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경제다
 
지은이 : 최배근
출판사 : 쌤앤파커스
출판일 : 2019년 05월




  • ‘경제 위기설’ 등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공방에 대한 최배근 교수의 명쾌한 진단과 해법을 담아낸 책이다. 저자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KBS ‘최경영의 경제쇼’, MBC ‘100분 토론’ 등에 출연하며 풍부한 데이터를 활용한 날카로운 분석으로 많은 청취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왜곡된 경제 보도에 대한 ‘팩트 저격수’로서 자리매김해왔다. 


    이게 경제다


    우리 경제는 어디에 서 있는가? _ 숫자로 읽는 한국 경제 ‘팩트 체크’

    먼저 한국 경제와 관련해 두 가지 이슈부터 정리하고 이 책을 시작해보자. 첫째, 한국 경제는 ‘위기’인가?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자극적인 기사를 위해 ‘위기’라는 용어를 남발한다. 이는 경제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일 수도, ‘일부러’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기가 조금만 후퇴해도 ‘위기’의 경제적인 정의, 즉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인 ‘경기 침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요컨대 경기 순환의 한 국면이자 성장률이 둔화되는 ‘경기 후퇴’ 상황을 경기 침체로 표현하곤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경제의 침체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 체력은 비교적 양호한 상황이지만 향후 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폭탄이 여럿 존재한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포함한 서민 경제는 분명한 위기 상황으로 규정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위 40% 가계의 2018년 4분기 소득은 2016년 4분기보다 하락했다. 이러한 중산층 및 저소득층 가계소득의 악화는 기본적으로 고용 악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근 65세 이상 고령층의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의 시니어 일자리 대책의 효과로 증가하는 반면 40대를 포함한 핵심 노동력의 일자리 감소가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고용 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을 비유하자면 둑이 무너져 물이 범람하면서 마을이 물에 잠겨 생명과 집 등을 잃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는 긴급구호 활동을 벌여야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둑은 재건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정치적 대치는 극에 달하고 있다. 중산층이 약화되는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 세력들이 각자의 지지층만 대변하며 정책과 견해 차이가 심해지는‘정치 양극화’가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2016년 붕괴 직전까지 치달았던 경제가 정치 불확실성의 해소와 수출 호조 등으로 2017년에는 반등한 반면 북한 핵을 둘러싼 북미 간 갈등과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창올림픽을 매개로 개선된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를 극적으로 전화시키며‘북한 변수’는 동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에 2018년의 경제 지표는 그리 좋지 않았고 보수 진영은 이를 바탕으로‘북한 변수’를 포기하고‘경제 프레임’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되돌아온 ‘경제 프레임’의 화살

    보수 진영의 경제 프레임 전쟁은 2018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보면 2017년 2월부터 취업자 증가 규모가 10만 명대로 떨어졌지만 전기 대비 1.0%(전년 동기 대비 2.8%)를 기록한 1분기 성장률은 미국을 포함한 OECD 평균 성장률인 0.5%(전년 동기 대비 2.6%)보다 높았기에 공격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9년 5뤟 말 1분기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가 발표되고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분기의 전기 대비 성장률 0.6%(전년 동기 대비 2.8%)가 발표되자 보수언론들은 미국의 성장률과 비교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게다기 10월에는 IMF가 2019년 경제성장 전망치를 당초보다 낮추면서‘경제 위기’론 혹은‘경제 폭망’론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저소득층화’, ‘빈민화’, 자세히 읽어야 보인다

