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주차

BOOK SUMMARY
 인문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 어휘 편

저자 엄민용 (지은이)
출판 EBS BOOKS
출간 2023.08
‘우리말 전문가들의 진짜 글 선생님’ 엄민용의 최신 어휘 공부
도서요약 보기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어휘 편


말과 글은 생명체입니다

말은 생명체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탄생과 성장과 소멸을 멈추지 않지요.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고, 기존의 의미가 확대되기도 합니다. 말은 생명 활동을 멈추지 않으면서 수시로 글 꼴도 바꾸지요. 그것이 말과 글입니다.


그런데도 옛날의 의미에만 매달리고 예전의 모습만 보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좀 안다는 사람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적지 않지요. 좋게 말하면 그만큼 우리말글을 아끼는 마음이 큰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신이 아는 것만 고집하는 행동입니다.


전자든 후자든, 말글을 대하는 자세로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말과 글의 주인은 언제나 일반인들이지 우리말글의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정 계층만 혜택을 보고 대다수 서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법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분명 ‘악법’이라고 부를 겁니다.


우리말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사람만 바르게 쓸 수 있는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규정은 악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악법으로는 소중하고 귀한 우리말글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수년 전부터 보이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움직임에는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일반인의 말글 씀씀이를 살피려는 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부족함을 많이 느끼지만, 20여 년 전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이어 최근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변화를 보면, 우리말글의 건강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말글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이전부터 고집스럽게 주장하던 말뜻과 글 꼴이 일반인들이 아는 의미와 형태로 조금씩 바뀌고 있거든요.


그러나 정작 누구보다 국민의 언어생활에 마음을 두어야 할 이른바 ‘우리말글 지킴이’라는 사람들이 옛날의 사전과 옛날의 말법과 옛날의 지식으로 우리말글의 숨통을 옥죄곤 합니다. 참 답답한 일이지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쓰고, 국립국어원 누리집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말까지 ‘무조건 써서는 안 된다’고 고집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툭하면 영어 번역투이니 일본식 표기이니 하며, <표준국어대사전>에 용례가 올라 있는 표현까지 못 쓰게 하기도 합니다. 마치 자기 지식이 우리말법의 전부인 양 주장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런 고집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말법에 어긋나는 말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고 반드시 바르게 쓰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국립국어원도 인정한 말뜻과 글 꼴에 대해서까지 자기 고집만 내세우면 안 됩니다. 이는 우리맑르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글을 틀에 가둬 놓고 말려 죽이는 일입니다.


‘-의’는 일본식 표기다? 아니거든요

‘의’를 일본식 표현으로 믿는 분들은 ‘과학에의 초대’와 같은 표현을 보면 호통을 칩니다. 우리말 관련 책에도 그런 내용이 많습니다. 일본식 말투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조사 ‘에의’를 “앞말이 처소나 시간, 대상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 조사 ‘에’를 관형어로 나타내는 격 조사” 또는 “격 조사 ‘에’와 격 조사 ‘의’가 결합한 말”이라고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만찬회에의 초대’ ‘어린이들은 내일에의 희망이다’ ‘해외 시장에의 진출이 앞당겨질 것 같다’ 등의 용례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고 있지요.


또 <표준국어대사전>은 조사 ‘의’의 의미와 용례를 무려 21가지로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부 사람들이 일본식 표현이라고 하는 ‘영희의 얼굴’ ‘국민의 단결’ ‘나의 작품’ ‘질서의 확립’ ‘자연의 관찰’ ‘한국의 지도’ ‘아파트의 주인’ ‘구속에서의 탈출’ 등의 표현이 바른 사용례로 올라 있기도 합니다.


좀 더 나아가서 많은 책이 주장하는 ‘나의 살던 고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주대 이동석 교수님에 따르면 ‘나의 살던 고향’ 같은 표현은 세종대왕이 직접 쓰셨다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에서도 아주 흔히 발견되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석보상절>에 ‘수달의 만든 자리’ ‘목련의 항복시킨 용’ ‘대중의 가져온 향목’ 등의 표현이 보인다는 겁니다. 이 교수님은 이를 ‘주어적 속격’이라고 하면서 “우리말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 살피지 않고, 이웃 나라에서 활발하게 쓰인다는 이유만으로 외래적인 요소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라고 따끔하게 조언했습니다.


