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럽터
 
지은이 : 데이비드 로완(역:김문주)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20년 02월




  • 이 책은 실리콘밸리가 아닌 곳에서 펼쳐지는, 전 세계 파괴적 혁신의 미래를 샅샅이 훑어 보여준다. 브롤스타즈, 클래시오브크랜 등으로 유명한 세계 최대 모바일 게임사 슈퍼셀은 극단적인 자율성과 투명성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가? 핀란드의 전통적 금융기업 OP가 디지털 리포지셔닝에 성공한 비결은 무엇인가? 요우러, HTC, 콴타스 항공 등은 기존 사업을 어떻게 데이터 주도 사업으로 변신시켰는가? 남아프리카의 100년 된 신문사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술투자 기업이 되었을까? 


    디스럽터 : 시장의 교란자들


    좋은 질문을 던지고 적절한 사람끼리 이어준다면

    ‘극단적 자율성’의 모범답안 슈퍼셀

    일카, 그러니까 일카 파나넨이 다우어의 사장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직원이 사업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협의하지 않는 것은 일카가 딱 원하는 바다. 유럽에서 성공한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로 가장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게임 회사 슈퍼셀의 CEO이자 공동 창립자인 파나넨은 직원 280명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설사 그 일이 수익을 올릴 잠재력이 있는 게임을 출시 직전에 그만두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힘없는 CEO가 되길 열망합니다. 게임 개발팀과 셀 cell, 사람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게 중요하죠. 내 임무는 최고로 가능성 있는 사람을 고용해 그들이 어떻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환경을 조성하는 겁니다. 그 시점부터 나는 옆으로 빠져 있어야 하지요."


    이 전략은 투자자들이 꿈꾸는 것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2016년 당시 6년 차인 이 회사가 시장에 겨우 네 종류의 게임을 내놓았을 때 중국기업 텐센트는 102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은 이 기업의 대주주가 되기 위해 86억 달러를 썼다. 그해 슈퍼셀의 무료 게임은 주로 게임 내 구매로 매출액 23억 달러와 이익 10억 달러를 기록했다. 매일 1억 명 이상이 이들 네 게임, 즉 클래시 오브 클랜스 Clash of Clans, 붐 비치 Boom Beach, 헤이 데이 Hay Day, 클래시 로얄 Clash Royale과 2018년 출시한 브롤 스타즈 Brawl Stars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보통 8~9차례 접속해 평균 6분간 머문다. 파나넨은 이 성공을 회사가 작은 팀 또는 셀에 부여한 극단적 자율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셀이 한데 묶여 회사 이름처럼 슈퍼-셀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파나넨이 예전에 근무하던 게임 회사에서 큰 좌절을 안겨준 전통 위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결과다.


    물론 셀은 자신들의 결정을 정당화해야 한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 총회의를 여는데 어떤 주에는 중대한 결정을 두고 축배를 들기 위해 샴페인 몇 병을 따기도 한다. 스매시 랜드 같은 게임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축배다. (교훈이라고 명명한) 샴페인 병에는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 쓰도록 빈 라벨이 붙어 있다. 다우어는 축배 대상이 실패 자체가 아닌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슈퍼셀의 5년 차 게임기획자인 다우어가 말을 이었다.


    "실패는 짜증나죠. 회의에서 발표할 때 바들바들 떨면서 불안해하기도 했습니다. 샴페인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울기 직전이었고요. 나는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나타낸 그래프를 보여줬어요. 그리고 건배사로 내가 배운 교훈을 읊자 동료들이 큰 박수를 보냈지요. 한 회사가 이런 식으로 일하는 데 필요한 신뢰 수준은 어마어마합니다."


    내가 다우어에게 슈퍼셀이 직면한 주요 위협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조용히 대답했다.


    “진지함이에요. 우리의 몸집이 커질수록 진지함이 우리를 좀 더 전통 스타일로 끌어갈 위험이 높아집니다. 가장 큰 위협은 우리가 도전과 자신에게 의문을 보이는 자세를 버리는 것입니다. 대세를 따르면서 여러 프로세스를 고정시키는 것이 훨씬 더 쉽거든요.”