    먼저 본격적인 공세에 불을 붙인 것은 2018년 5월 23일 공개된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며칠 후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가계소득동향점검회의를 주재하며“최근 1분기 가계소득동향 조사 결과 하위 20%가계소득 감소 등 소득분배의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아픈’지점이다.”라고 언급하자 보수 진영은 저소득층 가계소득 강화를 목표로 한 소득주도 성장과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강화를 위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잘못된 정책이자 공약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60세 이상 가구주와 1인 가구 비중이 증가한 2015년 인구총조사를 통계 표본으로 바꾼 변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어찌됐든 하위 50% 가계의 소득이 줄어든 것은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저소득층과 일부 중산층의 소득 후퇴는 기본적으로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2016년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2018년 3분기부터는 가계소득의 감소가 하위 40%로 축소되었다. 중산층까지 확산되었던 가계소득의 감소가 일부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별히 한국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8년 10월 IMF는 세계 경제 전망치를 하향 수정하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2018년 3.0%에서 2.8%로, 2019년 2.9%에서 2.6%로 각각 하향 조정해 발표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한국 경제가 경기둔화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하며‘경제 폭망설’을 유포했다. 그런데 사실 IMF 의 하향 조정은 흔한 일이거니와 더욱이 2018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2.8%도 지난 정부 성장률과 비교할 때도 크게 악화되었다고 보기에 어려운 지표다. 우리 경제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이래 사실상 2%대 성장률이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문제인 정부가 출범한 이래 2017년 성장률이 3.1%였고, 2018년 들어 상반기 성장률이 2.8%로 하락했다고 해서 갑작스레 경제가‘폭망’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진실에 호도하는 행태다. 보수언론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방어 논리로 내세운 잠재 성장률을 고려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성장률 하락은 이미 예상된 것에 불과하다. 즉 우리 경제의 체질 및 산업구조 등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향후에도 잠재 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좋은데 왜 한국 경제만 어렵냐는 지적도 옳은 지적이 아니다. 우리보다 확실히 더 높았던 미국의 지난 2018년 성장률(2.9%)도 내용적으로 건강한 것이 결코 아니다. 재정 적자의 급증 등 많은 비용을 수반한, ‘불필요한’경기 부양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의 왜곡 보도는 2019년 2월 말부터 진행되었던 IMF 연례협의 결과 발표에서도 되풀이되었다. IMF 협의단의 발표 결과는“한국 경제성장이 중단기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어 최소 9조 원 이상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확장적 재정 정책과 더불어 통화 정책도 완화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수언론은‘역풍’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IMF가 한국 경제에 대한 ‘이례적 경고’를 했다는 기사를 쏟아냈고, IMF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국민들은 이 뉴스에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 경제는 경제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IMF가 지적한‘역풍’은 투자 및 세계 교역 감소에 따른 성장률의 둔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국내 언론에서 표현한‘역풍’은‘맞바람(headwinds)’을 번역한 것으로 정확한 의미를 담아내지 못한다.


    IMF 협의단의 결과 발표는 IMF가 4월 9일 발표한 2019년 경제성장 수정 전망치에서 확인되었다. IMF는 2019년 성장률에 대한 수정 전망치를 내며 지난해 미국의 경우 0.2% 포인트를 내린 2.3%로 발표한 반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2.6%를 그대로 유지했다. 보수언론들의 예상과 달리 한국이 미국보다 성장률이 더 높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유럽의 모범국가(?)로 거론하는 독일의 성장률을 보면 보수언론이 우리나라의 성장률에 대해 얼마나 왜곡하는지 잘 드러난다. 독일의 성장률은 지난해 1.5%에 이어 올해에는 무려 1.1% 포인트나 내린 0.8%가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 0.8%와 올해 1.0% 성장률이 전망되는 일본 등에 비교할 때도 우리나라 성장률은‘경제 폭망’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시대 과제

    한국 경제를 말할 때 압축 성장을 빼놓고 표현하기 어렵다. 그러고 산업화 과정과 맥을 같이 한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볼 수 있듯 압축 성장의 또 다른 표현은‘압축적 공업화’였다. 압축적 공업화는 짧은 기간 내 저부가가치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산업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결과다. 그런데 문제는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위험(손실)은 전 사회적으로 분산(공유)했던 반면 이득은 재벌과 독재 정권의 관련자 등에게만 집중되었다. 그 결과 압축적 공업화 과정에서 산업 정책과 정경유착, 정책금융과 관치금융 그리고 성장과‘부패ㆍ불공정’은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했다.


