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주차

BOOK SUMMARY
 인문 

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

저자 린다 개스크 (지은이), 홍한결 (옮긴이)
출판 윌북
출간 2023.11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온 우울증, 그 우울과 함께한 나날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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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


취약성

우울해지는 이유를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취약성과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된다. 취약성이란 어떤 사람이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으로, 가족력과 유전, 어린 시절 경험 등에 좌우된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살면서 겪는 다양한 사건들을 가리킨다. 취약성 요인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일으키기 쉽다. 사람마다 우울증을 일으키는 스트레스의 정도가 달라서, 견딜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힘든 일을 겪으면 그때부터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 같다. 비슷한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아도 끄떡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취약성은 나이가 들수록 커지고, 관절염이나 심장병 같은 만성 신체 질환을 앓는 경우에도 커진다.


나는 솔퍼드 시내 어느 병원의 어둑한 진료실에 앉아 있다. 내가 가끔 환자를 보는 곳이다. 희미한 오후 햇살이 붙박이 철창살 사이로 힘겹게 새어든다. 바깥에서 흘러들어 오는 공기는 흡연 구역에서 풍겨오는 담배 냄새로 퀴퀴하다. 리처드라는 낯빛이 파리한 청년이 내 앞에 앉아 있다. 자기 우울증의 가족력을 이야기하려는 참이다.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할 말을 떠올리려고 용을 쓴다. 사고가 매우 더딘 상태다. 우울증이 심한 경우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는 아버지의 폭력에 몸만 다친 게 아니었다. 10대 시절 우울증을 앓았던 것도, 20대 중반인 지금 기분이 심하게 침체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는 성장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지만, 어릴 때부터 앓았던 당뇨병이 합병증을 일으키면서 그간 노력해 얻은 것들을 다 잃게 되었다고 느꼈다. 어머니도 당뇨병이 있었다. 리처드는 최근 시력이 나빠졌고, 어린 시절 경험 때문에 우울증에도 대단히 취약해진 상태였다. 물론 충분히 이해는 된다. 그럴 수 있다. 당뇨병처럼 큰 병을 앓는 게 얼마나 힘들지도 짐작이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심각할 정도로 기분이 침체되지는 않는다. 알아서 살 길을 찾아나간다. 리처드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이 가끔 하는 실수는, 환자가 현재 처한 상황에 비추어볼 때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고 넘겨짚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으면 누구든 기분이 처지는 게 당연하죠. 저라도 그러겠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환자는 우울한 것일 수도 있다. 우울은 불행한 감정과는 다르다. 우울은 불행보다 훨씬 더 깊고 큰 절망감으로, 세상을 보는 눈에 색을 덧입히고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가진 취약성도 과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 서부 지방의 광부였던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열일곱 살 때 결핵으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열두 살 때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엄마와 함께 길을 가다가 쓰러지셨다고 한다. 부모를 잃고 엄마가 받은 충격의 크기는 내가 헤아리기 어렵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거의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다. 엄마가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엄마가 자란 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에서 가난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동네다. 나를 이루는 중요한 일부가 그곳에서 유래했으니, 내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줄 단서도 어느 정도 그곳에 있는 셈이다. 엄마와 내가 삶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서로 달랐던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엄마와 나는 언뜻 보기엔 닮은 점이 거의 없었지만, 나는 스코틀랜드 서부의 궁핍이 내 몸에 깃들어 있다는 걸 잘 안다. 타고난 것도 있고, 자라면서 엄마의 성격과 신념에서 받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온종일 촉을 바짝 세우고 식구들의 기분을 살피며 지내야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경험이 지금 의사로서 환자들과 공감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남들의 행동에 지나치게 예민한 바람에 때로 온몸이 굳곤 했고,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직감에 늘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걸 차츰 알게 되었다. 또 20대 초부터 상당히 심한 우울증에 빠진 것도 그런 성장 환경과 무관치 않았다. 나는 유전적으로 신경증적 성향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안전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성장 터전을 가족에게서 제공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괴로웠다. 아이가 자신 있게 세상에 부딪칠 줄 아는 사람으로 커나가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엄마는 불안이 있음에도 천성적으로 매사에 태도가 당당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아빠의 과묵한 내향성을 더 많이 물려받은 것 같다. 어릴 때 엄마보다 아빠와 훨씬 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애착은 10대 시절 점점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그러한 변화는 인생의 시련을 버티는 내 능력의 한계를 더욱 낮추는 구실을 했다.



