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1월 3주차

BOOK SUMMARY
 인문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저자 윤영호
출판 안타레스
출간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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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잘 죽는 것이 왜 중요한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 하지만 인류는 인간에게 동물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기대해왔다. 그것이 양적 차이든 질적 차이든, 변증법적으로만 설명 가능한 것이든, 전우주적 절대자의 관점에서든 간에 말이다.


그러나 인간도 생물학적으로는 동물일 뿐이다. 결국 죽는다. 약 45억 년 동안 존재한 지구에서 1세기보다 짧은 시간을 살다 갈 뿐이며, 지구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


어차피 죽으니 삶은 무의미한가?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인간은 실수도 많이 하고 배우면서 성장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죄도 많이 지었고 후회스러운 일도 많이 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잘한 일도 있고 후회스러운 일도 있다. 나도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후회할 일을 저지르지 않고자 애쓰며 살 따름이다.


인간은 동물로 태어나지만, 사는 동안 끊임없이 완벽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나아가 신을 닮고 싶은 마음에 모든 생명을 사랑으로 대하고 온정을 베풀기도 한다. 그렇게 삶을 만들어가고 싶어 하는 존재도 인간이다. 불완전하기에 완전을 꿈꾸고 부족하기에 채우려고 애쓴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실수투성이인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오늘을 산다. 다시 일어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나는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믿는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도 다시 태어나고 죽는 과정을 반복한다. 예를 들어 적혈구는 골수조직에서 생산돼 성숙해지면 혈액으로 이동해서 산소를 우리 몸 곳곳에 운반하는 역할을 하다가 노화하면 간과 비장 등에서 망상내피계 세포에 침식된다. 그렇게 약 120일을 살다 죽는다. 한 세포가 생애를 마치고 죽은 자리에 새로운 세포가 자리 잡는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에서도 탄생과 죽음의 순환이 그대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언젠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내 역할을 하면서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름일까? 의미일까?


우리는 자신을 위해 열심히 일한 탄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세포에 이름을 붙여주거나 불러준 적도 없다. 기억조차 하지 않고 의미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몰라준다 해도 세포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세포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지만, 이들이 묵언의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낀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그 증거다.


아무리 실수투성이의 후회스러운 삶이라도 우리 스스로 세상에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지탱시키고 있기에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삶을 살 자격을 갖고 있다.



누구에게나 잘 죽을 권리가 있다

어느 날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80대인 부친께서 그동안 암으로 치료를 받아왔는데, 최근 주치의로부터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아버지께는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내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께 직접 여쭐 수도 없는 상황인 데다, 괜히 말씀드렸다가 충격을 받고 치료를 포기하시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가족의 입장에서는 진실을 알려야 하는지, 알린다면 어떻게 알릴 것인지, 남은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진실을 알려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자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삶을 잘 마무리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아름다운 마무리, 즉 웰다잉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막아서는 안 된다.


헛된 희망보다 남아 있는 삶의 진실에

진실을 알리는 문제에 관해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된 때는 약 60년 전이다. 1961년 미국의 오켄 교수가 219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그 사실을 알릴 것인가?” 라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에서 당시 의사 대부분은 말기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반대했다. 그런데 1979년 노박 연구팀이 의사 2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반대 결과가 나왔다. 의사 대부분이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20여 년 만에 관점이 완전히 바뀌게 됐을까?


첫 번째 이유는 1969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의 인터뷰 결과를 정리한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출간 즉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사람들이 임종 과정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시기에 소비자중심주의가 부각하면서 의료계에서도 환자의 권리를 강조하게 됐다는 데 있다. 당사자(의료 소비자)인 환자 자신이 정확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세 번째 이유는 환자의 병이 치료될 수 없는 시점이라도 의사라면 마땅히 통증 완화 노력과 더불어 인간적 돌봄을 계속 제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의료법 개정을 통해 말기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설명하지 않을 경우 도덕적 책임뿐 아니라 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게 된 것도 크게 작용했다.


