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03월 1주차

BOOK SUMMARY
 인문 

틸리 서양철학사

저자 프랭크 틸리(역:김기찬)
출판 현대지성
출간 2020.03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쓰인, 서양 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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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그리스 철학

인식과 행동의 문제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학파들

우리는 기원전 5세기 말에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철학적·윤리적 상황을 서술했다. 당대의 지적·도덕적 혼돈에 질서를 가져다놓고, 거짓된 것에서 참된 것을, 우연적인 것에서 본질적인 것을 가리고, 사람들이 똑바르게 하고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사물들을 보도록 도우려면 사상가가 필요하다.


즉 초보수주의자와 초자유주의자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중재자가 필요하다. 그런 사상가로서 소크라테스가 있다. 그는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하나이며, 2천년 동안 서양 문명을 지배했고 오늘날까지 사색에 영향을 주는 사상과 이상을 가진 철학자들의 지적 아버지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거의 배타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플라톤의 것인지에 관한 판단은 대체로 추측일 수밖에 없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플라톤 철학의 발전에 나타나는 하나의 단계로 봄으로 소크라테스의 실제적 가르침을 최소한으로 축소하려는 극단에 치우친 해석가들도 몇 사람 있다.


아마도 올바른 견해는 이 양극단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의심할 필요 없이 우리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예시되어 있는 개념 분석과 정의(定義)의 철학적 방법을 만들고 윤리적 개념의 정의에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공로라고 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적 방법

소크라테스는 한 주제를 토론할 때, 일반적으로 일행의 통속적이고 성급히 형성한 의견들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취한 예화를 사용하여 이 의견들을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그것들이 확고한 기초에 서 있지 않고 수정과 교정의 필요가 있음을 보인다. 그는 적절한 경우를 제시함으로써 대화에 참여한 자들이 스스로 올바른 견해를 형성하도록 돕고, 진리가 차례차례 발전할 때까지 만족하지 않는다.


크세노폰의 유명한 예는 소크라테스적 방법의 본질적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능숙한 질문으로, 에우티데모스라는 청년으로 하여금 위대한 정치가가 되려는 야심을 실토하게 한다.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그가 야심을 추구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해야 한다고 그에게 넌지시 말한다. 청년은 자신이 이미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그러나 다른 기능이나 기술처럼 정의의 올바른 산물인 행동이 있음에 틀림없네. 의심할 나위 없이. 그런데 그대는 그런 행동과 산물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는가?” “물론 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의 산물도?” “물론이죠.” “아주 좋아. 그러면 정의의 산물과 부정의의 산물이 무엇인지 두 줄로 써보도록 하지.” “좋습니다” 하고 에우티데모스가 말한다.


“그럼 오류는 어떠한가? 어떤 줄에 써야 하지?” “물론 부정의한 줄에 써야죠”. “그러면 속임수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도둑질은?” “그것도 물론이죠.” “그러면 노예 만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정의로운 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가?” “글쎄, 그건 금시초문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그러나 장군이 자기 나라에 큰 잘못을 저지른 원수를 상대한다고 해보게. 만일 그가 이 원수를 정복하고 노예로 삼으면, 그것은 잘못인가?” “분명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원수의 재화를 빼앗고 전략으로 그를 속인다면, 이 행위는 어떠한가?”


“물론 그것들은 아주 정당합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속이거나 학대하는 친구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계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우리는 이 행위들을 양쪽 줄에 써야 하겠군요.” “내 생각도 그렇네.”


“그런데 친구와 관련하여 살펴보도록 하세. 낙심해서 지리멸렬한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을 상상해 보게. 그는 지원군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하여 그들을 속여 이 말을 믿게 하고는 낙담 상태에서 건져 내고 승리를 이끌 수 있게 한다고 해보게. 친구들을 속인 이 행위는 어떤가?” “글쎄요. 정의로운 줄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군요.”