    한편 1071년 10월 25일에는 중국이 UN에 가입하는 등 동아시아의 안보 환경은 급변했다. 이를 빌미로 박정희 정권은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는데, ‘안보 최우선’논리로 민주주의를 살해한 것이다.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자원 배분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를 학술적으로 포장한 표현이‘정부-은행-기업’의 유기적 협력이다. 한마디로 재벌은 국가에 의해 육성된 것이었고, 이것이 정경유착이 구조화된 배경이다.


    그런데 1987년‘민주항쟁’때부터 우리 사회의 중심적‘화두’가 된 경제 민주화, 즉 재벌 개혁이 30년 넘도록 완성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 사회에서 제조업 기반의 경제성장과 재벌 중심 경제체제가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사정권의 마지막 해이자 문민정부(김영삼 정부)의 출발점인 1992년에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탈공업화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 결과로 재벌 중심 경제체제의 산물인 불공정경제시스템과 장시간 저임금 근로자의 존재와 이에 의존해 수명을 연장해온 저부가가치 사업장의 존재라는 한국 경제의 적폐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한편(자칭 보수 진영)에서는 수명이 소진된‘한국식 산업화 모델(박정희 성장 시스템)’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면서 부패와 불공정에 대해 반성(반칙에 기초한 기득권의 포기)조차 않고 있고, 다른 한편(자칭 진보 진영)에서는‘한국식 산업화 모델’이 쌍생아인‘부패와 불공정’에 대한 개혁, 이를테면 경제 민주화를 추구하지만‘한국식 산업화 모델’에 대한‘대안 경제모델’(미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해왔다. 문제는‘미래’를 만들지 못하면 기득권 세력의‘분열-갈등 만들기’패러다임에 휘말려 공정과 정의의 지속적 강화가 불가능할뿐더러, 서민의 지지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현 주소이다.


    한국 경제의 적폐, 격차와 불균형의 구조화

    *고용 문제와 일자리 양극화

    ‘산업’은 말 그대로‘일자리를 낳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제조업의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산업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작된 탈공업화는 일자리 충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 증가율의 하락과 더불어 중간 임금 일자리가 줄어들고 다수의 하위 임금과 소수의 상위 임금 일자리로 고용의 지형이 분화되는‘일자리 양극화’가 그것이다.


    특히 대기업 일자리 비중이 감소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10인 이상 사업체 중에서 대기업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7년 38%까지 차지했으나, 2017년에는 25%로 30년 사이에 13% 포인트나 감소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기업의 주력 사업이 제조업이라는 점에서 이 사실은 중요한 지점이다.


    대기업들은 새로운 수익사업을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의 추격으로 기존 사업의 방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이 영위하는 사업에 진출하며 산업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조차‘동반 성장’을 강조하고, 박근혜 정부조차‘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것은‘양극화’가 지속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일자리 증가율의 감소와 더불어 1993년 이후 일자리 양극화, 즉 임금 수준에서 중위권 직업의 일자리는 정체 내지 감소가 진행되었다. 소득 양극화는 일자리 양극화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외환 위기는 소득분배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물론 일자리 양극화는 산업화를 달성한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듯이 기술 진보에 의한 결과다. 특히 IT 혁명 등의 자동화는 정형화된 단순 반복 업무(routine tasks)들을 기술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 ‘근대의 함정’에 빠지다 _ 위기의 글로벌 경제에서 한국 경제 활로 찾기

