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의 시대가 열렸다! 반지성주의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허리케인’ 트럼프의 여파로 각자도생 신드롬에 빠졌던 세계는 이제 다시 새로운 질서를 기대하게 되었다. 77세로 미국 최고령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이든은 47년의 정치경력을 가진 워싱턴의 ‘고인 물’이었지만 뚜렷한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 무색무취한 인물이기도 하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트럼프가 아니다(He’s not President Trump)!’ 실제로 미국 유권자 다수는 트럼프가 싫어서 바이든을 찍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오바마 정부에 대한 역진 정치를 펼치며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듯이 바이든 또한 트럼프에 반하는 정치만을 추구한다면 더 큰 혼선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최악의 파당 정치로 인한 국민 분열 그리고 전례 없는 팬데믹의 장기화와 급증한 재정적자 등 총체적 위기 속에서 바이든을 위시한 미국의 진보세력은 과연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매일경제신문사 국제부 15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인 미국의 리더십 변화가 초래할 후폭풍과 ‘바이드노믹스(Bidenomics)’로 지칭되는 경제정책이 추후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 저자 매일경제 국제부
2016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백악관 주인이 됐을 때 그 누구도 19개월 뒤 한반도에 들이닥칠 지정학적 격변을 예측하지 못했다. 대북 강공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뜻밖에도 적극적인 대화 제스처를 취했고 정상 간 만남은 2018년 6월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베트남(2차)과 판문점(3차)으로 이어졌다. 비단 외교·안보뿐이랴.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통상정책 기조는 중국과의 충돌을 넘어 한국의 글로벌 기업들마저 위협했다. 국내 투자로 쏠릴 기업 자금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대미 투자로 전환되는 사례가 허다했다.
매일경제 국제부 기자들은 2020년 미 대선 막바지 국면부터 본연의 취재 업무와 병행해 틈틈이 대선 결과가 대한민국에 불러올 위기와 기회의 요소들을 분석하고 이를 책으로 엮었다. 조 바이든이라는 인물을 선택한 미국이 당면한 현실과 이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그리고 세계 최강 패권국가인 미국의 새 리더십 변화에 다른 강대국들이 어떤 대응을 할지 등을 15명의 기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바이드노믹스’ 분석에 집중했다.
미국 현지에서 신헌철 워싱턴 특파원, 신현규 실리콘밸리 특파원, 박용범 뉴욕 특파원의 수고가 가장 많았다. 서울에서는 이은아 국제부장을 비롯해 안두원, 손일선, 이재철, 김제관, 김덕식, 고보현, 진영화, 신혜림 기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이밖에도 김규식·정욱 도쿄 특파원, 김대기 베이징 특파원이 현지 목소리를 반영해 바이든 시대의 아시아 외교안보 흐름을 조망했다.
■ 차례
서문 트럼프 시대의 종언, 미국은 왜 바이든을 택했나
1장 바이드노믹스의 실체
다중 위기에 처한 미국 경제
FDR의 재림, 역대급 경기부양
바이 아메리카 vs. 자유무역 재정립
바이든식 증세의 명과 암
녹색산업 황금알 시장 열린다
수술대 오른 테크 공룡들
월가가 본 바이든
2장 글로벌 리더십의 복원
동맹 회복과 협력의 부활
미중, 긴장 완화 갈등 심화냐
바이든 머릿속의 유럽과 아시아
기로에 선 일본의 변화 전략
북한 비핵화 협상 새판 짠다
한미 관계, 민주당 커플링 시대로
3장 바이든 시대, 달라지는 미국
상 · 하원 의회권력 변화
대법원 전쟁은 계속된다
구조적 인종차별 뜯어고치기
무상 시리즈에 역대급 ‘큰 정부’
워싱턴DC, 51번째 주로 승격 추진
4장 바이든과 그의 사람들
‘에버리지 조’의 승리 요인
스크랜튼에서 백악관까지
“아버지, 약속해주세요”
오바마부터 해리스까지, 바이든의 전략
바이든 시대의 파워 엘리트
조 바이든의 시대가 열렸다! 반지성주의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허리케인’ 트럼프의 여파로 각자도생 신드롬에 빠졌던 세계는 이제 다시 새로운 질서를 기대하게 되었다. 77세로 미국 최고령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이든은 47년의 정치경력을 가진 워싱턴의 ‘고인 물’이었지만 뚜렷한 특징이 두드러지지 않는 무색무취한 인물이기도 하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트럼프가 아니다(He’s not President Trump)!’ 실제로 미국 유권자 다수는 트럼프가 싫어서 바이든을 찍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오바마 정부에 대한 역진 정치를 펼치며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듯이 바이든 또한 트럼프에 반하는 정치만을 추구한다면 더 큰 혼선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최악의 파당 정치로 인한 국민 분열 그리고 전례 없는 팬데믹의 장기화와 급증한 재정적자 등 총체적 위기 속에서 바이든을 위시한 미국의 진보세력은 과연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매일경제신문사 국제부 15명의 기자들이 모였다. 이들은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인 미국의 리더십 변화가 초래할 후폭풍과 ‘바이드노믹스(Bidenomics)’로 지칭되는 경제정책이 추후 글로벌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바이드노믹스