“그렇지 않으면, 한 소년이 약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않으려 하자, 아버지가 소년을 속여서 맛있는 것이라고 믿게 하여 먹이고 그를 살린다고 해보게. 이 속임은 어떤가?” “그것도 정의로운 편에 속해야죠.” “혹은 자네가 지독한 격분에 사로잡힌 친구를 발견하고 그가 자살하지 않을까 두려워 그의 칼을 훔친다고 해보게. 자네는 그 도둑질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내 생각엔, 자네는 친구를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제 말을 취소해야겠습니다.” “아주 좋네. 그런데 자네에게 묻고 싶은 또 한 가지가 있네. 스스로 정의를 깨뜨리는 사람과 모르고 정의를 깨뜨리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가?” “소크라테스여, 더 이상 제 대답을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기」)


이런 식으로 소크라테스는 귀납에 의하여 정의를 발전시킨다. 먼저 예를 사용하여, 임시적인 정의를 형성한다. 이 정의를 다른 예를 사용하여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만족스러운 정의에 도달할 때까지 필요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처음의 정의를 확대하거나 축소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훗날 명명했던 “부정적 사례” 즉 제시된 전통적 정의에 모순되는 사례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 목표는 언제나 정의하려는 주제의 본질적 특징을 발견하고, 명석판명한 관념이나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다.


때때로 소크라테스는 언급된 진술들을 올바르다고 가정되는 기본 정의에 비추어 비판함으로써, 곧장 제일 원리로 돌아감으로써 언급된 진술들을 검토한다. 이 방법은 연역적이다. 가령 당신은,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훌륭한 시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신의 주장은 단순히 주관적 의견으로, 받아들일 만한 정의를 언급하여 그것을 지지할 이유를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 사람이 훌륭한 시민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당신이 훌륭한 시민이 누구인지를 알 경우에만, 엄밀하게 용어를 정의한 경우에만 판정될 수 있다.


그러면 지식은 결국 가능하지만, 우리가 적절한 방법을 따를 때에만 그렇다. 우리는 용어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제일 원리로 추론을 끌고 가야 한다. 지식은 일반적이며 대표적인 것에 관심을 갖지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소피스트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고,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똑바로 세운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점에서 소피스트들과 의견을 같이한다. 그는 우주론적 형이상학적 사변의 무익성에 대한 신념을 그들과 공유했다. “참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주의 본질과 같이 어려운 문제에 관한 모든 토론에 고개를 돌린다.


학자들이 표현하듯이 ‘우주’가 어떻게 생성하였는가, 혹은 어떤 세력에 의하여 천상 현상이 발생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그는 그런 문제로 우리의 머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관심은 윤리적 실천적인 것이었으며, 그는 그런 사색의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적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방법론자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철학적 탐구에 대한 자신의 방법을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방법론적 과제를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하나의 방법을 실천했고, 그의 사유는 철학적 절차의 한 패턴을 너무 훌륭하게 보여주므로, 그가 그 절차의 성격과 중요한 수단을 전혀 몰랐다고 믿기란 어렵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분석에서 사용한 방법은 다섯 가지 쉽게 구분 가능한 특징을 갖고 있다.


(1) 그의 방법은 회의론적이다. 그것은 토론중인 문제에 관하여 알지 못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참된 혹은 거짓된 무지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청중에게 진실치 못한 거짓말로 보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참된 지적 겸손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현임에 틀림없는 소크라테스의 반어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회의론을 소피스트들과 공유했으며, 그것을 채택하면서 아주 당연히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의 회의론은 결정적이며 최종적인 데 비해, 소크라테스의 회의론은 임시적이며 잠정적이다. 소크라테스의 회의와 가장된 무지는 데카르트의 시초적 회의와 마찬가지로 지식 추구의 필수적인 첫 단계이다.


(2) 그것은 대화이다. 그의 방법은 대화를 교훈적 장치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진리 발견을 위한 기술로 사용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 가운데서도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진리가 있다는 확고한 확신을 갖고서, 소크라테스는 토론 혹은 질의 응답에 의하여 그런 진리를 열어 보이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제시한, 혹은 시인(詩人)이나 다른 전통적 원천에서 취한 - 대중적 혹은 성급히 만든 개념에서 출발하여, 이 개념을 엄격하게 비판한다. 그러면 그 결과 좀 더 적절한 개념이 등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방법은 종종 산파술적 방법으로 서술된다. 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태어나게 하는 지적 산파의 기술이다.


