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팬데믹과 같은 “극한 상황”이 자연재해든 정치적 격변이든 경제 위기든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경제와 삶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도전을 미리 내다보고 대비하면서 회복탄력성을 키우지 않는다면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앞으로 10년 가장 중요한 추세는 “고령화, 디지털화, 불평등화” 3가지라고 전망하면서, 현재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이 추세가 갈수록 심화하리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이 극한 경제가 자유 시장 경제 대 계획 경제, 공식 경제 대 비공식 경제, 전통 대 현대, 물질적 자본 대 인적·사회적 자본, 도시 대 시골, 개인 대 공동체, 인간 대 로봇, 노인 대 청년, 부자 대 빈자 등으로 대변되는 갈등과 분열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과연 이 대격변의 도전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기에는 어떤 위기와 기회가 도사리고 있을까? 어떤 요인이 성공과 실패를 가를까? 어떤 자산이 우리를 생존과 회복, 성장으로 이끌까? 이 책에서 저자는 향후 몇십 년간 진행될 극한 경제 시나리오를 손에 잡힐 듯 그려 보이면서, 거기에 맞설 선명한 생존 지도를 제시한다.
■ 저자 리처드 데이비스
저자 리처드 데이비스는 경제학자이자 작가다. 런던정경대학교와 브리스톨대학교 경제학 교수, 영국경제학관측소(UK’s Economics Observatory)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옥스퍼드대학교, 런던정경대학교,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영국 재무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잉글랜드은행 이코노미스트, ‘이코노미스트’ 경제 편집장을 지냈다.
대규모 마이크로 데이터를 활용해 인플레이션, 생산성, 임금을 포함한 총체적 퍼즐에 대한 답을 찾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경제에 대한 접근성 개선과 확장을 목표로 하는 여러 자선 프로젝트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브리스톨경제학페스티벌(Bristol Festival of Economics)의 공동 책임자, 스피커스포스쿨스(Speakers for Schools)의 공립 학교 대상 강연자, 전 세계 대학의 경제학 교수와 학생에게 오픈 액세스 리소스를 제공하는 자선 단체 CORE의 창립 이사 겸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선데이타임스’ ‘더타임스’ ‘와이어드’ 등에 다양한 글을 기고해 왔으며, 2019년 첫 책 ‘2030 극한 경제 시나리오(Extreme Economics)’를 출간해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에드워드 스탠퍼드 트래블 라이팅 어워즈(Edward Stanford Travel Writing Awards), 론리플래닛 올해의 신인 작가상(Lonely Planet Debut Travel Writer of the Year), 인라이튼드 이코노미스트 프라이즈(Enlightened Economist Prize)를 수상하고 ‘파이낸셜타임스’ 올해의 경제경영서, ‘뉴스테이츠먼’ 올해의 책, ‘뉴욕타임스’ 에디터스 초이스에 선정되었다.
■ 역자 고기탁
역자 고기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했으며, 펍헙 번역그룹에서 전업 번역가로 일한다. 옮긴 책으로 ‘공감의 진화’ ‘부모와 다른 아이들’ ‘야망의 시대’ ‘해방의 비극’ ‘문화 대혁명’ ‘침대부터 정리하라’ ‘자연 수업’ ‘독재자가 되는 법’ 등이 있다.
