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트렌드2022
 
지은이 : 김용섭
출판사 : 부키
출판일 : 2021년 10월




  • 사실 2022년은 위기의 해다. 위기가 끝나는 해가 아니라, 본격적 위기가 시작되는 해다. 더더욱 정치의 역할도, 개인의 트렌드 대응도 중요해질 때다. 움츠렸던 욕망과 행동이 증폭되는 해, 갈등과 공방이 증폭되는 해, 개인과 기업 모두의 불안감과 위기감이 더 커지는 해, 비즈니스의 기회와 위기가 더 커지는 해, IT의 산업 주도권이 더 강력해지고 AI와 로봇이 일상에 더 깊숙이 들어오는 해. 과연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트렌드가 당신에게 기회가 될 것인가? 우리는 그 어느 해보다 더 적극적으로 트렌드에 대응해야 한다. 2022년은 그렇게 보내야 할 것이다. 분명 2022년이 끝날 즈음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앞선 질문의 의미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라이프 트렌드 2022: Better Normal Life》를 통해 그 어느 해보다 더 특별한 2022년을 맞이하길 바란다.


    라이프 트렌드 2022


    CULTURE CODE

    유희가 된 가드닝과 반려 식물

    럭셔리 패션은 왜 가드닝 룩을 만들어 낼까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의 2021 S/S 패션쇼에서 플랜팅(Planting) 룩, 가드닝 룩이라 불려질 스타일이 많았다. 확실히 가드닝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을 패션계에서도 여실히 증명해 줬다. 버버리는 일하기 좋도록 농부나 광부의 작업복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멜빵바지 형태의 오버롤 팬츠(Overall Pants)를, 프라다는 일할 때 햇빛 가리기 좋은 밀짚모자인 스트로 햇(Straw Hat)을 선보였다. 또한 에트로, 겐조, 디올, 발렌티노, 필로소피 디 로렌조 세라피니 등의 브랜드에서 당장 정원에서 있어도 잘 어울릴 듯한 스타일이 쏟아졌다. 이러한 흐름은 한 해 잠시 이러다 말 것이 아니라 한동안 패션계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2020년부터 계속 이어지는 흐름이었고, 2022년에도 계속될 흐름이다. 봄여름은 꽃이나 식물을 심기에 가장 좋고 세상도 초록으로 물드는 시기다. 씨앗이나 식물을 심는 플랜팅과 가꾸고 돌보는 가드닝의 시기다. 이런 시기에 패션이 플랜팅 룩, 가드닝 룩으로 응답한다는 건 주목할 일이다. 물론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내놓은 가드닝 룩의 가격만 보면 저렇게 비싼 것을 입고 쓰고 신고서 정말 흙 묻히고 땀 흘리며 정원을 가꿀 수 있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20~30대에게 가드닝과 플랜팅은 아주 매력적인 경험재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20~30대, MZ세대들에게 흙을 만지고 식물을 심고 키운다는 행위는 낯설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멋진 카페에서 열심히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보다, 스타일리시한 가드닝 룩을 입고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 훨씬 더 힙하다. 가드닝이 ‘노동’이 아니라 ‘유희’가 되는 것은 가드닝의 결과보다 가드닝 과정에서의 즐거움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잘 심고 가꾸고 키우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드닝 행위를 통해서 누리는 감정적, 신체적, 정서적 풍요와 즐거움이다.


    패션계는 늘 사람들의 욕망을 스타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잘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그리너리(Greenary)가 기본 욕망으로 사람들에게 자리 잡았고 그 속에서 한발 더 나아간 사람들이 가드닝에 눈을 떴다. 가드닝은 그린을 관찰자나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키우는 과정을 통해 온몸으로 흡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드닝은 단지 정원 가꾸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집을 아파트에서 단독 주택이나 전원주택으로 바꾸거나, 아파트에 살더라도 자신만의 정원을 위해 주말농장 같은 텃밭을 임대하거나, 식생활에서 채식에 대한 관심을 높여서 비거니즘으로 이어지는 등 의식주 전반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가드닝 트렌드가 우리의 의식주와 라이프스타일에 미치는 영향

