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투자 전쟁
 
지은이 : 정채진 외
출판사 : 페이지2북스
출판일 : 2020년 05월




  • 코로나19는 생명의 문제이자 부와 가난의 문제다. 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며 명징한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이 책 『코로나 투자 전쟁』은 대한민국 최정상의 경제 전문가들이 모여 다양한 경제적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경제의 신과 함께〉와 〈삼프로TV〉에서 남다른 지혜와 통찰을 보여주었던 경제 분석가와 전문 투자자 8인이 코로나19 이후의 자산 시장을 전망한다. 


    코로나 투자 전쟁


    코로나19 팬데믹과 주식투자 : 정채진

    복잡계와 코로나19 팬데믹

    ‘나비효과’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브라질에 사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미국 텍사스에서 폭풍을 일으키듯이 작은 사건이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복잡계다. 복잡계에서는 한 곳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이 주변의 다른 요인들에 작용하고, 이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큰 영향력을 갖게 됨으로써 최초 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의 원인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그랬다. 2019년 12월 중국의 우한이라는 곳에서 인류를 처음 만난 바이러스가 중국인 한 명을 감염시킨 이후 5개월에 걸쳐 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2020년 3월 전 세계 주식시장이 기록적인 속도로 폭락하고, 경제가 침체 국면에 진입한 것은 단지 코로나19 팬데믹 하나 때문이었을까?


    모래 알갱이를 떨어뜨리면 처음에는 넓은 면적에 걸쳐 쌓이지만 모래 알갱이를 계속 떨어뜨리면 점차 쌓이는 면적이 좁아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뾰족해지는데, 뾰족해진 이후에도 모래더미는 한동안 쌓여갈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 단 한 개의 모래 알갱이가 엄청난 사태(붕괴)를 일으킨다. 모래더미가 언제라도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태를 임계 상태(critical state)라고 부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경기침체는 어떤 사건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임계 상태에 도달해 있었다.


    기업가치와 황금비

    주가가 급락할 때 어떻게 기회를 엿볼 것인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2020년 3월 21일 코스피 지수가 1560대에 있을 때 필자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3월 21일은 코스피가 한 달 만에 2200에서 1440까지 35% 하락한 다음 날이었다. 이후 주가는 빠르게 상승해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4월 17일 현재 1914까지 상승했다. 바닥인 1440에서부터 계산하면 한 달이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지수가 무려 33% 상승한 것이다. 이 와중에 50%이상 오른 주식이 수두룩했다.


    지금이야 주식시장이 회복하니 더 상승할 것으로 생각하는 투자자가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추가 하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엄청난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바닥권에서 좋은 주식을 매수할 수 있었다.


    2020년 3월처럼 경제침체 시기가 오면 주가는 경기에 대한 우려로 많이 하락하며 온갖 두려운 뉴스로 도배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있다는 뉴스도 아니고, 경기침체가 어떻게 심각하냐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투자하고 있거나 투자할 회사의 기업가치가 어떻게 변하느냐다. 경기침체 영향으로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고 있는 사업이라면 주식시장이 다시 상승하더라도 주가는 오르기 힘들 것이다. 반면, 일시적으로는 사업이 영향을 받을지 몰라도 경제가 회복된 이후에는 다시 회복되거나 더 성장할 사업이라면 주가 하락은 기회이지 위기가 아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용기를 낼 수 있다.


    워런 버핏은 거시경제 요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거시경제보다는 기업 자체에 집중한다고 말한다. 2020년 3월과 같은 급락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거시경제 요소들을 보고 있으면 두려워서 투자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때 봐야 하는 것은 거시경제와 관련된 뉴스가 아니라 기업 자체다. 찰리 멍거는 이렇게 표현한다. “미시경제는 우리가 하는 사업이고, 거시경제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변수들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포트폴리오 : 박석중

    우려의 반대편에 서다

    지난 10년의 강세장은 코로나 사태로 종식됐다. 글로벌 주가지수는 고점 대비 34%까지 속락했다. 역사적 사례로 남을 패닉 셀링의 상흔이다. 국내 주식시장에는 ‘동학개미운동’ 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가 전례 없이 집중됐고, 정부가 나서서 주식투자 자제를 당부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갖는 합리적 비관론과 과거 반복된 복원력에 기댄 장밋빛 전망이 충돌하고 있다. 필자는 코로나 이후 주식 시장에서 큰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향후 글로벌 주식시장이 어떤 커브로 진행되든 주도주는 변화할 것이고, 이는 전례 없는 가격 상승과 또 다른 버블로 귀결될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 위치해 있나?