(3) 그의 방법은 정의, 신앙, 지혜, 용기 등과 같은 윤리적 개념의 정확한 정의를 획득하는 것을 지식의 목표로 설정하므로 개념 획득적 혹은 정의(定義) 획득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진리가 정확한 정의(定義)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이 가정은 분명히 견고한 게 아니다. 정확한 정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지식에 필수적이지만, 정의만으로 지식을 형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4) 소크라테스의 방법은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여 제시된 정의를 비판하므로 경험적 혹은 귀납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일반적 경험과 일반적 관례에 호소함으로써 정의를 테스트한다.


그러나 (5) 이 방법은 정의의 함축 의미를 끌어냄으로써, 그 결과를 연역함으로써 정의를 테스트하므로 연역적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의 정의 획득적 방법은 철학적 탐구의 논리에 참으로 기여했다. 이 방법은 플라톤의 변증법적 방법에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근대 철학

헤겔 이후의 독일 철학

니체

“힘에의 의지”

니체는 만족할 만큼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어서, 자신의 탐구 방향을 바꾸어 경구적 작품을 수없이 썼다. 이 작품들은 심리적 통찰이 돋보이는데, 프로이트의 평가를 빌리면 그 많은 통찰은 “정신분석의 수고스러운 결과들과 매우 놀랍게 일치한다.” 결국 이 비체계적인 성찰은 인간 행동이 단일한 근본적 충동인 힘에의 의지로 환원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이 근본 원리는 살려는 의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더 큰 권력의 기회를 위하여 계속 의도적으로 삶을 건다는 것은 경험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직 특별한 필요 상황에서만 삶은 매우 존중되어, 궁극적 목표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윈처럼 “맬서스를 자연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욕구하는 바는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상태의 고양, 더 큰 권력이다. 경쟁에서의 승리(경쟁은 그리스의 교육과 문화에서 두드러진 요소였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능력, 예술적 창조, 철학자의 지적인 세계 정복은, 모두가 금욕자의 자기 극복과 순교자가 파악한 불멸성과 같은 그런 권력의 예들이다.


이 견해는 쾌락원리에 대한 명시적 반박과 일치한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다. 만일 쾌락을 고통의 부재를 함축하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인간은 더 큰 권력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쾌락을 희생하고 고통을 짊어진다.


그리고 창조적 활동으로 표현되는 힘은 모든 인간이 바라는 궁극적 행복을 제공한다. 물론 이 행복은 상당한 고통과 불편을 포함하긴 한다.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행복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즐거운 순간의 우세함으로 구성되지 않고, 힘의 소유와 창조적 발휘에 있다. 이 행복 추구는 높은 자기 규율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물적 정념에 지배되는 한 큰 힘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충동을 숭고하게 만들고 창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짐승보다 높아지게 하고 이전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생득적 원리로 파악했던 그 독특한 존엄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 상태를 획득하는 자들은 초인(Übermenschen)이다. 그리고 니체는 그런 초인들이 과거에 때때로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었다. 아마 괴테가 가장 최근의 예였을 것이다. 그들의 탁월성은 종족과 관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우리는 광범위하게 상이한 문화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영겁회귀

니체는 초인 개념과 관련하여, 영겁회귀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처음에 그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에게서 이 관념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논리적으로 순수한 과학적 고찰에서 나온다고 결론지었다. 우주가 무한한 시대에 존재했지만 유한한 수의 원자 혹은 “권력(힘)량과 유한한 양의 에너지로 구성된다는 가설에서 보면, 오직 유한한 수의 상이한 조합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 배열의 영겁회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에서 모든 목적을 박탈하는 이 관념은 초인에게 공포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신의 창조적 실존과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에 대한 그의 솔직하고 즐거운 긍정은 그로 하여금 실제로 영겁회귀를 환영하게 만든다. 오직 목표 없이 살며 본질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자들만이 자신을 구속할 우주적 목적에 대한, 자신에게 만족을 가져다줄 천국에 대한, 그리고 그들이 은밀히 시기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떨어질 지옥에 대한 신념을 요구한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격

이것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악명 높은 공격을 이해하는 배경이다. 그리스도교의 유순함과 용서와 인내와 사랑은 유순하고 인내할 수밖에 없고 혹은 사랑하는 척할 수밖에 없는 무능한 미움의 모방에 불과하다.