    관점만 바꿔도 기회의 문이 열린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휴먼리즘으로 되는 것

    서비스 분야로 진출하면서 이득을 얻는 것은 비단 수십억 유로를 보유한 은행뿐이 아니다. 메이페어라는 런던 고급 동네의 커즌 Curzon 거리에서 1936년 8월부터 영업해온 아늑하고 복작복작한 헤이우드 힐 Heywood Hill 서점은 어려운 시기를 헤치고 성공하기 위해 즐거운 역발상을 했다.


    48세의 던은 헤이우드 힐을 문학적인 문화 속의 동갈방어(상어 곁에서 기생하며 상어를 먹이가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는 어종-옮긴이)로 보았다. 상어 주변을 헤엄치지만 할인서점이나 저명한 고서점과 경쟁하기에는 너무 작다는 의미였다. 그 순간 그는 깨달음을 얻었다. 책을 파는 데 헤이우드 힐의 전문지식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면 책을 추천하는 전문지식을 재구성해보는 건 어떨까? 안목 있는 고객들을 위한 주문 맞춤형 서재를 구성해주고 개개인에게 맞는 도서 추천 기능 등을 활성화하면서 도서판매업을 큐레이션 서비스로 바꾸는 건 어떨까? 던이 점잖게 설명했다.


    "고객이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려고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취향을 이야기해주면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골라주는 겁니다. 개인 맞춤형 도서구독 서비스죠. 우리는 이것이 알고리즘이 아니라 휴먼리즘으로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헤이우드 힐의 구독서비스 ‘책과의 1년 A Year In Books’이 탄생했다. 950파운드(약 140만 원)를 내고 앵글로파일 Anglophile(영국 애호가라는 의미-옮긴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1년 동안 고객의 독서 취향에 맞춰 선정한 영국 책들을 우아한 상자에 담아 4번 배달해준다. 개인적으로 선정한 하드커버 책을 더 좋아한다면 390파운드(약 60만 원)에 도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그 후 아티스트 크레시다 벨의 그림으로 만든 책갈피와 함께 선물처럼 포장한 12권의 책을 배달받는다. 서점 아래층에서는 5명의 책 담당 직원이 상근직으로 근무하며 구독 서비스 업무를 맡고 있다. 각 직원은 매년 100~200권에 이르는 책을 읽고 매달 열리는 회의에서 특정 구독자의 독서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책을 선별한다. 던은 구독자 수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고 "1,000명 대 초중반 구독자가 평균 265파운드(약 38만 원)를 선지급한다. 자금 운용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라고만 말했다. 이 기업이 공개한 연차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책과의 1년 구독 서비스 선입금은 2017년 35만 763파운드(약 5억 1,300만 원)였고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던의 기업가적 에너지는 소매업을 서비스로 재정의하는 것이 변화 규모가 작지만 효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헤이우드 힐은 여전히 규모가 작지만 전과 다른 새로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던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은 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나는 강령까지 써놨어요. 뭐냐면 우리는 새 책이든 옛 책이든 좋은 책을 전 세계 독자와 수집가에게 혁신적인 방식으로 판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창의적인 에너지를 이 공간으로 끌어들이고 있어요."



    세상의 모든 ‘진입 장벽’은 사라졌다

    경계도, 한계도 사라진 세상

    아스널에는 역사적으로 축구계에 혁신을 불러왔다는 명성이 따라다닌다. 1925년부터 1934년까지 매니저를 맡은 허버트 채프먼은 저녁 경기가 가능하도록 투광조명등을 설치했고 그 지역 지하철역 이름을 아스널로 바꾸도록 로비해 초기 스포츠 브랜드 구축의 모범사례로 남았다. 그런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영광일 뿐이고 이제 슬로먼은 새로운 성과를 원했다. 그의 과제는 엘 마크스 L Marks 라는 컨설팅 회사와 협력해 경기 관람 경험을 개선하거나 판매율을 높이는 문제를 해결할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최종 후보에 오른 22개 스타트업이 스타디움에 모여 아스널 CEO를 비롯한 임원들 앞에서 자사를 홍보했다. 여기서 선정된 6개 기업 중에는 AI 챗봇과 모바일 결제 회사, 증강 현실 기업도 있었다.


