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몇 개씩 온라인에서 구매한 상품의 택배 상자가 문 앞에 쌓이고, 커피 한 잔도 음식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여 마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굳이 코로나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온라인 쇼핑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일배송’, ‘새벽배송’과 같이 더 나은 배송 서비스가 상품을 선택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기준이 됐다. 지금껏 조연에 머물렀던 물류 서비스가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그 결과 기업들은 유통, IT, 제조 등 산업의 경계를 넘어 물류 역량 강화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게다가 물류 스타트업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바야흐로 물류 서비스의 무한 경쟁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물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앞으로의 물류 서비스 방향을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은 기업 운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그 과제를 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이다. 이 책에는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되는 현재의 물류 서비스를 이해하고, 향후 물류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해 볼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와 사례가 실려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저자가 다년간 유통과 물류 현장을 누빈 국내 최고의 물류 전문기자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물류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의 청사진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그 궁금증을 말끔하게 해소해 줄 것이다.
■ 저자 엄지용
물류에 대해선 하나도 몰랐지만,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인하대학교에서 물류학을 전공했다. 2014년 물류전문지 〈CLO〉에 인턴기자로 입사해, 어쩌다 보니 분에 맞지 않는 콘텐츠팀장까지 맡으며 잡부 생활의 쓴맛을 봤다. 기자를 관둘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2018년 IT매체 〈바이라인 네트워크〉에 합류했다. 여전히 물류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니 천직인가 싶다.
2021년 10월 버티컬 콘텐츠 멤버십 ‘커넥터스’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안에 오픈하며 독립했다. 무료 콘텐츠가 넘치는 판에 유료 콘텐츠가 가당한가 싶었지만 커넥터스는 성장했다. 론칭 두 달 만에 네이버 입점 경제/비즈니스 채널 중 구독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첫 달 재구독률은 90%에 육박하며 네이버 전체 입점 채널 중 1위를 기록했다.
목표는 ‘버티컬 콘텐츠로 아름답게 먹고살기’다. 혼자서 먹고 사는 건 운이 좋아 이뤄냈으나, 이제는 혼자가 아닌 다 함께 먹고 살 방법을 궁리 중이다. 이제는 커넥터스는 1인 미디어를 넘어 기업화를 고민한다. 콘텐츠를 넘어 커뮤니티로, 커뮤니티를 넘어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차례
추천사
이 책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찬사
프롤로그
Chapter 1 물류의 가치
ㆍ물류 전문기자가 된 이유
ㆍ물류 전공하면 택배하냐고요?
ㆍ물류 전문가는 없다
ㆍ풀필먼트의 기쁨과 슬픔
ㆍ‘부분 최적화’의 함정을 넘어서
ㆍ물류는 어디에든 있다
ㆍ[칼럼] 그때는 물류가 아니었다
Chapter 2 공간의 가치
ㆍ쿠팡 물류 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ㆍ격돌하는 배민과 쿠팡, MFC가 온다
ㆍ물류센터 아닌 놈과의 조우
ㆍ남의 공간을 제 것처럼 쓰는 녀석들
ㆍ아사리판에서 만난 현장의 달인들
ㆍ마켓컬리의 원시 물류센터는 탁월한가
ㆍ쿠팡 덕평 물류센터 화재가 남긴 숙제
ㆍ[칼럼] 당근마켓에서 만난 ‘공유 물류’의 궁극체
Chapter 3 이동의 가치
ㆍ쿠팡플렉스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까지
ㆍ카카오의 물류 침공
ㆍ배달대행과 퀵서비스의 모호한 경계
ㆍ현장에서 배운 ‘물류 공동화’
ㆍ‘택배 없는 날’에 숨어 있는 노동
ㆍ배달 노동자로 일한다는 것
ㆍ[칼럼] 픽업 지연의 한숨
Chapter 4 연결의 가치
ㆍ쿠팡 제국의 대척점, 네이버 풀필먼트 연합군
ㆍ카페24와 네이버의 ‘오월동주’
ㆍ‘동대문 가치사슬’의 변화
ㆍGS리테일 퀵커머스 연합군의 향방
ㆍ좁은 의미의 풀필먼트를 넘어서자
ㆍ크로스보더 풀필먼트, 손정의의 ‘돈’이 향한 곳
ㆍ[칼럼] 네이버 셀러가 된 이유
에필로그
이 책에는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되는 현재의 물류 서비스를 이해하고, 향후 물류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해 볼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와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저자가 다년간 유통과 물류 현장을 누빈 국내 최고의 물류 전문기자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물류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의 청사진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그 궁금증을 말끔하게 해소해 줄 것입니다.
