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9월 4주차

BOOK SUMMARY
 인문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저자 조동범
출판 도마뱀
출간 2021.01
상징 코드로 읽는 서울 인문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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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근대의 시작과 근대도시 경성

한양, 경성, 서울 그리하여 근대의 시작

우리나라가 근대적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지 고작 10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100년 전이라고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100년이라고 해봐야 고작 한 사람의 생애에 불과한,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다. 그런데 10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삶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근대가 시작된 이후 100여 년간 겪었던 변화는 그 이전 수백 년 동안 경험했던 변화보다 훨씬 극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만큼 우리의 삶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리의 근대적 시간은 역동적으로 흘러가며 순식간에 우리의 삶을 낯선 곳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근대의 체험은 슬픔과 비극의 고통 속에 전개된 것이라는 점에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조선 이후에 등장한 대한제국은 우리 스스로 근대적 세계를 만들기도 전에 몰락했고, 우리는 일제강점기라는 비극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리에게 근대는 내부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 비극적 강제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고통과 슬픔의 시작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사회 내부와 시민들의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진행된 서구의 근대화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일제강점기라는 외부적 요인과 함께 갑작스럽게 펼쳐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시민 계급이 형성되는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적 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우리가 마주하게 된 근대적 세계가 더 비극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제강점기와 함께 전개된 근대적 세계는 비극에 비극이 덧씌워진 것이었다. 근대적 세계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비극적인 세계를 구축한다. 그리하여 근대적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연과 결별한 채 물질적 욕망만 남은 세계로 추락하고 만다. 근대 또는 현대성의 세계는 그런 점에서 애초에 비극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라는 커다란 비극을 통해 근대적 세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근대도시 또는 근대화의 과정은 비극 이외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그야말로 근대는 우리가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낯설고 신기한 것이었으며 그간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농경 중심 사회에서 맞닥뜨린 근대적 도시 공간과 근대적 삶은 지금까지의 삶을 온전히 부정하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더구나 조선왕조와 신분제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은 단순한 사회적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믿고 있었던 모든 세계가 무너지는 것이었으며, 자기 자신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혼란과 고통이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근대의 경험은 근대 이전의 삶과 결별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근대적 세계의 새로움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에게 새롭고 신기한 것이었다. 서양식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고 전기로 불을 밝힌 경성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경이로움이었다. 서구식 도시가 건설되고 서구식 삶의 형태가 전해지면서 ‘조선인’의 삶은 불과 십 수 년 만에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식민지 조선의 비극 속에서 탄생한 근대도시 경성은 좌절과 고통이 눈앞에 펼쳐진 공간임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탈출구이기도 했다.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한 그대성의 세계는 비극을 바탕으로 한 세계이지만 그것은 비극이면서 동시에 희망이라는 양가적 세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도시인 경성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대표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수도 경성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당시 여러 지역에서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됐지만 근대적 면모를 온전히 갖춘 곳은 경성이 유일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야기할 때 경성의 근대적 경험과 변화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경성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것은 20세기 초반의 근대적 세계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것이며 이러한 흥미로움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전 국토의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지방자치시대가 도래했지만 서울은 여전히 국방, 외교,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화의 최초의 공간이자 아직까지 그 정점에 있는 서울을 탐문하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다. 비극적 서울이든 아니든, 과거의 경성이든 오늘의 서울이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근대를 관통해온 우리의 삶과 세계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경성을 떠올린다. 경성은 우리에게 쇠락해가는 조국의 슬픈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경성은 전근대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최초의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경성의 거리를 통해 지금의 서울을 발견하고, 서울의 거리를 걸으며 과거의 흔적을 찾는 일은 흥미진진하면서 동시에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과거의 경성과 현재의 서울을 걷고, 읽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세계의 이면을 파악하는 흥미로운 인문학의 장이다.



