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주차 |
BOOK SUMMARY | ||
이제는 나로 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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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성열 출판 21세기북스 출간 202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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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 보기이제는 나로 살아야 한다 나를 아껴야 한다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기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중년기는 우리의 생애에서 중요한 시기이면서도 지금까지 잊혀 있던 시기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은 매우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노령 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인해 ‘늙은 시절’에 대한 관심도 급속히 늘었다. 덕분에 이제는 ‘노년학’이라는 학문 분야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까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중년기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기보다 마치 그런 시기가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년기는 언제부터를 말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하기 어렵다. 중년기라고 법으로 규정하는 시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화마다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 시기도 계속 변하고 있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표준 진단 매뉴얼인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은 1994년 4차 개정판에서부터 중년기를 최대 50~64세로 정의했다. 대부분의 중년 연구학자들에 의하면, 중년기를 여성은 35~60세까지이며, 남성은 40~60세까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자신을 중년이라고 인정하는 시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년기는 ‘더 이상 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것도 아닌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중년기라는 명칭 자체가 이를 잘 말해준다. ‘중(中)’은 가운데를 뜻하므로, 중년기는 가운데 시기라는 말이다. 영어로도 중년기를 ‘middle-age’라고 하는데 ‘중(中)’과 같은 의미이다. 즉 문화는 달라도 중년기를 정의하는 내용은 동일하다. 중년이 되어간다는 것은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던 20대에는 비록 경험은 없어도 푸릇푸릇한 젊음과 패기가 넘쳤다. 하지만 어느덧 40대 후반이 되자 20대의 패기와 꿈은 사라지고, 가수 김광석 씨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랫말처럼 “떠난 적도 없는데, 떠나보낸 것도 없는 머물러 있는 청춘일 줄 알았는데” 속절없이 젊음이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중년에는 가족관계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이제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여 부모의 곁을 떠나는 소위 ‘자녀의 진수기’이므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빈둥지증후군’을 경험한다. 이런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는 중년기는 과연 어떤 시기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중년기는 현재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시기이다. “지금 나는 젊었을 때 꿈꿨던 대로 살고 있는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인가?” 등의 중요한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이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내포하고 있다. 중년이 위기의 시기라는 말은, 위험한 시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회의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마치 칼이 위험한 도구인지 유용한 도구인지를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칼이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되지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요리사가 사용하면 더 없이 유용한 도구가 된다. 중년기가 육체적으로 노쇠해지고 쇠퇴하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과 일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나이에 대한 시간 전망을 바꾸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재평가하게 하는 동시에, 미래의 삶에 대해 준비하게 하는 귀중한 발달의 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년은 위기의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보다 나은 삶을 설계하고 보람 있는 노후를 준비하게 해주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변화의 과정에서 가치관이나 행동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심리적 혼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중년을 맞은 이들이라면 더 이상 ‘소리 없이’ 울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중년의 변화에 대해 이해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대개 공통적인 반응을 보인다. 첫 번째 반응은 ‘부정’이다. 자신이 아직 젊었다고 강변하면서 늙었다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을 이길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이 늙어 간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타협의 단계’로 들어간다. 이제 자신이 늙어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살았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노년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므로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힘과 자원이 남아있을 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려는 절박한 심정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끝마칠 수 있도록 기회와 시간을 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과 같은 절대자에게 그런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타협하게 된다. 중년은 ‘중간평가’의 시기이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중년은 ‘지금-여기’의 삶이 과연 자기가 꿈꾸었던 삶인지에 대해 평가한다. 젊은 시절에는 현재의 삶에 불만이 있더라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에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이제는 더 이상 젊었을 때의 꿈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삶이란 것이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슬픈 현실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꿈을 이룰 수 없고, 앞으로는 암담한 노년기와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너무 측은하다는 ‘자기 연민’에 빠진다. 지금의 삶이 비록 사회적으로는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자각과, 노년기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적 고려가 중년을 절박하게 만든다.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이라면 더 이상 책임과 의무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중년에는 자기실현을 하기 가장 좋다 이제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가벼운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요즘 들어 자꾸 눈물이 난다”라고 고백하는 중년 남자들을 자주 만난다. 