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만이 하는 것
 
지은이 : 로버트 아이거(역:로버트 아이거)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20년 05월




  • 미키 마우스부터 어벤져스까지 전 세계가 사랑하는 콘텐츠, 기술, 창의성의 제국 월트디즈니컴퍼니를 지난 15년간 이끌어온 로버트 아이거 회장이 직접 쓴 책 《THE RIDE OF A LIFETIME》 한국어판 『디즈니만이 하는 것』. 2005년 마이클 아이즈너의 뒤를 이어 디즈니의 6번째 CEO가 된 그는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 같은 콘텐츠 거물들을 차례로 디즈니 은하계로 끌어들였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그야말로 ‘우주 최고의 미디어 제국’을 완성한 것이다. 전통 미디어 기업들의 침몰 속에서 독보적 반전을 이뤄낸 디즈니는 세계 경영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브랜드 부활의 사례로 꼽힌다. 100년 된 브랜드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는 이 놀라운 회사, ‘디즈니만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비밀을 공개한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


    배우다

    바닥에서 시작하다

    아버지는 내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심어주었다. 우리 집에는 책이 가득한 서재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책들을 한 권도 빠짐없이 다 읽으셨다. 어릴 때 나는 책을 그다지 열심히 읽지 않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진정한 독서광이 되었다. 그 역시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더욱 많이 읽으라고 독려하곤 했다. 우리 가족은 저녁식탁에서 주로 국제정세나 시사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 살 무렵부터 나는 앞마당에 배달된 <뉴욕타임스>를 들고 들어와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식탁에 앉아 꼼꼼히 읽곤 했다.


    아버지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고, 첫 번째 정식 일자리는 식품 제조회사의 마케팅 부서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광고 전문가가 되었다. 아버지는 매디슨 애비뉴의 한 광고대행사에서 올드 밀워키(Old Milwaukee)와 브런즈윅 볼링(Brunswick Bowling)을 담당했지만, 결국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우 아버지는 여러 광고대행사를 전전했는데, 거의 같은 직급으로 옮겨가는 수준이었다. 열 살인가 열한 살이 될 즈음에 나는 아버지가 왜 이렇게 직장을 자주 옮기는지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항상 당신의 ‘매우 강력한 자유주의적 정치성향’을 분명히 드러냈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확고한 성품과 정치성향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버지는 올바르고 공정한 것을 맹렬히 신봉했으며 항상 약자의 편에 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었고, 종종 스스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말실수를 했다. 나중에 나는 아버지가 조울증 진단을 받았고, 전기충격 요법을 비롯한 다양한 치료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때때로 내 방 앞을 지나가다가 내가 (당신 표현으로)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독서나 숙제 혹은 어떤 식으로든 ‘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의미했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에게 즐겁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시간을 지혜롭게 쓰고 목표를 향해 경주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시간 관리에 대한 나의 경계심(누군가는 ‘강박’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은 분명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리라.


    이타카에서 가장 인기 없는 사람

    나는 일찍이 내가 우리 가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집 안팎의 실질적인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무언가가 고장 나면 어머니는 늘 나에게 고쳐달라고 부탁했고,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고치는 방법을 배우고 궁리했다.


    부모님은 늘 걱정이 많았다. 당장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길 거라고 끊임없이 걱정했다. 유전적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과도한 불안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항상 그 반대였다. 나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점은 내 인생에서 거의 예외 없는 부분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이타카 대학에 진학했고, 입학해서 2학년 때까지는 거의 매 주말 밤을 동네 피자헛에서 피자를 구우며 보냈다. 고등학교 때는 대부분 B학점 정도였고(A학점도 몇 개 있긴 했지만) 공부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 무언가가 불현듯 분명해졌다.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나는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생각도 없었다. 부를 쌓거나 권력을 잡겠다는 식의 구체적인 비전도 없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결심만큼은 확고했다.