    코로나를 겪으며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는 주가 궤적에 후행해 변화돼왔다. 주가 급락에서는 합리적 비관론자의 우려에 수긍을, 추세 반등 시에는 과거 반복된 경험치에서 위험자산을 보유치 못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결국 작금의 위치에 갖는 정확한 판단과 미래 위험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는 시장 우려의 반대편에서 주식을 보유하고 박스권 혹은 변동성 장세 반복에도 업종 선별 과정을 통해 초과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의 근간이 된다.


    전염 확산 여파는 크게 1,2차 충격으로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 2차 충격은 확산에 대한 공포, 2차 충격은 펀더멘털 훼손, 금융시장 충격의 본격화다. 필자는 1,2차 충격의 진행에 따라 주가 궤적이 ‘초기 변동성→ 패닉 셀링→ 레벨업된 박스권→ 자산별 차별화→ 계단식 복원’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한다.


    1~2차 충격의 동반은 주가 속폭을 연출한 배경이다, 경영 위기에 빠진 기업은 현금 확보를 최우선시 했고, 이는 유동성 및 신용경색 우려로까지 확산됐다. 2차 충격은 펀더멘털 훼손의 본격화다. 경험한 적 없는 선진국 소비, 신흥국 생산활동 동반 위축은 경기침체 우려를 가중시킨다. 주요 IB(투자은행)들은 경쟁적으로 2020년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1분기 실적 시즌 이후 원자재, 금융 업종을 시작으로 가혹한 이익 추정치 조정까지 동반됐다.


    1차 충격의 정점 확인과 경기부양책 집행은 주가 반등의 동인이 됐다. 시장이 품은 공포는 최악의 악재를 지나야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전염 확산 공포가 대표적 사례다. 경제활동의 정상화는 2차 감염 재발 우려를 내포하고 있고, 일부 신흥국에서는 뒤늦은 질병 확산이 시작됐다. 다만 치료제와 백신 개발 스케줄은 구체화되고 있다. 5월 이후 점진적 락다운 제재 완화 기대까지 감안하면 주가 복원을 비이상적 현상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경기/금융시장 충격과 부양책 간의 시소게임을 거치면서 단기 변동성 혹은 기간조정 장세 반복이 예상되지만, 전고점까지 시차를 둔 계단식 복원이 시도될 전망이다. 고점 대비 34% 폭락한 주가는 낙폭의 절반 이상을 만회했다. 지금부터는 변동성 축소, 레벨업된 박스권 형성, 국가ㆍ스타일ㆍ업종별 수익률 차별화에 근간을 둔 매매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 Index 트레이딩으로 기회비용에 노출되기보다 코로나 이후 전개될 변화에 업종, 스타일별 대응이 우선돼야 한다. 1분기, 상반기, 2020년의 이익 훼손보다는 2분가, 하반기, 2021년의 복원력에 중점을 두 자산 우선순위를 정해 보다 긴 호흡의 대응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의 경제와 자산시장 : 김한진

    경기와 부채 사이클, 그리고 금융시장

    경기와 자산시장, 새로운 균형점 찾는 과정

    지금 세계 경제는 우선 코로나19가 언제 완전히 물러가 주느냐에 달려 있다. 셧다운 충격을 받은 각국 경제의 체력과 정책 효력도 중요한 변수다. 어느 시대나 경제충격(shock)이 일단 발생하면 당시 가장 취약한 부문에서 위험의 불씨가 발화되고 그게 다른 곳으로 번진다. 그리고 그 피해 정도에 따라 경기조정 폭과 기간이 결정되고 했다.


    사실 자산시장은 경기 사이클과 부채 사이클의 그림자다. 자산시장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얼마나 위험을 짊어졌느냐, 아니 얼마나 탐욕적이었느냐가 부채 사이클을 결정하고 그게 자산시장에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이번 코로나19도 세계 경기와 부채 사이클을 건드린 게 분명하고, 따라서 자산시장도 그 트랙 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경기 사이클과 부채 사이클은 어떤가? 만약 세계 경기가 2020년 막 이륙하려던 참이었거나 확장 추세를 이어갈 태세였는데 코로나19가 이를 잠시 멈춰 세운 거라면 크게 걱정할 게 없다. 바이러스만 사라지면 정책 효과까지 가세해 강력한 경기확장이 계속 이어질 테니까. 하지만 2020년 초 세계 경기와 부채는 꽉 차 있었고 조정위험이 커진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경기순환을 건드렸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히 실물경제 대비 사상 최대의 부채와 역사상 최장의 경기확장(미국 128개월)을 뒤로한 경기조정이기에 더욱 그렇다.


