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지은이 : 조너선 앨드리드(역:강주헌)
출판사 : 21세기북스
출판일 : 2020년 04월




  • 저자는 “경제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학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는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의 사고방식이 타락한 만큼 경제학 또한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어가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현실에 뿌리내린 경제학,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학을 위한 조언을 한다. 이 책은 경제학과 그 이론들을 역사적 현실적 맥락에서 분석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경제와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경제학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욕망이 정의를 이기다

    오해가 만들어낸 이론

    경제학에서 뛰어난 아이디어는 순수한 가설에서 추상적으로 시작된 후에 뒤늦게 현실 세계에 적용된 경우가 많았다. 경제학자로 활동한 오랜 기간 동안(그는 마지막 저서인 『어떻게 중국은 자본주의자가 되었나』를 101세에 출간했다), 코스는 추상적인 이론을 “칠판 경제학”이라며 비판하고 무시했다. 코스가 특별히 관심을 둔 분야 중 하나는 공공부문의 독점, 특히 BBC처럼 방송 분야와 관련된 독점이었다. 1951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 그는 공익에 가장 부합하는 분야라고 스스로 판단하여 라디오 방송국과 텔레비전 방송국에 방송 허가권을 할당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코스는 이처럼 국가가 지배하는 방식에 대한 경멸을 감추지 않았고, 그런 방식은 "연방정부가 지명한 위원회가 크고 작은 각각의 도시와 마을에서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려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코스는 방송 주파수대를 경매에 붙여 가장 높은 값을 써낸 방송국에 팔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당시 방송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많은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관례가 되었다.


    코스의 주장을 요약하면, 연방통신위원회는 방송 주파수대 사용권의 할당을 두고 고심할 필요가 없었다. 사용권이 법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고 양도 가능하다면, 사용권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업자의 손에 결국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사용권을 먼저 확보한 사람은 자신보다 그 권리를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권리를 고집하지 않고 매각함으로써 차액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또 방송권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방송권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회 전체에도 최선의 결과가 된다. 코스의 이런 주장에 방송국 종사자만이 아니라 연방통신위원회도 화들짝 놀랐지만, 요즘의 기준에서는 자유시장경제의 수호자들까지 놀라며 이를 강력히 반대한다.