    행복하지 못했던 아버지, 그로 인해 함께 괴로워했던 어머니를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 외에는 어린 시절에 특별히 다른 어려움이나 곤경은 없었다. 나와 내 여동생은 결코 애정결핍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쉴 수 있는 집이 없던 적도, 끼니를 때울 음식이 없던 적도 없었다. 다만 다른 여유를 누릴 돈이 없을 뿐이었다. 돈이 생기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 시절에 나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남들도 나를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형편은 겉보기보다 훨씬 나빴고, 나이가 들면서 그 사실을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훗날 디즈니의 CEO가 되고 나서, 나는 아버지를 뉴욕으로 모셔와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나는 부모님이 우리 남매를 위해 해준 모든 것, 우리에게 물려주신 윤리의식과 넘치는 애정에 대해 얼마나 크게 감사하고 있는지 말했다. 나의 경력에 도움이 되었던 많은 특성들은 아버지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 아버지도 그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1974년 7월 1일 ABC에서 TV 스튜디오 스태프로 일하며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자리는 주급 150달러로 ABC라는 거대한 사다리에서 가장 말단이었다. 나를 포함해 스튜디오 스태프 6명은 게임쇼와 일일연속극, 토크쇼, 뉴스쇼, 특집방송 등 기본적으로 ABC의 맨해튼 스튜디오들에서 제작되는 모든 프로그램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하찮은 일을 도맡았다. 내 업무는 매우 간단했다. 나를 필요로 하면 어디든, 언제든 달려가서 시키는 모든 일을 수행하는 것. 어쩌면 그때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제작에 수반되는 까다로운 요구사항들을 즉각 해결하는 법과 극한의 업무량을 견뎌내는 법이 아닐까 싶다. 그때 익힌 근면함은 지금까지도 내 든든한 자본이다.


    오늘날까지 나는 거의 매일 새벽 4시 15분에 일어나는 생활을 이어왔지만, 지금은 순전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 하루의 과업을 수행하기 전에 사색하고 독서하고 운동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일상적으로 그런 시간을 가지며 일의 중압감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을 좀 더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다. 훨씬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상황을 뒤집어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인재에 투자하다

    1985년 3월, 나는 34세였고 바로 얼마 전에 ABC스포츠 부사장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그 즈음에 ABC의 창립자이자 회장 겸 CEO인 레너드 골든슨(Leonard Goldenson)이 훨씬 더 작은 회사인 캐피털시티즈커뮤니케이션즈(Capital Cities Communications)에 ABC 전체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ABC의 모든 사람들은 이 발표에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들은 톰 머피(Tom Murphy)와 댄 버크(Dan Burke)였다. 그들은 수년전 캡시티즈를 창업해 뉴욕 주 올버니에서 작은 TV 방송국을 출범시킨 후 인수에 인수를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톰의 절친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35억 달러의 거래를 지원한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더 큰 회사를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매각 계약은 1986년 1월에 완료되었다. 얼마 후 톰과 댄은 피닉스에서 사장단 연수회를 열었다. 나는 부사장이어서 초대받지 않았지만, 거기서 돌아온 다른 ABC 임원들로부터 톰과 댄의 촌스러운 조직운영 방식과 그들이 추구하는 소박한 가치 등에 대한 불만과 조소를 수없이 들었다. 나 역시 나중에야 우리가 모두 속물적인 냉소주의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현란함에는 아무 관심 없었고 오직 일에만 초점을 맞추며 허튼짓을 하지 않는 비즈니스맨들이었다.


    “실은 떠나겠다는 얘기를 하러 온 겁니다.”

    그 시절 나는 ABC스포츠 출신으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던 마지막 몇 사람 중 하나였다. 룬은 그런 나에게 종종 위로를 건넸다. 룬은 ‘위대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믿었으며, 자신이 일하는 방식을 예산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그는 수익성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경영진의 압박을 받으면 언제나 그때까지 자신이 벌어들인 수입을 거론하며 제작비를 넉넉하게 늘려야 더욱 놀라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뿐 아니라 광고주들이 너도나도 달려드는 세련됨과 화려함의 아우라가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톰과 댄은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약서에 날인을 하자마자 우리가 그동안 누려왔던 모든 특전을 없앴다. 더 이상 ABC 본사 앞에 줄지어 경영진을 기다리던 리무진은 볼 수 없었고, 콩코드나 일등석을 타고 출장 가던 관행도 사라졌으며, ‘한도 없는 비용 계정’이라는 것도 용인되지 않았다. 톰과 댄은 단순히 ‘도통 이해를 못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를 감지한 기민한 사업가였다.