    미국인들도 모르는 미국 경제의 문제

    미국 경제의 신기루, 무너지는 모래

    무엇보다 금융 위기 이후 10년이 넘은 현재의 미국 경제의 상황을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잇다. 우선 경기 회복의 대표적 기준인 경제성장률부터 보자. 2008년 9월 15일 미국 대형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 경제의 경제성장률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침체에 빠져든다. 2009년 3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플러스(+)로 전환 후 201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2.2%였다. 이는 금융 위기 이전(1985~2006)의 연평균 3.3%보다 1.1% 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2018년의 성장률 2.9%는 2015년 성장률 2.9%와 더불어 금융 위기 이후 최고의 성장률이다. 미국의 2018년 성장률은 실질 잠재 성장률 이상으로 과열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2018년 9월과 10월에 1953년 이후 최저 수준인 3.7%까지 하락했다. 금융 위기 이후 한때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취업자의 규모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결과 금융 위기 전 5,000억 달러 정도였던 학자금 대출 연체액도 2018년 12월 현재 1.6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주택 시장 역시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을 추월한 상태다. 미국 주택 가격 지수를 나타내는 케이스-실러(Case-Shiller) 지수(2000년 =100)는 금융 위기 전 최고 수준인 2006년 7월 184.6에서 2012년 2월 134까지 하락했다가 2018년 8월 205.7까지 치솟았다. 2018년 3분기 기준 64.4%까지 다소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뒤에서 언급할 인위적 주택경기의 부양이 시작되었던 1995년 수준에 불과하다.


    불평등의 심화는 연준 통화 정책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연준은 금융 위기 이후 구간 금리 제도의 도입으로 초과지불준비금에 이자 지급을 시작했다. 금융 위기가 발발하자 금리를 제로까지 인하했지만 실제는 0~0.25%였다. 그 금리가 0%인 것이고 0.25%는 은행이 연준에 예치하는 (법정)지불준비금을 초과하는‘초과지불준비금’에 대해 연준이 지급하는 금리다. 이론적으로 시중 은행은 연준으로부터 제로 금리로 자금을 빌려 재예치 할 경우 0.25% 이자를 벌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연준이 은행 자본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이처럼 금융 위기 이후 연준의 통화 정책은 정작 필요한 가계나 소기업 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철저히 자금 조달이 유리한 은행 등 금융회사 및 대기업 등을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가 자산시장의 거품 형성이다. 2018년 긴축(금리 인상)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그동안의 극단적인 금융 완화로 만들어진 자산 가격의 거품 붕괴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는 배경이자, 주가와 부동산 가격 등이 불안정해지는 배경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또 대다수 서민들에게 귀착될 것이다.


    일본 경제의 정상화, 불가능에 가깝다

    일본 장기 불황의 근본 원인

    많은 사람들은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의 원인을 1990년대 초 자산시장 거품 붕괴에서 찾는다. 니케이 225 지수는 1989년 말에 38,916 포인트를 기록한 후 하락하기 시작해 2011년 말에는 8,500 포인트 밑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일본의 6대 도시 땅값(2000년=100) 은 1991년 285.3에서 2010년 70.9까지 추락했다. 그 결과 일본의 가계자산은 1980년대 말 이래 계속 하락했다. 이른바 자산 가격이 하락하고 자산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가계와 기업이 부채 상환에 집중하다가 발생하는 경기 침체 현상인‘대차대조표 침체’의 늪에 빠진 것이다.


    은행도 무수익여신(Non-Performing Loans, NPL)의 손실을 처리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합병 등에 내몰렸다. 일본 금융권의 부실채권 처분 손실 규모도 2007년 9월 기준 99조 엔에 달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추정 손실액 규모인 98조 엔과 절대 규모 면에서 비슷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계 경제규모 2위 국가가 자산 가격 거품 붕괴의 충격으로 30년 가깝게 장기 불황이 지속된다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사실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은 1970년대로부터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일본 경제의 성장률을 보면 1945~1960년간 연평균 9.4%에서 1951~1955년간 연평균 10.9%로, 1956~1960년간 연평균 8.7%에서 1961~1965년간 연평균 9.7%로, 1966~1970년간 연평균 12.2%로 이어지는 고성장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성장은 1970년대 들어 중단된다. 즉 1972~1981년간 연평균 4.3%, 1982~1991년간 연평균 4.0%로 성장률이 급락한다.


