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8월 3주차

BOOK SUMMARY
 인문 

진화의 배신

저자 리 골드먼(역:김희정)
출판 부키
출간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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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배신


인류를 생존시킨 네 가지 형질의 비밀

우리 몸은 어떻게 지금처럼 프로그래밍되었을까

자연 선택의 진화 메커니즘과 ‘적자’ 생존의 원리

‘가장 적합한 유전 형질’이 살아남는다

지구를 정복하고 살아남은 쪽은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또는 우리 조상들보다 덜 ‘적합해서’ 자손 번식에 실패한 사람들의 태어나지 못한 자손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다. 더 ‘적합했던’ 우리 조상들은 지구 환경의 도전에 대처할 수단이 있었고, 식량과 물과 짝을 놓고 다른 성원들과 벌인 경쟁에서 이길 능력이 있었다. 적자 생존의 원리는 자연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 준다.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가장 적합한 유전 형질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오래 살면서 가장 많은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 또한 살아남아 더 많은 아이들을 가지는 일이 반복된다. 간단히 말해 나와 내 후손이 살아남아 번식을 하면 내 DNA(유전 정보 저장 물질, 유전자의 본체)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DNA는 나의 성과 함께 끊기고 말 것이다.


위대한 돌연변이

우리는 보통 부모 양쪽으로부터 염색체를 하나씩 물려받으므로 어머니, 아버지와 각각 동일한 2만 1000개 유전자 버전을 두 가지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아이의 유전자와 DNA는 그것들을 물려받은 부모와 반반씩 동일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잘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라도 드물게 오타가 나듯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DNA가 복제될 때 약 1억 번에 한 번씩은 실수 또는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그 결과 한 아이의 DNA 전체에는 부모의 DNA와 다른 염기쌍이 보통 65개 정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돌연변이 염기쌍 수는 더 많아진다.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과 약 99.6~99.9퍼센트 동일하다. 그렇다 해도 서로 다른 염기쌍 수가 적어도 600만 개나 된다. 따라서 돌연변이 현상 덕분에 우리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인류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할 수 있었다.


돌연변이 현상 자체는 무작위로 벌어지는 사건이다. 돌연변이 유전자의 운명, 즉 미래 세대에 그 유전자가 확산되고 지속될지 아니면 사라져 버릴지는 그것이 좋은 변화(유익한 돌연변이)인지 나쁜 변화(불리한 돌연변이)인지 또는 상관없는 변화(중립적 돌연변이)인지에 달려 있다. 무작위로 시작된 유전자 돌연변이는 자연 선택/도태 과정에서 당사자와 당사자의 후손에게 충분히 유익하면 영구화된다. 이와 반대로 불리한 돌연변이는 그 유전자를 가진 아이가 살아남더라도 확산되지 않고 금방 사라지고 만다. 인류가 생존해 온 1만 세대라는 기간 동안 우리의 게놈은 천천히 그러나 확고한 걸음으로 상당히 큰 변화를 겪었다. 무작위로 시작된 돌연변이지만 그 중 유익한 것들은 선택적으로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의 실제 사례 하나, 튼튼한 뼈

뼈 발달에 중요한 칼슘과 비타민 D 그리고 피부색의 관계

다 자란 인간은 206개의 뼈를 가지고 있다. 성장하면서 일부 뼈가 서로 붙기 때문에 어릴 때보다 뼈의 개수는 오히려 줄어든다. 다 합치면 뼈는 우리 체중의 13퍼센트를 차지한다. 건강한 뼈를 가지기 위해서는 식품에서 뼈를 이루는 핵심 구성 요소인 칼슘을 섭취해야 한다. 또한 장에서 칼슘이 흡수되는 것을 돕고 칼슘이 뼈로 통합되는 과정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활성 비타민 D도 필요하다.