    그들이 ABC를 인수한 후 처음으로 한 일 중 하나는 룬이 스포츠 부문과 뉴스 부문 중 하나만 맡도록 조치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공석이 된 ABC스포츠 책임자 자리가 내부 승진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조금 기대했다). 하지만 톰과 댄은 대신 데니스 스완슨(Dennis Swanson)을 데려왔다. ABC 산하 지역 TV 방송국 예닐곱 개를 관리하던 인물이었다. 나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모종의 기회가 열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데니스 밑에서 얼마간 일한 후에 나는 짐에게 전화를 걸어 더 이상 내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짐은 ICM으로 넘어와 자신의 팀에 합류해할라고 요청했고, 우리는 신속하게 계약조건을 도출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데니스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밥,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당신을 프로그래밍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승진시킬 겁니다. ABC의 모든 스포츠 프로그램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나는 몹시 당혹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실은 떠나겠다는 얘기를 하러 온 겁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큰 기회입니다. 밥, 나는 당신이 이 기회를 그냥 날려버려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하루만 더 생각해보고 답을 달라고 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당시의 아내 수전(Susan)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데니스 밑에서 일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새로운 일자리의 잠재력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결국 나는 머물기로 결정했다. ABC 스포츠가 그동안 내게 그토록 좋은 직장이었고 그런 그곳을 아직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니스의 제안에 따라 계속 그와 함께 일하기로 한 것은 결국 내가 경력을 밟아오는 가운데 내린 최상의 결정이었다. 나는 곧 내가 그를 완전히 잘못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정감이 넘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았을 뿐 아니라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이는 상사들에게서 보기 드문 특성이다.


    천성적으로 관대한 사람, 그것이 그의 참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톰과 댄이 창출한 조직문화 덕분이기도 했다. 톰과 댄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다. 절제가 필요한 수준의 야욕도 없고 거만함도 없고 거짓도 없는, 항상 진실한 사람들이었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든 일관되게 정직하며 솔직한 태도를 취했다. 그들은 자시들의 본능을 믿고 주위 사람들을 존중했으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스스로 삶의 신조로 삼아온 가치들을 회사 경영에도 반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중 다수는 경쟁사로 이직할 경우 챙길 수 있는 돈보다 적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모두 그들이 인색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떠나지 않고 회사에 머물렀다. 그 두 인물에게 그토록 충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디즈니에 들어가다

    196억 달러짜리 거래보다 어려운 것

    디즈니와 캡시티즈/ABC는 어느 금요일 오후에 거래금액에 최종 합의했다. 계속 논의해서 확정해야 할 세부사항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유일한 주요사안은 내가 머무느냐 떠나느냐 하는 문제였다.


    나는 머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고, 따라서 조에게 맡긴 일은 기본적으로 디즈니의 법률 자문위원인 샌디 리트박(Sandy Litvack)을 만나 전투를 벌이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저녁 ABC와 디즈니의 이사회 임원들은 디즈니를 대변하는 로펌 듀이 밸런타인(Dewey Ballantine)의 사무실에 모였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끝까지 팽팽했던 쟁점은 내가 누구에게 보고하는가, 즉 나의 직속 상관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였다. 조는 내가 마이클에게 직접 보고한다는 내용의 공식합의안을 밀어붙이고 있었고, 마이클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는 본인과 나 사이에 존재할 누군가, 즉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내가 이해해주길 바랐다. 나는 마이클이 나를 자신의 ‘넘버 투’로 인정해주길 바랐지만,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태도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마침내 나는 조에게 디즈니 안을 받아들이라고 연락했다. 분면 나는 언젠가 CEO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경로에 오르길 희망했지만(그리고 그 어떤 것도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이해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위해 싸울 시점이 아니었다. 나는 합병이 잘 진행되고, 캡시티즈 사람들이 디즈니에서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다.


    2인자에 오르다

    이후 3년 간 마이클 아이즈너는 넘버 투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둔 채 혼자 디즈니를 이끌었다. 마이클은 때로 나를 의사결정에 참여시키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냉담해지며 거리를 두기도 했다.


    내가 인수합병 이후에도 계속 회사에 남아 있었던 이유 중에는 언젠가 디즈니의 CEO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가 한몫을 차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이클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낚아채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며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회사에 대해 배워나가겠다는 것이 나의 의도였다.


    사람들이 종종 내게 야망을 키워나가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곤 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야망을 키워주는 것과 관련해서도 질문한다. 진정한 리더라면 주변 사람들이 더욱 높은 자리에 올라 더 큰 책임을 떠맡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우길 바라야 한다. 그들이 꿈꾸는 미래의 직무가 현재의 직무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CEO와 2인자 사이의 역학은 종종 긴장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누구나 자신이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길 원한다. 비결은 자신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수준의 자의식을 갖추는 것이다. 리더의 의사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자질을 파악해 그들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자네가 그만둬야 할 상황이네.”

    밀레니엄 생방송의 성공 이후 ABC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익은 점점 줄어들었는데 개발 단계인 프로그램들 중에도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다. 불과 2년 사이에 ABC는 시청률이 가장 높은 방송사에서 3대 방송사 중 꼴찌로 추락했다. 폭스의 성장세를 감안하면 3위 자리도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그런 결과가 초래된 데는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나 역시 손쉬운 해결책에 의존했던 것이다.