이들은 대개 “젊어서는 안 그랬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왜 이렇게 주책없이 변했는지 모르겠다”며 당황스러워한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을 철저하게 구분해왔다. ‘남년 칠세 부동석’이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 중년기인 이들이 중ㆍ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까지도 남학교와 여학교가 분리되어 있었다. 공간적으로만 남녀를 분리한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도 남녀의 차이를 강조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여자는 약하지만 남성은 ‘강해야’한다고 강요받기도 했다. 당연히 남자는 아무리 아프거나 슬프거나 힘들어도 ‘입을 꾹 다물고’ 참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서 그 강도가 더 셀 뿐, 사실 남자들에게 자연스러운 정서적 표현을 억제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에 있거나 존경받는 인사가 공개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나약함’의 증표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남자들에게 속마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금하다 보니, 병적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 소위 ‘가면우울증’이라는 병명으로 나타나는 ‘가장된 우울증’이다. 가면우울증은 우울한 감정이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겉으로 별로 드러나지 않는 우울증을 말한다. 우울감과 무력감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식욕 부진이나 피로감 따위의 신체화 증상이나 지나친 명랑함,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도박, 행동 과잉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남성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성품으로 교육받게 된다. 가장으로서 남성은 무엇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한다. 중년이 되어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억눌려 있던 여성적인 특성들이 표현되기 시작한다. 즉 원래의 모습, 전인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반쪽만의 남자와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녀에게서 나타나는 진정한 ‘눈물’은 때로는 진한 감동을 준다. 그 이유는 한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완숙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신의 성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이성의 특징이 표현되면서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 놓고 울자. 그대의 눈물은 더 이상 감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성숙함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기르다가 나이가 들면 죽는다. 이 과정에서 발달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을 발달주기라고 부른다. 각 시기에는 다른 시기와 다른 특징이 있고, 또한 그 시기에 해결해야만 하는 발달과제가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가족도 발달해간다. 각 발달단계를 보면 그 구조나 기능에 공통적인 특징과 변화가 나타난다. 각 단계 및 그에 해당하는 시기의 표준을 측정한 것이 가족주기이다. 가족주기는 가족이 생성되어 유지되고 소멸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각각의 가족 구성원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달을 이루어간다. 가족주기 중에 가장 갈등이 많은 시기는 부모가 중년이고 자녀가 청소년일 때이다. 개인의 생애주기 중 제일 심리적 갈등이 많고 불안정한 두 시기, 즉 중년기와 청소년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중년기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등이 많은데, 청소년기에 들어간 자녀 역시 많은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중년기의 여러 가지 변화와 갈등을 겪으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중년의 부모는 자녀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럼 면에서 자녀가 잘되는 것이 곧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자녀에게 더욱 관심을 쏟고 자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녀가 성공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려 한다. 한편 청소년은 문자 그대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혼재하는 시기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더 이상 어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시기이다. 어린이다운 삶에서 벗어나 어른의 삶을 살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생식이 가능한 시기로의 변화를 겪고, 심리적으로는 부모에게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성인으로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과 독립하려는 마음이 혼재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갈등이 많고 불안정하다. 이 시기에 자녀와 가까워지려는 부모와 달리 청소년 자녀는 부모와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멀어지려고 하다.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청소년 자녀들은 의식적으로 부모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중년의 부모, 특히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무례한 행동이나 언어를 유독 참기 힘들다고 호소하곤 한다. 하지만 부모에게 공개적으로 대드는 청소년 자녀는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순종하는 자녀보다 심리적으로 더 건강할 수 있다. 이런 자녀는 청소년기에 해결해야 할 발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다만 그 모습이 거칠게 나타날 뿐이다. 이 시기는 부모와 자녀 모두 중요한 삶의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때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갈등이 증폭되고, 회복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자녀만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역시 자녀에게서 독립해야 한다. 자녀를 위해 희생했다는 마음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자녀를 붙잡지 말고 떠나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떠날 때보다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힘을 믿어야 한다 젊었을 때는 실패해도 쉽게 일어나던 사람들이 중년에 한 번 넘어지고 나서는 다시 일어설 힘을 잃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제는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다”라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들을 열거한다. 그런데 그 이유들이 거의 대부분 외부적인 요인들이다. 오뚝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오뚝이의 원리를 몰랐을 때는 정말 신기했지만, 원리를 알면 간단한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복원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외부적 여건에서 넘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 목표를 향해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다른 말로 하면 자존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은 문자 그대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는 힘도 강해진다. 