우리는 튼튼한 뼈가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비타민 D가 부족한 어린이는 구루병을 앓는다. 뼈가 약해지고 성장이 저하되며 건강이 나빠지고 아동기에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는 이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면 자손 증식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활성 비타민 D는 참치, 연어, 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과 동물의 간이나 콩팥, 계란 노른자 따위에 들어 있는데, 과거에는 음식을 통해 이것을 충분히 섭취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이제는 비타민 D를 첨가한 우유, 오렌지 주스, 시리얼 등으로 섭취할 수 있지만 지난날 우리 조상들은 필요한 비타민 D의 대부분을 항상 몸 안에서 합성해 냈다. 간에서 분비된 비활성 상태의 비타민 D 전구체(물질 대사에서 어떤 물질의 원료가 되는 이전 단계 물길-옮긴이)는 피부로 흡수된 자외선에 의해 활성화된 뒤 간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콩팔으로 보내져 더욱 활동성이 강화된 다음 몸에 필요한 비타민 D 수요를 충족시킨다.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왜 피부색이 옅어졌을까

그런데 두 가지 조건이 변화했다. 첫째, 아프리카에서 나와 더 추운 지역으로 이주한 우리 조상들은 옷을 더 입어야 했고, 따라서 햇빛에 노출되는 피부 면적이 극적으로 줄어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활성화하는 데 문제가 생겼다. 둘째, 1만 년 전쯤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상들의 식사에서 탄수화물 비율이 높아지고 비타민 D 섭취가 줄어들어, 이미 노출 수준이 훨씬 줄어든 햇빛에 비타민 D 제조를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 중, 피부에서 만들어지는 멜라닌의 양을 줄여 피부색이 더 옅어지게 하는 유전자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 덕분에 같은 양의 햇빛에 노출되어도 더 많은 자외선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로써 간에서 만들어진 비타민 D 전구체를 더 잘 활성화할 수 있게 되었다.


비타민 D와 뼈의 발달이 그토록 넓은 지역에서 피부색을 바꿀 정도로 생존에 중요했을까? 지난 몇 세기 동안의 사례를 보면서 이 문제를 이해해 보자. 1600년대 중반 영국에 새로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안개가 낀 도시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서 구루병은 흔한 질환이었다-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걷지도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여성들의 경우 골반 기형이 생겨 아이를 정상적으로 분만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1822년 예드르제이 시니아데츠키가 폴란드 시골에 사는 어린이들보다 바르샤바시에 사는 도시 어린이들 사이에 구루병이 훨씬 더 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다음에야 구루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햇빛을 이용하는 방법이 고려되기 시작했다. 1890년에는 시어벌드 팜이 유럽 도시의 가난한 어린이들은 구루병에 잘 걸리는 데 반해 중국, 일본, 인도에서는 그와 비슷하게 빈곤하거나 더 빈곤한 어린이들도 이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시니아데츠키 때와 마찬가지로 당시 과학계에서 완전히 무시되거나 거부당했다. 결국 1921년 앨프리드 헤스와 레스터 웅거가 뉴욕시에 사는 7명의 백인 어린이들을 햇빛에 더 많이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구루병 증상을 완화한 후에야 의학계는 햇빛의 효과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피부색을 옅게 하는 돌연변이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떠나온 후, 현대 유럽인과 아시아인이 갈라지기 전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피부색이 옅어지는 것이 단일한 돌연변이 때문도, 또는 단 하나의 유전자에 생긴 여러 가지 돌연변이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돌연변이는 유럽인에게서만 발견되고, 어떤 것은 아시아인에게서만 발견된다. 서로 다른 유전자에 생긴 아주 다양한 돌연변이로 인해 피부색이 열어진 결과 북유럽과 남유럽, 그리고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여러 지역 사람들의 피부색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물, 소금 그리고 고혈압이라는 현대병

우리 몸의 생존 장치 둘, 물과 소금

우리가 갈증을 느끼는 이유

땀을 흘리는 것이 인간에게 이토록 중요하므로 우리는 다른 포유류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셔야 한다. 탈수증과 저혈압은 무척 위험할 수 있어 우리 조상들은 이 문제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 흘릴 땀을 대비한 커다란 물탱크가 몸 자체에 없으므로 인체는 뇌, 폐, 간, 부신 등에서 나오는 각종 호르몬의 도움으로 약간의 잉여 수분(그리고 거기에 항상 따르는 소금)을 몸 전체에 고루 분산해 보유한다. 이 호르몬들은 갈증을 일으켜 필요한 만큼 물을 섭취하게 유도하고, 짠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켜 소금을 섭취하게 한다. 또 신장을 제어해 소금과 물이 부족할 때는 보존하고 너무 많으면 배출하도록 한다.