경성, 서울, SEOUL

종로3가, 근대사를 관통하는 고단한 삶의 흔적

서울 거리 중에서 종로3가만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도 드물 것이다. 종로3가는 다양한 이슈와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 삶의 다채로운 지점을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이런 종로3가의 모습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그저 가십으로 소비하거나 가볍게 보아 넘기는 경우가 많다.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지역적 특성은 가십과 호기심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노인 문제 역시 커다란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종로3가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와 연결된, 근대사의 중요한 공간이며 상징이다.


종로3가가 한국전쟁 이후 60년대 후반까지 사창가였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요즘 세대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나 70년대 우리나라 소설 속에 ‘종삼’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종삼’은 종로3가 지역의 사창가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사창가로서 ‘종삼’이 자리한 곳은 지리적으로 특이한 위치였다. 일반적으로 사창가가 기차역 부근이나 군부대 인근에 형성되는데 반해, ‘종삼’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 사창가와 차이가 있다. ‘종삼’은 1968년 9월 27일부터 10월 5일까지 있었던 일명 ‘나비작전’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성매매 지역으로서의 ‘종삼’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1960-70년대 종로3가 지역에는 기생집이 즐비했다. 대한제국의 패망과 함께 궁중의 숙수를 비롯한 이들이 이 지역에 기생집을 차려 영업했다. 또한 국악 관련 업체 역시 종로3가 지역에 밀집했는데, 이러한 지역적 특성으로 이 지역에 한복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종로3가를 걷다가 다른 상점과 어울리지 않게 자리 잡고 있는 한복집을 마주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래서다. 또한 기생집은 한국 정치사의 어두운 이면과 연관이 있기도 하거니와 기생관광이라는 오욕의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종로3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소수자 관련 이슈이다. 종로 3가에는 오래전부터 그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이며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업소가 있고, 특히 주말이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모임이나 만남이 자주 열리곤 한다. 성소수자들은 비교적 개발이 덜 된 이곳에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했는데, 그 역사가 짧지 않은 만큼 종로3가를 논할 때 이들을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 하지만 종로3가 익선동 인근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이들 커뮤니티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익선동 지역이 주목받으며 결성된 지역 협의체 구성원에서 성소수자가 배제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종로3가는 오래도록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활동하던 곳인 만큼, 이들은 당연히 종로3가의 주요 구성원이다. 이들이 이곳에서 밀려나거나 배재되지 않고 공존하게 되기를 바란다.


또한 종로3가는 노인 문제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노년 세대의 경제적 궁핍함과 여가를 즐길 만한 환경의 부재, 그리고 노년의 성(性)에 이르기까지 종로3가는 우리나라 노인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있으며,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 많은 만큼 다른 지역에 비해 물가가 낮은 편이다.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노년의 적적함을 달래기도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노인 문화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이 바로 종로3가이다.


종로3가는 이처럼 다양한 문제가 내재해 있는 지역이다. 그것은 때로 역사의 문제와 결부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이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기도 한다. 종로3가는 단순히 지역이라는 공간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여러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수자와 여성의 문제에 대해 반성적 태도를 갖게 하기도 하고 노인 문제나 젠트리피케이션, 가난의 문제까지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곳이 단순히 공간에 머물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간에는 삶이 담기기 마련이고, 삶이 담긴 공간은 우리 삶고 세계의 다양한 문제와 연결된다. 그동안 종로3가를 무심히 지나쳤다면 다음번에는 종로3가 곳곳에 숨어 있는 의미와 상징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그렇다며 공간은 의미가 되어 우리 앞에 놀라운 이야기를 펼쳐놓을 것이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이해이고 철학이며 슬픔, 회한, 고통 등을 드러내는 삶이자 상징이다. 그리하여 종로3가의 골목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세계가 되어 다가올 것이다.