상실

우울증을 유발하는 사건들은 대개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어떤 ‘상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년기 경험이나 가족력 등으로 인해 취약성이 높은 사람은 그런 경우가 더욱 흔하다. 우리는 소중한 누군가나 무언가를 잃으면 그 상실을 애통해한다. 하지만 애통해하는 것은 인간이 정상적으로 겪는 과정으로서, 우울과는 다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도, 중요한 직장을 잃었을 때도, 건강을 잃었을 때도 애통해한다. 앞날의 꿈이 사라졌거나, 다시 없는 기회를 놓쳤을 때 애통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그 상실에 얽힌 생각이나 감정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 추스르고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춰 서버린다. 지난 일을 곱씹으며 제자리를 맴돌 뿐, 떠나보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것 없이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거나, 심지어 자기 감정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복합적 애도(complicated grief)’라고 하며, 이 상태는 우울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되면 ‘앞으로 잃어버린 삶’을 애통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고전이 된 저서 ‘죽음과 죽어감(On Death and Dying)’에서 제시한 애도의 다섯 단계인 부인, 분노, 타협, 우울, 수용도 사실 누군가와 사별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나는 수련의 시절, 뜻하지 않게 닥친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환자를 많이 보았는데, 그 가운데는 의사나 간호사에게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 쓰는 용어로 말하면 병 때문에 ‘의기소침해진(demoralized)’ 사람도 있었다. 다가올 운명에 두려워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엔 에반스 씨가 그런 경우였던 것 같지만, 우울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나누지 못하고 홀로 죽음을 마주했다. 어느 누구도 손길을 내밀어 그들의 침묵을 깨주지 않았기에.


요즘 종합병원에는 정신과 협진 체계가 마련되어 있어 그와 같은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다들 그냥 어영부영 지나갔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종합병원에 있다 보면 환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과 친구들이 두려움과 의기소침, 절망감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마음의 눈을 열고 보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버지도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병상에서 보내면서 본인의 두려움과 걱정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버지 성격에 기회가 있었어도 그럴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알 길은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내가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은, 죽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되 평소처럼 활동적으로 살지 못하는 삶을 아버지는 곤욕스러워했으리라는 것뿐이다. 아버지가 협심증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궂은 날씨에도 ‘피겨 에이트’를 타고 오르고 북해에서 헤엄치던 아버지에게, 그런 상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틀어진 계획

우울증을 일으키는 사건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해로운 것은 그 사람의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건드리는 경우다. 열쇠가 짝이 맞는 자물쇠를 찾아가듯, 그 사람의 취약점과 딱 맞아떨어지는 사건이 꼭 일어나는 걸 보면 신기할 정도다.


얼마 전부터 내 불안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1983년 가을에 버밍엄에서 시험을 치르기 석 달 전, 나는 위딩턴 병원 교수진료 병동의 선임 전공의로 승진했다. 수련의로 3년 근무한 후 아직 전문의 수련 자격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 자리에 채용된 것이었다. 물론 자격 시험은 금방 통과할 거라 예상되었고, 원래 정신의학이란 게 단순화된 현대적 시험으로 실력을 평가하기에 적합한 분야도 아니다. 나는 논문을 박식하게 써내는 건 하라면 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여러 문헌에서 나타나는 상충하는 근거를 분석해가면서 우울증의 발병 원인을 논하는 글은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흔히’ ‘종종’ ‘드물게’ 같은 두루뭉술한 단어의 미묘한 빈도 차이에 대해 상식적인 감이 있어야 풀 수 있는 선다형 문제는 너무 어려웠다.


나는 항상 시험에 공포가 있었다. 내 동료와 선배들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내가 어릴 때 피아노 시험을 앞두고 얼마나 손에 땀이 나고 덜덜 떨렸는지, 아무도 몰랐다. 한순간의 실수로 결과를 망칠까 봐 어찌나 두려웠는지 온몸이 뻣뻣하게 굳곤 했다. 그럴 때면 차라리 망친 셈 치고 아무렇게나 해치워버린 다음 냅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시험을 본 지 두 달 만인 12월 중순, 학회에서 결과 통지서가 왔다 그날 저녁에는 직원들의 크리스마스 회식이 예정되어 있어 병동 근무가 일찍 끝났다. 나는 평소 7시 전엔 퇴근하지 않았지만 통지서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이 시험 친 동료들은 이미 결과를 다 확인한 상태였다.


캐서린도 낮에 내게 전화해 소식을 전했다. “나 합격했어! 말도 안 돼! 진짜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와, 축하해.” 진심이 아니었지만, 축하해주고 싶은 기분이 영 아닐 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정말 잘됐다.” 최대한 잘됐다고 생각하며 말하려 했지만, 여간 힘들지 않았다. 통지서를 급히 훑어 결론을 파악하는데,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평가 결과... 유감스럽게도 귀하는 요구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선다형 필기 시험과 임상 실기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다음 몇 주는 현실감각이 없는 상태로 힘들게 보냈다. 일상적인 병동 업무를 보며 근무는 했지만 내 심리치료 환자들은 보지 않았다.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남지 않았다. 도움을 주려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놓아야 했다. 치열한 상담 상황에 써야 할 기운이 몸에서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상대방이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게 마음을 나눌 힘이 이제 내겐 없었다.