체수분량 또는 소금을 비롯한 다른 물질의 혈중 농도가 1~2퍼센트만 변해도 거기에 반응하는 뇌의 특정 부분에서 보내는 신호가 바로 갈증이다. 물을 마시고 싶은 욕구는 탈수가 되면 소금 농도 변화 여부에 상관없이도 생긴다. 마찬가지로 체수분 수준은 정상이지만 몸속 소금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져도 갈증을 느낀다. 갈증은 너무나 주도면밀하게 제어되는 생존 장치여서 임신한 여성은 몸에 물이 충분해도 난소에서 릴랙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갈증을 유발한다. 탈수증이 생기면 임신한 여성과 태아 모두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물과 나트륨은 부족하기보다 조금 남는 쪽이 더 유리하다

2장에서 살펴봤듯이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으면 과잉 보호를 선택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 나트륨과 물의 경우 과잉 보호가 주는 유리함은 간단하다. 몸에 나트륨과 물이 부족하면 탈수 현상이 일어나 몸 전체에 혈액을 충분히 보낼 수 있는 최저 수준 이하로 혈압이 낮아질 수 있다. 혈압이 너무 낮아지면 우리는 기절하거나 죽는다. 이에 반해 나트륨과 물이 몸에 조금 더 있으면 땀을 많이 흘리거나 설사를 하거나 한동안 물을 못 마시는 일이 있어도 혈압이 위험할 정도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남아도는 나트륨과 물 때문에 혈압이 조금 높아져 그 상태로 몇 년 동안 지속되더라도 몸이 견뎌낼 수 있다. 따라서 몸에 물과 나트륨이 조금 남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너무 없는 것을 걱정하는 쪽으로 몸의 미세 조정 장치가 작동하는 것이 합당하다.


수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 물과 나트륨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탈수증을 겪지 않고 생존할 확률이 더 높았을 것이고. 그 이점을 후손인 우리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충분한 물과 소금을 구할 수 없다면 또는 탈수증으로 의식 혼란을 겪거나 기절을 한다면, 이러한 방어 기제는 우리 목숨을 구하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조상들과 현대인의 나트륨 섭취

조상들은 하루 0.7그램의 나트륨으로도 잘 살았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마라톤을 완주하는 일이 거의 없다. 특히 그런 환경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몸의 물과 소금 체계는 다른 식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 현대인에게 구토나 설사는 흔한 병이다. 무더위가 계속되면 특히 노인들이 탈수증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갈증을 느끼는 감각이 상대적으로 무뎌지고, 나중에 필요할 소금과 물을 신장에서 보존하도록 호르몬으로 자극하는 능력도 젊었을 때보다 떨어지는 등 호르몬의 전반적인 협조와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수를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짠 과자가 범람하고 냉방된 방에 들어가 정맥 주사를 쉽게 맞을 수 있는 현대에 사는 우리 대부분은 페이디피데스와 석기 시대 조상들이 맞닥뜨렸던 문제를 겪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더해 몸을 덜 움직이게 되면서 땀을 덜 흘리고 따라서 나트륨도 덜 필요해졌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조상들은 하루에 0.7그램의 나트륨으로 잘 살았고, 브라질의 야노마미족처럼 소금을 거의 손에 넣지 못했던 사람들은 하루에 0.4그램 이하의 나트륨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 곳이나 하루 0.6그램 이하의 나트륨을 섭취하는 파푸아뉴기니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정상 혈압을 가지고 있으며 나이가 들어도 좀체 오르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나트륨을 섭취하는 미국인은 대부분의 소금을 자기 집 식탁에 놓인 소금통이 아니라 빵, 과자, 수프, 소스를 비롯한 가공 식품과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통해 먹고 있다. 식품을 보존하는 데 주로 소금을 사용했던 19세기 미국인에 비해서는 섭취량이 줄었지만 우리가 먹는 양은 종족 보존에 필요한 양보다는 훨씬 많다.