■ 차례
추천의 글 _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
한국어판 서문: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프롤로그: 극한에서 배운다
1부 미래를 열어젖힌 회복과 성장 이야기
1장 자연이 삶을 유린할 때: 아체
2장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갈 때: 자타리
3장 자유를 잃고 세상과 단절될 때: 루이지애나
2부 미래를 잃어버린 실패와 몰락 이야기
4장 천혜의 자연이 무법 지대로 변할 때: 다리엔
5장 자원의 보고가 극빈 도시로 전락할 때: 킨샤사
6장 최고의 산업 도시가 파산할 때: 글래스고
3부 미래를 선도하는 최첨단과 초극한 이야기
7장 고령화의 초극한: 아키타
8장 디지털화의 최첨단: 탈린
9장 불평등화의 초극단: 산티아고
에필로그: 미래를 위한 지침
감사의 글
참고문헌, 주
저자는 앞으로 10년 가장 중요한 추세는 “고령화, 디지털화, 불평등화” 3가지라고 전망하면서, 현재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이 추세가 갈수록 심화하리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이 극한 경제가 자유 시장 경제 대 계획 경제, 공식 경제 대 비공식 경제, 전통 대 현대, 물질적 자본 대 인적·사회적 자본, 도시 대 시골, 개인 대 공동체, 인간 대 로봇, 노인 대 청년, 부자 대 빈자 등으로 대변되는 갈등과 분열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2030 극한 경제 시나리오
미래를 열어젖힌 회복과 성장 이야기
자연이 삶을 유린할 때: 아체
지구의 형태가 바뀐 날
지각판은 1년에 기껏해야 8센티미터를 이동할 만큼 대체로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1년에 15킬로미터 넘게 이동할 수 있는 빙하는 수천 배나 빠른 셈이다. 하지만 그날은 여느 때와 달리 움직임이 사뭇 빨랐다. 오전 8시를 갓 지난 시점에 아체 서쪽 해변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해저에서 서로 힘을 겨루던 인도판이 버마판 아래로 끌려 내려가면서 불과 몇 초 만에 30미터가량 가라앉아 버렸다. 이 진원지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길고 가는 단층 파열이 바다 밑바닥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지퍼처럼 두 판이 맞물리게 만들었다. 아체 연안에서 시작된 파열은 음속보다 9배 빠른 거의 시속 1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북쪽을 향해 400킬로미터까지 뻗어 나갔다.
이 진동은 “메가스러스트 지진(megathrust earthquake)” 또는 “해구형 지진”으로 알려진 진도 9.1의 이른바 초거대 지진을 낳았다. 이 지진으로 40제타줄의 에너지가 방출되었는데 이는 80년 치의 세계 에너지 소비량 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5억 개와 맞먹는 규모였다. 아체 해변에서 불과 5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된 충격은 지축이 흔들리고 지구의 형태가 바뀌었을 만큼 거대했다. 이제 지구는 완벽한 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그 결과 자전이 빨라지면서 하루의 길이가 조금 짧아졌다. 그야말로 500년에 한 번 일어날 만한 사건이었다.
아체가 가장 먼저 가장 심한 타격을 입었지만 파도는 14개 나라에서 22만 7898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록응아와 람푹에서는 90퍼센트가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7500명이었던 인구가 불과 400명으로 줄어들었다. 아체 해변에서 온전하게 남은 건물은 라흐마툴라 이슬람사원(Rahmatullah mosque)이 유일했고 나머지 모든 집과 호스텔, 식당이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아체 사람들은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들의 삶과 경제를 재건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회복했다. 오늘날 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역에서는 수리안디가 겪은 것과 같은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사람들이 해변으로 돌아와 예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생명을 구한 전통: 금으로 저축과 보험 대신하기
금으로 저축과 보험을 대신하는 방식은 비공식적이고 따로 정해진 규칙이 없지만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그리고 이 전통은 지진해일이 지나간 뒤 수개월에 걸쳐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바사르 아체에서 가장 먼저 다시 문을 연 이들이 귀금속 상인들이었다. 하룬과 소피는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일어나 가게를 열었다. 그들은 금을 판매하는 대신 사람들에게서 금괴와 보석을 대량으로 매입해 그들이 재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내가 만난 많은 생존자들은 난리 통에 금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자기 몸에 걸친 보석을 팔 수 있었다. 게다가 값도 제대로 받았다. 대다수 시장에서는 매도자가 몰리면 현지 가격이 떨어지지만 금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있는 상품이다. 하룬과 소피는 자카르타의 중개인들이 매입해 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국제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이들의 전통적인 자금 조달 방식은 아체를 보호하고 아체의 사업가들에게 신속하게 현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아체의 이러한 전통 시스템은 내가 방문한 모든 극한 경제에서 등장하는 한 가지 핵심 주제를 보여준 첫 사례다. 비공식상거래와 교역, 심지어 비공식 화폐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공식 경제가 타격을 입었을 때 가장 먼저 등장해 회복의 원천이 되어 주는 것은 대개 비공식적이고 전통적인 형태의 상거래와 교역, 보험이다. 여기서 얻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이런 비공식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아체의 금융 시스템은 이에 대한 아주 좋은 예다. 서양 전문가들 눈에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 대출금, 즉 “레버리지”가 문제를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심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서양의 금융 시스템과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한 대조를 보이기 때문이다.
