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6월 4주차

BOOK SUMMARY
 인문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저자 임경빈
출판 부키
출간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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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예능 프로마냥 사랑받는 이상한 뉴스 ─ 소통하고 반응하는 뉴스의 등장

<뉴스룸>의 차이

시청자들이 응원 편지를 보내는 뉴스, JTBC <뉴스룸>은 그렇게 ‘이상한 뉴스’다. 눈물 쏙 빼는 드라마도 아니요, 유재석ㆍ강호동이 시종일관 웃겨주는 예능 프로도 아니다. 정치와 사건ㆍ사고 소식을 주로 다루는 뉴스 프로그램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JTBC 뉴스를 보며 위로 받는다, 힘내시라, 퇴근 휴 <뉴스룸>으로 마음을 달랜다’고 고백한다. 계약직 프리랜서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내가 <뉴스룸> 작가라는 것만으로 호의적인 기대를 담아 질문한다. “<뉴스룸>에서 일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지금 <뉴스룸>이 인기 있는 이유는 아마도 남다른 ‘차이’ 덕분일 것이다. 기존의 뉴스들과 달랐기 때문에 다른 기대와 반응을 얻어낸 것이다. 내용 측면에서의 차별화는 이미 손석희 앵커가 JTBC의 보도 부문 사장으로 내정되면서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진실을 향해 깊숙이 들어가는 뉴스는 단순한 사실 나열에 그쳐 만들 수 없다. 관점을 또렷하게 가지고 확신이 들 때까지 들이파야 간신히 얻어진다. 뉴스를 발굴하거나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버티고 짜내서 뉴스를 키우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JTBC <뉴스룸>이 끝내 물 밖으로 끌어올린 이슈가 4대강 사업 부작용 논란이었고, 세월호 참사 보도였으며,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였다. 그 치열했던 보도들이 JTBC를 향한 시청자의 신뢰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한편 내용만으로 모든 차이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내용에 걸맞는 형식적 차별점이 있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그렇다면 <뉴스룸>의 형식은 무엇이 다른가.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안을 다각도로 보여 주기 위한 ‘뉴스쇼’ 형식의 묘미다. 중간중간에 다양한 형식의 개별 코너들을 배치했다. 개성 넘치는 코너들이 뉴스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시청자들에게 사안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논평, 풍자, 심층 분석 자체가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관점이 없는 뉴스는 객관을 가장한 책임 방기’라는 기조로, 시청자들을 위해 또렷한 관점을 유지한다.


소통하고 반응하는 뉴스의 탄생

과거 지상파 채널이나 보도 채널의 뉴스는 ‘틀어 놓는 뉴스’였다. 대개 “이런 사건들이 있습니다” 식으로 이슈를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거기서 화제거리를 얻는다. 그 화제는 저녁 밥상이나 술자리 테이블에 올라 거기서 따로 요리된다. 사람들은 뉴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해당 이슈에 대해 이야기한다.


<뉴스룸>은 ‘덩어리’를 만들어 그 표면을 뚫어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이슈의 표면에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스토리의 다발’로 만든 가이드라인을 내려뜨려 시청자들이 이슈의 핵심까지 갈 수 있게 안내한다. 지나치게 친절한 그 방식이 자칫 교조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보고 지나치는 뉴스’가 아니라 ‘보고 반응하는 뉴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래서일까, <뉴스룸> 시청자들은 밥을 먹으면서 배경으로 <뉴스룸>을 틀어 놓는 게 아니라 식사 후에 자리를 잡고 뉴스에 집중한다. 드라마를 보고 예능을 보듯이 집중해서 보는 뉴스, 혹은 맥주 한 캔과 함께 즐기는 뉴스가 된 것이다. 한국 뉴스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시청자와 밀착도 높은 뉴스를 탄생시킨 건 바로 이런 구성 전략이었다.


2016년 겨울, ‘취재 겸’ 광화문 촛불 집회에 나갔던 어느 주말. 국정농단에 대한 진실 규명과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광장에서 내가 만든 방송을 시민들과 함께 보는 건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런데 더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 건 화면을 응시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시민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이 광장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고 그걸 통해서 무얼 얻고자 하는 것인지, 내가 만든 팩트체크의 내용이 해설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헌법이 선출직 권력자에게 준 권한의 한계가 무엇인지 분명히 선을 그었던 그 방송은, 광장의 시민들이 가진 권한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자부심이 차올랐다. 시민들은,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렇게 우리가 만든 방송을 보며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는 매뉴얼로 삼고 있었다.