문제는 소금 섭취에서 그치지 않는다

요컨대 엄청난 대가와 위험을 무릅쓰고야 손에 넣을 수 있던 물질이 이제는 너무나 많아져 넘쳐나고 있다. 한때 금보다 더 비쌌던 물질이 오늘날에는 식품 보존에 필요해서가 아니라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온갖 음식에 첨가되고 있다. 한때 충분히 먹을 수가 없어 고생했던 물질이 너무나 흔해져 너무 많이 먹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출혈, 응고 그리고 심장 질환과 뇌졸중이라는 현대병

구석기 시대의 출혈 위험

출산 시 출혈이 더 큰 문제였다

선사 시대에는 부상도 큰 걱정이었지만 종족 보존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출산에 따른 출혈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다. 현대 미국에서 제왕 절개가 아닌 자연 분만으로 출산하는 여성은 아기를 낳은 다음 태반이 떨어져 나오면서 평균 1파인트(약 0.47리터) 이하의 피를 흘리며,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경우 2파인트(약 0.9리터) 이상의 출혈을 하는 산모는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구석기 시대의 산모가 출혈을 얼마나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최근에 나온 일부 통계 수치를 참고해 직면했던 위험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1990년까지도 개발도상국 중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는 임산부 100명 가운데 최소 1명은 출산 중 목숨을 잃었다. 그중 3분의 1(다시 말해 300명 중 1명)은 제어할 수 없는 출혈이 사망 원인이었다. 구석기 시대 여성이 평생 평균 10명의 아이를 낳고 이와 비슷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면 출산 중 또는 그 직후 출혈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평생 30분의 1이었을 것이다.


현대적인 산과 의료 서비스, 수혈, 외과 수술, 봉합 같은 치료의 도움 없이 수천 세대에 걸쳐 출산을 하고 폭력 상황을 헤쳐 나가야했던 우리 조상들은 피가 응고되어야만, 그것도 재빨리 응고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현대의 우리 몸도 조상들과 같은 방식으로 피가 응고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순조로운 피의 흐름과 응고

혈소판과 혈액 응고 단백질의 신속 대응 체계

혈액은 보통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혈관 속에서 부드럽게 흐른다. 혈관 안쪽에 자리한 한 겹으로 된 세포 층에서 다양한 인자들이 배출되어 국소적인 혈액 응고와 순환계 전체에서 생기는 혈전을 방지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 겹짜리 세포 층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세포들은 이런 응고 방지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피를 흘리는 상황(그리고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급성 심장 마비를 일으킨 상황)처럼 이 한 겹 내벽에 손상이 가서 다음 층이 노출되면 혈액 응고 체계가 가동된다.


혈액 응고 신속 대응 체계에는 서로 독립적이지만 깊이 연관된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혈소판에 기초한 체계다. 혈소판은 평소에는 혈액 속을 떠돌다가 혈관 안쪽 세포 방어벽에 손상이 가면 노출되는 특정 수용체에 자석처럼 재빨리 가서 붙는다. 각 혈소판은 노출된 수용체와 결합하면서 유인 물질을 분비해 다른 혈소판들에게 동맥이나 정맥에 난 구멍을 막는 전투에 신속하게 참가하도록 독려한다.


두 번째 혈액 응고 경로는 열 가지가 넘는 혈액 응고 단백질이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켜 일종의 섬유그물망을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이 그물망은 혈관 벽에 난 더 큰 상처를 때우는 동시에 혈소판들이 와서 쌓일 수 있는 기본 구조물 역할을 한다.