원조 붐과 그 이후의 미스터리한 성장
전통적인 형태의 저축 방식이 일부 사업가들에게 즉각 자금을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면, 외부 도움은 대규모 재건 사업에 꼭 필요했다. 며칠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아체 지방의 마을들을 둘러보면 현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먼저 남쪽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록응아 마을 외곽에 도착하면 미국 정부의 원조 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의 로고가 새겨진 강철트러스교가 보인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모든 집 전면 벽에 비슷한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야자수 아래 교차한 검 두 자루를 진녹색 원이 둘러싼 도안인데 주택 공급 사업에 자금을 댄 주된 원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상징이었다. 람푹 마을을 향해 북쪽으로 0.8킬로미터 정도를 더 이동하면 도로는 내륙으로 이어진다. 지진해일이 들이닥친 날 수리안디가 대피할 때 이용한 길이기도 한 이 도로 가에는 현관에 터키 국기를 게양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모든 설비가 갖추어진 부엌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터키가 원조한 집이 최고였다.
지진해일이 물러간 뒤로 아체에는 4년에 걸쳐 총 67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현금은 그 나름의 격동을, 일종의 작은 붐을 일으켰다. 원조 단체에서 파견한 괜찮은 보수를 받는 직원들에게는 쓸 돈이 있었다. 그들은 많은 현지인을 고용했고 재건에 필요한 벽돌과 콘크리트와 목재를 대량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이런 수요 급증은 가격을 끌어올렸다. 2004년 5퍼센트에 불과했던 인플레이션은 2005년 20퍼센트로 치솟았으며 이듬해 35퍼센트로 정점을 찍었다. 사업주들은 물가가 오르면서 자신들의 이익률이 감소했다며 당시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해 여전히 불만을 터뜨린다. 그렇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 시절에 경제가 호황이었다고 기억한다. 원조 단체에서 나온 현금이 지역의 일자리와 임금을 지탱하고 지역 사업체로 흘러들었다. 아체는 바야흐로 원조 경제 아래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경제에서 소비, 임금, 건설 프로젝트 등 이런 행위들이 위축되는 것은 GDP가 급감하는 원인이다. 개발경제학자들은 GDP가 행위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라는 점에서 재건 과정에 단기간 활기를 되찾더라도 GDP 측면에서 볼 때 경제가 위축되어 불경기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런데 이후에 나타난 현상은 불가사의했다. 원조 단체의 모든 소비와 일거리가 사라졌지만 경제 성장은 계속되었다. 외부 원조가 붐을 이룬 4년 동안 19퍼센트였던 경제 성장률은 다음 4년 동안 23퍼센트를 기록했다. 새로운 소비와 소득과 산출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GDP, 회복탄력성, 인적 자본의 중요성
물리적 기반이 초토화되다시피 한 경제를 재건하면서 아체인들의 보여 준 속도를 우리가 경제를 바라보는 방식과 관련해 2가지 측면을 시사하다.