    나는 제3의 웹사이트에서 클릭만으로 구매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아이라이크댄 I Like Than이나 스타디움 좌석까지 음식을 배달해주는 워라페이 WoraPay 같은 스타트업이 어떻게 이 회사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단순히 PR을 하거나 임원진에게 거짓으로 자신들의 계획이 미래를 구축해간다고 안도하게 하는 혁신 연극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슬로먼은 경제적으로는 아스널에 주목할 만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사고방식이라면 어떨까요? 당연히 영향이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문화는 우리에게 일을 다르게, 빨리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으면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우고 협업을 촉진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런던의 기술 업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해주었죠. 우리는 그 10주간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문제를 해결했고 직원들은 이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에어버스부터 얀덱스 Yandex까지 스타트업이 모기업을 바꿔놓길 바라면서 자금 혹은 일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인큐베이터나 액셀러레이터를 개시하는 것이 기업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이들의 접근 방식은 다양하다. 파운더스 포럼 Founders Forum에서 주최하는 일련의 기업가 행사에서 비롯된 런던의 파운더스 팩토리 Founders Factory는 1년에 새로운 스타트업 13개를 탄생시키기는 한편, 로레알이나 이지젯 같은 고객을 위해 기존 스타트업 35곳에 투자한다. 테크스타스 TechStars, 플러그 앤 플레이 Plug and Play, 그 밖에 다른 전문회사들은 기업과 함께 내부 인큐베이터(작업 공간, 멘토링 등 스타트업 서비스 제안)나 액셀러레이터(3~6개월 동안 구체적인 프로그램 제공)를 구축한다. 기업의 목표는 보통 R&D 외부 위탁, 트렌드 학습과 투자, 인재 영입, 나아가 실질적으로는 자신들이 혁신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데 있다. 다임러, 디즈니, 테크노짐, 타깃 모두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델을 사용하는 기업, IAC · 틴더의 경험과 동등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사업모델을 급진적으로 바꾼 사례를 찾고 있다. 기업이 혁신 연극을 따라 하는 일은 굉장히 자주 발생한다. 이것은 사실 스테이터스 쿠오 Status Quo(현상 유지-옮긴이)는 내버려둔 채 미래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기업의 희망사항을 과시하는 셈이다.



    전 세계에서 유니콘 스타트업이 가장 많은 나라

    정부의 모든 기능을 디지털로 바꾼 ‘호랑이의 도약’

    현대 에스토니아의 국정운영 기술을 결정지은 것은 1944년부터 이어진 소련의 탄압 지배였다. 1991년 마침내 독립한 이 나라는 미래의 어떠한 러시아 침공에서도 신생국가를 지켜내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소련 지배로 경제가 낙후된 에스토니아의 새 정부는 국가 재건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했다. 1990년대 정부 기술자문관으로 현재 에스토니아 전자정부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디렉터로 근무하는 리나르 비크가 회상했다.

    "우리에겐 3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공공 서비스의 일부를 중단한다. 형편없는 공공 서비스를 계속 제공한다. 공공 서비스 제공 방식을 급진적으로 재설계한다는 게 그것이죠. 우리는 전통에 도전했고 공공행정을 재고하는 데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에스토니아는 2000년 세무신고서를 디지털화했고 2005년에는 온라인 투표를, 2008년에는 모든 환자에게 전자 의료기록을 실시했다. 오늘날 국민이 실제로 참석해야 하는 유일한 정부 관련 서비스는 결혼과 이혼, 부동산 거래뿐이다. 원칙적으로 국민은 자신의 모든 정보를 소유하며 출입국사무소와 의사, 다른 정부 공무원이 그 정보에 접근할 때마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는다. 또 거주지에서 접속이 가능하도록 무료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설치했고 정부 데이터를 위해 세계 최초로 데이터 대사관도 설립했다. 데이터 대사관은 에스토니아의 사법권 아래 강력한 보호를 받는 백업서버로 문자 그대로 에스토니아는 클라우드 국가다.