바이드노믹스의 실체
FDR의 재림, 역대급 경기부양
바이든은 최대 현안인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루스벨트식 뉴딜 접근론을 계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대해 각 주(州)에 맡기고 연방정부 차원에선 방관자적 스탠스(leave-it-to-the-states)를 취한 것이 패착이라고 보고 있다. 대공황을 극복했던 루스벨트식의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통해 미증유의 위기 극복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이미 선거공약에서도 이런 입장을 내세웠다.
바이든이 우선적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는 분야는 ▲ 코로나19 검사 대폭 증대 ▲ 지속적인 보호장구 공급책 확보 ▲ 백신 유통과 학교·병원용 예산확보 등 크게 3가지다. 전국적으로 마스크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 대응서 루스벨트식 적극개입 의지
바이든이 이런 전략을 짠 것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단기간에 경기 회복을 위해서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은 당선 이후에 ‘국가공급망책임자(national supply chain commander)’를 임명해, 보호장구와 코로나19 진단 키트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급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동원했던 국방수권법(Defense Production Act)을 더 공격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은 최소 10만 명을 동원해서 코로나19 관련 접촉을 추적하고 확진 사태를 줄이는 역할을 맡기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검사량을 늘리기 위해 ‘팬데믹 테스트 이사회’ 필요성까지 요구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펴며 ‘전시 생산 이사회(War Production Board)’를 구성했던 것에 착안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처는 물론 일반 경제정책 분야에서도 루스벨트식 대규모 부양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은 과감한 정부지출에 나서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에 이런 정책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바이든 캠프 경제자문인 제러드 번스타인 전 오바마 행정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를 단순히 팬데믹 이전으로 정상화하는 것은 목표를 지나치게 낮게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4년간 2조 달러 규모 그린뉴딜 정책을 예고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런 정책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총요소생산성을 떨어트릴 것이라는 후버연구소의 분석도 나왔다.
이런 논란이 있지만 대규모 경기 부양 패키지는 다른 경제권에 일단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바이든이 승리하고, 의회까지 민주당이 장악하면 경기부양 패키지가 2021~2022년 유럽 지역 GDP를 총 0.5%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대중국 무역압박 양상이 완화되며 대선 직전과 마찬가지로 위안화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은 이런 정책을 펴기 위해 다양한 증세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이 내세운 법인세율 인상과 금융권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이 미국 기업들의 일자리 확대와 투자 의욕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그러나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이 선호하는 경기 부양책의 경제 성장 효과가 세금 인상에 따른 부정적 영향보다 크다”고 평가했다. CNBC는 바이든이 제안한 신규 지출 제안은 인프라, 교육, 주택 등 부문에서 10년간 5조 4,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반면, 고소득자와 법인에 대한 세율 인상 등을 통한 10년간 증세 규모는 2조 4,000억 달러 수준이라고 세금 정책 센터를 인용한 수치를 소개했다. 그는 “2021년 1분기 추가 경기부양은 물론 인프라와 기후 관련 법안이 잇따를 것”이 라고 전망했다.