커넥터스
물류의 가치
물류 전문기자가 된 이유
취재를 하다 보면 많은 이들로부터 “어쩌다가 물류 전문기자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류 전문기자라는 직업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의학 전문기자, 법학 전문기자, IT 전문기자는 간혹 봤어도 물류 전문기자는 본 적이 거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중앙 일간지, 경제지에서 물류는 유통을 취재하는 기자가 곁다리로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쿠팡이나 신세계, 롯데 같은 거대 기업들이 물류를 한다고 뛰어들다 보니, “좀 중요해진 것 같으니 누가 좀 파봐라.” 정도로 위상이 올라간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신기해서 물어보는 것 같다.
지금도 어디 가서 물류를 전공했다고 말하면 ‘물리’라고 잘못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면 다행일 정도다. 많은 경우 “그런 전공도 있어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그런데 물류를 전공했는데, 왜 기자가 됐어요?” 질문에 답하자면 학창 시절 내내 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류를 전공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기업 취업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우연한 계기 때문에 바뀌었다.
2012년 대학교 팀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아마존의 ‘어제배송(Yesterday Shipping)’ 서비스 컨셉 영상을 보게 됐다. 오늘 보내는 것도, 내일 보내는 것도 아닌 ‘어제 보낸다’는 이상한 이름이다.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상품을 아마존은 배송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받은 상품이 맘에 안 들면 반품하라고 한다. 심각하게 쿨하다.
장난처럼 보였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아마존은 어제배송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명기한 특허를 2012년 8월에 신청했고, ‘예측배송(Anticipatory Shipping)’이라 명명했다. 물론 어제배송 영상처럼 고객이 주문하지도 않은 상품을 배송할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아마존은 고객의 과거 소비 패턴,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긴 구매 희망 상품, 클릭스트림 데이터, 인구 통계학적 특성, 설문조사를 통해 파악한 고객의 상품 선호도 등 데이터를 분석해서 특정 지역의 고객이 어떤 상품을 주문할지 예측한다고 했다. 예측 결과를 보고 고객 주문이 다발할 것이라 예측되는 장소에 재고를 사전 배치한다. 심지어 주문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품을 화물차에 넣고 다니다가 고객 주문이 발생하면 수십 분 안에 배송하는 방법을 포함한다. 거짓말 같은 이 방법은 2021년 현재 한국에서 아마존을 무섭게 따라가는 기업 쿠팡이 현실 세계에 응용한 방법론이 됐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에게 아마존의 예측배송이 던진 영감은 컸다. 아마존의 물류는 지원 업무에 불과해 보였던 수동적인 물류가 아니었다. 수요를 만들어내는 공격적인 물류였다.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었던 물류였다.
2014년 물류 전문매체 CLO에 입사한 이유가 여기 있다. CLO는 당시 이커머스 물류 관련 콘텐츠가 많이 실리던 잡지였고, 나 또한 유료 구독 중이었다. 이 매체에서 때마침 대학생 인턴기자 채용공고를 올렸는데 그 공지 사항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회사와 약속한 인턴 기간이 끝났다. 그때 편집장이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계속 함께 일하지 않겠냐고. 연봉은 다른 업체들에 비해 부족할지 모르지만. 살면서 누구에게 이렇게 인정받은 적이 있었던가. 내색은 안 했지만 고마웠다. 결정은 굉장히 빨랐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았고, 사람을 만나는 이 일이 좋았다. 그렇게 난 기자가 됐다.
물류 전공하면 택배하냐고요?