물론 그리스도교는 천국과 지옥을 꿈꾼다. 이 태도는 로마 제국에서 일찍이 그리스도교를 채택했던 노예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래서 니체는 도덕에서의 “노예의 반란”과 “노예 윤리”를 말한다. 그는 이것을 다른 문명의 “주인 윤리”와 대조시키지만 그의 윤리는 이 두 유형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의 윤리는 가령 마누의 법(Law of Manu)에서 추방자를 다루는 데서 발견할 수 있는 무능한 인간에 대한 그런 경멸을 격렬히 비난하는 점에서 “주인 윤리”와 다르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윤리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니체가 그리스도교와 결부짓는 마음 상태 즉 원한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가 말하는 원한은, 자신보다 더욱 재능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은밀한 혐오와 시기,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서 12:19)는 믿음과 나누어질 수 없는 그런 보복 중지를 뜻한다. 


니체가 말하는 “모든 가치에 대한 재평가”는 그러므로 새로운 덕목표(德目表)를 포함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고찰하는 그리스도교 윤리학에 대한 내재적 비판에 있다. 그리고 그는 흔히 그리스도교 윤리로 통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공언된 기준에 비추어 판단할 때 부도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몇몇 유형의 동정과 이웃 사랑은 다른 이유 때문에 또한 비난받는다. 이는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는 태도와 관련될, 자신을 완전하게 하는 태도 대신에 이웃에게 “도피”하고 “그것을 덕목으로 기꺼이 삼는다.” 그리고 니체가 반대하는 그런 의미에서 동정은 고통이 필연적으로 악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만일 사람이 가장 바라는 것이 “힘”이라면, 어떤 고통은 필수적인 자기 통제에 대한 수단으로서 그리고 창조적 생활의 구성 요소로서 요구된다. 우리는 동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그들을 가엾게 여김으로써 나타내지 말고, 그들이 이와 같이 더욱 풍요한 존재 상태에 도달하도록 도움으로써, 때때로 이런 목적을 위해 그들과 더불어 노력함으로써, 그리고 경쟁적 활동을 벌여 그들과 겨룸으로써 나타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교육자와 자극제가 되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 본성의 힘으로 욕구한다고 하는 상태에서 도덕의 목적이 발견되는 한, 니체의 윤리학은 자연주의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니체의 영향

니체의 영향은 어마어마했지만, 해로운 경우가 많았다. 흔히 경구(警句)적인 혹은 특별히 『차라투스트라』에서처럼 매우 상징적인 그의 문체, 과장법과 논쟁적 대립에 대한 그의 탐닉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해를 크게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사후에 그의 누이가 그의 원고들을 출간한 방식은, 특별히 『힘에의 의지』라는 제목으로 그녀가 모은 원고들을 출간한 방식은, 학문적 관점에서 반대를 받을 만하며, 또한 극단적으로 혼동스럽다.


그 결과 니체의 비판가뿐만 아니라 나치를 포함한 그의 많은 숭배자들도 승화에 대한 그의 핵심적인 주장을 무시했고, 힘에의 의지에 대한 그의 개념과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을 방종성과 야수성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했다. 바로 이런 종류의 “영향”이 특별히 영어권에서 니체의 이름과 자주 결부된다.


그러나 매우 저명한 현대 작가와 신학자와 심리학자와 철학자들에 미친 그의 사상의 영향력은 주목할 만하다. 참으로 가장 최근에 독일의 철학자들은 니체의 영향력을 절감했다. 그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면, 짐멜(Simmel)의 문화 철학, 파이잉거(Vaihinger)의 실용주의, 슈펭글러(Spengler)의 역사 철학, 셀러(Scheler)의 현상학, 야스퍼스(Jaspers)와 하이데거(Heidegger)의 실존 철학 등이 있다.