바이 아메리카 vs. 자유무역 재정립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와 대조되는 안정된 리더십을 강조했다. 무역정책에 있어서도 자국우선주의 기조를 보이며 민주당의 경제정책에 회의적이었던 ‘보수층’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바이든의 대표적인 통상정책으로는 자국우선주의 정책인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와 ‘다자주의 회복’이 꼽힌다.
조달혁신에 방점 찍은 바이든표 ‘아메리카 퍼스트’
바이든의 대선 캐치프레이즈인 ‘바이 아메리카’는 미국 제품 구매에 대규모 정부 예산을 투입하는 미국 보호주의 정책이다. ‘미국 내 제조(Made in America)’와 ‘미국산 구매(Buy America)’를 통해 코로나19로 무너진 자국의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구상이다.
바이 아메리카는 1933년 경제 대공황 때 미국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바이아메리칸 법(Buy American Act)을 뿌리로 삼고 이를 구체화한 게 특징이다. 모든 연방정부 기관에서 재화 조달 시 미국산 제품을 먼저 구매하도록 했다. 정부의 국산제품 구매확대, 국내 기업의 지원 강화,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귀환)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미국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정부 구매를 4년간 4,000억 달러(한화 454조 2,400억 원)로 늘리고, 전기 자동차, 5G 등 신기술 연구 개발에 투입한다. 더불어 노동자들의 단체 교섭권도 강화한다. 이를 통해 신규 일자리 500만 개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은 “연방 정부가 납세자들의 돈을 쓸 때 우리는 그것을 미국 제품을 구입하고 미국 일자리를 지원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자국 내 생산을 독려하기 위한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 정책도 추진한다. 미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 및 서비스를 미국으로 되가져와 판매할 경우 추가 10%의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앞서 바이든이 현 21%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8%로 올리겠다고 공언한 점을 참고하면, 미 기업의 최고세율은 30.8(28+2.8)%까지 오를 수 있다. 대신 미국 내 폐쇄된 공장을 다시 여는 등 자국으로 복귀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10%의 세액공제를 제공해 귀환을 유도한다. 해외 생산품을 미국산으로 속여 판 기업에는 처벌을 대폭 강화하며, 이를 위해 백악관 내 메이드 인 아메리카 부서도 신설한다.
동맹국과 연대의 힘으로 중국 경제굴기 대응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에 있어서는 바이든 역시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강경한 입장이다. 다만 바이든은 트럼프의 ‘미국 대 중국’ 대결 양상을 ‘동맹국 대 중국’ 구도로 확대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 견제 과정에서 주요 동맹국의 참여를 요구할 것으로 보여 한국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 ‘중국포용정책’을 옹호해왔던 바이든은 최근 반중 발언을 쏟아내며 태세를 전환했다. 대선 레이스 1년 전인 2019년 5월까지만 해도 바이든은 ‘중국이 미국의 점심을 뺏어 먹을 것’이라는 트럼프 주장에 의문을 표하면서 “중국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2020년 2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에서 바이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100만 위구르인을 노동교화소에 처넣은 폭력배(thug)”라고 하는 등 공격을 퍼부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미국은 여야를 막론하고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 보조금 지급, 기술 이전, 환율 조작, 사이버 절도 등의 행위가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주장에 뜻을 모으고 있다. 영국 <가디언 (The Guardian)>은 “점차 공화당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자유주의 지식인들도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제로섬’ 경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정책이 미국 제조업과 농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고 보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같은 ‘자멸적’ 방법은 동원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그러면서도 바이든은 트럼프가 중국에 부과한 무역확장법 232조·301조 등 관세부과 조치를 철회할 계획이나 대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백악관의 반중 기조에 따라 당분간 대중 관세조치들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리더십의 복원
동맹 회복과 협력의 부활
‘미국 우선주의’ 폐기로 미국 리더십 되살리기
바이든 당선자의 대외분야 공약 슬로건은 바로 ‘미국 리더십의 회복(America Must Lead Again)’이다. 기본적으로 그의 외교 철학은 미국이 제도와 다자주의를 통해 적극적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新) 고립주의를 채택해 국제기구와 다자동맹을 경시하고 미국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양자 협상에 집중한 것과는 정반대다.