우리는 울면 안 되는 사람들 ─ 보도하는 자의 슬픔, 100일간의 특보 체제

결코‘건조’할 수 없었던 뉴스

본래 뉴스 보도의 출발점은 ‘건조함’이어야 한다. 사실 관계에 대한 면밀한 판단이 우선이기 때문에, 사안을 건조하게 볼 필요가 있다. 감정 이입이 지나치면 우리가 보는 피사체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검토해야 할 것들을 놓치거나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생긴다. 관찰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판단을 먼저 하고 관찰을 붙이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건조한 시각은 필수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게 세월호 참사 보도였다. “지겹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자식이 어떻게 지겨울 수 있습니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세월호 지겹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단원고 학생의 부모님 중 한 분이하신 말씀이었다. 이 말을 보도하면서 울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취재였다. 나는, 아니 우리는, 마주한 뉴스 앞에서 자주 울었다. 무대를 비추는 조명과 대비되어 더욱 어두운 무대 뒤편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을 울었다. 구석의 의자에 앉으면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슬픔이 등 뒤로 올라왔다.


보도하는 자의 슬픔 그리고 분노

어쩌면 그것은 보도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더 아프게 짊어져야 하는 슬픔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청자들은 괴로우면 TV를 끌 수 있었지만 그 뉴스를 전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다. 불편한 진실 자체가 그 진실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매 순간 더한 고통을 주었다. 그것이 언론 종사자들의 숙명이었다.


지금도 종종 누군가 스쳐가며 ‘바다’, ‘아이들’, ‘세월호’같은 이야기를 하면 순간 왈칵 눈물이 솟는다. 시간이 갈수록 전 국민적인 분노는 ‘갈라치기’를 당했다. 마침내 ‘세월호 지겹다’는 목소리가 슬슬 흘러나오더니, 곧 세월호 가족들에 대한 저주와 조롱으로 바뀌어 갔다. 사고 초기 정치권이 공언했던 ‘세월호 특별법’은 1년 가까이 끌려 다니다가 연말에야 간신히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정치 공방에 휩싸여 내내 표류하다가 끝내 흐지부지 침몰하고 말았다. 마치 세월호처럼.


어젠다 키핑, 누구를 위해 보도하는가

JTBC의 세월호 특보 체제는 100일 넘게 이어졌다. 대부분의 뉴스에서 ‘세월호’와 ‘팽목항’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JTBC는 끈질기게 세월호 소식을 전했다. ‘팽목항 지킴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파견기자는 김관에서 서복현으로 옮겨 가며 끝끝내 현장을 지켰다. 세월호 참사 초기 JTBC <뉴스9>의 최고 시청률은 5.4%였다. 종편이 완전히 자리 잡기 이전이었던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뉴스 시청률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사람들을 무디게 만든다. 그 뒤로 한동안 4%를 유지하던 시청률은 우직하게 세월호 관련 뉴스를 전면에 배치하면서 날이 갈수록 내려갔다. 1%대까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손 앵커는 끝끝내 세월호 소식을 빼지 않았고 고집스럽게 팽목항을 연결했다.


당시에는 솔직히 너무하다는 생각도 했다. 바뀌지 않는 상황을 놓고 매일 고통스러운 현실을 정리해 나가는 일이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고집스러운 보도가 결국 JTBC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 되었다. 보도국 구성원들은 단순히 뉴스를 던져 놓는 단계를 넘어서 우리가 제기한 어젠다를 유지하는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뉴스의 대상에 대해 공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환기하게 되었다. 세월호는 JTBC 뉴스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시사방송작가의 흔한 사생활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 ─ 방송작가, 뉴스에 컬러를 입히는 사람

카메라 뒤에 숨겨진,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

현장 취재기자의 ‘짝패’는 카메라기자들이다.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를 잡는 카메라감독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들은 취재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함으로써 취재를 한다. 취재 현장에는 이들만 나가는 게 아니다. 음향 장비나 카메라 삼각대, 때로는 높은 위치에서의 촬영을 위해 사다리까지 동원되는데, 이 장비들을 옮기고 세팅하는 카메라 보조기자들의 역할도 작지 않다. 그리고 이 모두를 현장으로 실어 나르는 취재 차량 운전기사들 역시 뉴스가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장 취재 화면이 방송국으로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모양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다. 원본 영상을 리포트나 코너 원고에 맞게 편집하는 작업은 PD(연출)와 AD(조연출)의 몫이다. 각각의 화면을 생동감 있게 완성하는 건 그래픽 디자인(CG)이다.