    전자시민권은 디지털 우선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와이어드>의 부편집장 벤 해머슬리는 2015년 초창기 전자시민 중 1명으로 에스토니아를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디지털 사회라고 평가했다. 이는 다른 국가들이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비크의 사무실로 계속 사절단을 파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크는 자신이 "전 세계 정부와 15년 동안 일해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민족국가를 플랫폼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우리가 내려야 할 유일한 결정은 그 플랫폼이 안드로이드 혹은 iOS처럼 어디에 생길 것이냐 하는 문제일 겁니다."


    이는 앱스토어가 어디서든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민족국가 그 자체가 급진적인 변혁의 주체일 것이라는 생각이 맞을까?


    사실 고정된 국경으로 규정한 국가 개념은 디지털시대에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물론 세계는 여전히 1648년 맺은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움직인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영토국가의 주권에 관한 원칙을 수립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권 합의로 더 강화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그 원칙을 바꿔 나가고 있다. 무제한에 가까운 초국가적 자본 흐름, 탈중앙화한 정보 네트워크, P2P 전자화폐 등이 가능한 오늘날 이 구닥다리 체계가 여전히 의미 있게 존속할 수 있을까? 전통 정부는 ‘탈민족주의’ 성향의 이슬람 전투부대가 전쟁을 벌이고, 조 단위로 매출을 올리는 초국가적 기술 기업이 어디서 어떻게 세금을 낼지 결정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한편 국가 정치권력은 약화한 국제기구, 터키와 베네수엘라 등 권위주의 국가의 몰락, 대규모 난민 이주 그리고 그 정의의 기준이 인종이든 지역 문화든 다시 고개를 드는 부족주의로 훼손되고 있다. 어쩌면 에스토니아인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리 날리던 시골 소매점이 어떻게 전 세계 전자상거래 허브가 되었을까

    빅데이터 수집기가 된 우편집배원

    중국 농촌마을 시아바오에서 21년간 잡화점을 운영해온 로우 원얼은 지독히 열심히 산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주일 내내 일하던 그녀는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 때문에 매출이 떨어지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 45세의 로우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말했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는 장사가 잘됐지만 2014년 무렵부터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쇼핑하는 법을 배우면서 달라졌어요. 그러더니 스마트폰이 들어왔죠. 우리 가게에는 노인들만 왔고 우리가 바뀌지 않으면 가게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요.“


    그러던 중 2015년 7월 지역 우편집배원이 로우의 소박한 가게를 데이터에 기반해 실시간 반응하는 전 세계 전자상거래의 허브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우편집배원의 도움을 받아 그녀는 전자 판매시점 POS 관리용 레이저 스캐너와 영수증 출력기, 디지털 저울을 아수스 노트북에 연결했다. 이제 고객이 펀키드 Funkid 포도주스나 헤이즐리브 Hazelive 비누를 사고 돈을 낼 때마다 그 구매 이력이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즉각 기록된다. 이 정보는 상점 주인과 특정 고객 모두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고객의 멤버십 카드에 로열티 점수가 쌓이면 이를 블루베리주스나 청주로 교환할 수 있다.


    로우의 42인치 벽걸이 TV가 가게에 참여하고 있는 위챗 그룹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 사람 10명이 공동구매하면 가능한 특별가격 운동화, 다음 날 아침 우편집배원이 가게로 배달해주는 라텍스 베개와 유기농 오리알 가격 같은 것이었다. 위챗은 그녀가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음을 고객에게 알리도록 도와준다. 더운 날에는 심지어 동네에서 주문해도 배달을 해준다.