    각국의 고용은 앞으로 세 단계로 전개될 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첫 단계는 경제활동 제약으로 위치 초기에 15~20%(추정)로 치솟은 실업률이 셧다운이 풀리면서 빠르게 안정되는 국면이다. 그다음은 6~8%의 실업률이 몇 분기 지속되면서 일자리가 서서히 늘어나는 국면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돈이 돌고 일자리가 확연히 늘어나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4% 아래로 개선되는 구간이다.


    이러한 고용흐름 가운데 지금은 첫 단계 경제 정상화 과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까지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2배의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는 기간이므로 경기부진 국면이라 봐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진짜 경기 확장기에 해당한다. 과거 한번 꺾인 고용이 진적 호황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는 평균 4~5년이 걸렸다.


    IMF는 2020년 4월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가 2019년 2.9%에서 2020년에는 -3%로 후퇴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기저효과로 2021년에는 5.8% 플러스 성장을 예상했다. 코로나19 전 원래 예상한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3%였으니 6.3%p를 깎아 내린 것이다. 대신 2021년 전망은 코로나19 전 전망보다 2.4%p 높였다. 경제지표의 변동성이 상당히 클 것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것이 2021년 세계 경제의 본격 회복을 뜻하는 건 아니다. 물론 2020년 하반기부터는 각국 경제지표가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19 이전 전망을 뛰어넘을 정도의 회복은 아니다. 다른 기관들의 전망도 대체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이 금융시장에 진짜 바이러스인가

    코로나19를 단지 스쳐 지나가는 거대한 자연재해로 볼 것이냐, 아니면 세계 경제 사이클과 그 이상을 건드리는 촉매로 볼 것이냐에 따라 전망은 달라진다. 경기 사이클 논쟁을 떠나 어떤 경기충격이든 그 충격은 금융위험으로 이어지고 크든 작든 신용시장을 교란한다.


    더욱이 부채에 침착(沈着)해 자란 바이러스가 특정 자산시장을 감염시키면 2차, 3차 감염이 급속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자산시장은 원래 ‘경제적 거리 두기’를 하지 않아 나비효과도 크다. 가령 미국 회사채 신용경색은 달러 품귀를 낳고, 이는 외환 사정이 취약한 국가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린다. 달러 부채가 많은 신흥국 정부나 기업이 힘들어지면 선진국도 어려워져 세계 디플레이션이 심화될 것이다.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는 사실 디플레이션이란 이름의 바이러스다. 디플레이션은 실물과 자산시장의 유동성 함정을 뜻한다. 1929년 미국 대공황도 디플레이션과 관세전쟁이 그 특징이었다. 디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과잉생산과 과잉부채였고 그 표면에는 신용경색이 자리했다. 신용이란 누군가가 제공한 구매력이고 부채는 나중에 그 신용을 갚겠다는 약속인데 신용과 부채의 미스매칭이 결국 신용경색인 셈이다.


    미국이 직면한 현재의 신용경색은 주로 낮은 등급의 회사채에서 발생하고 있다. 경기쇼크는 이들 낮은 신용등급의 회사채 신용경색을 유발했고, 팽창한 신용이 만들어낸 금융위험은 연준(Fed)의 개입이 없이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낳았다.


    경기 둔화는 이들 신용시장을 위협하고 신용 위축은 또다시 경기를 얼어붙게 하므로, 이런 위험을 정태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경기둔화와 맞물려 추가 부실 감염이 확산되면 신용손실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모든 회사채를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다 사들이겠다는 연준이 뒤에 있지만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미국 신용시장은 그다음 경기와 싸워야 한다. 연준은 벌써 발을 빼고 싶어 하는 눈치다.



    코로나 위기 이후 정치경제 변화 : 여의도클라스

    위기는 진화한다

    금융위기는 항상 새롭다. 1930년대 대공황, 1998년 신흥국 외환위기, 2008년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매번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는 외환유동성 관리에 실패했음을 뼈저리게 자각했다. 위기 후 4,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쌓았고 변동환율제로 변화했으며, 외환 단기부채에 대한 신중한 관리를 배웠다. 2008년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을 어떻게 관리해야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는지를 배웠다. 또한 부외부채를 통한 다양한 파생상품을 거래소로 투명하게 관리함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시장이 이미 알고 있는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라는 유명한 격언처럼, 2020년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던 전문가들조차 중국발 금융위기, 글로벌 부채 과잉과 순환적 경기침체 가능성을 언급했지 바이러스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위기는 진화한다’ 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가르쳐주며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기고 있다.


    코로나 위기 이후 정치경제 변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추세 상승하는 시대가 올 것인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경제충격에 대응해 화폐를 엄청나게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각국 중앙은행에 의해 엄청나게 풀린 통화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실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전 3.8조 달러였던 연준의 총자산이 6조 달러를 넘어섰다. 연준 총자산이 급증했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지급준비금과 현금의 합인 본원통화가 급증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풀려간 본원통화는 3월에만 은행은 통해 5,000억 달러의 기업대출이 폭등하는 등 자금을 필요로 하는 실물 수요로 연결된다.