말은 생명체입니다. 언제나 같은 모양과 같은 뜻만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언제나 그 말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저도 포함되지만, 우리말과 관련한 책을 지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누구의 책을 읽든 지은이의 주장과 평소 여러분의 말 씀씀이가 다르면 무턱대고 믿지 말고, 정확한 이유를 알아보는 게 좋습니다. 국립국어원이나 한국어문기자협회 등에는 온라인이나 전화로 문의하면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그러니 이런 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우리말 관련 책에는 조사 ‘의’에 관한 내용뿐 아니라 잘못된 주장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잘못의 원인은 대개 ‘시간 탓’입니다. 그 책이 나왔을 때는 옳은 주장이었는데, 생명체인 말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면서 글꼴과 의미가 달라진 거죠.  


국장님 앞에서도 부장님은 부장님이시다

군대는 물론이고 일반 직장에서 많이 ‘강요’되는 직장 내 압존법(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사람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는 낮아, 주체를 높이지 못하는 어법)은 일본식 언어 습관입니다. 우리말에도 압존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가정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일 뿐이고 학교와 직장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부장과 국장의 ‘장’이 부와 국의 가장 높은 자리를 뜻하므로 ‘님’을 붙이는 것은 지나친 높임이라는 얘기는 한마디로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입니다(개도 실제 풀을 뜯어 먹기도 하지만…). 부장님 면전에서 ‘부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다면 사장이나 회장 앞에서도 “엄 사장, 부르셨습니까”라거나 “엄 회장, 존경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러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에 보고할 때 ‘대통령님’이라고 해야지, 그냥 ‘대통령’이라고 하면 너무 이상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부장이든 국장이든 대통령이든 면전에 두고 부를 때(호칭)에는 직함 뒤에 ‘님’을 붙이는 것이 바른 우리말 예절입니다. 하지만 부르는 말이 아니라 가리키는 말(지칭)에서는 ‘님’을 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의 창립기념식에서 회장의 인사말을 청해 들으려 할 때 사회자는 직원들을 향해 ‘회장님’이라고 지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해를 맞아 국민들께 신년인사를 하러 나선 대통령을 두고 사회자가 ‘대통령님’이라고 지칭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호칭과 지칭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국립국어원 누리집에 들어가서 ‘표준 언어 예절’을 검색해 읽어 보기를 권해 드립니다.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답니다.


‘야채’는 ‘채소’로 써야 한다?

‘채소’는 나물을 뜻하는 ‘채’와 ‘소’가 결합한 한자어이고, ‘야채’는 들을 뜻하는 ‘야’와 나물을 뜻하는 ‘채’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지요. 그런데 ‘채소’는 우리의 한자말이고, ‘야채’는 일본만 쓰는 한자말이니, ‘야채’를 버리고 ‘채소’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채소’를 ‘밭에서 기르는 농작물’로 뜻풀이하고 ‘야채’는 이러한 채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뜻풀이해 양자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둘 다 쓸 수 있는 말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가나다’에서는 “‘야채’와 ‘채소’에 대해 ‘야채’가 ‘채소’의 일본식 한자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근거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라는 답변도 보입니다. ‘야채’를 쓸 수 있다는 얘기죠.



열에 아홉은 틀리는 말

귀가 멍멍한 적이 있다고? 에이~ 거짓말

귀에 관련해 열이면 아홉은 틀리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귀가 멍멍하다’입니다. 하지만 귀는 절대 멍멍할 수 없습니다. ‘멍멍하다’는 “정신이 빠진 것같이 어리벙벙하다”를 뜻하는 말이거든요. “갑자기 귀가 막힌 듯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또는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하다”를 뜻하는 말은 ‘멍멍하다’가 아니라 ‘먹먹하다’입니다. 그러니까 “귀가 멍멍하다”는 “귀가 먹먹하다”로 써야 합니다.


이빨이 아프다고요? 그럼 혹시 동물이세요?

