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의 늑대
 
지은이 : 김영록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19년 12월




  • 바야흐로 공장도, 유통도, 자본도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 더 이상 고정된 계획도, 통용된 규칙도 먹히지 않는다. 이 파괴적인 틈새를 뚫고 들어온 이들이 바로 ‘변종의 늑대’다. 변종의 늑대라 불리는 젊은 스타트업들은 기술과 감성 중심으로 재편된 지금의 비즈니스 생태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자본이 없다는 것을 ‘야생성’으로 돌파함으로써 기존 시장을 파괴해나간다.



    앞으로 실현될 기술들은 이미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으며, 변종의 늑대들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방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이 책은 변종의 늑대, 아니 당신이 가진 특별함을 발견하는 안목을 기르는 일부터 시작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주류가 되고 세상을 지배하는지 또한 그 최전선에 있는 변종의 늑대들이 어떻게 역동적으로 이를 준비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변종의 늑대


    일자리 천국을 만들어내다

    대기업의 새로운 엔진, 스타트업의 힘_‘작은 회사’가 ‘약한 회사’라는 인식은 시대착오적이다

    두려워하느니,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M&A 전략

    지난 2017년 현대경제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업의 인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약 400개의 상장기업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는가? 물었는데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지난 수년간 우리 경영 및 산업계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화두가 끊임없이 나왔음에도 준비하고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 기업 중 70%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대답했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는 기업은 2.2%에 불과했다. 미래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반면 이런 상황에서도 스타트업은 놀라운 기세로 빠르게 성장하며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M&A다. 국내의 경우만 보더라도 인공지능과 관련해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M&A를 맺은 사례가 2012년 11건이었는데, 2017년에는 1·2분기에만 무려 60건이 이루어졌다. 로봇 관련 기술 M&A는 2015년에 15개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쟁력 갖추기 위한 스타트업 기술력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벤처 캐피털을 만들어 지분 확보에 열심이다. 국내의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매출 기준 500대 기업이 지난 5년간 투자한 총 금액은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매년 급격하게 투자가 불어났다는 뜻이다. 2014년에는 171억 원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4,580억 원으로 늘어났다. 국내 시장에서 가장 큰 손이라 불리는 삼성전자가 2019년 상반기 중에 M&A 한 곳은 ‘코어포토닉스’와 ‘푸디언트’ 2곳이었다. 코어포토닉스는 이스라엘에 설립된 8년차 스마트폰 카메라 솔루션 업체이고 푸디언트도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 설립된 인공지능 식품 기술 스타트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대규모 M&A였던 하만 인수 건을 마무리 지은 이후 사업 외적 환경으로 인해 다소 M&A에 소극적으로 나섰다가, 지금은 다시 공세모드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과거 막 창업한 기업들은 인적자원이나 기술력이 부족하고 자금력도 약하다고 평가받았다. 스스로도, 외부의 평가도 그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였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흔했다. 하지만 지금의 스타트업은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시키고 있다. 지금의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괴적인 기술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통해 대기업에 미래 서바이벌의 혁신적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아직도 스타트업을 언제 망할지 모르는 작은 회사라고만 치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급진적인 아이디어로 저만치 달려 나가 대기업에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것. 이것이 스타트업이 가진 진정한 힘이다.