    그러나 봉쇄 조치로 인한 경제활동의 록다운(lock down, 봉쇄)은 거래활동이 정지되면서 화폐유통 속도가 엄청나게 위축됐다는 것을 뜻한다. 봉쇄가 해제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화폐유통 속도가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바로 급등할까? 대규모로 현금을 확보해놓은 기업들이 경제가 일부 재개된다고 해서 투자 유인이 바로 생기긴 어렵다. 또한 비상 상황을 대비한 선차입금이기 때문에 상황이 호전된다면 그중 일부만 사용하고 이후의 차입을 미룰 가능성이 커 보인다.


    두 번째, 대규모 재정정책으로 급증한 정부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인플레이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2조 2,00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 위기에 대응한 ‘경기부양패키지법(CARES 법)’ 이 대표적인 재정정책이다. 미 재무부는 소비자금융, 중소기업, 급여보고 프로그램, 지방정부, 회사채 시장, 정크본드 시장, 기업대출담보부증권CLO)시장, 상업용 모기지 시장 지원을 위한 연준 특설 장치들에 보증을 서기 위해 4,500억 달러의 예산을 이번 CARES 법률을 통해 확보했다. 이런 재정 지원에 힘입어 연준은 온갖 특정 기장에 대한 대출을 4조 5,000억 달러까지 확대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한 저임금과 효율성을 중요시했던 글로벌 생산 시스템이 코로나19 위기 이후 자급자족이나 보호무역주의로 변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990년대 이후 공장이 신흥국으로 이동하면서 더욱 저렴한 비용을 물건을 제공하는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아마존 효과처럼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업체 간 가격 인하 경쟁을 일으켜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었다. 또한 기술혁신으로 정보통신 등 새로운 일자리의 임금은 빠르게 상승하는 반면, 전통적인 일자리의 임금 상승은 정체되는 양극화 현상도 물가 상승을 적절히 억제할 수 있었다.


    따라서 향후 10년의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에서 실물 가격이 급등했던 1970년대의 경우라기보다는 2010년대 낮은 인플레이션 수준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 10년과 마찬가지로 대규모로 풀려난 유동성이 실물보다는 금융시장 안에 여전히 몰려 있을 가능성이 크고 적절한 금리조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제 정치: 국제공조보다는 리쇼어링과 보호무역주의, 미·중 무역전쟁 등 국가 간 갈등 확대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발생했지만 유럽을 비롯해서 중국, 신흥국 등 전 세계의 공조에 힘입어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는 영국, 미국 할 것 없이 대부분 국가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며 환율의 평가절하를 통해 근린궁핍 정책을 보여주면서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2020년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코로나19 확산과 경제 위기를 대처하기 위한 국제공조도 계속되겠지만,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명분으로 한 리쇼어링(본국 회귀) 확대와 보호무역주의, 미ㆍ중 갈등을 중심으로 한 국가 간 갈등이 확대될 가능성이 좀 더 커 보인다.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프랑스 마크롱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식품에서 제약에 이르기까지 공급망이 보다 자국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인들은 유사시 발생했던 핵심 물품 부족을 이유로 국민을 보호가기 위해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낮추려고 할 것이다. 이렇듯 많은 선진국의 정치적 분위기가 ‘세계화’에서 ‘고립주의와 민족주의’ 로 바뀌면서 수십 년간 세계 경제 성장을 리드했던 글로벌 교역이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중국에 돌릴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2020년 미ㆍ중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것이고, 2008년 같은 글로벌 공조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미국 기업들은 세금으로 지원을 받았으니 회사를 미국이나 동맹국으로 옮기라는 요구를 강하게 받게 될 수도 있다. 화웨이는 미국에서 영업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헤게모니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충돌은 정보통신 분야를 넘어 다차원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편 최근 주요 선진국들에서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본 개인과 기업을 대표해 중국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 관련 중요한 정보를 숨기면서 문제를 확산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로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둘러싼 서구 민주주의와 중국 권위주의 가치 간 충돌이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태가 진정된 후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코로나19 사태로 피해가 컸던 국가들에서 이런 목소리가 힘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중국에 집중된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빨리지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과 같은 상태로 냉각되면서 양극 체제 중심으로 재편decoupling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핵심 밸류체인에서 중국을 배제하려고 할 것이고,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같이 미국을 뺀 유럽, 일본, 신흥국들과 성장을 도모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 해 무역적자가 얼마가 되는가의 싸움이 아니라,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상대적인 우위를 누릴 수 있느냐가 걸린 패권전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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