가지각색의 기질과 관심을 지닌 사람들은 니체의 저술에서 영감을 발견했으며, 1880년대에 처음으로 “시의적절”해진 그의 철학이 그 이후로도 시의적절했다고 말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현대철학의 실재론적 경향들

실재론적 전통

관념론에 대한 반발

20세기에 실재론이 소생한 사건은 최근 철학의 가장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근대철학의 시초부터 실재론이 거듭 등장했고 종종 과격하게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실재론은 관념론과 경험론과 합리론에 견줄 만한 지속적이며 상승적인 전통을 견지하지 못했다.


실재론적 경향들은 지배적인 독립적 전통으로 모습을 보이기보다, 당대에 우세한 관념론들의 과도함에 반발하여 등장한 경우가 많았다. 실재론의 핵심 입론은, 의식이나 정신이나 경험의 바깥에 그리고 그것들과 독립하여 하나의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재가 개인적 정신이든 절대적 경험이든 상관없이 오직 정신에 의하여 구성되며 정신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관념론적 이론에 대한 반발이다.


실재론의 핵심 주제는, 실재론이 항거하는 관념론의 특징들과, 실재론이 등장하는 각 시대의 문화의 복합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18세기에는 버클리의 주관주의적 관념론의 과도함에 반발하여, 토머스 리드와 스코틀랜드학파의 그밖의 대표자들의 상식적 실재론이 탄생했다. 이런 유형의 실재론은 19세기에 계속되면서 윌리엄 해밀턴 경의 자연적 실재론으로 이어졌다.


헤르바르트의 다원론적 실재론은 헤겔주의적 절대적 관념론에 대한 19세기의 독일적 반발이었다. 독일과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20세기의 실재론적 운동은 아마 근대철학사에서 이전에 등장한 그 어떤 실재론보다 활기차고 독창적이고 건설적인 것일 것이다. 이 실재론은 주로 당대에 우세한 관념론들에 대한반발로 등장했으며, 그것이 발발하는 19, 20세기 관념론적 운동의 완숙성을 반영한다. 


이 실재론은 버클리의 “존재는 지각됨이다(esse est percipi)”를 구체화하는 관념론적 주장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칸트의 비판적 관념, 헤겔과 브래들리의절대적 관념론, 로체, 로이스, 독일 신칸트주의자들과 같은 관념론자들의 인식론적 이론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실재론의 입론

최근의 실재론은 그것의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측면에서, 20세기에 논리학과 수학에서 이룩된 괄목할 만한 진보의 결과로 제공된 강력한 분석 수단을 이용했다. 자연과학들도 실재론의 인식론에 기여했다: 물리학에서의 발전은 과학적대상의 본질에 대한 이전의 해석을 명료하게 만들고 급격하게 변화시켰으며, 생리학과 심리학은 지각, 기억, 좀 더 고등한 인식 과정에 관련된 과정들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이해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모든 유형의 실재론이 공유한 핵심적 입론은, 지각과 기억과 추상적인 논리적 수학적 사유와 과학적 이론에서 지식의 대상이 인식하는 지성과 독립한 속성들을 소유하며 참으로 존재하는 실재라는 것이다. 인식론적 실재론”의 이 입론은 “인식론적 관념론”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반박적 제안이다.


인식론적 관념론은, 지식의 대상이 인식하는 지성의 창조적 활동 덕분에 그 속성뿐만 아니라 그 현존까지 갖는다고 확언한다. 실재론자들은 인식 대상의 독립적 현존이라는 핵심적 입론에 동의하지만, 인식하는 정신의 본질과 위상, 인식에서 감각 자료의 기능, 심지어 인식 대상의 본질에 관해서 저마다 이론이 상이하다.


이 장에서 몇 가지 유형의 실재론을 개관할 텐데, 현상학, 현시적 실재론(presentational realsim), 관점주의, 표상적 실재론(representational realsim) 등이다.