    가게 차양에는 중국우정 中國郵政 로고가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웹사이트 주소 ule.com이 붉은색 로고와 함께 적혀 있었다. 이는 사업 전망을 바꿔놓기 위해 농촌마을 가게를 끌어들인 중국우정의 야심찬 판매실험이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서였다. 요우러 Ule는 중국의 지방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중국우정이 세워 급성장 중인 전국 전자상거래 네트워크다. 우체국 서비스는 로우 원얼의 잡화점 같은 수만 개의 동네 가게를 전국적인 판매-배달 네트워크로 바꿔놓았고 이것은 1만여 명의 우체국 직원이 연결했다. 여기에다 새로운 디지털 조회 시스템을 사용하는 각 상점은 언제든 전국에서 고객이 무엇을 사는지 알 수 있다. 중국 우정은 중국식으로 쇼핑객의 욕망과 욕구를 전례 없이 자세히 알아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고객구매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나아가 이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실시간 판매 데이터베이스를 구성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빅데이터의 기하급수적 성장 이야기를 들어왔다. 이제 대규모 전통 사업은 데이터 과학을 활용하는 점점 더 창의적인 방식을 찾아내고 있다. 예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데이터를 채굴해 새로운 수익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데이터 흐름은 로우 원얼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녀의 가게에는 우편집배원이 이웃 지역에서 그녀의 고객을 위해 오늘 가져온 참마 두 상자가 반쯤 열린 채 놓여 있었다. 그 곁에는 한 동네 농부가 가게에 가져다놓은 커다란 차 상자가 있었다. 로우의 가게 웹사이트에서 팔린 이 제품은 참마를 가져온 우편집배원이 수거해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배달할 예정이었다. 로우는 이 과정을 가상 상품별 재고관리단위 SKU라고 불렀는데 그 덕에 고객은 가게에 실제로 진열한 것보다 몇천 종류나 더 많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다. 주문한 다음 날이면 면 티셔츠, 청바지, 육포, 화분, 반창고, 젓가락, 용과, 양말, 식용유, 현관매트 등 온갖 물건을 중국우정 소속 우편집배원이 확실하게 배달해주었다.


    로우는 웹사이트에서 1달 만에 1,000여 명이 사는 마을에 800켤레의 신발을 팔았다고 밝혔다. 요우러 모바일 앱은 그녀의 웹사이트에서 발생한 주문량과 매출, 수익을 정확히 알려준다. 또한 요우러의 POS 단말기는 고객이 가게에서 공과금을 지불하고 우체국 은행계좌를 관리하게 해주는데 이것 역시 로우에게 수익을 안겨준다. 이제 그녀의 매출은 4분의 1이 온라인에서 발생하며 동네 농부가 생산한 것을 동네 밖에서 판매하는 거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제품 종류가 너무 많아져 근처에 보관 창고를 빌려야 할 정도다.


    이처럼 중국 전역 상점에서 거의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데이터 덕에 닐슨 Nielsen이나 던험비 dunnhumby 같은 서구의 소비자분석 기업이 늘 꿈만 꿔오던 세상이 열렸다. 요우러는 수백만 건의 일일구매 내역을 기록하고 이를 회원카드나 휴대전화 결제로 개별 고객과 연결함으로써 중국 소비자가 바로 지금 무엇을 사고 있는지 유례없는 조감도를 그려가고 있다.



    개를 산책시키면 티켓을 주는 항공사

    호주 전체 인구의 절반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콴타스 로열티’

    콴타스 로열티 벤처스 Qantas Loyalty Ventures로 불리는 브라이언 펀스턴의 부서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항공사의 경제 현실에 도전하는 것을 검토 과제로 삼고 사업상 가치가 있는 부분을 근본적으로 재해석한다. 만약 콴타스가 계산했듯 매년 5,100만 명의 승객이 비싼 항공기 312대를 타고 비행하는 것에서 돈을 버는 일이 너무 치열하고 어렵다면 자사 고유의 뛰어난 경쟁우위를 중심으로 미래 성장을 기획해보는 건 어떨까? 놀랍도록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회사의 내부 부서를 기반으로 항공사의 미래가치를 밑바탕부터 재구성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나온 것이 항공사의 로열티 프로그램이다.


    콴타스 로열티는 풍부한 데이터와 정서적 매력을 갖춘 마진 높은 우수고객 프로그램으로 현재 호주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1,24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회원들은 2017년 1,200억 점 이상 포인트를 적립했고 이것을 비행좌석 500만 개로 교환했다. 그렇지만 비행은 이 프로그램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고객은 여행 외에도 다양한 일상 활동으로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옷을 드라이클리닝하거나 카페라테를 주문하거나 아기 놀이방에 가구를 채우는 일이 있다. 그 후 골프, 보험가입 등 비행과 상관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로 포인트를 태워 없앨 수 있다.


