 할’ 곳들이 새록새록 눈에 띈다. 그간 꽤 많은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인간의 몸과 외모를 담보로 한 비즈니스는 결코 시들지 않았다. 그 시장에는 ‘포화 상태’라는 말이 없다. 걸어 다니는 광고판들의 자본축적과 소비 부추기기에도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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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권력자의 등장
인플루언서라는 신인류가 등장했다. 어디가 어딘지 꿰뚫어 볼 수 없는 새로운 정글 속에서 우리는 방향 설정을 도와줄 이정표가 필요했고, 인플루언서들은 작가 게오르크 루카치가 말한 ‘선험적 실향(transcendental homelessness)’ 상태 속에서 일종의 틈새시장을 발견했다. 사용자들은 클릭을 통해 디지털 권력, 즉 인플루언서에게 스스로 다가간 뒤 ‘구독’을 누르며 무한 자유에서 오는 부담에서 탈출한다.
인플루언서들은 롤모델을 제시한다. 다정하고 친근한 말투로 어떤 삶이 바람직한지 충고해주고, 팔로워들 모두가 자신과 똑같아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는 마무리 멘트는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팔로워들에게 진짜로 무한한 선택의 자유가 있을까? 인플루언서가 팔로워에게 약속하는 선택의 자유는 이미 틀 안에 갇힌 자유, 광고주의 이익에 맞게 재단된 자유, 각 SNS 플랫폼이 설정해놓은 알고리즘 안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팔로워가 특정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처음 접하는 경로부터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팬들이 직접 특정 인플루언서를 선택할 때보다 의도적으로 꺾어놓은 방향을 따라가다 보니 특정 인플루언서의 영상을 클릭하게 된 경우가 더 많다. 인플루언서를 관리하는 소속사들은 일종의 카르텔을 구성한다. 협찬사를 모집하고, 링크를 통해 제휴사를 홍보하는 등 ‘밑 작업’들을 통해 자신의 피고용인인 인플루언서들에게 팔로워들을 넘겨주는 것이다.
인플루언서들은 틈만 나면 선택은 각자의 몫임을 슬쩍슬쩍 강조한다. 샴푸와 헤어 테라피 제품 중 어느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 봄과 가을 중 어느 계절을 더 좋아하는지를 팔로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묻는다.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그건 가짜 민주주의다. 앞에서는 끊임없이 투표권을 주지만, 뒤에서는 투표 결과가 본인이 원하는 방향의 반대쪽 끝으로 쏠리지 않도록 상황을 늘 조종한다. 한편으로는 팔로워에게 결정권을 위임하고 투표권을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 틀릴 리 없는 정답이 이미 나와 있음을 끊임없이 암시한다.
피드백과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관심 경제
인플루언서는 팔로워에게 끊임없이 의견을 묻는다. 이러한 참여 유도는 ‘가짜 참여’를 통해 적어도 현재의 인지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지만, 그 이면에 경제학적 의미도 있다. 클릭 수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SNS 알고리즘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날 때마다 그 채널에 플러스 점수를 준다. 클릭 수가 높은 영상이나 콘텐츠의 순위가 올라가고, 거꾸로 그 덕분에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팔로워들은 장차 인플루언서의 주머니로 들어갈 광고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은 무언가를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만이 유일한 진리라 우기는 건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팬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선택지를 제시한 후 투표에 부친다. 이렇게 팬들을 결론 도출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를 만들어내고, 이로써 잘난 척한다는 비난도 교묘히 피해 간다.
건강식이나 피트니스 분야에서 그런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는데, 그 분야 인플루언서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이 얼마나 섹시한지, 자신의 몸매가 얼마나 완벽한지를 만천하에 공개하지만 모두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고, 누구에게 자신을 따라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귀에 못이 때까지 되풀이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모든 주장들의 끝은 막다른 골목일 수밖에 없다. 만약 그 모든 게 오직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팔로워가 왜 필요하겠는가? 인플루언서들이 ‘만능 키’처럼 활용하는 “물론 결정은 각자의 몫이죠”라는 말속에 과연 진정성이 있을까?