    집을 사거나 이사를 해야 할 때 아파트 대신 단독 주택이나 전원주택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가드닝에 빠진 소비자가 가드닝에 관심 없는 사람에 비해서 훨씬 높을 것이다. 아파트에 살더라도 베란다를 텃밭으로 가꾸는 데 필요한 실내 텃밭용 도구들을 사거나, 식물 재배기를 먼저 구매할 소비자도 이들일 것이다.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로 요리하는 가드닝 레스토랑이나 집에서 직접 대파와 상추를 키워서 먹는 일에 대한 관심도 가드닝 트렌드에 반응하는 소비자가 관심도 없는 사람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채식에 대한 관심, 비건에 대한 태도, 유기농과 무농약 채소와 동물 복지 축산물에 대한 관심도 더 클 수밖에 없다. 가드닝 트렌드에 반응하는 소비자가 가드닝 룩, 플랜팅 룩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가드닝 트렌드가 우리의 의식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반려 식물을 포함한 홈 가드닝 시장의 성장세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외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2020년 롯데마트의 가드닝 상품군 매출은 2019년 대비 18.7% 증가했다. 화분 매출은 46.5%나 증가했다. 이마트도 2019년 대비 2020년 화분, 삽 등의 가드닝 용품 매출이 10% 증가했고, 식물 영양제와 씨앗 매출은 6% 증가했다. 우리는 불편과 불만이 생기면 그것을 해소하는 소비를 한다. 우리는 격리와 단절, 집 안에 오래 머무는 기간 동안 식물이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코로나 블루를 진정시켜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욕망의 변화는 곧 소비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이어진다. 우리가 가드닝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식물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변화가 이어진다. 반려 식물 호텔, 가드닝 카페, 반려 식물 병원이 속속 등장하고, 당근마켓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반려 식물을 무료로 분양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 간다. 이렇게 홈 가드닝 시장이 커지자 백화점, 대형 마트, 온라인 쇼핑몰은 물론이고 저렴한 생활용품을 파는 다이소마저 홈 가드닝 기획전을 열었을 정도다. 앞으로 더 다양한 반려 식물, 가드닝 기획전과 마케팅이 쏟아질 것이다.


    가드닝에서 20~30대를 주목해야 한다. 셀프 인테리어와 랜선 집들이를 트렌드 이상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한 그들이 플랜테리어에 눈을 떴고,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반려 식물과 홈 가드닝, 베란다 가드닝으로 이어졌다. 심리적 안정을 위한 식물 키우기를 넘어 방울토마토, 상추, 대파를 키워서 먹는 20~30대 1인 가구도 늘었다. 이것은 앞으로 텃밭과 옥상 정원, 단독 주택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 냥집사’라고 부르는 것처럼 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식집사’라고 부르고, 멍때리며 불을 쳐다보는 ‘불멍’처럼 멍때리며 식물 혹은 풀을 쳐다보는 ‘식멍’ 또는 ‘풀멍’이라는 말도 쓴다. 이런 말들이 만들어지고 회자된다는 것은 바로 반려 식물과 가드닝에 대한 관심이 증대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동물 윤리와 비건으로 이어진 것처럼, 반려 식물에 대한 관심도 올라운드 비거니즘(All-round Veganism)으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준다.