바이든은 최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왕따(America Alone)’로 끝났다”고 말했다. 앞서 2020년 초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는 “가치를 공유하는 다른 나라와의 협력은 미국을 약하게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의 힘을 배가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바탕이 된다”고 강조했다. 2020년 8월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집권 시 청사진을 담아 확정한 정강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바로 미국 우선주의의 공식 폐기다.
민주당은 미국 우선주의 대신, 전통적 미국 외교정책의 근간인 동맹을 재창조하고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주의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건강한 민주주의, 공정한 사회, 포용적 경제가 미국의 대외 리더십을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라고 믿는다”며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위해 미국의 리더십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이 내세운 최우선 과제는 ‘동맹 재창조’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동맹 폄하가 적성국들이 꿈꾸던 방식이었다면서 미국의 동맹 시스템이 냉전 종식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유럽 안보의 핵심인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이하 나토)의 군사적 능력을 유지하는 한편 사이버 테러 등 새로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또 아시아 지역과의 동맹 강화를 약속하면서 한국, 일본, 호주 등을 명시적으로 거론했다. 민주당은 정강정책에서도 “한반도에서 핵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한국을 대상으로 급격한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 한국을 착취하려고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한국과 일본의 방위비 협상은 순조롭게 풀려나갈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 국가 연대와 다자주의 복귀
동맹 재창조와 함께 대외정책의 또 다른 축은 국제기구를 통한 주도권 회복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취임 첫날에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약속했다. 세계보건기구, 유엔인권이사회, 유엔인구기금 등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터진 후 중국에 편향됐다는 이유로 세계보건기구 탈퇴를 결정한 것과 달리, 바이든 정부는 국제기구를 오히려 적극 활용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국제적 공조를 꾀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바이든 선거캠프와 민주당 측은 미국이 먼저 핵무기 실험을 선제적으로 중단하고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비준하는 등 전 세계의 핵 군비 축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연장도 공약했다.
이란과의 대결적 구도는 이른바 이란 핵 협정, 즉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JCPOA)’ 복귀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복안이다. 트럼프 정부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 결정을 번복하겠다는 것인데 협정이 버락 오바마 정권 말기인 2015년 7월에 체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조치다.
바이든 당선자의 외교 분야 공약 중 트럼프 정권과 유사한 대목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병력을 줄이고 예맨에서의 대리전을 끝내겠다는 대목이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시절인 1991년 조지 W. 부시 정권의 걸프전 개전에 반대표를 던졌으나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는 찬성했던 이력이 있다. 2002년에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제거를 주장하면서 이라크전 개전에 동의했다. 부통령이던 2011년 5월 오바마 정권은 알카에다의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사살 작전을 펼쳤다. 기본적으로 군사력 선제 사용과 핵 능력 확대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필요할 때는 미국이 선택적으로 군사작전을 펴야 한다는 소신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 세계 질서를 다시 주도하겠다는 바이든 당선자의 복안에 대해선 비판도 따른다. 다소 추상적이거나 미국의 국력 쇠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는 의견이다.
한미 관계, 민주당 커플링 시대로
미국 대선 결과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하게 됐다. 지난 1998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집권 2기에 접어든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3년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과 김 전 대통령의 ‘햇볕 정책’이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추억을 되살리면서 한미 민주당 정권의 밀월 시대가 열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북한 인권 문제가 큰 걸림돌이다. 대북 정책에서 인권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미국 민주당의 시각은 곱지 않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해왔다. 세계 최악의 반인권 국가로 꼽히는 북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바이든 당선자 역시 인권 문제를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그는 2020년 8월 민주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외교 안보 정책을 통해 인권 문제를 중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전당대회에서 채택한 정강에 북한 인권 문제를 포함시켰다.