    룰이 없는 늑대들, ‘야생성’을 불어넣다_스타트업의 파괴적인 목표들

    더 이상 ‘계획’과 ‘예측’이 통하지 않는다

    과거 대기업이 경영하던 방식을 살펴보면 계획과 예측이 가능했다. 제품을 기획하고, 생산을 계획하고, 판매를 예측한 다음 최대한 근사치에 맞추는 것이 경영의 뼈대였다.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불합리한 일 처리 방식이나 문화가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사결정이 늦어도, 변화하기 힘들어도, 상명하복 문화가 비인간적이더라도 계획과 예측을 기반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면, 기업은 얼마든지 버티고 유지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제 그런 계획과 예측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우, 한 해 계획을 세우면 향후 2~3년 동안은 그 계획의 기조에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해 판매량 데이터만 있으면 책상에 앉아서도 올해나 내년 판매량을 어림잡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이런 안정적인 판 자체가 사라졌다. 산산조각 났다. 지난해 데이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거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작은 기업들이 순식간에 대기업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와 자리를 위협한다. 그중 어떤 기업은 아예 판을 뒤엎는다.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는 어퍼컷을 맞고 전세가 역전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동시다발적 붕괴와 창고’락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영전략가들은 이를 ‘빅뱅 파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급격한 기업 환경의 변화는 국내에도 일어나고 있다. LG경영연구소가 5년 단위로 11개 업종에서 상위 15개 회사들의 순위를 비교분석한 결과,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기업 순위가 바뀐 것은 16% 정도였다. 그런데 2009년부터 2014년까지는 22%의 기업이 순위가 뒤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영 환경은 더 급속도로 변할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책상 앞에 앉아 편안하게 계획과 예측하며 경영하는 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방식은 먹히지 않는다. 이 지표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토종 늑대들이 뛴다

    스타트업 카르텔의 주인공들_달라진 스타트업 생태계 이해

    첫 번째 역: 코워킹 스페이스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키우는 일이 하나의 긴 여정이나 여행이라고 한다면, 그 길목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코워킹 스페이스’다. 자, 당신이 여행을 떠났다고 가정해보자. 최소 비용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 호텔이나 리조트, 거창한 숙소는 잡을 수 없다. 그럴 때 가성비 좋은 숙소로 어디를 고를까? 아마 게스트하우스 정도가 될 것이다. 비용이 다른 숙소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지만, 그밖에도 장소가 주는 여러 매력이 있다.


    이 코워킹 스페이스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요 구성 요소이자, 제일 첫 단계로 자리 잡은 까닭은 사실 사회의 여러 변화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닷컴 버블이 터지고 난 이후 웹 2.0이란 개념이 뜨기 시작했고, 다양한 웹 기반의 협업 도구들을 거의 공짜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곧 사람들이 꼭 한 곳에 머물러 일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트북이 있고 인터넷만 터진다면 어디에서든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도록 변했기 때문이다. 메신저는 물론이요, 드롭박스처럼 실시간으로 파일을 주고받으며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플랫폼까지 갖추어졌으니 동료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건 더 이상 제약이 아니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 노마드(한 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족이 급증했다. 하지만 동료들과는 떨어져 있어도 혼자서 일할 최소한의 공간은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코워킹 스페이스다.


    두 번째 역: 인큐베이터

    코워킹 스페이스가 독립적인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공간이라면, 인큐베이터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인큐베이터는 코워킹 스페이스처럼 오피스 공간을 제공하지만 멘토링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바로 이것이 코워킹 스페이스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다양한 액셀러레이터를 연결해주고, 적합한 멘토링 회사를 짝지어주면서 그들이 실무적으로 좀 더 성장할 수 있게 돕는다. 또 자체적으로 여러 행사를 기획하기 때문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서로가 하는 일을 소개하고 소개받는 ‘네트워킹 행사’도 이런 개념이다.


    인큐베이터에 입주한 창업자들은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일할 때보다 조금 더 강한 연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디캠프’, ‘드림플러스’, ‘구글캠퍼스’처럼 한 기관이 운영하는 곳에 있다 보면 주체가 같은 프로그램을 듣기 마련이고, 또 관련 업계의 전문적인 멘토링을 함께 듣기 때문에 동질감을 쉽게 느낀다.


    세 번째 역: 액셀러레이터

    업무 공간 대여 문제도 해결하고, 관련 업계 사람들과 인맥도 쌓다 보면 이제 자기 사업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인큐베이터를 지나 세 번째로 만나게 되는 것이 ‘액셀러레이터’인데, 이곳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맡는다. 인큐베이터가 신생아의 호흡을 유지시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초기 동반자라면, 액셀러레이터는 스타트업이 제대로 성장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훈련장같은 곳이다.