혈액 응고와 방지 사이 균형이 깨지면 위험하다

정상적인 상태일 때 혈관 내벽 한 겹짜리 세포층이 분비하는 혈액 응고 방지 물질들은 응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섬유 그물망 조직을 형성하는 바로 그 단백질들을 파괴하거나 비활성화시킨다. 그럼으로써 혈전이 너무 커지거나 혈액 순환계 전체를 막아 버리는 것을 방지한다. 따라서 혈액 응고 방지 물질의 양이 줄거나 그런 물질이 제 기능을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불필요한 혈전, 특히 압력이 낮고 피가 도는 속도가 느린 정맥에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당연히 높아진다. 이 현상은 우리가 활동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지 않을 때 더 두드러진다.


혈액 응고 요인과 응고 방지 요인 사이의 균형은 정밀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야 피가 원활하게 순환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응고나 출혈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 놀랍도록 섬세한 균형을 깨뜨리는 어떠한 작은 변화도 몇 분 안에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출혈 방지 생존 형질이 부적절할 때

정맥에 생기는 혈전: 하지 정맥류와 폐색전

혈액 응고 단백질이나 혈소판 숫자가 너무 적으면 과다 출혈을 겪지만, 이런 물질이 너무 많으면 과다 응고를 초래할 수 있다. 과다 응고 경향은 유전인 경우가 많지만 임산부나 일부 암 환자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주로 정맥에 혈전이 생길 확률이 높다.


혈액은 동맥보다 정맥에서 더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어느 정맥에서나 혈전이 생겨 문제를 일으킬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신장에서 걸러 낸 노폐물을 실어 나르는 정맥이 막힐 경우 신장의 모세혈관에 압력이 가중되는데 그에 따른 손상은 심각한 신장 기능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 뇌에서 심장으로 혈액을 나르는 주요 정맥에 혈전이 생기면 심한 두통, 뇌졸중과 유사한 증상,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피부 가까이 있어 눈에 보이는 다리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하지 정맥류라고 부른다. 하지 정맥류는 보기에 그다지 좋지 않고 살짝 불편한 것만 빼고는 다른 부작용이 없다. 이에 비해 깊이 자리 잡은 더 큰 정맥에서 자체적으로 생겨나거나 피부 가까운 정맥에서 만들어진 것이 확장되어 생긴 혈전은 크기가 훨씬 더 커지면서 상당한 불편을 끼치고 심지어 다리가 부어오르기도 한다. 이런 큰 혈전의 일부-특히 허벅지에서 시작되었거나 거기로 확장된 혈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점점 더 큰 정맥을 따라 움직이다가 심장의 오른쪽 부분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위험해진다. 보통 이렇게 돌아들어온 혈전은 우심방과 우심실을 거쳐 폐동맥으로 별 문제없이 빠져나가곤 한다. 그러나 폐동맥은 갈수록 가지치기를 해서 점점 작아지기 때문에 혈전이 그중 한 곳에 자리 잡고 폐로 가는 피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이 심각하고 간혹 치명적인 결과까지 낳곤 하는 증상은 ‘폐색전’이라고 부른다.


죽상 동맥 경화증: 콜레스테롤 양보다 나쁜 지방이 문제

정맥에 생긴 혈전이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심장에서 신체 각 기관으로 피를 전달하고 훨씬 더 빠른 속도와 큰 압력으로 피가 흐르는 동맥에 생긴 혈전은 그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동맥에서는 완전히 정상적인 혈류가 유지될 때조차 혈액 응고 체계가 활동에 들어가기도 한다. 혈액의 흐름이나 응고 체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실제로 혈관에 구멍이 나고 찢어져서가 아니라, 혈관을 보호하는 한 겹짜리 세포층에 손상이 갔을 때다. 이런 손상을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죽상 동맥 경화증이다.