서울이라는 거리에서

이태원, 다국적 세계의 진짜 ‘우리’

이태원은 다국적 인종과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그곳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해방구이자, 다채로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공간이다. 이제 이태원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도 자주 가는 힙타운이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특징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대 이후, 2010년대이다. 그전까지는 외국인들이 주로 모이는 지역적 특성이 강했다. 그때도 내국인들의 출입이 적지 않았지만 대중적인 힙타운은 아니었다. 2000년대 이전의 이태원은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이태원과 다르다. 특히 미국부대의 이전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태원 유동 인구의 상당수가 미군이었다. 그러나 미군부대의 이전이 시작되고 난 뒤에는 한국 거주 외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내국인의 유입이 빠르게 늘었다. 이태원이 지금과 같은 대중적 ‘힙타운’으로 바뀐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태원은 시기별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데, 조선시대 중기부터 일제강점기인 1936년까지, 해방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그리고 2010년대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태원은 조선 중기부터 1936년까지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당시 한양(경성)에는 홍제내리, 수철리, 신사리, 미아리, 이태원 등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일제의 도시 개발과 군사기지 설치에 따라 뚝섬 면목리와 망우리, 교문리에 공동묘지를 조성하여 이장하게 되었다.


근대 이전의 이태원은 역원(驛院)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태원이라는 명칭은 ‘원(院)’을 지역의 이름으로 사용한 곳들이 그러하듯 여행객들의 숙소인 역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배나무가 많다’는 의미인 이태(梨泰)에 ‘원(院)’을 더한 것이다. 이태원에는 실제로 배나무가 많았다. 이태원 이외에 ‘원(院)’을 지역 이름에 사용한 인덕원, 장호원, 조치원, 사리원 역시 역원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그런데 이태원이라는 명칭에 대한 또 다른 설이 있다. ‘다른 태반’이라는 의미에서 이태원(異胎圓)으로 불렸다는 설인데 임진왜란 중에 일본 군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과 이들이 낳은 아이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에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이 살던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명칭이다. 이외에 일제강점기 일본인 전용 거주지인 ‘이타인(異他人)’이라는 명칭이 다국적 거리인 오늘날의 이태원과 오버랩되며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해방 이후에 형성된 이태원의 주요 이미지는 미군기지와 연관된 것이 주를 이룬다.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군사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곳에는 조선군의 병참기지가 있었으며 청나라의 군대가 주둔한 적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주둔했는데, 주조선일본군 사령부가 이곳에 있었다. 이후 해방이 되면서 미군이 일본군 사령부를 접수하여 보병7사단을 주둔시켰다가 1949년 철수했는데, 한국전쟁 이후에 다신 주둔하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2010년대 이후 또 한 번의 변화를 겪는다. 미군을 비롯하여 외국인들이 주를 이루던 이태원은 외국인은 물론이고 내국인에게도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군기지 이전과 맞물리며 이태원을 대중적인 힙타운으로 주목받게 했다. 이태원은 2010년대 이후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한 성장과 침체를 겪으며 많은 부침이 있었지만, 기지촌의 이미지를 벗고 개성 있는 지역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처럼 이태원은 단순히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으로 인식되는 지역이다. 또한 국경이 사라진 다국적 시대의 단면을 살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태원은 외국인이 집중적으로 모이는 곳이라는 점에서 서울의 다른 곳과 다른 특별함을 지닌다. 물로 서래마을처럼 외국인이 집단으로 거주하거나 모이는 지역이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대부분 특정 국가나 대륙 사람들이기 때문에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이태원은 국가와 민족, 국적과 인종의 다양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우리는 오랫동안 단일 민족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민족적 단일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는 한때 단일 민족임을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태원 인근의 미군기지는 주권 국가인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 군대라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단일 민족으로서의 ‘우리’가 아닌, 세계를 품은 ‘우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을 향해 나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울이라는 새로움과 감각의 거리

강남, 욕망의 탄생과 소비되는 거리에서

욕망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욕망은 단순히 무엇인가를 갖고 싶은 욕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 역시 욕망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단순히 무엇을 갖고 싶은 소박한 마음만으로 근대 이후, 괴물로 변해버린 욕망을 설명할 수는 없다. 욕망의 본질적인 목적은 결핍의 충족이 아니다. 결핍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이며, 그것 자체를 욕망이라고 볼 수 없다. 소유에 대한 욕구라는 점에서 결핍에 대한 충족과 욕망은 비슷한 면이 있지만 그 둘은 같지 않다. 결핍을 충족하고자 하는 것과 욕망은 타자에 대한 태도에서 다르다.