첫 번째 측면은 GDP를 경제 “성장” 여부를 추적하는 중심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가 하는 문제다. GDP를 경제적 성공을 판단하는 척도로 이용하는 것에 많은 사람이 비판적이다. 그들은 공정함이나 행복 같은 다른 기준을 선호한다. 실제로 재앙 이후에 오히려 경제가 더욱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GDP로 경제력을 측정하는 방식은 당혹스러운 결과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GDP가 차갑고 냉정한 경제학의 본질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과는 별개로, 이런 당혹스러운 결과는 GDP가 건물이나 공장 같은 물리적 자산의 형태로 구체화된 가치보다 현재 진행 중인 인간의 활동, 즉 소비, 임금, 소득, 제품 생산 등을 주로 고려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잣대는 비정하거나 냉정하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적이다.
아체 사례에서 드러난 두 번째 측면은 진정한 인간 회복탄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1848년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전쟁이나 재앙으로 경제가 “초토화”된 이후 공동체가 다시 재기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를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벽, 다리, 창고와 같은 물리적 자본보다 한 나라나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 기술,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예상치 못한 회복탄력성의 원천이 존재한다고 밀은 생각했다. 어쨌거나 잃은 것을 재건해야 할 주체는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1662년 윌리엄 페티 역시 징역형 남발을 비난하는 논쟁에서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한 지역의 부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그러므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면 나라가 가난해진다고 주장했다.
아체는 밀과 페티의 요지를 증명하는 현대판 재앙이다. 아체 사람들은 모든 물리적 자산을 잃었다. 하지만 기술과 지식은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고 덕분에 지진해일 이후 빠르게 재건에 성공했다. 아체 는 경제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인적 자본(human capital)” 자체 그리고 인적 자본이 얼마나 많이 훼손되거나 보호받는지가 성공을 결정하는 열쇠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세계 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시점에서 이는 중요한 교훈이 되어 준다.
미래를 선도하는 최첨단과 초극한 이야기
고령화의 초극한: 아키타
연금 제도와 노소 갈등
“국민연금만으로 살기는 어려워요”라고 다카스기가 말했다. 일본의 평균 연금 소득은 한 달에 1700달러 정도지만 평생 동안 납부한 보험료에 근거해 지급되는 까닭에 많은 노인이, 특히 여성이 받는 액수는 월 1000달러에 훨씬 못 미친다. 국제 기준으로는 양호한 금액이지만 일본의 높은 생활비를 고려하면 그리고 일본의 연금 수급자 중 절반 이상이 별도 정기 수입이 전무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복지에 의존하는 연금 수급자 수는 지난 10년 동안 거의 2배로 늘었고 연구에 따르면 1000만 명에 가까운 연금 수급자가 빈곤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개인 비축 자금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 노인 중 17퍼센트는 생애 주기 모델이 그들에게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던 자산의 “낙타 등”을 이미 소진하고 저축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다카스기는 아키타의 많은 연금 수급자가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추가 소득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판매용 채소를 재배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일본의 연금 액수가 너무 적은 동시에 너무 많다는 점이다. 아키타의 고령자들이 궁핍한 생활을 절약과 경작으로 메우며 은퇴 기간을 근근이 헤쳐 나가고 있다면 일본 정부의 재정은 장수 문제로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1975년 국가 세수에서 사회 보장과 의료 서비스 항목에 대한 지출은 22퍼센트였다. 