    부의 극대화와 깡패 기업

    오랫동안 법조계는 법경제학파를 무시했다. 법경제학파는 비정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별난 자유의지론자들로 여겨졌다. 따라서 기득권층의 토론은 그들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법경제학파에 대한 이런 경멸적 분위기는 리처드 포스너라는 한 사람에 의해 뒤집어졌다. 그는 거의 혼자 힘으로 법경제학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존중할만한 학설로 바꿔놓았고, 그 과정에서 20세기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법학자가 되었다.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독점 금지에 대한 시카고학파의 이론은 거의 혁명적이었고, 법조계의 전통적 관행에도 까다롭기 그지없는 과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시카고학파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이론은 코스 정리를 독점 금지를 해석하는 데 적용한 것에 불과했다. 코스의 주장에 따르면, A가 B에게 손해를 입히는 걸 간섭하기 전에 정부는 B의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포스너는 이런 주장을 독점을 규제하는 데 적용했다. 약탈적 가격 결정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어떤 분야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이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공격적으로 가격을 할인함으로써 경쟁 기업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시장을 떠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상대를 괴롭혀서 포기하게 만드는 위협 행위는 대형 소매점이 작은 도시에 처음 진출할 때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소규모 상점들이 문을 닫은 후, 시장을 독점한 대형 소매점은 가격을 인상한다. 법률가와 자유시장 경제학자의 일반적인 통념에 따르면, 소기업을 보호하고 경쟁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지배적인 기업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한 규제와 그와 유사한 조치가 필요하고, 이것이 소비자와 사회 전반에 이익이 된다. 포스너와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이런 추론은 지배 기업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 지적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지배 기업의 이익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포스너는 그 객관적 평가를 위해 특별한 접근법을 제안하며, 그 방법을 부의 극대화라 칭했다. 독점 규제의 도입으로 지배 기업이 받는 금전적 손실이 소기업 전체의 금전적 이익보다 크면, 독점을 규제하는 것은 나쁜 제도라는 게 포스너의 주장이었다. 일반화해서 말하면, 시카고, 대학의 법경제학파는 지배 기업(그들을 비판한 학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깡패 기업(corporate bully))을 보호하는 데 유리한 주장을 펼쳤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포스너와 그의 추종자들은 포괄적인 법적 간섭을 통해 특허와 저작권을 보유한 사람에게 해당 제품에 대한 강력한 독점권을 부여할 때 자유시장의 미덕이 최적으로 완성된다는 모순된 주장을 내세우며, 지적 재산권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법적 지원으로 가장 큰 혜택을 누린 쪽은 제품에 대한 독점권을 보유한 기업, 예컨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파이저(미국의 제약회사 –옮긴이)와 글락소(다국적 제약회사-옮긴이) 등이다. 부의 극대화가 공정한 기업 행위보다 낫다는 포스너의 믿음은 2007년에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초래한 대가로 금융 기관을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목소리와도 일맥상통한다. 금융 기관을 응징하는 것이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경제적으로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라는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의 반대에서도 포스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정의란 부의 극대화의 동의어에 불과하며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포스너는 진보적 법조계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의 찬란한 이력 때문에도 포스너의 견해는 진보적 법조계에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포스너는 고자세로 그들을 자극함으로써 그들이 대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포스너는 보수적 성향의 시카고학파 경제학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그 방법론을 좋아했다. 따라서 포스너는 시카고학파의 방법론을 모방하며, ‘부의 극대화’가 전통적인 법 분석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주장했다. 포스너의 표현을 빌리면, 전통적인 법해석 원리는 ‘그냥 헛소리’였다.


    완벽한 거래의 조건

    이번에는 포스너의 주장에 담긴 두 번째 의도를 살펴보자. 부의 극대화가 곧 정의라 주장하며, 포스너는 부의 극대화가 옳다는 것을 명쾌하게 입증하려 했다. 하지만 포스너에게 그런 영감을 준 것은 윤리학이 아니라 경제학이었다. 특히 공정과 정의에 대한 판단은 느낌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제학파에게 영감을 받았다. 포스너의 동료이던 밀턴 프리드먼의 표현을 빌리면 "결국 사람들은 이 둘에 대한 의견의 차이를 두고 싸울 뿐이다." 부를 극대화하기 위해 공정과 정의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피한다는 이유에서, 포스너는 부의 극대화를 과학적이라고 판단했다. 부가 극대화되면 파이의 크기가 전체적으로 커지므로, 파이를 어떻게 나눠야 한다고 싸울 필요도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그 자체로도 잘못된 것이다. 부의 극대화는 오히려 윤리적 판단을 피한다는 이유에서 과학적이지 않다. 부를 극대화하겠다는 결정 자체가 윤리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파이의 분배부터 사고의 책임까지 다른 모든 도덕적 고려보다 부를 우선시하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시카고학파는 손해에 대한 코스의 이론을 사고에 적용하며, 사고로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자신의 부상에 대해 똑같이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없었다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덕성을 무시하며, 포스너처럼 부의 극대화를 우리의 유일한 목표로 삼더라도 이런 유토피아적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처음에는 거래가 사회 전체가 아니라 당사자들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어떤 산업계에서는 두 대기업이 카르텔을 맺거나 가격을 담합하며, 소비자에게 손해를 안겨주더라도 두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거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양쪽 모두에게 유리한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예컨대 내가 모로코 마라케시의 미로 같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찻주전자를 사려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나 나와 노점상은 가격을 합의해야 한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최고의 가격이 노점상이 받으려는 최소 가격보다 높다면, 양쪽 모두에게 이로운 거래가 가능하다. 그 사이에서 가격이 결정되면,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는 경우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익이다. 물론 우리는 그 가격을 모른다. 따라서 노점상이 더는 가격을 낮추지 않을 거라고 내가 잘못 판단하거나, 그의 최종적인 제안이 너무 높아 내가 더는 흥정하지 않겠다고 돌아서면 두 사람은 가격 합의에 실패할 수 있다.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협상할 각오를 했다고 해도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는 많기 때문에 어느 쪽도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다. 또 양쪽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이 있더라도 누구도 그 조건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최선의 조건을 끌어내려는 욕심이 거래의 성사를 방해할 수 있다.