2004년 나는 그동안 380명의 암 환자와 281명의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말기 통보에 대한 태도 연구 결과를 종합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말기로 진단되면 의사가 즉시 알려야 한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환자에게 인생을 정리할 기회를 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남은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결과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동양 정서상 말기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조사해보니 환자 스스로 알고 싶어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동양인들은 보수적이어서 죽음을 거론하는 것을 터부시한다는 서양인들의 선입견도 이로 인해 무너졌다.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국립암센터와 서울대학교병원 등 국내 12개 대형 병원의 말기 환자 481명과 가족 381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했더니, 환자 10명 중 4명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는 환자도 절반만이 의사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었고, 나머지는 가족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환자 4명 중 1명은 상태가 악화되면서 자기 혼자 추측해서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우리 연구팀은 의사나 가족이 사실을 알려준 환자들과 스스로 짐작해서 알게 된 환자들의 ‘삶의 질’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환자 자신이 짐작해서 알게 된 경우가 가장 좋지 않았다. 거짓된 희망은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죽음을 전혀 준비하지 못한 채, 삶을 마무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죽음을 직면토록 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다. 아픈 것도 슬프고 억울한 일인데 시간 낭비까지 해야 할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남은 삶을 잘 마무리함으로써 삶을 완성할 권리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정신적 유산을 남기고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진실은 모두에게 두려운 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삶을 마무리하고 이 세상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고마웠고, 행복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미안했다, 용서해라”는 말을 해야 했을 사람들도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위한 첫걸음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두려운 진실일지라도 결국 그 진실이 모두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좋은 죽음 그리고 의미 있는 삶

적당한 세월 동안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건강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의미 있고 멋진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죽음이나 멋진 죽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추하고 불행하게 죽는가? 그렇지 않다. 살아온 삶을 잘 정리하고 겸허히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진 죽음이다. 누구나 그러기를 바라지 않을까? 그러니 모두가 그런 죽음을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잘 죽고 싶은 것도 인간의 욕망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생존-안전-소속-인정-자아실현’이 그것이다. 먹고 자고 입는 등의 ‘생존’ 욕구와 추위 및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안전’ 욕구는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이며, 친구를 사귀고 가정을 이루고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소속’ 욕구는 사회적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셋은 모두 ‘결핍’에 대한 욕구다. 한마디로 따듯한 집에서 배불리 먹고 가족과 오순도순 살면서 사회생활도 잘하고 싶은 욕구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먹고, 쉬고, 만나고, 인정받으며 살았으나 자신의 욕구가 수단인지 목적인지 모르고 살아왔다면 그 삶은 무엇을 위한 삶일까? 소유보다 존재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꿈꾸게 마련이다. 삶에서 목표를 두고 그것에 매진한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와 자신을 완성하고 싶은 ‘자아실현’ 욕구는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 ‘성장’ 하려는 욕구다. 특히 ‘자아실현’ 욕구는 인간 욕구의 정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욕구를 더 추가할 필요가 있다. 다름 아닌 ‘기여’ 욕구다. 세상에 이바지하는 인간, 자신의 삶을 나눠주는 존재야말로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인생이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시간을 타인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나는 그 나눔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지며 소유의 삶인지 존재의 삶인지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내 삶의 마무리를 내가 결정한다는 것

2018년 5월 10일,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안락사’, 정확히 말하면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을 통해 104세의 호주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사망했다. 호주에서는 의사조력자살이 불법이기 때문에 스위스로 건너가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후 어떤 추모 행사나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시신은 해부용으로 기증하게 했다. 구달 박사는 의료진이 마련한 신경안정제가 함유된 주사액이 정맥에 주입되도록 밸브를 스스로 열었다. 죽기 직전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들었다.