의미 있는 삶에는 대부분 장애가 많다. 장애가 없는 쉬운 삶은 의미 없는 삶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심감이 강하다. ‘어떤 일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이 믿음, 자신감이 바로 마음의 복원력이 된다. 자신감이 강한 사람은 실패를 해도, 결국에는 자신이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반면 자신감이 적은 사람은 작은 어려움에도 포기하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나는 아무 일도 안 돼”하고 주저앉아버린다. 무게 중심은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인지에 따라 그 위치가 결정된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다는 것은 자신감의 원천이 자신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무게 중심이 위에 있다는 것은 자신감의 원천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감의 원천이 내부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알고 느끼게 된다. 이런 사람은 샘가 같은 삶을 살아간다. 오가는 사람들이 샘물을 마셔 저녁때가 되면 더 이상 물이 없을 것 같지만, 하룻밤만 지나면 또 그득히 샘물이 고여 있다. 비록 실패했을 당시에는 넘어지지만 곧 다시 일어서는 힘을 스스로 낼 수 있다. 반면 무게 중심이 위에 있는 사람들은 남들의 인정을 통해서 자신감이 생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인정이 사라지면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고 만다. 중년은 삶의 절정에 있는 시기이다. 그만큼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거나, 혹은 그 자원들이 외적인 것이라면 위험해진다. 그러므로 바쁜 일상에서 잠시 틈을 내어 내 삶의 무게 중심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힘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내부에 자신만의 힘을 가지고 있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는 오뚝이는 오늘도 또 넘어뜨려보라고 웃으면서 다시 일어난다.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한다 노부모의 사랑 홀로 된 노부모를 모시는 중년의 자녀들에게서 이성을 찾는 부모 때문에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 나이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며 황당하다는 듯이 말한다. 하지만 ‘열 효자가 악처 하나만 못하다’라는 속담도 있다. 겉보기에는 효자가 아무리 잘 해주는 것 같아도, 남편의 가려운 곳을 더 잘 알고 긁어주는 것은 악독한 처가 더 낫다는 말이다. 간혹 젊은이들 중에는 노인이 되면 성욕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70~80대 노인도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건강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건강한 성생활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노인들의 사회생활을 왕성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한 스킨십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지며 고독감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의 건강에까지 유익하다면 부모를 사랑하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라는 자녀는 당연히 홀로 된 노부모에게 이성 친구를 사귀고 성적 욕구를 건전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해야 한다. 하지만 중년의 자녀들은 오히려 부모를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훼방을 놓기까지 한다. 노년의 성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해서는 아닐 것이다. 요즘에는 대중매체에서도 노년의 성에 대해 제법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중년의 자녀들도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면 훨씬 객관적인 입장에서 노년의 성에 대해 허용적이고 권장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부모만은 성을 생각하거나 원하지 않는 성인처럼 생각한다. 유교의 영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성은 감추어야 할 영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심리적 요인은 먼저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만약 홀로 된 부모의 이성교제를 인정하면, 죽어서 먼저 세상을 떠나신 부모를 뵐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갈수록 홀로 된 부모님은 늘어갈 것이고, 홀로 사는 기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사춘기 자녀처럼 부모의 성을 금기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단계를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지금 중년을 맞은 자신도 조만간 노인이 될 것이고, 인간은 나이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고 교류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노부모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응원하는 것이 현명한 중년의 모습이다. 나를 아끼면 과거도 변한다 과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우리는 보통 과거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노인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 노인들의 전유물은 물론 아니다. 어느 시기에든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모두 생각하며 살아간다. 다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횟수가 많아질 뿐이다. 과거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 동시에 미래를 막는 억제의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좋았던 과거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 동시에 힘들고 괴로웠던 과거는 미래를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불행했던 과거에 집착하고 얽매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잃게 된다. 따라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불행했던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과거는 잊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해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불편하게 했던 사람이나 사건과 화해를 하고 감정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 즐겁고 자랑스럽고 행복했던 일만 겪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고 아무 어려움 없이 팔자 좋게 살아온 것 같은 사람도, 알고 보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괴로움과 후회, 회한의 감정을 마음 깊이 품고 살고 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므로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겨를이 없고, 또 직면하고 싶지 않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외면하며 살아간다. 중년의 시기가 지나면서 과거의 일이 자꾸 생각나고 느닷없이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이런 부정적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마음의 작용이다. 과거와 화해하고 용서하기 위해 ‘회상’을 하며 우리 마음이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를 돌아보고 부끄럽고 자괴감을 느끼거나 또는 분노를 느끼게 되는 부정적 사건을 떠올리고, 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자신을 힘들게 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수도 용서해야 한다. 과거에 대해 화해하고 용서할수록 더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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