    멀티버스: 세계관 놀이와 메타버스, 그리고 디지털 휴먼

    알면서도 모르는 척: 세계관 놀이는 결국 메타버스로 연결된다

    세계관 놀이이자 부캐 열풍은 엄밀히 미디어와 콘텐츠에서 촉발시켰지만 그것을 열풍처럼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욕망과 지금 시대의 환경 때문이다. 평일에는 직장인이지만 주말에는 유튜버일 수도 있고, 초등학생이지만 게임 내에서는 어른들을 압도하는 리더일 수도 있고,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자기가 보여 주고 싶은 대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처음에는 개그맨, 연기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세계관 놀이에 동조하고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얻던 사람들도, 자신의 새로운 캐릭터나 세계관을 스스로 만들어 내려 할 것이다. 세계관 놀이가 이벤트를 지나 일상적 문화가 되는 것이다. 바로 메타버스 때문이다. 메타버스에서라면 더더욱 쉽게 자신의 새로운 자아를 만들 수 있다. 현실과 연결되거나 종속된 자아가 아니라, 완전히 별개로 자신의 욕망 속 모습으로 캐릭터와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세계관 놀이의 진화는 결국 메타버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가상의 설정인지 알면서도 가짜라고 여기지 않고 그 자체에 몰입해 주는 태도는 메타버스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현실의 배 나온 중년 아저씨가 메타버스 내에서는 10대가 되어 아이돌 댄스를 추며 가상 공간의 스타가 되고, 현실의 초등학생도 메타버스에서는 아바타 옷을 디자인해 기존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며, 현실의 청각 장애인이 메타버스에서는 작곡가, 뮤지션, 우주 비행사가 되어도 된다. 나이, 신체적 조건, 성별, 국적 등 어떤 것도 제약이 없어진다. 메타버스에서는 자신이 설정한 캐릭터와 자신이 부여한 세계관을 가진 존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사람이 아닌 로봇이나 고양이, 외계인으로 설정하고 만들어도 상관없다. 메타버스의 매력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현실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무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가짜와 진짜의 경계, 현실과 가상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지는 못한다. 위안 삼아 이번 생은 망했고 다음 생에 해야지 싶겠지만, 사실 다음 생이라는 게 어디 있겠나. 배우가 어떤 배역을 너무 실감 나게 연기하면 그 사람의 실체가 작품 속 인물인 줄 알고 그대로 대하는 이들이 있다. 배우는 다양한 인생을 간접 체험해 보지만 우리는 그게 안 된다. 우리는 하나의 인생만 살아간다. 동시에 여러 이름으로 여러 모습의 인생을 살아가지는 못했다. 설령 여러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라 해도 완전히 분리된다기보다 현실의 실체에서 파생된 존재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메타버스 속의 당신은 성별, 나이, 국적, 인종, 직업, 외모, 뭐든 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실과 완전하게 분리된 존재가 되어 당신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 있다.


    여기서 진짜와 가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SF 영화가 그린 미래 모습 중에는 가상 현실의 메타버스에 빠져서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를 더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아예 극단적으로 현실은 버리고 가상 세계에서만 사느라 가상 현실 고글과 기계를 부착한 채 누워서 살아가는 영화적 설정도 나온다. SF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기술적 진화만 받쳐 준다면 우리의 욕망도 충분히 가능한 미래다. 사람들은 역할과 상황에 충실하다.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과 상황에 따라 평소와 다른 행동과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한 사람의 모습에서 다중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여러 모습과 각기 설정한 세계관에서 그에 맞는 각각의 자아를 드러내는 것이다.


    서로 이질적이어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의 경계면을 활성화시켜 섞이도록 만든 것이 계면활성제다. 이처럼 가짜와 진짜를 서로 섞이게 만든 것이 세계관 놀이이자 메타버스다. 기성세대 시각에서는 이것이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사회에서는 가짜와 진짜는 구분할 가치이고, 가짜가 절대 진짜를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짜는 늘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그래서 가상 공간과 메타버스에 기성세대식 관점을 적용시키면 ‘놀이’이자 ‘장난’으로만 보일 뿐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좀 더 진지한 현실이 가상 공간에 구현되고 메타버스에서 현실의 모든 일이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며드는 정도라면,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에게는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가 지워지고 현실과 다름없는 메타버스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세계관 놀이가 MZ세대, 그중에서도 특히 Z세대에게서 더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Z세대는 결코 강자가 아니다. 아니, 약자이고 소외되었다. 기성세대가 오랫동안 구축해 놓은 부와 권력을 이들은 가져갈 수 없다. 역대 이전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첫 번째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라면 이는 Z세대도 마찬가지다. 다만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Z세대는 기성세대의 영향력이 적은 소셜 네트워크이자 버추얼 스페이스, 메타버스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만든다. 오프라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성세대를 이길 수 없고 근접하기도 어렵다. 밀레니얼 세대가 오프라인에서 기성세대와 치열하게 공존하며 한계를 겪은 것과는 달리, Z세대는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공간에 더 집중한다. 오프라인이 기성세대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온라인이자 메타버스는 Z세대에게 가장 유리한 운동장이다. 더더욱 현실 세계가 아닌, 메타버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디지털 자산과 NFT, CBDC, 그리고 이미 시작된 현금 없는 사회