    인큐베이터가 법인 설립이나 세무적인 부분을 조언해준다면, 액셀러레이터는 비즈니스 모델과 같은 좀 더 사업에 필요한 전문적인 멘토링을 해준다. 인큐베이터는 공간이나 설비, 업무 보조 등 하드웨어 중심의 지원에 무게중심을 둔다면, 액셀러레이터는 창업의 지식과 경험,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알려주는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지원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네 번째 역: 벤처 캐피털

    사업을 정교하게 다듬었다면, 이제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적절한 자금이 필요하다. 여기까지 제대로 커왔다면, 이제 4번째 단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줄여서 VC)이다. 벤처 캐피털은 쉽게 말해 금융자본이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나 회사가 잠재력이 있는 벤처 기업에 자금을 대고 경영과 기술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금을 대는 이유는 하나다. 더 높은 자본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업성이나 기업 가치를 평가하고, 거기에 합당한 규모의 자본금을 댄다. 보통 벤처 캐피털이 자금을 대는 스타트업은 기술력이 뛰어나지만, 경영이나 영업 노하우 등이 없는 초창기 기업인 경우가 많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차에 액셀러레이터를 통해서 시드머니, 즉 초기자금 1,000만 원~1억 원 정도를 투자받았다면 2~3년쯤 뒤에 VC를 만나게 된다. 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 크고, 매출이 발생하게 됐을 때 VC가 기업에 투자하게 되는데, 적게는 10억부터 시작해서 많게는 수백 억, 수천 억, 더 나아가 조 단위에 이른다. 이 투자 규모에 따라 시리즈 A, B, C, D, 그 이상으로 구분한다. 쿠팡은 글로벌 큰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20억 달러, 한화로 따지면 약 2조 2,500억이 넘는 돈을 투자받았는데, 알파벳 순서에 따른 투자 차수로 명명한다면 시리즈 H에 해당한다. 스타트업이 활성화되고, 투자액도 상당수 유치되면서 VC업체도 많이 늘어난 추세다. 그에 따라 기업 단계별로 주력 투자사들도 생겨났고, 투자 성격도 조금씩 다르다. 최근에는 명문 VC 로드맵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각 단계마다 투자 성격과 어떤 투자사를 만나면 좋을지 알아두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며 기업에 맞는 훌륭한 VC를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성장 단계별 특징과 주요 투자사가 어떤 곳이 있는지 살펴보자.


    변종의 늑대가 보여주는 성공법칙 ‘운둔근’_우둔함과 끈기, 그리고 운이 하나가 된다는 것

    ‘운둔근(運鈍根)’


    삼성그룹 창립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좌우명이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운이 따라야 하고, 고의적으로 주변에 신경을 끄는 등 다소 우둔해야 하며, 근면 성실하게 일에 매달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업가정신이나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운둔근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말은 나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실제 삶에서 이 말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운둔근은 한국인 특유의 기질인 은근과 끈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스타트업 강국이라고 불리는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높게 사는 가치인 시수와도 매우 비슷하다. 시수는 투지, 끈기, 용기와 회복력이라는 의미인데, 핀란드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주도적인 가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점으로 작용할까. 지금부터 이 역량을 잘 활용해 성공한 국내 스타트업 3곳을 소개해볼까 한다. 이 기업들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만큼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거나 해외 진출의 발판을 확실히 마련한 기업, 국내 여러 기업이나 공공기관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기업임에는 틀림없다. 최소 100억 원의 투자를 받은 이력이 이를 증명해준다. 이 정도면 초기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도 벤치마킹을 하기에 용이할 것이다. 기업가정신 다음으로 목표지점까지 닿는 데 가장 필요한 역량, 운둔근. 그것이 당신과 기업을 어떻게 이끄는지 다른 CEO들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자.