사람의 이(치아)를 가리켜 ‘이빨’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빨’은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주로 동물들에게나 쓰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데 꼭 필요한 ‘치아’를 우리말로는 ‘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가 난 곳의 이름이 ‘이빨몸’이 아니라 ‘잇몸’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부화는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

오장육부 중 하나인 폐장(허파)을 다른 말로 ‘부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신문의 칼럼니스트가 “그의 몰상식하고 뻔뻔함에 은근히 부화가 치밀기도 했고…”라고 써 놓았듯이 ‘부아’를 ‘부화’로 잘못 적는 일이 흔합니다. 아마 “화가 나다” “화가 치밀다” 따위의 화(火)를 떠올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분한 마음이 있어서 속이 타들어 갈 듯하다”라거나 “분한 마음에 숨을 고르게 내쉬지 못하고 가슴을 들썩거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은 ‘부아가 나다’ ‘부아가 치밀다’ ‘부아가 끓다’ ‘부아가 돋다’ 따위로 써야 합니다.


음식 맛이 슴슴하면 안 된다

“맛이 조금 싱겁다”는 의미로 ‘슴슴하다’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슴슴하다’는 인터넷 포탈 사이트의 블로그뿐 아니라 신문과 방송에서도 무척 많이 쓰는 말입니다. 특히 방송의 음식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요리사들이 “음식은 조금 슴슴하게 먹는 것이 좋다”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어사전들은 죄다 ‘슴슴하다’를 쓰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꼭 ‘심심하다’로 쓰라고 고집하는 거죠. 정말 심심하기 짝이 없는 국어사전들입니다.


그런데 이거 아세요? 북한에서는 ‘심심하다’ 대신 ‘슴슴하다’를 바른말로 삼고 있다는 것을요. 즉 ‘슴슴하다’는 예부터 우리 조상들이 써 온 말인 겁니다. 다만 ‘슴슴하다’는 북한 지역에서 많이 쓰고, ‘심심하다’는 남한 쪽에서 많이 써 왔던 거죠. 그래서 북한에서는 ‘슴슴하다’를, 남한에서는 ‘심심하다’를 표준어로 삼게 된 겁니다.


칠칠맞은 사람이 됩시다

남의 꼼꼼하지 못한 일 처리를 탓하면서 “너는 왜 그리 칠칠하냐”라거나 “칠칠맞게 어디서 잃어버린 거야” 따위로 말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칠칠하다’는 해서 좋고, 들어서 좋은 말입니다. “푸

성귀가 길차다” “나무, 풀, 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 “주접이 들지 아니하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 등의 뜻을 지녔거든요. 따라서 남에게 빈정거리거나, 남의 잘못을 야단칠 때에는 ‘칠칠하지 못하다’라거나 ‘칠칠찮다(칠칠하지 않다)’ 따위의 표현을 써야 합니다. 또 남으로부터 ‘칠칠맞다’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불같이 화낼 것이 아니라 환한 얼굴로 고맙다고 인사할 일입니다.


우리 산과 들에는 연산홍이 피지 않는다

봄이면 우리 산과 들은 마치 불이라도 난 듯 붉게 물듭니다. 그때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철쭉이죠. 우리가 보통 철쭉이라고 부르는 꽃에는 몇 종류가 있습니다. 흔히들 ‘연산홍’이라고 부르는 꽃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연산홍’은 바른말이 아닙니다. 한때 네이버의 백과사전도 ‘영산홍(연산홍)’으로 적어서 마치 ‘영산홍’과 ‘연산홍’이 모두 바른말인 것처럼 다뤄 놓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문이나 사보의 우리말 칼럼에 몇 자 적었지요. 그 때문인지 지금은 ‘영산홍’만 다루고 있답니다.


맞습니다. ‘영산홍’만 표준어입니다. 말 그대로 “산을 붉게 비치게 한다”라는 한자말 ‘영산홍’이 이 꽃의 진짜 이름인 거죠. 이 꽃을 ‘왜철쭉'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아울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은 ’참꽃‘으로 부르지만, 독성이 있어 사람이 먹으면 큰 탈이 나는 철쭉은 ‘개꽃’으로 부른다는 사실도 알아 두면 금쪽같은 우리말 상식이 될 듯합니다.