인권 인식차 커 충돌 예상
지난 2004년 북한 인권 법안을 지지한 바이든 당선자는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외교 정책 경험이 매우 많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 행정부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지켜본 인물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을 세 차례나 만났지만 북한 인권 문제를 뒷전으로 밀어버린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자는 북한과의 대화 추진 과정에서 인권 문제를 반드시 주요 의제로 거론할 것으로 보인다.
태평양 건너 미국 민주당은 북한 주민들의 안타까운 인권 상황을 걱정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더불어 ‘민주당’은 북한 인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 인권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통일부와 외교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실효성이 없는 상태다. 주무기관인 북한 인권재단은 출범도 하지 못했다. 북한 인권대사 역시 임명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9월 4일 시행된 북한 인권법에는 북한 인권법 시행을 위한 북한 인권재단 설립과 북한 인권실태 기록·보존을 위한 통일부 북한 인권기록센터 및 법무부 북한 인권기록보존기구 설치,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를 대변할 북한 인권 국제협력대사 임명, 북한 인권증진자문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2016년 9월 당시 외교부는 북한 인권법에 따라 북한 인권국제협력대사 자리를 신설했다. 초대 대사는 이정훈 대사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 대사의 임기가 2017년 8월로 종료됐는데도 정부는 후임자를 지정하지 않고 있다.
통상 부문도 뜻밖의 암초 만날 가능성
통상 측면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바이든 당선자는 공약으로 ‘미국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노동자 기반의 통상 정책 추진’을 내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국 중심의 통상 정책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4년 동안 취해진 자동차 및 철강 관련 관세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비관세 장벽은 물론 예상하지 못한 추가적인 보호무역 조치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등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지속되거나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국경제인연합은 전망했다. 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옹호하는 바이든 당선자는 기능이 정지된 세계무역기구 개혁을 주도해 다자 통상질서 재편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기 둔화로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40만 명 규모의 전미자동차노조가 유세 기간 동안 바이든 지지를 선언한 만큼 바이든 당선자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한국 자동차·철강 산업의 대미 수출에 타격을 불러올 것이다. 아울러 바이든 당선자는 환경과 노동 문제를 중시하기 때문에 해당 이슈에 민감한 화학과 반도체 업종의 타격도 예상된다. 중국에 의존한 한국 경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의 수입 규제 강화 조치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도 미·중 간 헤게모니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당선자는 후보 시절 동맹국과 함께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시정하고 다자무역 질서를 훼손하는 중국의 구조를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효과적인 대중 압박과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전통적 우방과의 공조를 중시하는 바이든 당선자와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보다 더 강하게 미국 중심의 우방국 공조 그룹에 한국의 참여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시대, 달라지는 미국
구조적 인종차별 뜯어고치기
곧잘 공포와 분열로 편가르기식 정치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자가 택한 방식은 통합과 포용이다.
다인종·다문화가 살아 숨 쉬는 미국에서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일 것이다. 특히 2020년 한 해는 미국 역사에 오래 간직될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난 해였다. 2020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백인 경찰에게 비무장 상태로 체포됐던 흑인 남성이 과잉진압을 당하던 도중 목이 졸린 채 사망한 것이다.
‘초강경’ 트럼프와 대조됐던 ‘치유자’ 바이든
플로이드의 참혹한 영상이 인터넷상에 올라오자 미국 전역은 분노로 들끓었다. 미국 사회 ‘고질병’으로 여겨졌던 경찰의 과잉진압과 인종차별 문제가 함께 터지면서 곳곳에서 격분한 시위대가 들고 일어났다. 시위대는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이었던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를 비롯해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에 나섰다.