인플루언서의 ‘좋아요’에 담긴 진실
인플루언서의 광고 영상 효과는 할인 코드나 영상에 번쩍거린 제휴사 링크를 타고 온라인숍에 들어와 특정 제품을 구매한 사람의 수와 총매출액을 통해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댓글도 중요한 잣대다. 인플루언서가 홍보한 제품을 구매한 팬들이 댓글창에 ‘주문 완료’나 ‘구매 완료’ 같은 글귀나 짧은 상품평들을 올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는 팬들에게 틈만 나면 이런 종류의 피드백을 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늘 상품 구매를 인증하는 리뷰만 강요하는 건 아니다. ‘친한 친구 코스프레’도 한다. 자신이 업로드한 영상이 알고 보니 광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 그 진실을 중화하기 위해 인플루언서들은 늘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한다.
자신의 일상에 대한 잡담을 늘어놓다가 공론의 장을 마련해줄 때도 있다. 뜬금없이 팔로워들에게 질문 하나를 투척하는 것이다. 질문 내용은 비슷비슷하다. “팔로워님들도 가끔은 저처럼 다음날 스케줄을 이렇게 타이트하게 짜시나요?”, “혹시 이보다 더 나은 복근 운동 비법을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세요”, “여러분은 이번 휴가 때 어디로 가실 계획인가요?” 같은 질문들이 대부분이다. 살다가 마주치는 그저 그런 질문들 끝에는 늘 “댓글을 달아주세요”라는 부탁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인플루언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팬들은 이미 손끝이 간지럽다. 요점만 간단하게 쓰는 팬도 있고, 한 편의 수필을 올리는 팬도 있다. 그 댓글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유명 인플루언서들 중에는 모든 댓글에 일일이 답글을 다는 것은 고사하고 댓글을 읽을 시간조차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플루언서들은 바로 그 부분에서 거짓말을 한다. 충성 고객을 묶어두기 위해,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시건방져 보인다는 이유로 악성 댓글 폭탄을 맞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댓글을 달아주세요”라는 요청은 사실 롤스로이스를 타고 지나가며 기품 있게 손을 흔드는 여왕의 제스처만큼이나 오만하다. 어쩌면 더 큰 꿍꿍이가 뒤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인플루언서 중에는 팔로워들에게 툭하면 ‘좋아요’를 날리는 이들도 많다. 인플루언서가 직접 ‘좋아요’를 누르는지, 인플루언서 밑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를 통해 인플루언서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한다.
인플루언서들은 어쩌면 이러한 친근한 마케팅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리학자 로버트 B.치알디니에게서 배운 게 아닐까 싶다. 치알디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설득의 심리학》에서 고객을 칭찬하는 행위가 구매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자동차 판매왕의 사례를 든다. 이 영업사원은 자동차 분야의 전문 지식뿐 아니라 넘치는 카리스마와 더불어 마케팅 전략까지 꿰뚫은 능력자였다.
그(자동차 판매왕)은 얼핏 보기엔 돈 낭비에 지나지 않은 일들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자신을 통해 차를 구입한 고객이 1만 3천 명이 넘는데, 그 고객들 모두에게 일일이 글귀가 찍혀 있는 엽서를 보냈다. 문구는 ‘해피 뉴 이어’, ‘해피 밸런타인데이’, ‘해피 땡스기빙’ 등 그때그때 달랐다. 하지만 엽서 앞면에 새겨진 문구는 절대 변하지 않았다. 그 문구는 바로 ‘아이 라이크 유’였다.
그 문구를 디지털 버전으로 옮기면 ‘좋아요’가 된다. 인플루언서가 팬들의 계정에 가서 누르는 ‘좋아요’ 버튼은 참인 동시에 거짓말이다. 그 팔로워를 개인적으로, 진짜로 좋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면에서는 거짓말이지만, 그 팔로워가 자신의 돈벌이에 기여해주는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는 면에서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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