생태학의 권위자인 구달 박사는 왕성한 연구와 저작 활동을 하면서 90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지만, 100세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건강이 악화했다. 구달 박사는 자신이 말한 대로 ‘추하게 늙어가기’ 보다 행복한 마무리를 택했다. 그의 선택에 전 세계 유수 언론이 큰 관심을 보였고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

회복 불능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논란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어나면서 촉발됐다.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가 아내의 요구에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한 뒤 사망한 사건이다. 뇌수술로 혈종을 제거했지만 뇌부종 때문에 자가 호흡이 되지 않아 중환자실로 옮겨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치료를 부담할 능력이 없다며 퇴원을 요구했다.


그런데 구급차로 환자를 자택으로 이송해 인공호흡기를 떼자 이내 환자는 사망했다. 이에 환자의 여동생이 아내와 의료진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재판부는 아내에게는 살인죄를, 보라매병원 의료진에는 살인방조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이후 의사들 사이에선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극도로 꺼리는 풍조가 생겼다.


논란이 계속되자 의료계는 회복 불능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논의를 진했고, 2001년 11월 대한의사협회가 의사윤리지침 제30조를 마련했다. 적극적 안락사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도 회복 불능 환자의 진료 중단은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는 제한돼 있으며, 중단 대상과 시기도 의학적 판단 절차에 따라 엄격히 결정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안락사 허용과 혼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분명히 말하자면 아직 우리나라에서 안락사, 즉 의사조력자살은 허용되지 않는다.


안락사란 인간 생명이 회생 불가능하고 죽음에 이른다고 판단될 때 이를 인위적으로 단축해 사망케 하는 행위다. 안락사의 본질은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긴다는 데 있다. 네덜란드 등 몇 개 국가에서는 불가역적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지속할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해 이를 허용하고 있다.


의사조력자살은 의식이 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의 수단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을 돕는 행위다. 스위스에서 허용하는 안락사가 의사조력자살이다. 적극적인 안락사와 달리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행위이므로 일종의 자살이라고 할 수 있다.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도 있다. 지금도 일부 언론이 이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해 사용한다. 소극적 안락사란 임종이 임박하지 않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적인 죽음 이전에 사망케 하는 행위다. 반면 존엄사란 말기 환자의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앞두고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을 단축하지만, 존엄사는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등 대부분 국가가 허용하는 것도 존엄사이지 소극적 안락사가 아니다.


삶을 마무리하는 다양한 선택들

나는 국립암센터에서 일하던 2011년 7월에 암 환자 1,242명, 암 환자 가족 1,289명, 암 전문의 303명, 일반인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말기 환자의 삶의 마지막 치료 선택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 ‘적극적인 통증 조절’, ‘소극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 ‘의사조력자살’ 등 다섯 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대다수 집안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과 ‘적극적인 통증 조절’에 대해서는 찬성한 반면,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거나 소극적이었다. 고소득층은 ‘무의미한 연명의료’와 ‘적극적인 통증 조절’에 찬성하는 경향이 높았고, 고연령층, 남성, 무종교, 저학력 계층은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더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각 집단이 존엄한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결과였다.


‘아름다운 마무리’ 항목에서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는 것’을 선택한 집단은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을 통해 생명을 단축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고, ‘지금까지의 삶이 의미 있게 생각되는 것’을 선택한 집단은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의사조력자살 이후 서구에서 이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활발히 진행하고 법제화를 추진했듯이, 이미 ‘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더 늦기 전에 국가적 차원에서 공론화하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별을 돌보는 일, 국가가 나서야 할 때

1960년 초 우리나라 최초로 강릉 갈바리의원에 호스피스가 도입된 이후 약 40년이 지난 2002년 정부가 호스피스 법제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말기 환자의 통증 완화의료를 위한 전용 병상 설치를 의무화하고 소형 병원(10~30개 병상 보유)을 호스피스 전문 병원으로 전환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호스피스 전문 병원에 대해 건강보험 수가 인센티브를 부여해 일당 정액제를 원칙으로 해서 포괄수가제를 인정하는 등 호스피스 건강보험 수가를 신설하기로 했다.