그러다가 살모넬라 감염증을 심하게 앓았다. 몸에 병이 나고서야 일을 쉴 수 있었다. 그동안은 내 마음의 건강이 일을 쉴 정도로 나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일은 내가 살아가는 거의 유일한 이유였고,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벗은 정신의학이었다. 남편이나 친구들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험에 떨어진 일이 내 자아정체감을 그리 심하게 뒤흔든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내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건드린 것이다. 세상이 내게 압박과 부담을 가할 때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나 일에 몰두하는 버릇을 들였고, 그게 내가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내 이런 모습에 남편은 불만이 있을 만도 한데, 아무 말 없이 나를 챙기고 내 기분을 받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형식상으로만 결혼 생활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형식상으로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의사로 일하면서, 인생 계획을 완벽하게 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사람은 자녀들 인생까지도 그런 식으로 계획하려고 한다. 그리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살면서 정말 나쁜 일을 당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모든 일이 기대한 대로 풀린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다가 상실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이 본인의 자아정체감이나 인생의 이정표와 관련이 클수록 받아들이기가 더 힘들어진다. 나는 시험에 떨어지면서 계획이 일시적으로 틀어졌다. 주도면밀하게 그려놓았던 인생 계획이 어그러졌다. 누가 만들어준 계획은 분명히 아니었다. 오로지 내 생각만으로 만든 계획이라고 믿었다. 나도 어쩌면 대니얼처럼, 아버지의 마음에 들려고 애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무시했다. 게다가 이미 돌아가시고 세상에 있지도 않은 아버지였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계속 나타나고 있던 균열을 적당히 땜질만 하며 수습하고 있었다. 그때는 길을 잠깐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고만 생각했고,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게 정말 필요했던 약은, 운명이라 생각했던 길에서 완전히 탈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에 깨달았지만, 삶이라는 열차가 탈선하여 내달리는 그 혼돈의 순간에는 때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앞으로 무엇을 바꾸면서 살아야 할지, 그리고 자신을 옥죄는 자신과 남들의 기대는 온당한 것인지, 너무 늦기 전에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다. 그런 의문에 답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목표는 이룰 가능성도 더 높은 법이다.



외로움

나이 서른이 될 무렵 깨달은 게 있었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고 인간관계를 더 잘하려면 먼저 외로움의 공포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 무렵 나는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 중이었다. 연구 목적은 정신과 의사들에게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가르치면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연구 때문에 그해 여름 인터뷰한 사람 중 뇌리에 강하게 남는 여성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해변의 질퍽이는 초원을 거닐며 그녀 생각을 했다. 그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녀도 풍광이 아름다운 옛 땅에서 살았지만, 더없이 불행했다. 혼자가 아니었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로웠다.

가냘픈 체구의 젊은 여자가 문을 열어주는데, 눈물을 꾹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옆방에서는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제니퍼는 내 질문에 대답하면서 가슴을 손마디로 연신 문질렀다. 어찌나 세게 짓누르는지 저러다 멍이 들지 않을까 싶었다. 연분홍색 스웨터의 한쪽 어깨에는 말라붙은 토사물 얼룩이 있었다. 깔끔한 옷차림에서 유독 튀어 보이는 그 사소한 흠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녀는 전혀 농부의 아내처럼 보이지 않았다. 몸에 붙는 검은색 바지를 입고 커다란 링 귀걸이를 했는데, 화장은 하지 않았다. 그런 옷차림이라면 파운데이션, 립스틱, 아이섀도에 마스카라, 블러셔도 해야 할 듯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거의 납빛이었다. 분홍색 머리띠로 머리를 뒤로 넘겼고, 세련된 도시에 더 어울릴 듯한 옷차림 위에 주름 장식이 달린 앞치마를 걸쳤다. 아장거리며 턱에서 침을 흘리는 여자아이가 앞치마에 한 손으로 매달렸다. 다른 손 엄지는 입 속에 넣은 채, 큰 갈색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방긋 웃어주었다. 거의 동시에 엄마가 아이를 앞치마에서 떼어냈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입 안엔 앞니가 네 개 나 있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아니에요. 사랑해요, 정말로요. 훌륭한 남자예요. 그런데 제가 이곳을 견디지 못하겠어요.” 마치 벽에 대고 혼잣말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식사를 차리면서 벽에 대고 혼잣말하는 일인극 ‘셜리 밸런타인’의 주인공처럼. 다만 배경이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었다.


“차 한잔 드실래요?”

“네, 좋지요. 여기서 얼마나 사셨어요?”