물류에 대한 인식이 열악한 이유
물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물류 현장은 몸을 쓰는 일을 한다. 위험하고 힘들다. 물류센터는 기본적으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자동화율이 상당히 진척됐다고 평가받는 공장과 달리 물류 현장은 2021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노동집약적이다.
몸을 쓰지 않는 관리 직군의 물류라고 해도 상황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물류는 태생적인 ‘을’의 설움을 품고 있다. 지원 사업인 물류는 지원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의 갑질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다시 말해 물량이 있는 측이 갑이다. 중소 포워딩업체(운송료를 받고 상품을 운반해주는 회사)는 대형 물류업체의 갑질을 당하고, 대형 2PL 물류업체는 그들에게 물량을 주는 모기업 화주사의 갑질을 당한다. 심지어 택배기사도 대부분 개인이 사장님 격인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인데, 물량을 주는 택배업체에, 대리점에 갑질을 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본다면 물류 산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물류를 전공한 우리에게도 물류는 멋이 없었고, 현장 까대기 중심이라 힘들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박봉이었다.
쿠팡에서 발견한 어떤 가능성
쿠팡은 물류에 대한 업계의 인식을 바꾸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기업이다. 물류가 단순히 지원 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닌 성장을 만드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음을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으로 몸소 증명했다. 로켓배송 이후 쿠팡을 상품 재고를 직매입하여 보관할 ‘물류센터’를 확충하기 시작했고, 상품을 고객에게 전달할 배송기사를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다. 여태껏 높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 중 누구도 쉽사리 도전하지 못했던 물류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더군다나 배송인력을 직접 고용한 시도는 쿠팡이 이 업계에서는 유일무이했다. 그 누구도 배송기사를 직접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쿠팡은 그 미친 짓을 했다. 2015년 초 만났던 CJ대한통운의 한 실무자는 쿠팡이 배송인력 한 명을 직접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의 단순 인건비만 계산해도 월 300만 원 이상 필요하다. 여기에 유류비와 차량 감가상각 등을 포함하면 월 1,000만 원 이상이 나올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이어서 “물류를 알지 못하는 쿠팡이 미친 짓을 하고 있어서, 조만간 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하는 듯싶었다. 쿠팡이 맞이한 결과는 대규모 적자였다. 2016년 인터뷰한 한 쿠팡맨(현 쿠팡친구)은 2015년 당시 하루에 40~50건, 2016년 하루 140건의 물동량을 처리한다고 했다. 파괴적으로 늘어난 수치이긴 하지만 하루 250~300건 이상 배송하는 택배기사에 비하면 한참 못 미쳤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비효율이 쿠팡에게는 기회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고객들은 쿠팡맨의 친절함에 놀라고 열광했다. 예컨대 쿠팡 배송시가들은 물류 비효율로 인해 남은 시간을 활용하여 택배 박스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손편지를 써서 붙이던가 하는 식의 부가 활동을 했다. 이는 월급을 받는 고용된 배송기사 쿠팡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량이 별로 없으니 물류 업무가 끝나고 남는 시간을 고객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고객들은 쿠팡맨의 서비스에 감동하고 이런 사례를 전파하는 홍보직원을 자처하기 시작했다. 위메프, 티몬에는 없었던 감동이 쿠팡에는 있었다. 지금껏 없었던 감동의 택배 서비스가 이룩한 결과이다.
공간의 가치
쿠팡 물류 제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021년은 쿠팡이 풀필먼트가 본격화된 한 해다. 물론 그전까지 쿠팡이 풀필먼트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쿠팡의 물류자회사 중 하나인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는 쿠팡이 직매입한 상품인 로켓배송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한 물류센터 운영을 했고, 그것을 ‘풀필먼트’라 불렀다. 2020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쿠팡의 풀필먼트는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의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한 서비스로 이용됐고, 동시에 쿠팡의 영업손실을 만든 대표적인 비용 중 하나였다.