이 비율은 노인 돌봄과 연금 등이 더해지면서 2017년 55 퍼센트로 상승했다. 2020년대 초에 이르면 60퍼센트에 이를 예정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1975년 세수의 거의 80퍼센트가 투입되던 교육, 교통, 사회 기반 시설, 방위, 환경, 예술과 같은 다른 모든 공공 서비스에 이제는 세수의 40퍼센트 정도만 할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 예산 차원에서 고령화는 일본을 갉아 먹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이탈리아를 비롯해 일본의 뒤를 이어 초고령화 경제로 나아가는 모든 나라가 직면하게 될 보편적 문제다. 고령화는 준비가 되지 않은 노인 세대 전체에 충격으로 다가왔고 그들은 더 많은 연금이 필요할 것이다. 결국 젊은이들이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고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고령 소비자 집단의 잠재력: 캐나다 인구수, 인도네시아 경제 규모
노년층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따른 세대 간 불평등과 불공평을 둘러싼 온갖 우려가 존재한다. 그런 반면에 노인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막대한 경제 활동을 창출한다. 일본은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1300만 명으로 스웨덴 900만 명, 포르투갈 1000만 명, 그리스 1100만 명의 전체 인구보다 많다. 여기에 더 젊은 65세부터 75세 사이 노인을 지칭하는 전기 고령자까지 더하면 캐나다 전체 인구에 육박하는 3300만 명으로 늘어난다. 거의 120조 엔, 달러로 약 1조 달러에 가까운 일본의 노인 소비자 지출은 멕시코나 인도네시아의 경제 규모와 맞먹는다. 만약 일본 노인들이 그들만의 나라를 세운다면 세계 경제가 운영되는 방식을 결정하는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들의 모임인 G20에 당당히 한자리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키타에 사는 열아홉 살의 이시즈카 히카리는 어떤 식으로든 노인을 돕는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설명한다. 도쿄에서 활동하는 가지와라 겐지는 손자 손녀가 자신들의 스마트폰에서 곧장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텔레비전으로 동영상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치카쿠(Chikaku) 텔레비전 셋톱 박스를 개발했다. “치카쿠”는 “가까운 곳, 근처”라는 뜻이다. 이외에 많은 기업이 더 쉽게 공을 칠 수 있게 해주는 특수 골프채, 고관절 통증을 줄여 주는 특수 신발, 씹기 쉬운 노인 식품, 노인 피트니스 클럽, 동지애를 느끼기 위한 노인 인형, 노인 비디오 게임 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일본에서 노인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는 완전히 암울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당당한 거대 소비자 집단이다.
간병인을 돕는 로봇 동료
“노인을 돌보는 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에요”라고 40대 간병인 스키모토 다카시가 말한다. 그가 비어 있는 침대로 다가가 노쇠한 환자를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면서 침대에서 안아 올리기 위해 몸을 앞으로 구부리다가 얼마나 쉽게 허리를 다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이런 문제는 매우 흔하게 발생해 간병인을 보호하기 위한 온갖 다양한 기계 장치가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신체 능력을 강화해 주는 외골격 슈트인 엑소스켈러턴(exoskeleton)을 기반으로 하는 장치다. 명랑하고 잘 흥분하는 스기모토는 확실히 뛰어난 간병인이다. 또한 이런 기계 장치의 열렬한 애호가며 관련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처음 착용한 로봇 형태 보조 장치는 도쿄이과대학(Tokyo University of Science)을 모태로 한 기업 이노피스(INNOPHYS)에서 제작한 “머슬 슈트(Muscle Suit)”였다. 등반용 안전벨트(climbing harness)처럼 생긴 외관에 압축 공기로 작동하는 이 슈트는 부풀어 오르는 관이 엉덩이 둘레를 지나 위로는 허리, 아래로는 대퇴부 사두근까지 이어진다. 간병인은 노인 환자를 들어 올리기 위해 환자의 몸 아래로 손을 넣을 때 작은 튜브에 숨을 불어 넣어 슈트에 부풀어 오르라는 신호를 보낸다. 또 다른 보조 장치로는 사이버다인주식회사(CYBERDYNE, Inc.)에서 제작한 “파워드 슈트(powered suit)”가 있다. 엉덩이와 허리 둘레에 착용하는 이 커다란 흰색 플라스틱 엑소스켈러턴, 즉 외골격 슈트는 수동 신호가 필요 없다. 뇌가 보내는 전자기파를 읽어 간병인이 환자를 들어 올리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맞추어 작동을 개시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따르면 두 슈트 모두 허리에 가해지는 부담의 3분의 2를 줄일 수 있다.