    진짜와 가짜, 현실과 가상,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가 이미 사라진 시대다. 오리지널에 대한 관성이 깨졌다. 이것은 우리의 자산과 금융에도 연결된다. NFT와 암호 화폐(Cryptocurrency), CBDC 등은 자산의 변화가 아니라 자산을 바라보는 우리 관점의 변화이기도 하다. 이는 금융이나 경제 트렌드이기 전에 라이프 트렌드다. 이로 인해 우리 삶이 바뀌기 때문이다.


    2021년 3월,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판화 작품 ‘멍청이(Morons)’가 불태워졌다. 9만 5000달러에 산 작품을 태운 것인데 뉴욕 브루클린의 공원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가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이 모습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왜 1억 원이라는 큰돈을 저렇게 허망하게 날려 버릴까 싶겠지만 이것은 절대 돈 낭비의 쇼가 아니었다.


    왜 그들은 뱅크시의 1억 원짜리 그림을 태웠을까?

    태워지기 전 그 작품은 NFT로 만들어졌고 며칠 후 이더리움 기반 디지털 경매 시장 오픈시(OpenSea)에서 228.69이더(ETH), 당시 기준 약 38만 달러, 한화 4억 3000만 원에 팔렸다. 1억 원짜리 그림을 태웠더니 4억 원짜리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림을 태운 것이나 NFT로 바꿔 경매로 판 것은 모두 NFT 기반 사업을 벌이는 블록체인 기업 인젝티브 프로토콜(Injective Protocol)이 벌인 일이며 여기서 얻은 경매 수익은 기부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 기부할 것이라면 굳이 왜 이랬을까 싶겠지만 이들은 사업에 대한 홍보 효과로 충분히 돈값 이상을 거두었다. 그 후 한 달여 동안 10여 개가 넘는 블록체인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고 1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도 유치했기 때문이다. 인젝티브 프로토콜은 왜 하필이면 뱅크시의 ‘멍청이’라는 판화를 골랐을까?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슈를 만들려면 유명 작가의 작품을 불태워야 한다. 판화라서 작가의 유명세에 비해 작품가는 상대적으로 싸다. 그리고 NFT는 판화처럼 대량으로 만들어 낼 수 있고, 만들어진 NFT마다 고윳값을 부여할 수 있다. 즉 500장의 판화에는 각기 1/500부터 500/500이 존재하듯, NFT는 애초에 판화 형식이 아닌 작품에도 판화처럼 대량으로 복제하되 각기의 고유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실물 진품은 한 명만 소유할 수 있지만 NFT로 만든 디지털 진품은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소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도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작품 ‘멍청이’에는 ‘이런 쓰레기를 사는 멍청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데, 미술 경매에 응찰하는 사람들을 시니컬하게 풍자하는 그림이다. 관성적인 기존 미술계를 풍자하는 그림의 메시지는, NFT라는 디지털 자산 가치가 적용될 미술계의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어울렸다. 사실 ‘멍청이’ 판화 작품은 500개가 제작되었다. 그중 한 개를 불태웠다고 원본이 사라진 것도 아니며 불태운 판화의 NFT는 ‘멍청이’ 전체의 오리지널 디지털 자산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물인 판화보다 NFT가 비싸게 팔린 것은 의도된 전략일 수 있다. 누가 샀는지는 몰라도 인젝티브 프로토콜에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한 것이니까.