    고시 포기한 법대생의 눈물 나는 분투기

    두 번째 기업은 모바일 식권 서비스 ‘식권대장’을 운영하는 (주)벤디스(대표 조정호)이다. 이 기업은 현재 300여 개 국내 기업과 거래하고 있으며, 주요 고객사로는 아시아나항공, 애경산업, 에어부산, 한국공항, 현대오일뱅크 등이 있다. 이 기업도 사실 따지고 보면 운둔근의 성공법칙이 제대로 구현된 스타트업이다. 대표가 시장을 보는 눈도 탁월했지만, 이 플랫폼을 구현해서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모바일 기술이 발달하고, 수요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대를 잘 타고나서 이 기회를 정확히 잡아낸 것도 큰 몫을 했지만, 사실 이 회사의 운둔근 법칙은 따로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시를 포기한 한 법대생의 눈물 나는 분투기’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당시 법대를 다니고 있던 조정호 대표는 부모님과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고 고시 한 달을 앞둔 시점에 시험을 포기,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소규모 점포의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모바일 상품권 서비스로 전환해 운영해봤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 두 번의 시도가 실패하면서 그에게 남은 것은 5,000만 원이란 빚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빚이 자신의 인생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정호 대표의 둔(鈍)과, 근(根)의 역량이 동시에 발휘되었다. 5,000만 원의 빚에 둔감해하면서 동시에 이깟 빚이 별거야?라고 생각하는 배짱.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다가 별다른 성과 없이 3번째 사업에 연이어 도전한 끈기도 사업가로서 높게 평가받을 역량이다.

    특히 거의 비슷한 시장에서 점점 더 자신을 진화시켜나간 것이 그가 가진 근(根)의 힘이기도 하다. 사실 비슷한 시장에서 2번 정도 실패하고 나면 다른 분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그는 포기하는 대신 끈기를 가지고 더 집요하게 그 분야를 팠다. 지금의 식권대장을 있게 한 B2B 사업으로 전환했을 때만 해도 사실 곧바로 이 사업 아이템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무려 200여 개가 넘는 이메일을 보내도 응답하는 회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연락이 닿은 직원 80명 규모의 IT 회사, 이 회사의 담당자 역시 듣도 보도 못한 스타트업에서 제시하는 식권대장 서비스를 처음에는 무시했었다. 하지만 조 대표는 포기하는 대신 그 담당자에게 "딱 일주일만 테스트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밤을 새우며 오류를 해결하고 서비스를 제공한 결과, 드디어 식권대장은 첫 번째 기업 고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은근하고 끈질긴 노력이 계속되자 그때부터 드디어 운(運)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한 벤처 캐피털에서 연락이 왔는데, 사실 조 대표는 그때만 해도 누군가 자기 회사에 투자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투자자를 미팅할 때도 가볍게 소풍 가는 마음으로 찾아갔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담당자는 곧바로 우아한 형제들의 투자 담당자를 연결해줬다. 그 결과 무려 7억 원이라는 초기자본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해온 노력이 드디어 행운을 불러들이기 시작한 셈이다.



    늑대의 야생성을 키워주는 사회

    정부는 어디까지 혁신적일 수 있을까?_규제와 간섭을 포기하고 늑대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정부의 규제는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문제이다. 관련 공공기관의 수장들은 늘 행사장에서 "스타트업과 관련된 규제를 혁신적으로 풀겠다."라고 공언한다. 하지만 정작 일선에서는 잘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스타트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제도도 좋지만, 정작 스타트업이 꽃을 피우려면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다. 스스로를 꽃피울 수 있는 단계에서 규제에 묶여 버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규제 완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원격의료 스타트업 텔라닥이다.


    이 회사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우버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왔다. 2015년에 상장한 뒤 무려 4조 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했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런 텔라닥 같은 기업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현행 법률상 이 회사는 불법 의료를 했기 때문에 회사 경영자는 수사를 받아야 하며 회사의 경영은 당장 멈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행법을 어겼기 때문에 더 이상 존속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격 의료 사업의 중요성과 환자들의 서비스 이용 편의성을 알아챈 많은 국가들이 이 분야의 규제를 풀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시켜주는 제도)를 통해 규제 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실 부족하다. 최근에는 매뉴얼이 없으면 사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던 일본마저도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매우 더디다. 실제 현장에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느끼는 규제의 수준은 매우 답답한 지경이다.