시위가 격해지면서 이들 중 일부가 폭도로 변해 주요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서를 불태우는 일도 벌어졌다. 미니애폴리스를 비롯한 일부 주, 도시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주방위군까지 투입됐다. 경찰과 주방위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고무탄을 사용하면서 충돌은 격화됐다. 미국뿐 아니라 유색인종 차별 갈등이 남아 있는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서구사회에서도 시민들이 플로이드 사망에 공감하며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이어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일어난 직후부터 현재까지 일관적으로 시위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 시위대를 두고 ‘폭력배(thugs)’라 칭한 반면 공권력과 경찰에게는 이 모든 비난에 대한 책임이 없다며 옹호에 나선 것이다. 시위가 한창인 지역에는 “약해빠진 극좌파 민주당이 이끄는 주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며 정치적 발언을 이어갔다. 시위대를 향해선 “좌시하지 않고 군대를 보내겠다”,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며 주방위군을 통한 무력제압을 압박카드로 삼았다.
같은 시기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각각 국회 바닥에, 시위가 열리는 길거리에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애도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들은 백인 경찰관이 플로이드의 목을 압박한 8분 46초 동안 침묵하는 퍼포먼스에 동참하며 인종차별 항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바이든 당선자는 6월 초 플로이드의 고향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영면식에 앞서 유가족을 1시간 넘게 만나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시위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흑인 주요 인사와 만나 면담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 정반대 전략을 펼쳤다. 당시 바이든은 자신의 지역구인 델라웨어주에서 관련 인사들을 만나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설치됐던 경찰 감독위원회 재가동 계획 등 취임 100일 안에 구조적 인종차별 해결을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무상 시리즈에 역대급 ‘큰 정부’
조 바이든은 민주당 경선 때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에 맞설 ‘중도’ 이미지를 부각해왔다. 공약도 부동층을 겨냥해 중도적 정책 마련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진보 의제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공약집에는 최저임금 인상, 주거비 지원, 대학 학자금 부채 탕감 등 ‘진보주의자’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 의원이 내놓던 정책을 대거 포용했다.
바이든은 의료, 노동, 교육, 주거 등 분야에서 대대적인 국가 개입을 예고한 상태다. 이에 소요되는 나랏돈은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비영리단체 ‘책임 있는 연방재정 위원회(CRFB)’ 에 따르면, 바이든의 경우 공약 이행 과정에서 10년간 국가부채가 8조 3,000억 달러 만큼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통상 공화당은 규제 철폐와 정부의 시장개입 최소화를 내세우며 작은 정부에 서는 반면, 민주당은 개혁과 사회보장 확대 정책을 통해 상대적으로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평가다.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이란 정책 슬로건을 내걸고 정부 역할을 키운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이제껏 없던 ‘큰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란 관측이 벌써 나온다.
오바마케어보다 더 커질 ‘바이든케어’
국민 의료보험 체계는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민간 보험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 보건 체계의 허술함이 노출됐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쏟아졌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이 빈틈을 메우겠다며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이른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Afordable Care Act)를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선진국 중 드물게 국가 주도의 공공보험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다.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민간 보험회사 가입자는 전체 인구의 68%를 차지해 공공보험 가입자(34%)의 2배였다. 전체 인구의 8%인 2,610만 명은 어떤 건강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무보험자다. 무보험자 수는 전년도에 비해 단 1개주에서만 줄었고, 19개주에서는 늘었다.
바이든은 우선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던 저소득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오바마케어’의 수혜 대상과 보조금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오바마케어의 틀을 유지하는 동시에 ‘공공옵션(public option)’ 제도를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공공옵션은 민간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보험보다 저렴하고 폭넓은 범위를 보장하는 건강보험을 정부가 직접 만들어 경쟁하겠다는 대안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민감보험사의 보험료 인하를 이끌어내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바이든은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혜택 폭도 키우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65세 이상의 고령자, 장애인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메디케어’ 가입 연령을 60세로 낮춰 프로그램의 범위를 넓히고자 한다. 65세 미만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메디케이드’는 지금껏 미국 일부 지역에 한해서 지원됐지만 남부나 중서부를 포함한 모든 주에 확대 실시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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