    1999년 8월, 나는 처음으로 2주간 휴가를 떠났다. 휴양지인 마서즈 빈야드에서 별장을 빌려 아내 윌로와 이제 곧 두 살이 되는 아들과 함께 보내는 휴가였다. 휴가 첫날 밤, 톰 머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보게 친구, 나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안타깝지만 이제 자네가 디즈니를 떠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네. 마이클은 자네를 신뢰하지 않아. 자네가 그만둬야 할 상황이네.”나는 망연자실했다. ABC와 디즈니의 원활하고 원만한 통합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ABC의 직원들이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했고, 디즈니 측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두 회사의 전반적인 글로벌 경영체제를 설계하고 실제로 그것을 구현하는 일을 추진하며 1년여 동안 끊임없이 출장을 다녔다. 그로 인해 가족들과도 늘 떨어져 지내다시피 했다.


    나는 톰에게 그만둘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연말에 보너스가 나올 예정이었기에 그것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마이클이 나를 해고할 생각이라면 그에게 직접 들어야겠다는 말도 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졸이며 올 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이클이 나를 보자고 했을 때 나는 버뱅크의 본사에 있었다. 때는 9월이었다. 그렇게 끝나게 되는 것으로 확신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며 곧 맞닥뜨릴 일격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기다렸다. “LA로 거처를 옮겨서 나를 도와 회사를 운영할 준비가 되었나요?” 그가 물었다. 방금 마이클이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마이클, 지금까지 당신이 저를 얼마나 일관성 없게 대하셨는지 알고 계신지요?”


    그는 나에게 가족을 모두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고 내 아내 윌로가 잘나가는 직장과 경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솔직했다. 그는 내가 LA로 이사하기를 원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 점이 염려가 되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만약 나를 COO로 지명했을 때 자신이 나와 경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그와의 미팅은 그렇게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채 끝났다. 마이클은 나에게 명확한 직함을 제기하지 않았고, 그 어떤 공식적인 계획도 언급하지 않았다. 12월 초, 마침내 마이클은 나에게 사장 겸 COO와 디즈니 이사회의 임원 자리를 제안했다. 이것은 명백한 신뢰의 표명이었고, 수개월 전 톰과의 통화내용을 감안한다면 다소 충격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다음 날 나의 승진은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문제는 미래다

    기업의 조직문화는 많은 요소들에 의해 그 형태를 갖춘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리더가 ‘우선사항’을 반복적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리더가 우선사항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은 일할 때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시간과 에너지, 자본이 낭비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구성원들은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필요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비효율이 만연하고 불만이 쌓이며 사기는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리더는 주변 사람들이 일상의 업무를 추측해서 처리하도록 만들지만 않아도 그들의(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사기를 아주 많이 진작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일은 복잡하고 집중력과 에너지를 상당히 많이 쏟아부어야 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점은 이곳이다’, ‘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은 이것이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일단 그렇게 단순한 목표가 설정되고 나면 상당히 많은 의사결정을 수월하게 내릴 수 있다. 그러면 조직 전체를 감돌던 불안감도 잦아들게 된다.


    지금까지 디즈니를 이끌어온 3가지 핵심

    스콧과 만난 이후 나는 어렵지 않게 전략적 우선사항 3가지를 명확하게 결정했고, 그것들은 내가 CEO라는 직함을 갖게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어가는 길잡이가 되어왔다.


    1) 고품질의 브랜드 콘텐츠를 창출하는 데 회사가 보유한 시간과 자본의 대부분을 쏟아부어야 한다. 많은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콘텐츠를 많이 생산하는 것도 충분치 않다. 선택의 폭이 폭발적으로 넓어진 시대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돈과 시간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을 필요로 한다. 위대한 브랜드는 그런 소비자 행동방식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더욱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2) 가능한 최대 범위까지 신기술을 수용해야 한다. 먼저 고품질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기술을 활용해야 하고, 다음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더 현대적이고 더 적절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여전히 콘텐츠를 창조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현대적 유통방식이 브랜드 연관성 유지에 필수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기술을 위협이 아닌 기회로 봐야 하며, 헌신과 열정, 긴박감을 갖고 기술 중심의 회사가 되어야 한다.


    3)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 광범위한 사업부문을 보유하고 전 세계의 수많은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지만,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인도 시장에 대한 점유율 측면에서는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탁월한 브랜드 콘텐츠의 창출이 첫 번째 목표라면 그 다음 단계는 그런 콘텐츠를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글로벌 시장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굳건한 토대 위에서 의미 있는 규모의 성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충성고객들을 위해 전과 다르지 않은 상품만 계속 생산한다면 결코 침체를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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