결핍을 충족하고자 하는 마음은 자신의 내부를 향해 발현되는 데 반해 욕망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욕망은 타자와의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 타자를 배재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욕망은 배타성을 지닌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욕망은 단순히 ‘나’만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 공동체 외부에 있는 이들을 배척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것들의 특별함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와 같은 배타성은 외부자의 반감을 사기 마련이다. 하지만 외부자 역시 그들의 공동체에 들어서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을 때 다른 이들을 타자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강남이라는 공간은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상징 이미지를 갖는다. 이렇게 차별화된 상징 이미지는 강남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고, 다른 지역을 타자화시킴으로써 강남만의 성역을 구축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강남 거주민들을 배타적 특성을 지닌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강남 거주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강남이라는 상징이 우리 사회에 작동하는 배타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러한 배타성이 전적으로 강남 주민들 탓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강남은 해당 주민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사회적 구조 속에서 배타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강남에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은 돈이라는 물질적 가치를 통해 간단히 그러나 결코 쉽지 않게 획득할 수 있다. 높은 주택 가격 등의 요인이 외부인의 강남 유입을 어렵게 하기 때문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물질적 조건만 해결되면 누구나 손쉽게 진입할 수 있기도 하다. 물질적 기반을 바탕으로 형성된 강남 공동체는 이제 사교육,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자신들만의 성역을 더욱 굳건히 다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통해 강남이라는 부와 권력은 외부와의 차이를 더욱 공고히 한다. 그리하여 강남은 거대한 성벽을 두른,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요새가 되어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남 공동체는 더욱 공고해진다.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되는 학연과 지연은 또 다른 권력이 되어 강남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차이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 역시 막강한 힘이 되어 타자와의 거리를 더욱 벌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강남 역시 이러한 차별 속에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강남이 농경지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강남은 상습 침수 지역으로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던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1960년대부터 강남 개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해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 강남 개발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탓도 있지만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여 도시 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강남 개발의 이면에는 서울 이외 지역에 대한 배타적 의식도 자리하고 있었다. 1966년 서울시장이 된 윤치영은 “서울 사람은 서울에 살고, 시골 사람은 시골에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인구 100만 명 정도의 서울이 진정한 서울”이었던 것이다. 당시 강남은 서울 이외 지역으로 치부되는 곳이었다. 강남 개발은 어쩌면 “사대문 중심의 ‘서울 본토’ 안으로 밀려들어온 이방인들을 쫓아내기 위한 좋은 방안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강남은 이제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에서 나아가 부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만큼 많은 이들이 타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강남의 내부로 진입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강남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남의 밖에 놓인 채 타자화되어 버린다. 강남의 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신분이 되어버린 세계 속에서 즉물적 욕망을 성취하는 것이 이제 우리 삶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느낌마저 든다. 오늘날 사람들은 욕망을 성취하여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성취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통해 다른 이들을 타자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완성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이 욕망으로 대체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강남은 이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계이며 우리의 욕망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강남은 이제 우리 안에 내재한 즉물적 욕망을 상징화한 기호이자 괴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서울, 그리고 또 다른 도시 이야기

신도시, 서울을 둘러싼 새로운 욕망과 계급

아파트가 주거의 보편적 공간이 된 것이 신도시 건설 때문은 아니지만, 신도시 건설 이후에 도시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확대되었다. 신도시 건설은 기존 도시 안에 소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던 양상에서 벗어나 도시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아파트 건설과 달랐다. 전체가 거대한 아파트로 이루어진 도시는 우리 삶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오며 도시의 모습을 바꾸었다. 그런데 신도시는 기존의 구도심과 분리되어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건설됨으로써 서울에 종속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구도심을 타자화함으로써 신도시는 계급화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신도시와 아파트는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때로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계습을 노골화하기도 한다.