이대로는 어려운 웰다잉

현재의 문제점에 관해 몇 가지 짚어보자. 첫째, 요양병원이나 가정에서 현대판 고려장처럼 의료윤리 및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둘째, 말기 암 환자 외에 다른 만성질환자는 임종이 임박한 시점을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말기가 예상되지 않더라도 그 전에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 사전돌봄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법안에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셋째, 현재 호스피스 병상과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결정을 통합한 법안이다. 법안 통과 후 1년 6개월이 지나 호스피스 법안이 시행되도록 호스피스에 선제적으로 투자해 시설과 인력을 갖춘 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부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2019년에 말기 암 환자의 24.3%와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간경화를 포함한 호스피스 대상자의 22.4%가 이용했다. 이는 2019년 사망자 수 29만 5,132명의 6.7%에 불과하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코로나19 여파로 호스피스 병동이 더 줄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은 환자들에게서 존엄한 죽음의 기회마저 앗아가고 있다. 호스피스 병상을 둔 병원 86곳 가운데 17곳이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차출됐기 때문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모자란 병동과 병상이 더 줄어들었다. 아무리 국가 재난 상황이라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니까”라는 가벼운 생각에 따른 것이라면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허상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넷째, 환자를 호스피스에 너무 늦게 보낸다. 현재 호스피스 제공 대상자는 기대 수명 6개월 이내의 말기 환자로 한정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용 기간이 평균 31.8일, 중앙값이 17일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평균 1개월 정도 이용하며 절반이 17일 내 사망한다는 것이다. 삶을 잘 마무리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 호스피스로 너무 늦게 보내서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호스피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환자에게 호스피스를 선택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암 환자들은 인생을 정리하고 의료진과 협력해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 불필요한 치료로 인한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예후를 알고 싶어 한다. 완화의료를 진행 암 단계부터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호스피스로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려면 병원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존엄한 죽음, 호스피스 투자가 답이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초고령 사회가 머지않았고, 급속한 사망자 증가에 따른 수요를 감당하려면 사회 공공재로서 호스피스에 대한 선제적 투자가 시급하다. 환자가 희망하고 의사가 의뢰하려고 해도 병원에 전문가가 없고 병실조차 없으니 아예 관심도 갖지 못하고 포기하기 일쑤다. 결국 치료 중심 병실에서 웰다잉 준비는 되지 않고 연명의료만 받거나 방치된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선진국이라 하기에 무색한 현실이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호스피스 기관을 새로 짓는 방법도 있다. 그 전에 장례식장을 호스피스 기관으로 개조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또한 설문 조사를 했더니 국민 80%가 찬성했다. 일반 병동을 호스피스 병동으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들의 절반만이라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고 전문팀이 일반 병실 입원 환자들을 방문토록 한다면 새로 짓지 않아도 된다. 기존 의료 인력을 전문 교육을 통해 재배치할 수 있다.


정부와 병원의 의지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호스피스 이용률을 현재 20%에서 5년 뒤 30%로 늘리겠단다. 예산 계획도 없다. 정부가 치중한 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24.3%)조차도 영국(95%), 미국(51%), 대만(30%)에 비해 턱없이 낮다. 호스피스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는 임종 돌봄의 질을 높일 뿐더러 의료비도 절감하는 이중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인프라는 자원봉사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라도 업무 자체가 단순 행정업무나 후원금 모금이 아닌 봉사 정신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보건복지부는 호스피스 전문 기관의 보조활동 인력을 양성하고자 40시간 교육을 한국호스피스ㆍ완화의료학회에 위탁하고 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더라도 그것이 호스피스정신과 철학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며, 간호ㆍ간병 통합 정책 방향과도 배치된다. 국민의 웰다잉을 위한 범부처적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삶의 마지막까지도 호스피스를 통해 평등하게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아름다운 삶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모든 한국인의 권리’임을 선언하는 멋진 나라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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