    경제학 제국주의의 탄생

    새치기를 제공하는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라인스탠딩닷컴(LineStanding.com)을 이용하면 당신을 대신해 줄을 설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이 회사는 주로 노숙자를 이용한다). 대기업을 위해 활동하는 로비스트들이 이런 서비스를 주로 사용한다. 로비스트들은 의원 청문회와 대법원의 방청권을 확보하려고 그런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밤새 줄을 서게 한다. 덕분에 로비스트들은 청문회나 법정이 시작되기 직전에 입장할 수 있다.


    2016년 11월 인도 전역에서 은행 정문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높은 단위의 지폐가 법정 통화로서 수명을 다하기 전에 교환하려고 시민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새치기는 과거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고, 심지어 불법적이라고 여겨지던 많은 것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친구들에게 꼬마 쳉으로 불리던 십대 소년이 아이팟을 살 돈을 마련하려고 자신의 콩팥을 팔았다. 미국의 몇몇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면 더 좋은 수용실로 옮길 수 있다. 기업들은 직원들을 대신해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투자자들에게 그 보험증권을 되판다. 원래 죽은 소작농 보험(dead peasants insurance)으로 알려진, 죽음을 두고 벌이는 이 도박이 이제는 수십억 달러의 시장이 되었다.


    대다수는 이런 유형의 거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거래가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꼬마 쳉이 장기를 판 돈으로 아이팟을 사려고 했기 때문에 대중매체가 그 거래에 더욱더 분노한 듯하다. (꼬마 쳉이 자신의 콩팥을 팔아 누이의 병원비를 내려고 했다면 그처럼 큰 소동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콩팥을 비롯한 장기가 매매되는 시장은 혐오스럽지만, 장기의 공급이 증가하면 생명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교수들은 부유한 학생들이 돈을 써서라도 일류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생각에 경악하지만, 일류 대학이 받는 기부금이 가난하지만 야심 있는 학생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두가 결코 매매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에 속할 만한 것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그것도 결국에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할 수 있는 듯하다.


    당신의 목숨값은 얼마인가?

    소련이 1949년 처음 원자폭탄 실험을 한 직후, 미국 공군은 랜드 연구소에 소련을 선제공격하는 전략을 설계해달라고 요청했다. 랜드 연구소의 분석가들은 폭탄과 폭격기를 다양하게 조합하며 문자 그대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40만 가지 이상의 시나리오를 따져보았다. 그들은 미국 공군이 소련 공군을 항공기 숫자에서 압도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또 핵폭탄을 싣지 않은 값싸고 취약한 프로펠러 비행기를 바람잡이로 이용해서 핵폭탄을 운반하는 폭격기에 대한 공격을 줄여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랜드 연구소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런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공군 장성들은 그 보고서를 보고 격분했다.