“4년 3개월이요. 결혼하고서부터 죽. 제가 농사꾼 아내처럼 안 보이는 거 알아요.” 그녀는 주전자에 수돗물을 채우고는, 축사와 낡은 트랙터, 건초더미가 놓인 창밖을 응시했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모습이, 마치 내 눈에는 안 보이는 뭔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전 홍보 쪽에서 일했어요.” 그녀가 나를 보며 입으로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많이 바쁘셨을 것 같네요.”

“네, 일하는 게 많이 재미있었어요. 그때가 그리워요.”


그녀가 일어나서 차를 만들고 찻잔 두 개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우리는 인터뷰를 계속 이어나갔다. 질문은 대부분 기분과 관련된 것으로, 우울이나 불안 증상이 있는지, 기력 수준은 어떤지, 잠은 잘 자는지, 사는 낙이 있는지 등이었다.


“아이가 없어진다고 해도 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오해하진 마세요. 아이를 다치게 할 마음은 전혀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들 저보고 복 받았다고 계속 그래요. 남편 잘 만났지, 예쁜 아기 있지. 그리고 이 애도.” 그녀는 카펫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젖니도 나고 밤에 잠을 못 자게 하는데, 그런 게 다 아무 느낌이 없어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아무 감각이 없어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하진 않을 거예요, 안 해요.”


어떤 상태인지 나도 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음이 온통 무감각하고 죽어 있는 상태가 어떤 느낌인지.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경험했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침묵으로 나누고 있었다.


제니퍼의 우울 증세는 첫 아이를 낳은 후에 나타났다. 산후우울증은 호르몬 때문에 유발될 수 있고, 특히 출산 후 첫 몇 시간이나 며칠 내어 일어나는 경우는 호르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 요인과 관련된 경우가 가장 많다고 생각한다. 분만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남편과 가족의 지지 부족, 어머니로서의 역할 수행과 그에 따른 온갖 변화에 대한 실망 등이 모두 이유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기대를 품지만, 그 기대는 결코 모두 충족될 수 없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결혼 생활에 내재되어 있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며, 잠시 뒤로 미루어진다 해도 결국 좀 더 나중에 부각될 뿐이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인생에서 대단히 큰 사건이다. 제니퍼는 우울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임신을 했기에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진짜 문제이자 회복을 막고 있는 요인은, 이전에 알던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었다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3개월 후에 설문지를 작성했을 때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은 상태였다. 상황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일 듯하나, 확실히 알 길은 없다. 사회학자 조지 브라운(George Brown)이 방대한 연구를 통해 보인 바 있듯이, 5세 이하의 어린아이를 키우고 가사 외에 직업이 없으며 감정을 공유할 절친한 친구가 없는 여성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제니퍼도 그런 경우였다.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지만, 자신의 괴로움을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듯했다.


제니퍼와 나눴던 대화가 내 뇌리에 남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집 주방에 감돌던 그 억눌린 불만과 좌절된 소망의 기류가, 바로 내 어릴 적 부모님의 결혼 생활 모습과 어딘지 닮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 결혼 생활의 부족한 점을 직시하지 못했던 건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차츰 깨달았다. 내 삶도 정서적으로 ‘보류된’ 상태였던 것이다. 미래가 뒤로 미루어진 상태였다.


내 환자들이 많이 그랬듯, 나도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단절될까 봐 두려웠다. 고립, 외로움, 우울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들과 떨어지면 그로 인해 우울해질 수 있고 회복 또한 더뎌질 수 있다. 문제는 우울해지면 남들과 대화하기도, 함께 있기도 힘들고 남들을 믿지도 못하니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고립시키곤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립이 심해지고 그에 따라 기분이 더 가라앉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럴 때는 단순히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이 꼭 해결책이라고도 볼 수 없다. 천성이 사교적인 사람은 다시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상대적으로 크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상호작용 과다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회복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 경우도 물론 후자 쪽이다. 우울한 사람은 세상 속에 나가 남들과 어울린다는 것에 대단히 양면적인 감정을 갖기 쉽다.


불교의 사상과 수행에서 유래한 ‘마음챙김’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우리 내면의 자아를 좀 더 잘 알기 위해, 괴로운 생각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대로 관찰하면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마음챙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그날그날 반복되는 일과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3킬로미터 거리의 가게를 걸어서 다녀오고, 창가 책상에 앉아 독서하고 글 쓰고, 바다 풍경을 스케치하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챙김 기법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혼자라는 게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들과 어울리면서 감정을 나누고 걱정과 근심을 터놓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지 못한다면 제니퍼처럼 우울해지고, 또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고독이라는 것 역시 끌어안을 수 있고, 심지어 즐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법을 배운다면 가능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내가 남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친밀과 고독 사이에서 누구나 각자의 이상적인 균형점을 찾아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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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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