    이 점은 콴타스 로열티를 전체 사업 가운데 매우 수익성 높은 부문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2018년에 이 프로그램은 기본 세전이익으로 3억 7,200만 호주달러를 벌어들였고 24.1%라는 놀라운 이익률을 보였다. 이는 항공사의 국제사업 전체 수입에 가까운 액수다. 사실 국제사업으로 3억 9,900만 호주달러를 벌었으나 이익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로열티 부문이 브랜드 충성고객을 위해 새로운 비 非항공 제품라인을 계속 출시하면서 2020년 콴타스의 수익에 가장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당시 콴타스의 국제 · 화물 부문 CEO 가렛 에반스는 런던에서 열린 항공 페스티벌 Aviation Festival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밖에 나가 다른 산업들을 파괴하지 않나요?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강력한 브랜드와 고객 기반은 성장으로 통하는 길입니다."



    대화하는 냄비와 블록체인 전화기

    냄비나 프라이팬도 혁신할 수 있을까?

    나파 밸리 포도밭 동편의 완만한 언덕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6명의 미슐랭 스타 셰프가 미래의 가정식 요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이들은 45명의 직원을 둔 푸드 스타트업 헤스탄 스마트 쿠킹 HSC, Hestan Smart Cooking을 위해 작업 중이다. HSC의 미션은 누구나 집에서 단 몇 분 만에 미슐랭급 요리를 준비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아이패드 앱을 이용해 그 조리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앱은 순서에 따라 블루투스로 연결된 냄비에 정확히 지시를 내린다. 철판 내부에 열 센서가 있는 이 냄비는 근처에 있는 핫플레이트에서 전기유도를 사용해 요리에 필요한 정확한 온도로 요리해준다. 이 과정을 가이드 쿠킹 Guided Cook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손길이 닿는 곳은 어디든 모두 뒤흔든다는 인터넷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추가적인 증거다. 심지어 냄비와 프라이팬이라는 아날로그 세계조차 예외는 아니다. 알루미늄 냄비를 만들던 회사가 갑자기 인터넷시대의 새로운 사업모델을 갖춘 기술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빈센트 쳉은 그 기회를 재빨리 감지했다. 홍콩에 기반을 둔 쳉은 가족 소유의 요리기구 회사 메이어 인더스트리 유한회사 Meyer Industries Limited에서 근무하던 2015년, 디지털 기기가 부엌을 장악하면서 자사가 만들던 아날로그 도구인 냄비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음을 확신했다. 그는 자동차와 온도조절장치, 자물쇠가 인터넷 연결성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부엌 식기도 그렇게 되리라고 판단했다. 그는 냄비가 얼마나 스마트하게 작동할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속한 업계가 이를 알아보려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에 좌절했다. 쳉이 말했다.


    "조리기구 산업에서 혁신이란 매년 새로운 색상을 출시하거나 아니면 10년마다 새로운 제작 과정을 거치는 것 정도입니다."


    언제나 탁월한 사용자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매끄럽게 통합하는 기업을 선망해온 36세의 그는 아버지 스탠리에게 자금을 전액 지원해주는 사내 스타트업을 설립해 전통 요리 산업을 뒤흔들자고 제안했다. 스탠리는 메이어를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결국 HSC는 조리기구와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아마존의 옛 엔지니어와 미슐랭 스타 셰프를 채용해 소위 가이드 쿠킹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이드 쿠킹 시스템은 센서 부착형 조리기기와 열원, 조리법으로 빼곡히 채운 요리 앱 간의 조합이다. 메이어는 얼마든지 실험해보도록 모든 것을 직원에게 맡겨두었다.


    진정한 혁신 조직이라면 적어도 떠오르는 기술을 숙지하고 사업모델과 고객 혜택, 전략을 개선하기 위해 그 가능성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성공은 누구도 보장하지 못하며 대개는 투자 시점이 너무 이르거나 늦기 십상이다. 전화기 제조업자인 당신이 네트워크화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블록체인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파악하는 데 실패했든, 산업 제조업자인 당신이 자율주행차량이 글로벌 유통 경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무시했든, 잔인하게 짓밟힐 위험성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센서로 작동하는 사물인터넷을 도외시한 냄비 회사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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