그랬던 쿠팡 풀필먼트가 2020년 7월 ‘로켓제휴’라는 이름의 서비스 론칭을 기점으로 그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쿠팡은 2021년 로켓제휴 서비스를 ‘제트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했고, 3자 판매자를 쿠팡물류망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풀필먼트,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제트배송’과 같은 3자 판매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풀필먼트 사업은 오랫동안 쿠팡이 당연히 할 것으로 예측됐던 비즈니스다. 왜냐하면 쿠팡은 지금껏 아마존의 성장타임라인을 무섭게 따라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존 마켓플레이스 성장의 중추에는 3자 판매자를 대상으로 한 풀필먼트 사업 ‘FBA Fulfillment By Amazon’가 있었다.
직매입 유통: 속도로 고객을 매료하다
아마존과 쿠팡의 첫 번째 접점은 ‘직매입 유통’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직매입 유통이란 ‘자가 물류센터에 직접 매입한 상품을 재고로 보관하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뜻한다. 당연히 직매입 유통을 하기 위해서는 매입한 상품을 보관할 공간인 물류센터가 필요했다.
예컨대 이커머스 판매자들 중에는 공간 없이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위탁판매’, ‘구매대행’이라 불리는 사업을 하고 있는 판매자들이 여기 속한다. 이들은 재고 없이 상품 콘텐츠만 이커머스 플랫폼에 올려놓고 판매한다. 고객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야 제휴처를 통해서 상품을 발주한다. 공간과 재고를 통제할 수 있는 주체는 판매자가 아닌 제휴처다. 심지어 제휴처조차 위탁 도매 판매자일 수 있다. 이러한 다단계 연결의 경우에는 어디선가 정보, 혹은 재화의 흐름이 끊어질 수 있다.
판매자가 재고를 보관할 공간을 가지고 있더라도 문제는 생길 수 있다. 고객 주문이 발생한 이후에야 상품을 제조, 소싱하여 판매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매자 입장에서는 혹여 팔리지 않을 위험이 있는 상품의 재고 관리 및 폐기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고객의 주문이 확정된 이후에 판매할 상품을 매입하는 것이다.
물론 직매입 유통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점도 존재한다. 바로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류센터를 직접 구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의 물류센터를 임차하는 것도 만만치 않는 비용이 들어간다. 매입 이후 상품의 소유 주체가 플랫폼에 이전되기 때문에 안 팔리고 남을 재고에 대한 관리 및 폐기 비용을 아마존과 쿠팡이 짊어지게 된다.
어쨌든 두 기업은 ‘고객 중심’과 ‘장기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직매입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직매입 유통이 만든 빠른배송은 고객을 매료시켰고, 아마존과 쿠팡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했다. 물류센터 규모도 점차 확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두 기업에 남은 숙제는 있었다. 물류가 만든 비용이다. 언젠가 쿠팡 출신 물류업계 실무자에게 들었는데 쿠팡에는 오랫동안 팔리지 않은 재고를 중심으로 보관하는 물류센터가 있다고 한다. 재고는 회사계상 자산으로 잡히지만, 사실은 비용이나 다름없다. 직매입 유통은 빠른배송 속도로 ‘높은 고객 경험’을 선사했지만, 동시에 ‘공간에 쌓인 재고’라는 깊은 고민을 낳았다.
이동의 가치
쿠팡플렉스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까지
안 될 비즈니스다. 투자가 궁하니 별짓을 다 한다. 또 저렇게 돈만 팡팡 쓰다가 그만두겠지. 아마존 비즈니스 모델을 어디까지 따라하나 보자.
2018년 8월, 일반인을 배송인으로 활용한 공유 물류 서비스 ‘쿠팡플렉스’가 등장한 이후 업계의 평가들이다. 쿠팡에 대한 소프트트뱅크 비전펀드의 20억 달러 추가 투자가 발표되기 전, 공유 물류의 성공 사례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점에서, 이름도 비슷한 아마존플렉스가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하고 뒤따라 나타났다는 이유에서, 쿠팡플렉스에 대한 업계의 이런 평가가 나올 법도 했다.
초기 쿠팡플렉스는 업계의 예측처럼 되는 듯했다. 곳곳에서 운영 문제가 터져 나왔다. 쿠팡 입장에서는 쿠팡플렉스로 업무를 수행하는 일반인들이 정직원으로 고용한 배송기사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일반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미숙함, 무책임이 있었다.