고령화가 일본에 야기한 노동력 부족과 빠듯한 예산이라는 경제적 도전은 간병에 로봇을 이용하는 방법이 왜 시도해 볼 만한 좋은 생각이며 유럽 고령자에게 인기를 끌 가능성이 많은지 암시한다. 페퍼 로봇은 1년에 6000달러 미만의 금액으로 대여할 수 있고 새로운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반면에 2019년 일본 간병인의 평균 연봉은 350만 엔, 달러로 약 3만 2000달러였고 꾸준히 상승하는 추세다. 이처럼 큰 금액 차이는 간병인 2명을 채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시설 관리자가 대신 간병인 1명과 페퍼 로봇 2대를 고용할 수 있고 그렇게 하고도 1년에 2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는 한 페퍼와 같은 로봇들은 일본에서 노동력 부족으로 생긴 공백을 메꾸는 동시에 예산 압박을 완화할 수 있다.
고령화 경제를 선도하는 산간벽지
고령화의 최첨단을 달리는 일본의 외딴 현 아키타는 인구통계학적인 유행을 선도한다. 이곳에서 고령화를 초래한 요인인 장수와 낮은 출산율은 다른 지역들이 내일 경험할 경제를 오늘 구현하고 있다.
아키타에서 얻는 첫 번째 교훈은 고령화 경제가 역설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고령화 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일본에서 내가 이야기를 나눈 노인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고 말했는데, 이런 장수는 그들의 가족이나 마을, 도시에서 이전까지 본 적이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한 인생 주기 안에서 평균 수명의 급상승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고령자 집단이 그들의 90대 이후 삶을 생산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롤 모델이 없음을 의미했다. 인구 감소 문제는 많은 지역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정도로 매우 새로운 현상으로 고령화 유행의 첨단을 걷는 일본에서조차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는 세상은 조만간 도래할 것이다. 한국은 인구 팽창이 끝나는 시기가 약 10년 남짓 남았고 독일은 겨우 몇 년 남았을 뿐이다.
두 번째 교훈은 고령화 경제는 느리게 움직이는 트렌드로,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덮칠 것이라는 점이다. 고령화 경제가 가져올 압박은 경제학의 직관적인 “생애 주기 이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고령화는 은퇴기를 대비해 평생 모아 온 자산 비축량이 너무 부족해지면서 정부 재정에 압박을 가할 것이고, 세대 간 불평 등이라는 새로운 분열을 초래할 연금 부족과 돌봄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다. 아키타의 대다수 나이 든 주민들의 이야기는 고령을 살아 내기 위해 완충 장치를 구축하는 생애 주기 아이디어가 경제 외 측면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보여 준다. 일본에서 한때 잘나갔던 샐러리맨들의 고독사와 자살률 증가는 현금뿐 아니라 사람을 비축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은퇴 이후 삶을 지속하는 데서 클럽과 인간 관계망, 사교 모임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고령화 통계들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과 나라가 많을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심화한다. 고령자 숫자와 그들을 돌보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마치 대처가 불가능한 도전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일본에 머물면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몇 가지 명백한 이유를 발견했다.
디지털화의 최첨단: 탈린
대량 실업과 디지털 격차: 과학기술을 둘러싼 두려움과 우려
렙과 같은 과학기술 낙관론자들과 내가 일본에서 만났던 간병 로봇 발명가들은 그들의 발명품이 미래 경제가 직면하게 될 도전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은 또한 전 세계에서 두려움과 불확실성을 불러일으킨다. 선거와 사생활, 윤리 문제를 둘러싼 우려와 정치적 두려움 외에도 2가지의 깊은 경제적 우려 때문이다.