죽상 동맥 경화증은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지방이 동맥 안쪽 벽에 달라붙듯 축적되면서 생긴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200~300밀리그램의 콜레스테롤을 음식을 통해 섭취하지만, 간에서는 그보다 세 배에서 다섯 배나 많은 콜레스테롤을 만들어 낸다. 콜레스테롤은 우리 건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100조 개에 달하는 몸속 세포의 세포막 일부를 이루는 동시에 다양한 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재료고, 지방과 비타민 A, D, E, K를 흡수하는 데 필요한 쓸개즙에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먹는 순수 콜레스테롤의 양은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2장에서 살펴봤듯이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은 적어도 현대인이 섭취하는 콜레스테롤과 맞먹는 양을 섭취했을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조상들이 먹은 야생 동물은 지방이 적고 그 지방도 더 건강한 고도 불포화 지방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반해 현대인의 식단에는 가축의 고기에 많이 함유된 포화 지방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식물성 경화유의 트랜스 지방이 잔뜩 들어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가 먹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아니라 이런 나쁜 지방들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몸 보호하기

우리 행동 바꾸기

우리 의지가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의지력이 우리를 구해 줄까

지금까지 거론한 네 가지 생존 형질-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는 것,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소금을 간절히 원하는 것,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질 위험을 각오하고 사는 것, 혈액 응고가 너무나 잘되는 것-은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뿌리 깊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1장에서 5장에 걸쳐 설명했듯이, 일부 사람들은 이런 형질을 더 강하게 만드는 특정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20만 년 동안 생존이 걸린 무수한 싸움에서 조상들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보호 유전자를 다량 보유하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이 유전자들은 과거만큼 우리에게 그것들이 필요한지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의 행동과 기본적인 신체 기능에 강력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있다. 우리의 DNA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거칠 것이다. 하지만 DNA가 놀라운 문명의 진보 속도에 발맞춰 따라갈 만큼 빠르게 변화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의지력으로 우리 행동을 변화시켜 유전적 성향을 상쇄할 수 있을까? 정신력에 의존하는 접근법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생존 형질과 현재 상황에 맞는 조건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는 합리적인 방법일까? 아니면 우리 역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알을 낳고 죽는 연어들처럼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행동을 바꾸려는 시도는 모두 무의미한 것일까?


다이어트로 먹는 본능 이기기

다이어트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니다

문제는 다이어트를 하는 것 또는 열량 섭취를 어떤 형태로든 제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먹는 본능을 타고났다. 우리 몸은 적어도 포만감이 들 때까지, 어떤 경우에는 불편할 정도로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계속 먹고, 시간이 조금 흘러서 더 먹을 수 있는 몸 상태가 되면 바로 다시 먹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단 한 가지 예외는 한 종류의 음식만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태에서는 포만감이 들지 않더라도 싫증이 나서 더 먹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다. 물론 이것도 굶주림의 위험이 없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여러 다이어트 방법 간의 효과 차이는 미미하다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그럴 기미가 있으면 개입하는 온갖 호르몬들 덕분에 다이어트는 실행이 힘들고, 유지는 더 힘들다. 상담과 다이어트를 포함한 대부분의 체중 감소 시도를 조사한 결과, 이런 노력을 1년 동안 기울인 후 평균 10파운드(약 4.5킬로그램) 이상 감량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다이어트 방법 간에도 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어쩌면 이 사실이야말로 시중에 수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유행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더 나은 식습관의 잠재적 혜택

또 다른 더 복잡한 질문은 각종 다이어트가 건강에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체중 자체가 유일한 문제점은 아니다. 어떤 다이어트는 체중 감량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지 모르지만 건강에는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올리브 오일, 견과류, 신선한 과일, 채소, 생선, 콩류, 붉은 살코기보다 흰 살코기, 포도주로 식단을 짜는(청량음료, 제과·제빵 상품, 트랜스 지방, 가공 식품은 멀리하는) 지중해식 다이어트는 체중 감량보다는 당뇨병 발병 위험을 줄이고, 당뇨병 환자의 혈당 유지에 도움이 되며, 심장 마비와 뇌졸중을 예방하는 한편, 우리 염색체의 텔로미어 길이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춰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에 비해 신진 대사 건강,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저지방 다이어트나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효과적이라는 주장에 관해서는 상충하는 증거가 많고 확실한 결론이 전혀 나와 있지 않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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