    아마 다음에는 다량으로 존재하는 판화가 아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진품 그림을 태우는 날도 올 것이다. 아무리 NFT가 새로운 자산으로 부각되지만 실물이 존재하는 한 NFT는 종속된 존재다. 그런데 실물이 사라지면 NFT는 세상에 남는 유일한 것이 된다. NFT의 가치를 더 높아지려면 실물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물을 다 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실물을 절대 직접 볼 수 없는 곳, 바로 가상 공간이자 메타버스라면 NFT로 만든 디지털 자산의 힘이 더 발휘될 것이다. 결국 우리의 라이프 중심이 현실 공간에서 메타버스로 옮겨 갈수록 우리가 알던 기존의 가치와 자산에 대한 개념도 변화할 수 밖에 없다.


    가상 화폐가 아니라 암호 화폐, 디지털 자산이다!

    대중적으로는 가상 화폐, 코인 등으로 부르지만 실제로 암호 화폐가 맞는 말이다. 가상 화폐, 암호 화폐, 디지털 자산 개념은 서로 차이가 있다. 가상 화폐는 일부에서 화폐처럼 사용될 수 있지만 진짜 화폐의 모든 특성을 갖추지는 못한 교환 수단으로 정의한다.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도 분명 디지털 화폐이면서 가상 화폐인 것은 맞다. 온라인에서만 쓸 수 있는 전자 상품권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은 가상 화폐의 속성을 일부 가지긴 하지만 암호 화폐라고 불린다. 비트코인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결제 수단으로 쓰일 수 있고, 결정적으로 발행 주체에 종속되지 않는다. 유럽 중앙은행, 유럽 은행 감독청, 미국 재무부 등은 가상 화폐를 ‘정부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디지털 화폐의 일종으로 개발자가 발행, 관리하며 특정 한 가상 커뮤니티에서만 통용되는 결제 수단’으로 정의한다. 암호 화폐는 개발자가 발행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채굴하는 것이며 통용 범위도 다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재부무에서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코인을 암호 화폐라고만 칭하지, 가상 화폐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암호 화폐를 디지털 자산으로 규정한다. 지금은 화폐로서의 기능보다 자산으로서의 기능이 더 강하기도 하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거나 구입해 물건을 살 때 쓰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자산으로서 가격이 오르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실 가상이라는 말은 뉘앙스가 주는 오해가 있다. 마치 가짜 같은 느낌인 것이다. 화폐 앞에 가상이 붙으면 실체가 없는 가짜 같은 느낌인 데다가 사이버 머니와도 헷갈릴 수도 있다. 실제로 코빗, 업비트, 빗썸, 코인원 같은 국내 대표 거래소들은 자신들을 가상 자산 거래소, 디지털 자산 거래소, 암호 화폐 거래소라 칭한다.


    아무나 돈을 찍어 낸다고 그것이 다 돈이겠는가? 가상 화폐를 투자로 여기는 이들 중에서는 마치 황금을 캐듯 모두 돈이 될 것이라고 여기기도 하는데, 현존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암호 화폐 중 상당수는 머지않아 가치를 잃어버릴 것이다. 코인 광풍을 이용하려고 만든 것이지, 활용성도 가치도 없다. 물론 대표적인 암호 화폐들은 존재감을 유지할 것이다. 최초의 암호 화폐인 비트코인은 2009년 1월 3일에 첫 블록이 만들어졌다. 이더리움은 2015년 7월 30일에 만들어졌다. 암호 화폐의 빅2라 할 수 있는 이들은 서로 차이가 있다. 비트코인이 거래나 결제라는 화폐로서의 기능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이더리움은 거래나 결제뿐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계약과 전자 투표 등 다양한 확장성을 가진다. NFT도 이더리움의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디지털화 가상 자산에 별도의 고유한 인식 값을 부여해 희소성과 유일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소유권이나 판매 이력 등 모든 정보가 블록 체인에 저장되기 때문에 디지털 파일에 원본이라는 개념이 부여될 수 있다. 비트코인보다 이더리움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들도 있는데 바로 이 확장성과 활용성 때문이다.