(1)독일 현상학은, 정신이 자신을 넘어선 “대상”에 대한 “지향적” 지시 작용에서 보이는 인식적 초월을 강조한다. 브렌타노가 정식화한 현상학은, “대상”의 투사에서 정신에게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당할 때 관념론의 흔적을 갖는다. 하지만 그의 이론에 잠재한 실재론은 “대상”을 구체화하고 실체화하는 추종자 마이농(Meinong)과 후설(Husserl)에게서 명료하고 활력있게 등장한다.


(2) 무어의 직접적 “순진적” 혹은 현시적 실재론은 감각 자료에 의하여 구성되는 지각된 대상에게, 정신 활동과 완전히 독립한 위치를 귀속시킨다. 이 실재론이 관념론에 유일하게 양보하는 것은 순수한 의식 작용으로서 정신을 유지하는 점이다.


(3)“객관적 상대론”, 관점주의, 중립적 일원론(소위 “신실재론”을 포함함)은 가장 급진적인 실재론들이다.  이것들은 인식의 대상을, 지속적 실체들이나 관점들의 집합으로 환원하며, 실체나 주체나 작용으로서 간주되는 인식하는 정신을 완전히 불필요하게 본다.


(4) 표상적·이원론적 실재론(미국의 “비판적 실재론”을 포함함)은 정신과 그것의 주관적 자료를 유지하는 점에서 관념론적인 타협적 이론이지만, 정신 바깥의 물리적 대상을 받아들이는 점에서 실재론적이다.


최근 영국의 실재론

버드런트 러셀(Bertrand Russell)

버트란드 러셀의 신(新)실재론은 감각 자료와 물리적 대상에 대한 무어의 실재론적 이론과, 마이농의 대상론의 논리적 실재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러셀의 입장은 그의 오랜 철학적 활동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일종의 실재론은 『철학의 문제』(The Problems of Philosophy, 1911)로부터 『인간의 인식』(Human Knowledge, 1948)까지 그의 저술들에서 지속적인 주제이다.


그는 「철학의 문제」에서 개진한 지각 이론에서, 무어처럼 의식적 경험으로서 “감각”과 우리가 의식하는 감각 자료를 구분한다. “그래서 우리가 한 색채를 볼 때마다, 그 색채에 대한 감각을 갖지만, 그 색채 자체는 감각 자료이지 감각이 아니다.”


그러나 무어는 감각 자료를 감각되지 않은 채로 현존할 수 있는 공적인 대상으로 해석했지만, 러셀은 그것을 사적인 대상으로 서술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즉각적으로 현존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이 있으며, 그 사람은 그것들을, 감각될 때에만 현존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러셀은 이렇게 말한다.


“색채는 내가 눈을 감을 경우 현존하지 않으며, 내가 책상에서 내 손을 뗄 경우 딱딱함의 감각은 현존하지 않는다.……”(철학의 문제)


러셀은 「철학의 문제」에서 자신의 실재론을 물리적 대상을 넘어 보편자로 확대하며, 그럼으로써 물리적 실재론과 논리적 실재론을 결합한다. 그는 우리의 선험적 지식을 설명하기 위하여 힘(whiteness)과 같은 양적 보편자들과, 동등성과 같은 관계적 보편자들의 정신 외적(精神外的) 실재성을 확언함으로써,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비슷한 보편자 이론을 개진한다.


보편자들은 정신적 세계나 물리적 세계에 현존하지 않지만 실체적 혹은 논리적 지위를 갖는 실재적 실체이다. 러셀은, 정신이 보편자에 대한 직접적 지식 혹은 직관을 갖고 있으며 그런 직관이 선험적 진리에 대한 우리의 합리적 지식의 토대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선험적 지식은 보편자들의 관계만 다룬다.” 가령 “둘 더하기 둘은 넷이다”라는 산수 명제는, 보편자 “4”와 “둘과 둘의 총합”이라는 보편자들의 복합 사이의 동등성의 관계에 관한 진리이다. 러셀의 의견에 따르면, 그의 논리적 실재론은 직관적 토대에 근거하며, 따라서 그의 물리적 실재론보다 좀 더 확고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왜냐하면 그는 물리적 실재론을 단지 가설로만 개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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