‘온에어’(On Air)이후 더 분주해지는 역할들도 있다. 일단 스튜디오의 카메라를 통제하는 카메라 감독들. 3~4대의 카메라가 시선을 좁혔다 넓혔다 하면서 매순간 필요한 화면을 잡아낸다. 스튜디오 현장을 통제하고 출연자들에게 마이크를 달아 주고 필요한 소품을 제때 활용하기 위해 스튜디오 내부 스태프들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이들을 통칭 FD(연출보조)라고 하는데, 이런 기초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서 AD가 되고 PD가 된다.


PD는 말 그대로 뉴스를 ‘연출’하는 감독이다. 상황을 지휘하는 메인 PD 외에도 조종실 안에는 많은 PD들과 스태프들이 있다. 각각 코너를 맡은 PD들도 있고, 영상을 편집해서 재생하는 스태프, 화면에 그때그때 내보낼 자막을 처리하는 스태프, 앵커와 기자들이 보고 읽을 대본을 화면에 띄워주는 ‘프롬프터’ 담당 스태프도 있다. 출연자의 목소리 톤을 조절하고 배경음악을 관리하는 등 ‘사운드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음향 감독과 사운드 엔지니어들도 있다.


방송작가, 뉴스에 컬러를 입히다

기존에는 시사방송작가들이 <뉴스룸> 같은 메인뉴스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시사 프로그램이라 일컬어지는 개별 토크 프로그램의 구성작가 역할을 했는데, 섭외와 질문지 작성이 주된 업무였다. 반면 메인 뉴스는 여전히 가자들로 구성된 보도국이 만드는 것이었고, 글 쓰는 일이 주 업무인 기자들 입장에서는 작가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뉴스 트렌드가 바뀌면서 방송작가의 뉴스 참여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JTBC<뉴스룸>의 경우, 작가들의 참여 폭과 깊이가 기존의 뉴스와 완전히 다르다. 개별 코너에서 자료 취재나 섭외를 함께할 뿐만 아니라, 뉴스를 기획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일도 한다. 더 나아가 뉴스 전체의 맥락과 색깔을 조율하는 ‘뉴스 코디네이팅’ 전문작가도 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뉴스들의 다발을 묶어 전하는 심층 보도, 뉴스의 의미를 짚는 해설 보도, 나아가 논평과 풍자를 넘나드는 영역까지 뉴스의 성격을 확장시켰다.


취재 내용의 절반도 채 담지 못하지만 ─ 본질을 왜곡하지 않는 보도를 위해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 제한된 시간과 형식 안에서 완결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한 모든 내용을 방송에 넣을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이걸 넣을까, 뺄까.


꼭 들어가야 하는가?

보도가 결정된 아이템을 A→B→C의 순서로 구성한다고 하자. 그러면 A, B, C 각각에 들어갈 세부적인 자료나 참고 내용들을 취재해 붙여 나가면 된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면 A 수준이 아니라 갑자기 F로 튀어 나가는 자료가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여기에 추가적인 자료들이 붙으면서 F, F"로 자료의 크기가 계속 커진다. 이럴 때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자료가 오늘 아이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꼭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빼도 괜찮은가. 선택에 따라 그 날 보도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전문가 패널 구성이 중요하다

워낙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그만큼 다양한 전문가들을 취재하다 보니 굳이 사적인 만남을 갖지 않아도 친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는 헌법을 워낙 많이 다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헌법학자들과 거의 모두 한 번씩 통화를 했다. 그중에 특히 자주 통화한 모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그 정도 팠으면 이제 법전원 입학해도 되겠다”며 우리 팀원들에게 로스쿨에 지원해 보라는 권유(?)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전문가들과 친해지고 그들을 수위 ‘잘 다룰 수 있어야’ 좋은 보도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전문가풀(pool)을 만들려고 한다. 늘상 같은 교수에게 조언을 구는 바람에 매번 비슷한 이야기만 보도하는 경우들이 간혹 있는데,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새로운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방송작가를 비롯해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패널 조사를 하는 여론 조사 연구원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패널들이 일반 유권자나 시민이 아니라 대학교수 같은 각 분야 전문가일 뿐이다. 조사의 정확성을 높이려면 패널 구성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하고 마이어스(bias, 편향)를 어떻게 제거할지, 최대한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늘 고민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최대한 많이 듣는 것’이다.