    장성들은 다수가 조종사 출신이었던 까닭에 그 제안을 즉각 거부하며, 랜드 연구소에 분석을 전면적으로 재고하라며 그들을 직설적으로 나무랐다. 랜드 연구소가 여러 전락의 비용을 계산하면서도 인간이라는 비용을 무시한 탓이었다. 즉 공군 요원의 죽음을 계산하지 않은 것이었다. 값싼 항공기를 포함시킨 그들의 전략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랜드 연구소가 인간 비용을 빠뜨린 이유는 인간의 목숨에 대한 내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랜드 연구소의 한 선임 분석가가 인정했듯이 "우리가 아직 계량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변수들이 중요한 분석에서 생략되는 경향"이 있었다. 무엇보다 랜드 연구소의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목숨값이 경제학자가 결정해야 할 경제적 문제라는 데도 동의하지 않았다. 조종사의 가치를 달러로 환산하는 게 경제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랜드 연구소의 역할은 달러 비용과 조종사의 죽음을 ‘효율적’으로 다양하게 조합한 여러 전략을 펜타곤에 제시하는 게 전부였다. 최종적인 균형점을 찾는 것은 펜타곤이나 대통령의 몫이었다. 훈련비 등 조종사에 투자되는 비용이 조종사의 금전적 가치 전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런 계산을 위한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한 해결책이 토머스 셸링의 창의적인 머리에서 나왔다. 셸링은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학생으로 전직 조종사였던 잭 칼슨(Jack Carlson)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 목숨의 가치에 대한 논문을 썼다. 셸링은 원래 군사적 의사결정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칼슨의 아이디어를 더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았다. 공군이 한 조종사에게 투자한 금전적 비용으로 조종사의 목숨값을 계산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똑같은 이유에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한 시민의 목숨값을 그의 소득으로 계산하는 걸 거북하게 생각했지만, 산업 사고에 대한 보상비를 결정할 때 법원은 피해자의 소득을 기준으로 삼았다. 셸링은 당신의 목숨값을 당신 자신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이런 접근법에 내재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셸링도 인정했듯이, 인간 목숨에 대한 가치는 경제학자가 다루기에는 너무도 부담스러운 문제였다. 따라서 셸링은 문제의 방향을 바꾸었다. “삶과 죽음이 관련된 부문에서 우리 모두가 소비자이다. 거의 모두가 생명이 연장되기를 바라고, 그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시도로 목숨을 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그 시도에 대해 말할 자격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셸링의 접근법은 대부분의 정부 영역에 통계적으로 표준화된 생명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국가의 정책 수립에 근간이 되었다. 예컨대 미국에서 통계적 생명의 가치는 약 1,000만 달러(2019년 가격)이며, 법의 규정에 따라 정부기관은 그 생명의 가치를 포함해 금전적 가치를 손익 분석에 반영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통계적 생명의 가치에는 순진한 결벽증 이외에 고려해야 할 것이 더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식 논증을 생각해보자. 두 개의 일자리가 있다. 하나는 유해한 화학물질을 취급하거나 전투 현장에 근무하는 경우처럼 업무상 위험이 있어 매년 1만 명 중 한 명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교과서적인 자유시장 경제학에 따르면, 추가적인 위험이 따르므로 두 일자리의 임금은 달라야 마땅하다. 위험한 일을 떠맡도록 직원을 설득하려면 고용주가 더 많은 임금을 제안해야 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일자리의 임금이 더 높다. 두 일자리의 임금 격차가 1,000달러라고 해보자. 그럼 노동자가 1만분의 1의 사망 위험을 1,000달러로 용인한 것이 된다. 이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가 1만 명이라면, 고용주가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총임금은 1,000만 달러(1,000달러 x 10,000명)가 되고, 매년 평균적으로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1,000만 달러를 추가로 받는 대가로 하나의 통계적 생명 상실을 단체로 용인하는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위의 논증은 단순한 사고실험이 아니라, 셸링의 방법론이기도 하다. 실제로 전 세계의 많은 정부가 정확히 이런 식으로 추론하며, 임금 차이의 추정치를 통해 통계적 생명의 금전적 가치를 결정한다. 그러나 셸링의 방법론에는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위험의 차이가 있는 여러 일자리를 선택할 때 우리는 훗날 직면하게 될 위험의 가능성과 크기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게 현실이다. 설령 알더라도 제시되는 임금이 그 일자리를 선택하는 유일한 변수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위험한 일자리를 선택한 사람이 진심으로 그 일을 선택할 가능성도 무척 낮다. 위험의 여부와 상관없이 가난 때문에 가장 높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선택했을 수 있다.