대표적인 문제가 오배송, 오분류, 분실이다. 쿠팡플렉스 배송인 참가를 신청하고도 배송 현장 캠프에 나오지 않는 노쇼 문제도 많았다. 쿠팡은 운영 측면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배송인들의 물량 할당을 줄이거나 업무 자체를 막아 버리는 ‘블랙리스트’가 대표적인 조치였다.
효율을 올리기 시작한 쿠팡플렉스
쿠팡은 여러 우여곡절을 뚫고 수십만 명의 배송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쿠팡플렉스를 활성화시켰다. 쿠팡플렉스는 쿠팡에 있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쏟아지는 물동량을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긴급배송 네트워크’가 됐다.
쿠팡에 따르면 2021년 7월 기준 누적 수십만 명 이상의 일반인들이 쿠팡플렉스 배송기사에 참여했다. 대충 계산해 봐도 2019년 연간 활동 쿠팡플렉스 배송인력이 146만 명은 넘는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이후로 더욱 늘어났을 공급자의 유입을 감안한다면 그 숫자는 더 커질 것이다.
더군다나 쿠팡플렉스는 변동비의 효율까지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쿠팡플렉스 초기만 하더라도 건강 1,000~3,000원 상당의 높은 건당 비용을 지급하여 배송인을 모집했는데, 이 수치가 2021년 10월 기준으로 보면 건당 700~8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일배송 영역으로 넘어가면 더하다. 1시간 이내 즉시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대행기사는 건당 3,000~4,000원의 돈을 받는 게 시장 가격이다. 그런데 쿠팡은 이를 건당 1,000원 내외로 처리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높은 비용을 들여 저온 새벽배송 차량을 수급하여 물류를 처리하고 있는 마켓컬리나 이마트 물류 담당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망할 것 같았던 비즈니스 모델 쿠팡플렉스가 업계 몇몇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배경이다.
미친 공유의 시대를 바라보며
2021년 기준, 쿠팡플렉스는 물류업계 곳곳에서 공유 물류 열풍을 만들었다. 2019년 7월 우아한형제들의 크라우드소싱 물류 네트워크 ‘배민커넥트’가 시작됐다. 불과 반년이 지난 2020년 2월 배민커넥터의 숫자는 1만 4,730명으로 늘어나며, 동시에 존재하던 전업 배달기사 2,283명을 뛰어넘었다.
2020년 8월 GS리테일이 ‘우딜(우리동제 딜리버리)’을 시작했고, 2021년 6월에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T 퀵’을 공식 론칭했다. 모두 일반인 기반 배송망을 활용한다. ‘디버’, ‘오늘의 픽업’, ‘퀵커스’와 같은 공유 배송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도 규모를 만들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플렉스 배송을 검토하고 있는 택배업체가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공유 물류의 활성화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물류는 가까워졌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을 활용해 짬짬이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본업에 집중하면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돈도 벌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 N잡 시대가 열렸다. 생활 속에 물류가 들어왔다. 플랫폼 노동의 효용이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물류가 가까워졌다고 그들이 물류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품은 것은 아니다. 물류 일자리는 단기적으로 돈을 버는 곳으로 의미가 있을지언정 여전히 오랫동안 일하고 싶은 일자리는 아니다. 자유로운 일자리는 바꿔 말하면 해고되기 쉬운 일자리이기도 하다. 플랫폼 노동이 만든 비극이다.
연결의 가치
쿠팡 제국의 대척점, 네이버 풀필먼트 연합군
쿠팡은 ‘물류 제국’을 만들고자 한다.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한 이후 모든 물류를 직접 운영하는 방식을 내재화하고 있다. 물류는 물론 관련 가치사슬의 시스템까지 통합 운영한다. 아마존의 방식이다. 사실 조금 더 갔다. 아마존조차 처음부터 배송 조직을 내재화하지는 않았으니.
쿠팡은 2021년 택배사업자 면허를 재취득했다. 물동량 기준으로는 택배만으로 CJ대한통운에 이어서 국내 2위 규모로 추정된다. 한진과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수준을 넘었다.