    1970년대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일본에서도 미국 경제가 경험했던 탈공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즉 제조업 종사자의 상대적 비중은 1974년 이후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제조업 종사자의 절대적 규모는 1979년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1992년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처럼 일본 경제는 제조업의 전성기를 맞이했던 1970, 1980년대에 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부상한 것이었다. 문제는 일본의 탈공업화가 시작되던 1970년대 초, 국제통화시스템의 변화와 자본시장의 개방 등 금융 환경이 급변하면서 일본 경제도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점이다. 해외 자본에 대한 철저한 통제 속에서 정부-기업-은행간 유기적 협력에 의해 전략 산업을 육성한 이른바‘네트워크 시장경제’시스템은 탈공업화와 더불어 자본시장 개방의 압력이 증대하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제조업 구조조정과 산업 생태계 재구성이라는 본질에 대한 처방보다는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130조 엔이 넘는 규모의 재정을 투입했다. 그러나 재정 지출에 의한 경기 부양은 실패했다. 또 하나의 경기 부양책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통화 완화, 즉 돈 풀기였다. 그러나 은행 대출율은 양적 완화 기간 중에 오히려 15%나 하락할 정도로 돈은 민간 부문으로 유입되지 못했다.


    1990년대 장기 불황을 겪고 난 일본 정부는 뒤늦게 산업 구조조정과 탈공업화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 생태계 재구성을 추진한다. 구조조정의 결과 20개 정도였던 대형 은행이 3대 그룹으로 재편되었다. 반도체, LCD 사업도 통합이 이루어졌고, 조선사도 통폐합과 더불어 전략적 제휴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창조산업 육성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1999~2001년 사이에 매출액과 고용 규모 그리고 기업체의 수에 있어서 창조산업은 각각 -14.3%, -14.0%, -26.9%로 오히려 후퇴했다.


    성격이 전혀 다른 창조산업을 제조업 육성 방식으로 접근한 결과였다. 그 결과 2004~2012년 평균 일본 상장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GDP 대비 44%로 15~27% 정도인 나머지 G6 국가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에 달하는데, 이는 일본 기업이 투자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은 혁명적 변화를 요구한다 _ AI, 공유 플랫폼, 그리고 일자리

    4차 산업혁명, 자본주의와의 어색한 동거

    새로운 산업혁명은 데이터 혁명이다

    디지털 무형재는 시장 사용자가 많을수록 훨씬 매력적인 시장으로 발전하기에 기업은 하나의‘디지털 생태계(플랫폼)’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생태계는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사용자에게 완벽한 경험을 제공하고, 하나의 플랫폼에서 사용자는 다양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에 점점 더 커질 뿐 아니라, 사용자가 플랫폼을 떠날 인센티브를 축소시킴으로써 사용자의 주목, 시간 가치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3차 산업혁명의 상징인 IT 혁명은 모든 것을 연결시킴으로써 디지털 생태계인 플랫폼 구축의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플랫폼의 성장은 이익 공유를 통한 협력에 의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더불어 플랫폼 사업 모델의 확산은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에서 보듯이‘데이터 혁명’을 가져다줌으로써 2010년경부터 AI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다. AI의 발달이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AI의 발달은 최근의 5G 기술과 더불어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스마트화를 가능케 하고 있고, IoT를 넘어 모든 사물을 인공지능화(AIoT)시키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무선전화, 자동차 등 이동수단을 스마트화하는‘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서비스’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대표적 경우가 스마트 자동차에 해당하는 커넥티트 카 사업이다. 무엇보다 자동차가 스마트카가 되려면 자율주행차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자동차에서 인터넷도 하고 어플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순간 제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실시간 연결을 가능케 해주는 5G 기술이 절대적이다. 이때 AI가 발달하려면 새로운 데이터의 지원이 절대적이기에 자동차를 혼자서 소유ㆍ사용하는 것보다 수많은 사람이 차량을 공유하는 것이 데이터 확보에 유리하다. 게다가 필요할 때마다 쉽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차를 소유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선진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완성차 소유 경향이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다. 이처럼 데이터 혁명은 기존의 제품들을 매력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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