첫 번째는 대량 실업의 가능성이다. 소프트웨어나 기계 같은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한 기술이 인간 노동자를 정리 해고할 것이라는 우려다. 자동화가 불러올 일자리 손실을 둘러싼 추산은 다양하지만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약 25퍼센트와 영국 노동자의 약 30퍼센트가 기계로 대체될 위험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들이 몰려오고 있으며 우리 일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이유다.
두 번째 두려움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불공평하게 이루어져 이른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또는 “정보 격차”라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우려의 핵심은 과학기술이 가져오는 혜택이 다른 이들의 희생 위에서 젊은이와 도시인, 교육받은 사람, 부자와 같은 일부 집단에게만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엑스로드 시스템: 개인 정보를 지키는 안전장치
에스토니아 사람에게 정부에서 발행한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부탁하면 으레 미소를 지으며 선뜻 꺼내 보인다. 옅은 파란색 플라스틱 카드는 특별히 주목받을 만한 외관은 아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운전면허증과 유사하지만 직불 카드처럼 전자 칩이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온라인 정부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는 이 전자 신분증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들이 미소를 짓는 건 이 신분증 덕분에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소련이 통치하던 시절과 비교한다. “모든 일에 줄을 섰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한 탈린 시민이 말한다. “몇 시간을 서서 기다리다가 나중에야 점심을 먹으러 간 정부 관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빨리 처리하고 싶으면 뇌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관리도 있었죠.” 젊은 에스토니아인들이 진심으로 혜택을 실감하는 순간은 외국에 나갔을 때다. 다른 나라에서 차를 팔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임대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이 종이를 기반으로 하는 괴롭고 더딘 작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말이다. 그에 비해 에스토니아에서는 휴대용 컴퓨터와 전자 신분증을 이용해 이런 일을 훨씬 빠르고 간단하고 처리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또 최근 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주제인 개인 정보를 취급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보여 준다. 전자 신분증은 정부와 하는 모든 상호 작용과 연결되어 있는데, 시스템의 광범위한 촉수들은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년’에서 국민을 완전히 통제하는 정부를 묘사한 데서 나온 “오웰식”이고 위험해 보인다. 혹시 시스템이 고장 나거나 오남용되면 어떻게 될까?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이 문제를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국민의 97퍼센트가 전자 신분증을 가지고 다닐뿐더러 대부분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 만큼 시스템의 안전장치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격에 대비한 첫 번째 안전장치는 시스템이 “분해”되기 때문에 자료를 저장하는 중앙 보관소가 없다는 점이다. 각 정부 부처는 자신들이 수집한 자료만 저장할 뿐 모든 자료를 모아 놓는 중앙 허브가 없다. 대신에 어떤 기관이 누군가의 자료가 필요한 경우 해당 자료를 맨 처음 수집한 정부 부처에 요청해야 한다. 자료는 요청되는 순간 “엑스 로드(X-Road)”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통해 전송되고 곧 삭제된다. 예컨대 교통부는 누군가에게 속도위반 딱지를 보내려고 할 때 우편등기소에 그 사람의 주소를 엑스로드를 통해 제공해 달라고 요청해야 하고 사용 후에는 반드시 해당 자료를 파기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진행되며 해커들이 공격할 만한 중앙의 귀중한 자료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안전장치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누구든 “디지털 발자국(digital footprint)”을 남긴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자료가 검색되거나, 사용되거나, 또는 변경될 때마다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개인의 “데이터 로그(data log)”에 기록이 생성된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신에 관해 조회된 사항을 전부 찾아볼 수 있고 여기에는 누가 정보를 요청했는지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에스토니아 국민에 관한 자료를 보유한 모든 기관은 그 정보를 신분증 번호에 연결해 개인의 데이터 로그에 표시해야 한다. 탈린에 거주하는 한 젊은이의 설명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정부를 통제할 수 있어요. 정부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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