사루비아꽃은 일본에서만 핀다

사람들이 ‘연산홍’보다 더 많이 잘못 쓰는 꽃 이름으로는 ‘사루비아’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사루비아’가 어떤 꽃인지는 아시죠? 이 꽃 끄트머리에서 단물을 빨아 먹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과자 이름에도 있는 이 꽃의 바른 이름은 ‘사루비아’가 아니라 ‘샐비어’입니다. ‘샐비어’를 ‘사루비아’로 부르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본 사람들은 ‘ㄹ’ 받침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salvia’를 ‘샐비어’로 소리 내지 못하고, ‘사루비아’라고 발음하는 겁니다. a(사)-l(루)-vi(비)-a(아)로요. 그것을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대로 따라 했고, 그 소리가 우리에게 이어져 널리 퍼진 말이 사루비아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ㄹ’ 받침을 소리 내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충분히 ‘샐비어’라고 할 수 있는데도 일본 발음을 그대로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우리말 고수’가 되려면 알아야 할 우리말

‘뭘’로 하지 말고 ‘뭐’로 하자

“매일 해 먹는 반찬, 오늘은 뭘로 할까” “나 를 대체 뭘로 보고 그러는 겁니까” “이름을 뭘로 지을까” 등은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표현일 겁니다. 그렇죠? 하지만 이들 표현 속에 들어 있는 ‘뭘로’는 바른 표기가 아닙니다. 입에서는 참 자연스럽지만, 어법에는 크게 어긋나는 말이죠. 왜냐고요?


우선 ‘뭘’은 “말하는 이가 한 행동에 대해 상대편이 칭찬하거나 감사할 때에 그것이 대단치 않음을 겸손하게 나타내는 말”로 쓰입니다. “제가 뭘···” 하는 식으로요. 이때의 ‘뭘’은 감탄사입니다. 따라서 위의 예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뭘’은 또 ‘무엇을’의 준말로도 쓰입니다. “뭘 잘했다고 말대꾸야” ‘뭘 보고 있니?“ 따위처럼 쓰이는 거죠.


자, 그러면 위 예문 속의 ‘뭘’을 ‘무엇을’로 바꿔 보겠습니다. ”매일 해 먹는 반찬, 오늘은 무엇을로 할까“ ”나를 대체 무엇을로 보고 그러는 겁니까“ “이름을 무엇을로 지을까” 이게 말이 되나요? 안 되죠?


그러면 ‘뭘로’는 뭐로 써야 할까요? 제가 방금 얘기했잖아요. ‘뭐로’라고요. ‘뭐’가 ‘무엇’이나 ‘무어’의 준말이거든요. “매일 해 먹는 반찬, 오늘은 무어로(무엇으로) 할까” “나를 대체 무어로(무엇으로) 보고 그러는 겁니까” “이름을 무어로(무엇으로) 지을까” 등은 아주 자연스럽죠?


절대로 개거품 물지 마라

‘개거품’은 꽤 널리 쓰이는 말입니다. ‘개고생’ ‘개떡’ ‘개망신’ 등 좋지 않은 말이나 상스러운 말 중에

‘개’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다 보니, ‘개거품’이 바른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 몹시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거품 같은 침”을 일컫는 말은 ‘게거품’이 바른말입니다. 게는 위험에 처하거나 주변 환경이 바뀌면 입에서 뽀글뽀글 거품을 뿜습니다. 사람도 흥분하면 입가에 침이 잔뜩 고이지요. 그래서 생겨난 말이 ‘게거품(을) 물다’입니다. 여기서 ‘개가 입가에 잔뜩 침을 물고 으르렁거릴 때는 개거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개거품’은 쓸 수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사람이나 동물이 몹시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거품 같은 침을 ‘게거품’으로 밝히고 있기도 하지만, 만약 ‘개거품’을 인정하면 ‘사자거품’ ‘말거품’ ‘소거품’이라는 말도 가능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 입에 문 것은 ‘사람거품’이 되겠죠. 그렇게 쓸 수는 없지 않을까요? 다만 “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라고 쓰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를 “개가 입에 개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로 써서는 안 됩니다. 이때도 개가 문 것은 ‘게거품’입니다.