다양한 시선, 생각의 단초를 제공하는 SNS로 균형 잡기

정보를 빠르게 접하고 검증하는 수단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는데.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일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가 되었다. 내 트친(트위터 친구) 중에는 싱가포르에서 석유 현물 트레이더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트위터에 올리는 짤막한 글이나 공유하는 기사들을 통해 국제 유가나 금, 곡물 등 현물 가격의 변동이 국제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는 트친을 통해서는 미국 법률 시장의 사정과 미국 정치 현실을 간접 체험한다. 유럽에서 사회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트친, 회계사 출신으로 국내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있는 법학도 트친을 통해 다양한 논문들도 접한다.


건설회사 직원, 은행원, 정치 컨설턴트, 검찰 수사관, 전직 검사, 현직 소방공무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직업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공유한다. SNS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 게다가 실제 만나더라도 이렇게까지 내밀한 이야기를 금방 끄집어낼 수 없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SNS는 어쩌면 방송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다.


다만 맥락을 생략하는 매체의 본질적 특성에 대해서는 늘 경계해야 한다. SNS는 생각의 ‘단초’를 얻는 편리한 도구일 뿐, 생각의 ‘확장’을 가져다주는 책과는 다르다. 단서를 얻었다면 거기서부터 진짜 정보를 찾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주어진 정보를 선별하고 해독할 수 없다면 SNS는 정말로 ‘인생의 낭비’가 될 수도 있다



진실을 보도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

어찌된 일인지 계단은 아래로 깊어지기만 한다 ─ 하청 피라미드의 가장 밑, 방송작가

2015년, 드디어 꿈꾸던 집을 지었다. 택지 한 개를 두 가구가 쪼개서 지은 일종의 ‘땅콩집’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생의 꿈이었던지라 많이 고민하고 공을 들였다. 그러다가 모 지상파 방송사의 집 소개 프로그램까지 나가게 되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소위 ‘아침 와이드 방송’이라고 하는데, 맛집 소개하든지 살림 아이디어들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일종의 버라이어티쇼다.


촬영 당일. 방송국 스태프 10여 명이 왔는데 남자는 딱 2명,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와 카메라 감독뿐이었다. 나머지 스태프들은 모두 여자, 그것도 젊은 여자들이었다. 거의 대부분 20대 초중반으로 막 대학을 졸업했거나 경력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게 뻔해 보였다. 이유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그들이 가장 싼 노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아침 와이드 프로그램은 제작 주체가 방송국이 아니다. 외주 제작사, 그것도 재하청이 아니면 다행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별과 고통은 항상 그렇듯 가장 약한 자들을 향한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 구조로 만들어진 임금 피라미드는 당연히 하단으로 내려갈수록 열악해진다. 계단의 가장 밑은 여전히 처참한데, 아직도 조금씩 더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어찌된 일인지 계단은 위로 넓어지는 일 없이 아래로 깊어지기만 한다.



새벽 첫차 안에 울리는 아침 뉴스 ─ 라디오 막내작가의 새벽

라디오 막내작가의 새벽

가만히 서 있어도 찬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언 겨울 새벽. 신촌 한구석 버스 정류장에서 마포로 나가는 7613 버스의 첫차를 탄다. 버스 스피커에서는 기사가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가 낮게 웅얼대고 있다. 10여 년 전, 막내작가를 하던 시절 나의 하루는 늘 그렇게 새벽 첫차에서 시작되었다.


새벽을 깨우는 시사 프로그램 막내작가

아침 뉴스 헤드라인들이 오늘 우리 방송 흐름이랑 잘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막내작가의 첫 일과다. 아침 상황이 어제 작성된 원고들과 잘 맞는지 다시 한 번 훑어본 뒤에 메일함을 확인한다. ‘뉴스브리핑’ 코너를 진행할 패널 원고가 잘 도착했는지부터 봐야 한다.