    가격은 가치의 척도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에는 우리 모두가 평등한 시민이라는 원칙이 있다. 부자들이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얻게 해주는 시장 활동, 예컨대 로비 활동과 줄서기는 평등한 시민권을 명백히 훼손하는 행위이다. 시장은 권리와 의무에서도 평등한 시민이란 원칙을 훼손한다. 예컨대 병역의 의무는 물론이고, 누구라도 요청받으면 형사재판 배심원으로 역할을 다하고, 지역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게 의무이지만, 부자들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 제국주의자들은 시민으로서의 의무에 시장 제도를 도입하자는 운동에 앞장섰다. 다시 말하면, 군에 입대하거나 배심원으로 역할을 다하라는 부름을 받으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돈으로 사서 대신 그 의무를 수행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한편 시민의 권리에 관해 말하자면, 1987년 베커는 시민권이나 이민권을 최고 입찰자에게 주자고 제안했었다. 2009년 난민이 급증하자 베커가 다시 나섰다. 그때 베커는 상당한 입장료를 지불한 난민에게만 수용소에 들어갈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래야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면 실제로 신체적 위해를 받는가에 대한 지루한 심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평등한 시민권이 지켜져야 시장의 범위를 제한할 근거가 마련되고, 더 나아가 시장 자체가 유지된다. 쌍방이 대략 평등한 조건에서 거래해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며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한쪽이 지나치게 가난하고 무력하고 취약하면 시장 거래에서 착취당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런 거래의 금지는 당연시될 수 있다. 예컨대 아동의 연령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아동 노동은 금지되어 있다. 아동은 노동 시장에서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동이 동의하지도 않고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또 어떤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동의 노동력이 매매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 여성이 지독한 가난 때문에 혹은 아기를 양도한 이후의 기분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입양아를 찾는 부모에게 뱃속의 아기를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또 가난에 시달린 아버지가 병든 아들에게 먹일 약을 사려고 갚을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터무니없는 고액의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시장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고 가정하기 전에 우리는 잠시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시장은 자유롭게 진입한 거래만을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항상 자유롭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 자유는 무척 제한적이다. 따라서 시장의 선택이 모든 당사자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섣불리 추정할 수 없다.



    왜 불평등해졌는가?

    불평등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유

    불평등에 대한 파레토의 이론은 대단히 뛰어났다. 파레토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페루에서, 시기적으로는 1454년 스위스 바젤의 세무 기록까지, 소득과 재산에 관련된 자료를 최대한 수집해 면밀히 분석한 끝에 어느 시대에나 모든 국가에서 소득과 재산의 분배는 높은 불평등이란 동일한 패턴을 따른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파레토는 이탈리아를 가장 먼저 분석하며, 이탈리아 토지의 80퍼센트를 상위 20퍼센트가 소유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가 오늘날 모두에게 잘 알려진 80/20 법칙의 기원이다. 파레토는 소득이나 재산의 분배에 깊이 감추어진 일반적인 패턴을 찾아냈다. 모든 구성원의 소득이나 재산을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시작해 가장 부유한 사람까지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소득이나 재산이 완만하게 증가하거나 반듯한 선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소득선이 처음에는 거의 올라가지 않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 약간 올라가지만, 상위 1퍼센트에 이르면 급격히 치솟는다. 앞 장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모든 것의 분포가 종형 곡선 형태를 띤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는 지극히 부유한 사람(혹은 지독히 가난한 사람)과 다수를 차지하는 중간층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는 불평등 패턴도 종형 곡선 형태를 띤다고 결론지으면, 불평등에 대한 핵심적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불평등이 최상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평등 패턴에 대한 파레토의 결론은 옳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파레토의 설명에 따르면, 시대와 공간에 관계없이 동일한 불평등 패턴은 능력과 재능에서 인간의 선천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은 능력과 재능의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뜻이다. 또 파레토는 민주사회가 이런 불평등을 개선하거나, 우월한 사람이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려는 자연스런 성향을 제한하려 한다면 침체와 쇠락의 위험을 맞게 된다고도 주장했다.