    ABF in Seoul 2018 미디어컨퍼런스에서 한 스타트업 대표의 호소가 가장 단적인 사례다. "(블록체인) 사업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변호사와 법률 검토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100개 중에 90개를 하지 말아야 한단다. 공무원들에게 제재를 받은 것도 수없이 많다. 해서는 안 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실제로 법무법인 린(테크앤로 부문)이 조사하여 발표한 내용을 보면, 현재 글로벌 누적 투자 상위 100대 스타트업 중에서 30%는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가 없고, 13개는 제한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환경이 글로벌 기준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자체 발전 방향의 오판과 새로운 계획_전복적인 상상력의 필요성

    지방의 인구수가 점차 줄어들어 지방이 사라질 수도 있는 지방 소멸의 시대다. 지방 인구가 줄어들면 지자체의 역할도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당연히 예산도 줄어들고 공무원의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기의식을 느낀 지자체들이 스타트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방향성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의 생태계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서둘러 자금만 지원하려는 것은 오히려 스타트업의 생태계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지자체의 발전 노력 역시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지금 지자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산의 확보도 아니고, 스타트업의 유치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은 나중에라도 쉽게 해결될 수 있다.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으면 중앙정부의 자금도 유치할 수 있고, 다양한 혜택이 있다면 당연히 스타트업이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지자체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 하는 분명한 목표 설정과 방향성이다.


    코워킹 매니저, 액셀러레이터, 심사위원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각 지자체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괴멸’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액셀러레이터만 보아도 서울·경기에는 150여 개가 넘는 액셀러레이터가 있지만 부산은 15개가 채 되지 않고 제주도에는 3개가 있다. 이 정도면 서울과 부산이 격차는 7~8년 정도이고 서울고 제주도의 차이는 10년 이상 난다고 봐야 한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이 정도의 차이는 근대와 조선시대만큼 벌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방 지자체에서는 일단 이러한 생태계 자체의 역량을 올리려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 바로 ‘스타트업을 키우는 역량 있는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런 변화가 다른 지자체와의 차별점이 될 것이다.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새싹이다. 잠재력이 있는 청년들이 만든 기업이기는 하지만 아직 경험도 부족하고 성공한 경험도 그리 많지 않다. 이러한 새싹을 잘 키우려면 사실 이들을 키워주는 사람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 스타트업을 선발하는 심사위원들,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는 멘토들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경험해 본 바로 우선 이들의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타트업의 발전 자체가 힘들다. 교사가 역량이 없는데, 역량 있는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고 키우겠는가. 스포츠에서도 심판이 역량이 부족해 제 역할을 못하면, 그 게임에 참여한 팀의 승패는 물론 게임 자체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 코워킹 스페이스만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을 어떻게 운영하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제대로 교육받은 메니저가 없으면 공간 운영도 지지부진해진다. 창업자들도 사업을 하면서 불편할 것이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아도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정부, 지자체, 대학 등 최근 3년 동안 창업 관련 센터들이 경쟁하듯 생겨나고 있다. 이때 공간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문화는 더더욱 중요하다. 둘 다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런 점에서 코워킹 매니저는 스타벅스를 벤치마킹하면 좋을 듯하다.


    스타벅스는 가격이 비싼데 왜 계속 줄을 설까?

    "스타벅스 창업주 하워드 슐츠는 커피라는 본연의 제품과 더불어 편안한 공간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경험이 스타벅스의 진정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스타벅스의 핵심 전략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공간과 문화를 팔기 위한 스타벅스의 전략은 명품화하는 것이었는데, 하워드 슐츠는 핵심 고객층을 고임금 여성근로자나 도시 커리어우먼으로 설정하고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명품이 되고자 했다. 예상은 적중했고 타깃 고객들은 스타벅스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분위기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로고가 찍힌 상품이 불티나게 팔린 것도 이 때문이다.


    스타트업들을 위한 공간 역시 얼마든지 스타벅스처럼 꾸밀 수 있다. 필자가 총괄책임자로 지냈던 서울청년창업사관학교와 제주도 스타트업베이는 매 시간마다 코워킹 공간에 흐르는 음악의 분위기를 바꾼다. 오전에는 차분한 음악, 점심식사 이후에는 활기찬 음악을 튼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나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있고, 코워킹 매니저는 사무실이 아닌 창업가들과 함께 코워킹 스페이스에 나와서 근무를 한다. 한 마디로 활력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 스타트업을 춤추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공간의 구성이 스타트업의 성과와 연관이 있을까? 물론 그렇다. 스타트업 자체가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분위기는 일의 능률을 올리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코워킹 스페이스의 활기찬 분위기 역시 스타트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스타트업들이 모두 S등급을 받는 데 한몫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 타 기관과 다른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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