“굿모닝, 뭐 특별한 거 없지?” 이때쯤 메인작가 선배가 출근을 한다. 일상적인 인사인 동시에 일종의 기원이기도 하다. 야구모자에 후드티를 뒤집어 쓴 퀭한 눈의 선배는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빠르게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를 원고에 쳐 넣는다. 전체적인 원고의 윤곽은 보통 전날 밤에 마무리가 되지만, 오프닝과 클로징은 방송 직전에 쓰는 작가들이 꽤 많다. 그날 아침 상황까지 최대한 반영해야 생생한 멘트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글이 잘 안 나올 때의 고통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생방송 시간은 다가오고, 글은 막히고…. 우스갯소리로 ‘변비’라고 부르지만,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나날이다.


마이크가 꺼지고 난 후

오늘의 핵심 이슈메이커들은 시간대를 달리해 인터뷰를 여기저기서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멘트가 하나라도 더 기사화되기 위해서는 빨리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방송이 끝나면 홈페이지에 바로바로 녹취록을 올리고, 핵심적인 부분은 정리해서 주요 언론사에 ‘보도 참고 자료’ 형태로 보낸다. 각 언론사들은 라디오에서 나온 내용들을 참고해 그날 기사의 방향을 잡기도 한다.


방송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진행자와 PD, 작가진은 곧바로 회의에 들어간다. 다른 방송국의 이슈 정리표와 조간신문들을 펼쳐 놓고 내일의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오늘을 분석해 내일을 전망하는 시간. 여의도에서 지금 누가 가장 중요한 ‘스피커’이고, 이 뉴스의 당사자는 누구냐, 그 연락처는 어떻게 확보하고, 어떻게 설득해서 방송 마이크 앞으로 데려올 것이냐. 종합적 고려가 치밀하게 작동해야 오후의 섭외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라디오에도 청취율 조사가 있긴 하지만 TV 시청률만큼 매일 체크해서 신경 써야 하는 지표는 아니다. 그렇다 보니 TV라면 시청률을 의식해 쉽게 다루지 못할 이슈들도 라디오에서는 곧잘 다룬다. 파업에 돌입한 노조의 이야기, 장애인 이동권 이슈, 폐교 위기를 넘긴 시골 학교의 도전 같은 아이템들은 TV라면 잘 다루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선배들 중에는 라디오 시사 프로만 고집하는 분들도 있었다.


아이템을 결정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섭외 전쟁이다. 내가 본 그 기사를 옆 채널 작가도 보고, 우리 청취자가 궁금해 하는 이슈는 다른 프로그램 청취자도 궁금해하는 법이다. 결국 누가 더 빨리 잡느냐, 혹은 누가 더 잘 ‘꼬시느냐’의 싸움이다. 물론 매체 파워의 차이는 기본으로 깔려 있다. 섭외야말로 시사 프로그램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에 섭외 실력은 곧 작가의 실력이기도 하다.


작은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니 서러운 일도 많았다. 주요인사 섭외는 거절당하기 일쑤고, 잡아 놓았던 인터뷰도 다른 방송국에 밀려 취소되는 일을 종종 겪었다. 그러다 보니 느는 건 요령이요, 근성이었다. 미리 대안 리스트롤 뽑아 놓고 빠르게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는 기술도 생겼다.


그렇게 해서 섭외를 성공시키고 나면, ‘질문지’라고 부르는 인터뷰 원고를 작성한다. 질문지는 진행자의 인터뷰를 여는 ‘리드 멘트’와 인터뷰 대상에게 던지는 질문 내용들로 구성된다. 질문지는 단순히 질문만 던지는 원고가 아니다. 가상의 대본을 전제로 흐름을 만드는 과정이다. 인터뷰 대상과 질문지를 주고받는 건 액션 영화에서 미리 합을 짜 보는 과정과 비슷한데, 전체적인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이 좋은 작가들은 진행자의 성향까지 질문지 안에 녹여 낸다. 인터뷰 상대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 ‘돌발 질문’ 역시 베테랑의 원고에서 두드러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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