    요즘의 연구에서도 결론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불평등의 심화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세계화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경제적 논증에서도 이런 결론은 타당하게 들린다. 세계화는 대부분의 재화와 서비스가 세계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처럼 큰 시장에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면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따라서 그런 공급망에 당신의 재능이 필수적이라면 당신은 훨씬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을 지닌 직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 졸업생의 소득이 평균 소득보다 더 빨리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설명들이 익숙하다고 해도 현실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파레토가 확인한 패턴, 즉 집단 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되는 패턴이 확인된다. 소수의 졸업생은 소득이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대다수 졸업생의 소득은 평균 소득보다 더 빨리 증가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대다수 졸업생도 경제에서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 집단에 포함된다. 결국 불평등 심화의 원인은 세계화와 새로운 테크놀로지 덕분에 고도로 숙련된 노동자들의 보상이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중 극히 일부에게 보상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불평등 심화의 주된 원인은 최상층계급의 변화에 있다. 하위 99퍼센트와 비교했을 때에나 GDP의 비율에서 상위 1퍼센트에게 주어진 보상이 크게 증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미 몇몇 대답은 타당하지 않다는 게 앞에서 입증되었다. 세계 경제 요인이나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원인은 아니다. 한계 생산성 이론을 동원한 설명도 잘못된 것이거나 유의어 반복에 불과하다. 이 질문의 대답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상위 1퍼센트가 더 많이 갖겠다고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단순하고, 적어도 초기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더 많이 가지라고 권했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권유는 상식에 어긋난다. 하지만 그 기원이 경제 이론에 있다고 말하면 고개가 끄덕여질지도 모르겠다. 경제학 교과서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윤의 극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윤은 전통적으로 주주에게 분배되어야 하지만, 최고 경영자를 비롯해 결정을 내리는 고위 간부들은 자신의 연봉이나 위상을 높이는 데 주력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라는 교과서적 이상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최적 계약(optimal contract)’을 제안했다. 고위 간부에게 상대적으로 수수한 기본 연봉을 보장하고, 이익 여하에 따라 상당한 보너스를 받을 기회를 더불어 제공하라는 것이었다(물론 주가를 끌어올려 투자 요인을 높이는 성과를 거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성과급 계약을 맺으면 최고 경영자와 고위 간부들은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고, 기업은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므로 경제 전체에도 유익하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주장이었다. 1990년 성과급 제도의 효율성을 누구보다 극찬하던 두 경제학자, 마이클 젠슨(Michael Jensen, 1939~)과 케빈 머피(Kevin Murphy, 1956~)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글에서 "최고 경영자에 대한 현재 수준의 보상이 가장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을 기업 경영에 끌어들이기에 충분한가? 우리 대답은 ‘아닌 것 같다’이다"라고 썼다.


    젠슨과 머피의 글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다른 경제학자들도 그랬지만 그들도 기업의 탐욕을 가리는 데 일조한 셈이다. 1990년 이후로 15년 동안 미국 500대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받은 총보수는 평균 3배를 상회했다(인플레이션을 반영한 후). 2004년 젠슨과 머피는 최고 경영자가 더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던 과거의 의견에 대해 논평하며, “지금이라면 젠슨과 머피가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과거의 주장을 철회했다.


    물론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지만, 최고 경영자에게 높은 보수를 주어야 한다는 논증의 결함은 너무도 명백한 듯하다. 첫째, 이익의 증가가 전적으로 최고 경영자와 고위 경영진 때문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둘째, 이익이 증가하면 경제 구성원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더 낫다고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성과급 계약에 내재한 문제에 비교하면, 앞에서 말한 두 개의 가정은 무시해도 상관없을 정도이다. 성과급 계약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 경영자와 고위 경영진에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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