본 투 얼라이언스, 네이버
그런 쿠팡의 대척점에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이 있다. 바로 네이버다. 쿠팡이 직접 물류 가치사슬을 내재화하는 제국으로 시작하여 성장하고 있다면, 네이버의 물류는 태생이 ‘연합군’이다. 네이버가 직접 물류를 하지 않는다. 대신 운영 역량이 있는 다수의 물류업체와 연합을 하여 전선을 구축한다. 연결점, 통제력을 가지고 가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을 섞는다. 투자와 지분 교환이 이뤄진다. 여러 물류 파트너의 운영을 통합하는 시스템은 네이버의 영향력 아래 둔다. 요컨대 2021년 7월 공식 출범한 풀필먼트 플랫폼 'NFA Naver Fulfillment Alliance‘의 모습이다.
네이버는 물류 이전부터 플랫폼의 역할, 그러니까 디지털 인프라를 통한 중개와 기술 지원에 초점을 맞춰 성장했다. 파트너가 운영하는 시장, 특히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시장에 네이버가 직접 뛰어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네이버가 국내 1위 포탈 사업자로 몇 차례 여론과 정치권의 뭇매를 맞은 결과다.
외부 쇼핑몰의 상품을 포탈에 노출을 해주는 광고 상품 ‘지식쇼핑’부터 시작해서 2012년 ‘샵N’, 2014년 ‘스토어팜’, 2018년 ‘스마트스토어’로 이어지는 네이버 커머스의 계보는 이런 네이버의 문화를 반영한다. 샵N부터 시작된 네이버의 차별점이 있었다면 누구나 블로그 형태로 쉽게 무료로 쇼핑몰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런 구조를 통해 네이버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 판매자를 빠르게 플랫폼으로 유입시켰다.
간편한 스토어 개설과 저렴한 수수료 정책, 그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든 상품을 끌고 오는 C2C 개인 판매자 군단은 네이버 포털이 만드는 트래픽 권력과 결합돼 네이버 커머스의 비약적인 성장을 만들었다. 2020년 기준 네이버의 커머스 거래액은 28조 원으로 국내 1위를 자부한다.
쿠팡이 만든 어떤 불안감
네이버가 처음부터 물류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류 연합군 구축을 위한 행보가 외부에 관측되기 시작된 것은 2020년이고, 네이버가 풀필먼트 사업을 한다고 외부에 천명한 것은 2021년에 이르러서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물류는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였을 수 있다. 태생이 기술 기업인 네이버에 물류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역량, 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물류 시장은 굉장히 파편화돼있다. 어떻게 보면 네이버가 강조하는 ‘SME’라는 키워드가 집약된 시장이다. 네이버가 그렇게 싫어하는 대형 포탈의 소상공인 이권 침탈 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
그렇다고 네이버가 물류 품질 개선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실제 네이버의 물류 서비스에 대한 고객 불만은 지속적으로 관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마켓플레이스들이 그렇듯 네이버 커머스의 물류 또한 입점 판매자들이 알아서 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은 네이버에서 검색하고 구매한 상품들에 대해선 고른 배송 품질을 경험하기 어려웠다.
네이버는 물류 품질 문제의 개선책을 직접 물류가 아닌 플랫폼스러운 방법에서 찾았다. 배송 단계에서 발생하는 고객 불만을 ‘정책’과 ‘기술’로 해결하고자 했다. 네이버 한 실무자에게 듣기로 이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네이버에 있어서 물류는 “어짜피 오늘 출고만 하면 내일 택배가 오고, 늦어도 내일이나 모래면 도착하는 데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 편에서 네이버 내면의 불안감을 흔든 존재가 나타났다. 바로 쿠팡이다.
언제고 돈을 팡팡 쓰다가 망할 것 같았던 쿠팡이 2018년 11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 달러 투자 유치를 발표하며 생존을 이어가게 됐다. 더군다나 직매입 기반 빠른 물류 보장 상품 카테고리를 대량으로 확보한 쿠팡의 성장세는 네이버의 성장세를 뛰어넘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2019년을 즈음해서 네이버 내부에서 물류 서비스 확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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