    LIFE STYLE

    언리미티드 스타일: 규칙도 경계도 없는

    Z세대의 레트로는 뭔가 좀 다르다?

    애초에 레트로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시작되는 욕망이다. 추억이란 뜻의 ‘Retrospect’를 줄인 말이 레트로(Retro)다. 과거가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키워드다. 즉, 흥미롭고 매력적인 과거에 현재의 불만이나 아쉬움이 결합되면 레트로의 욕망이 커진다. 현재에 충분히 매력적이고 강렬한 욕망이 있다면 시선이 과거로 향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레트로를 ‘겪은 것을 추억하며 다시 즐긴다’로 정의한다면 밀레니얼 세대의 레트로는 ‘겪지 않은 것을 낯설고 신기해하면서 즐긴다’가 되겠다. 나아가 Z세대의 레트로는 ‘겪지 않은 것을 마치 겪은 듯이 즐긴다’가 된다. 이 3가지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Z세대의 레트로는 하나의 놀이다.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처럼 그때 그 문화, 그 물건, 그 음악, 그 행동을 즐기며 서로 즐거워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듯 역할놀이를 하듯 과거 시점에 몰입한다.


    그런데 왜 겪어 보지 않은 과거를 소비하는가? 현실이 팍팍하고 재미없는 이들에게는 직접 겪지 않았지만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해 보이는 과거가 하나의 도피처가 되고, 마음껏 누리면서 즐길 판타지가 된다. 이들이 열광하는 레트로 코드는 밝고 귀엽고 즐거운 것뿐이다. 추억은 더 미화되고 과장되게 마련인데, 소비 코드로서의 레트로는 더더욱 그렇다. 세련하지 않아도, 조금 키치(Kitsch) 하고 적당히 촌스러워도 좋다. 지금 기준에서 보면 매우 초보적이거나 단순한 기술과 기능의 물건에도 관대하다. 현실의 나는 재미없고 팍팍하지만, 그래도 현재가 과거보다는 더 진화했으니 심리적 우위나 위안도 가질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를 즐기며 현재의 힘겨움을 넘기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년이 된 기성세대가 과거를 추억하고 복고를 이야기하는 것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과거’에서 욕망을 다스린다. 뉴트로와 영트로 트렌드의 등장, 밀레니얼과 Z세대의 과거 소비를 문화적 스펙트럼의 확장으로서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들의 현실이 재미없고 즐겁지 않아서 만들어진 트렌드라는 점을 광고와 마케팅업계는 더 생각해 봐야 한다. 뉴트로, 영트로가 트렌드가 된 후로 수년째 레트로 마케팅이 난무했다. 타깃에 대한 이해나 레트로 전략이 없이 무조건 과거 추억만 덧칠하며 무슨 만능 키처럼 써먹었고 그래서 실패도 많았다. 소비자는 뻔한 레트로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즐거움이나 새로움 등 어떤 한 부분을 제대로 총족시켜야만 시선이 간다. 특히 Z세대는 더 까다롭다. 재미가 없으면 쉽게 반응해 주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2022년에도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 그리고 X세대를 공략하는 레트로 마케팅은 계속 시도될 것이고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소비자는 충분히 레트로 마케팅을 접해 왔기 때문에 기존의 성공 사례보다 더 독창적이고 재미있어야 한다. 문화로서, 콘텐츠로서 레트로는 꽤 오래 번성하겠지만 마케팅으로서도 그렇게 될지는 기업의 역량에 달렸다. 레트로에 대한 욕망은 각 세대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레트로를 통해 직간접 경험의 확장이자 욕망의 스펙트럼이 공통적으로 넓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라이프스타일과 의식주에서 새로운 소비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비즈니스 이슈다. 레트로를 마케팅 도구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레트로가 촉발시킨 욕망에 부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적극 팔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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