헷갈리는 말 가려 써야 뜻이 통한다

햇빛은 눈부시고, 햇볕은 뜨겁고

‘햇빛’과 ‘햇볕’은 의미가 완전히 다른 말 입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구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 로 많습니다. 햇빛은 말 그대로 “해의 빛”, 곧 광선입니다. 햇빛은 또 ‘살아생전에 그의 소설은 햇빛을 보지 못했다’처럼 “세상에 알려져 칭송받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이와 달리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기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쉴 새 없이 비가 내리다 잠깐 햇볕이 비쳤다” “햇볕을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따위 표현에서 쓴 ‘햇볕’은 ‘햇빛’을 잘못 쓴 겁니다. 또 “뜨거운 햇빛과 거친 야외환경으로 인해 부상의 위험도 증가한다” “강렬히 내리쬐는 햇빛의 열기를 피해 그늘로 숨었다” 등의 표현에서 쓰인 햇빛은 ‘햇볕’을 잘못 쓴 거고요. 밝기를 뜻할 때는 햇빛, 온기를 나타낼 때는 햇볕인 거죠.


인생 말년은 피하고 만년을 즐기세요

“내가 인생 말년에 이 무슨 고생이야” 따위 표현에서 보이는 ‘말년’은 누구나 흔히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 말은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말년’은 “일생의 마지막 무렵이나 어떤 시기의 마지막 몇 해 동안”을 뜻하는 말로, “내가 인생 말년에 이 무슨 고생이냐”라고 하면 자신이 몇 년 안에 죽게 된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는 80세도 청춘인데, 60~70대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주 많이 이른 감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오래오래 ‘인생 말년’ 같은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인생 말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늘 ‘인생 만년’이기를 바랍니다.


‘왠지’만 왠지 모르게 ‘왠’이다

‘왠걸’이 맞을까요? ‘웬걸’이 맞을까요? 또 ‘왠 녀석이냐’로 써야 할까요? 아니면 ‘원 녀석이냐’로 써야 할까요? 헷갈리시죠? 그러나 ‘왠’과 ‘웬’을 정확히 구분하는 법을 아는 데는 딱 10초면 충분합니다. 다음 글을 읽으면 됩니다. 정말입니다.


“‘왠지’만 ‘왠’으로 적고, 나머지는 무조건 ‘웬’으로 적는다!”


진짜로 이것만 알면 됩니다. ‘웬일’ ‘웬 놈’ ‘웬만큼’ ‘웬 사람이 그리도 많아’ 등 ‘왠지’만 빼놓고 모두 ‘웬’으로 쓰면 됩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그렇게 쓰면 그만입니다.


선친은 내 아버지, 선대인은 남의 아버지

국어사전들은 ‘아버님’을 “아버지의 높임말”로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무 때나 ‘아버지’와 ‘아버님’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사실 여러분도 그렇게 쓰시고 있죠? 아무렇게나….


물론 제가 제 아버지께 쓸 때는 ‘아버지’를 쓰든 ‘아버님’을 쓰든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제 아버지께 “아버님, 진지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지 않고, 화법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을 써서는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남에게 얘기하면서 “우리 아버님...”이라고 높이는 경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남에게 자기 가족을 높여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 아들을 ‘가돈(家)’ ‘돈아(豚兒)’라며 돼지에 비유했겠습니까.


그런 예법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아버지가 나에게는 누구보다 귀하고 높으신 분이지만, 남에게 ‘아버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거죠. 그러니까 남에게 자기 부모를 얘기할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해야지, ‘아버님’과 ‘어머님’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에는 “저희 어머님(아버님)께서는 생전에…”처럼 아버님과 어머님으로 높여 부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와 관련해 흔히 잘못 쓰는 말에는 ‘선친’도 있습니다.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간혹 “선친께서는 참 훌륭하셨지요. 자네도 아버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야 하네” 따위로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런 때는 절대 ‘선친’을 쓰면 안 됩니다. 선친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그렇다면 “남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선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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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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