집이 단순한 주거 공간의 지위를 벗어나 욕망 자체가 된 것은 80년대 이후 아파트를 위주로 한 주택개발사업과 같은 관련이 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개발된 도시는 깨끗하고 쾌적하며 편리한 생활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편리하고 쾌적한 도시가 갖춘 생활 기반 시설은 그것의 편의성에 비례하여 우리가 사는 공간에 물질적 가치를 부여한다. 아파트는 대체적으로 그런 편의 시설 인근에 건설되기 마련이다. 개발의 중심이 된 도시 공간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아파트와 도시의 이러한 특징은 돈이라는 욕망으로 교환 가능한 것이다. 특히 아파트는 획일화된 면적과 구조를 통해 더 쉽게 가격이 매겨지는 특성을 갖는다. 집은 이제 더 이상 독립적인 개성과 특징을 지닌 공간이 아니다. 아파트라는 형태로 계량화된 집은 도시의 편의 시설과 결합하여 물질적 판단 기준의 근거가 된다. 그리하여 이렇게 계량화된 가치는 더 값비싼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이러한 집과 도시는 욕망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욕망의 확대 한가운데 1기 신도시 개발이 있다. 1기 신도시 이전에도 아파트는 익숙한 삶의 정주 공간이었지만 도시 규모에 이르는 대규모 개발 사업은 아파트가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아파트는 단지 규모에서 도시 규모의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이후에 우리나라는 수많은 신도시급 아파트 단지가 건설됨으로써 전 국토의 아파트 도시화가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런 욕망의 한가운데에는 끊임없이 타자를 배제하고 특정 집단을 계급화하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서울은 서울이 아닌 곳과 차별화된 지위를 갖고 싶어 하고, 수도권은 지방과의 차이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신도시 역시 마찬가지여서 같은 행정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신도시 이외 지역을 타자화하여 배제하려고 한다. 신도시는 마치 계급처럼 타자를 배제하며 신도시 공동체를 형성한다. 신도시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어느 곳에 살고 있냐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도시가 속한 도시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성남이 아니라 분당에 산다고 대답하며, 고양이 아니라 일산, 안양이 아닌 평촌, 군포가 아닌 산본, 부천이 아닌 중동에 산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에는 기존 행정구역과 차별화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숨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신도시의 욕망은 ‘중앙’인 서울을 향한다.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개발된 도시인만큼 신도시는 서울을 지향할 뿐만 아니라 확장된 서울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서울의 변방으로서의 특성은 신도시뿐만 아니라 위성도시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신도시와 위성도시의 운명은 비슷하다. 서울 인근의 도시는 자체적인 문화와 경제 기반을 갖지 못한 채 서울의 공장 역할이나 저렴한 주거지 역할을 해왔다. ‘위성도시’라는 말은 얼마나 슬픈 단어인가. 이 말을 들을 때면 이곳에서의 삶은 결코 중앙이 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서울의 변방에서 위성처럼 떠도는 도시. ‘위성도시’라는 말은 지극히 서울 중심적인 사고의 산물이며 서울 이외의 지역을 타자화하여 배제하는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라는 명칭 역시 서울 중심적인 사고의 나쁜 사례이다. 최근 들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로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라는 명칭은 이 도로가 지나가는 성남, 안양, 군포, 부천, 시흥, 인천, 김포, 고양, 의정부, 구리, 남양주, 하남 등의 도시를 서울의 외곽이라고 규정짓는 것만 같다. 하지만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의 수도권이라는 말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존 명칭의 문제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없다. 서울의 외곽을 순환하는 도로라니······. 오래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변방에 살고 있는 변방의 삶인 듯싶어 씁쓸해지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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