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 2주차 |
BOOK SUMMARY | ||
자존감 높이려다 행복해지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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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허용회 출판 팜파스 출간 20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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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 보기자존감 높이느라 행복해지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권하고, 매달리고, 팔고… 바야흐로 자존감 열풍 사회 변화는커녕 나 하나도 지키기 힘든 사람들최근 사회적으로 자존감 열풍이 거셌습니다. 자존감을 주제로 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 많은 내용이 속삭였습니다. ‘자존감이 가장 큰 문제’이며, ‘자존감이 높아지면 고민하던 마음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이죠. 몇몇 사람들은 이런 매혹적인 유혹에 빠져들었습니다.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자존감에 맡기고 의지하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자존감은 이렇게 신화가 되었습니다. 자존감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시험에서 낙방했거나, 직장 일이 안 풀리는 등 유독 슬프고 힘겨울 때는 그 누구의 위로라도 간절합니다. 그럴 때, 평소에는 낯간지러워서 잘 보지도 않았던 자존감 이야기들이 마치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 뭉클할 때가 있지요.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자존감이 이렇게 대중적인 주목을 받으며 책, 교육, 컨설팅 등 자존감 관련 상품들이 넘쳐 나는 이 상황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알고, 자존감을 열심히 공부하며, 자존감을 높이려 애쓰고 있는 상황이지요. 자존감의 달콤함에 매료된 사람들이 적었다면 분명 나타날 수 없었을 시대의 변화입니다. 큰 열풍이 불었던 만큼 응당 사람들의 자존감 수준은 이전보다 분명 더 나아졌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존감에 대한 결과 통계를 보면 자존감 열풍이 끼친 자존감 향상 효과는 아직까지 부족해 보입니다. 직업 구인, 구직 전문 업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0대~20대 남녀 1,648명 중 응답자의 약 47.9%가 자신의 자존감을 낮게 평가했습니다. 이는 전체 응답자 중 약 절반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반면 자신의 자존감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응답자 비율은 약 17.4%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자존감에 관한 책은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자존감의 문제’가 만족스럽게 해결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왜 우리들의 자존감은 아직 낮을까요? 열심히 노력했는데 불구하고 변화가 없다면 우린 고민해 봐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자존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진 않았을까요? 자신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다른 사람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지 않거나 근거 없는 우월감에 젖어 있거나, 상대방을 깎아내리진 않았나요? 그렇게 해서 높인 자존감 한편에 허무함이 자리 잡진 않았나요? 자존감은 분명 좋은 것입니다.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로 보고, 존중하려는 마음’이니까요. 당연히 높은 자존감을 갖고 싶어 하는 우리들의 바람 역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존감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있었음에도 우리의 삶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면 다시, 다르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적절한 방법으로 자존감을 추구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노력의 효과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시도했던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그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자존감은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경쟁에서 자존감을 지킨다는 것 행복하기 위한 자존감은 따로 있다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 사실 자존감의 다양한 측면들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의 부작용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상당수 마음의 문제들을 고려할 때 ‘자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일단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게 되면 그 문제에 걸맞은 대응책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병원에 가고 의사 선생님을 찾습니다. 스스로 ‘내 몸이 아프구나’, ‘내 건강이 현재 정상이 아니구나’ 등 충분한 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몸과는 달리 마음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편입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마음의 여러 문제들을 깨닫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지요. 마음의 병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는 데에는 비용의 문제, 정신과나 상담 센터를 찾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요인은 바로 자신의 마음 상태 및 대처 방법에 대한 무지입니다. 현재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 지금의 내 생각과 행동이 앞으로의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지 않고 때로는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여 스스로 진단을 내려 버리고 말지요. 임상가, 상담가 등 심리 전문가들이 내담자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역점을 두는 부분이 바로 내담자가 자기 마음을 자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자존감을 예로 든다면 잘못된 이해와 노력으로 구축된 자존감이 때로 자신을 힘들게 할 수 있음을 내담자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전문가의 주된 역할입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를 다스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 상태를 스스로 깨닫고, 폭넓게 이해하려는 자세입니다. 자존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스스로 자존감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추지 못한다면, 자존감의 긍정적인 효과들을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자존감의 여러 부작용들에 짓눌리고 말 수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자존감을 굳건하게 받치는 것은 스스로 이룩한 여러 개인적, 사회적 성취들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일상에서 성취를 맛볼 기회가 적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힘들고, 좋은 직장에 가는 것도 힘듭니다. 소중한 단짝과 결혼하는 일에도 돈 문제가 심각히 끼어들고, 내 집 마련하는 일은 대출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부모가 되고 싶어도 양육비가 만만치 않아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일도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성취감 부재의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자존감이 낮은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뭔가 이루는 듯한 기분이 있어야 뿌듯하고, 자존감도 높아질 테니까요. 자존감 열풍은 N포 세대 등의 표현이 가리키듯 포기할 게 더 많은 처지이지만 그래도 뭔가 이뤄 보고 싶다, 기죽고 싶지 않다,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등의 마음들이 모여 반영된 결과일 것입니다.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어도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줍니다. 이런 배경들을 고려하자면 ‘자존감 신화’를 깨려는 시도들은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책, 강연 등 자존감 이야기를 통해 이해받고 위로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분명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이 자존감 열풍으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현상의 이면에는 힘겨운 삶을 겨우 살아가는 사회 속 다양한 사람들의 한탄과 울분이 응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자존감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충분히 고민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쌓아 올린 자존감이 우리를 달래줄 수 있는 순간은 잠시뿐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무한 긍정’식의 자존감이야말로 각종 부작용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자존감을 높이면 정말 좋을까?’, ‘자존감이 부작용을 낳는 이유는 무엇일까?’, ‘꼭 자존감이어야만 할까?’ ‘어떻게 자존감의 부작용을 줄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취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해 먼저 고민한 후, 자존감을 추구해도 늦지 않습니다. 무작정 쫓느라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못했던 ‘자존감’. 그 자체부터 이야기해 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행복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높이려고만 했지… 알지 못했던 자존감의 얼굴들자기애의 두 얼굴, 나르시시즘과 자존감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망에서 생기는 자기에 대한 사랑.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자기애’ 항목을 찾으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정의입니다. 흔히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알려진 자존감과 자기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자기애’라는 말을 사용할 때, 혹은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을 고려하면 사실 자존감보다 더 먼저 떠오르는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나르시시즘’입니다. 나르시시즘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 또는 자기 자신이 훌륭하다고 여기는 일’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자존감과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사실 나르시시즘에 대한 연구들과 자존감에 대한 연구들을 비교해 보면 서로 유사하면서도 다르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먼저 이들 간의 유사성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은 이들에게는 자아가 목숨 그 이상으로 소중합니다. 따라서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채 자아를 보호하려는 한편, 자아를 공격하는 외부 대상을 무너뜨리려 매우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이러한 특징은 ‘자존감의 부작용’을 생각나게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도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소중히 쌓아 올린 자존감에 상처가 나는 것이 두렵고, 따라서 그것을 지켜내고자 자연스럽게 외부 위협에 대한 반발 심리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무서운 칼을 빼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은 서로 닮아 있습니다. 반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나르시시즘과 자존감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들에게 타인이란 ‘이용할 수 있는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타인을 자신의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좋은 사람’이란 그들 자신의 우월성 과시 및 사회적 성취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은 상대가 자신과의 관계에 헌신하지 않거나 이용 가치가 사라졌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그 인연을 내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려고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이러한 관계 방식은 업무 등으로 연결된 공적인 관계에서도, 연인 및 배우자와의 관계 등 사적인 면에서도 일관적으로 관찰됩니다. 결론적으로 나르시시스트들에게 중요한 대상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입니다. 타인의 행복과 안녕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들은 나르시시스트들과 달리 타인을 대하는 자세가 매우 안정적이고 관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행복에만 관심이 있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도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실제로 나르시시스트들과 달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이 친사회적 행동에 더 몰두하고, 이로부터 만족감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애, 자존감, 나르시시즘 이 세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편입니다. 자기애, 자존감, 나르시시즘. 서로 다른 듯 비슷한 이 개념은 사실 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나르시시즘과 자존감은 자기애의 일부입니다. 자기애라는 개념 속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자화상인 셈이지요.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이 서로 다르면서도 또 묘하게 닮아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 심리학 연구에서도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함께 상승하는 상관관계가 꾸준히 관찰됩니다. 즉, 자존감 수준이 높을수록 나르시시즘 수준이 높고, 반대로 나르시시즘 수준이 높을수록 자존감 수준이 마찬가지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기애의 두 측면인 자존감과 나르시시즘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의 문제이다 보니 ‘이것은 자존감이다’, ‘저것은 나르시시즘이다’ 등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존감에 대한 내용들을 접할 때 나르시시즘의 그림자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존감의 문화심리학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자존감이 낮다?’ 지극히, 한국적인 자존감에 대해한국 사회 속 자존감 열풍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살펴볼 것은 바로 ‘주체성’의 문제입니다. 사실 과거 문화심리학 분야에서는 주체성을 서양인들의 전유물로 여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서양에는 개인주의 문화권이 보편적이며 주체성, 자율성, 자기완성 등을 주된 가치로 삼는 반면 한, 중, 일 등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관계 중시, 조화, 협력, 상생 등을 중시한다는 것이 곧 개인주의-집단주의 분류의 요지입니다. 따라서 주체성이란 말 그대로 한국인에게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서양인들의 특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집단주의 분류 체계는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들을 어떻게 이 두 가지 범주로만 구분할 수 있을까’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과 함께 ‘개인주의 문화권’, ‘집단주의 문화권’으로 통틀어서 분류되던 국가들 간에도 사실은 상당한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러 실증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과연 ‘주체성은 서양인들의 전유물일까? 그렇다면 한국인은 주체적이지 않은 것일까?’, ‘같은 집단주의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간 주체성 수준에는 어떤 세부적 차이가 있을까?’ 등 개인주의-집단주의 분류에서 탈피된 새로운 논의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적으로 국내 문화심리학자들은 한국인들의 주체성이 약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다만 한국인들이 관계를 중시하는, 이른바 관계중심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바, ‘관계 속에서의 주체성’을 추구하려는 동기가 강력하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관계의 유지 및 조화, 협력 등을 중시하되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 것이 곧 한국인들의 심리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존재감’한국인들은 관계 내에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매우 중시합니다. 타인들에게 과시하고, 자신의 우월한 존재감을 내보이기를 원하지요. 이는 타인에게 무시받는 것은 죽도록 싫어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존재감을 충분히 어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어도 존재감이 ‘사라지는’ 상황만은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유독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도’ 갖고 싶어”, “‘나도’ 하고 싶어”, “‘나도’ 저기 껴들고 싶어” “‘나도’ 잘 살고 싶어” “‘나도’ 좀 해 보자”, “‘나도’ 좀 살자” 등 다른 사람들 사이에 ‘나도’ 존재하고 싶은 것이지요. 일각에서는 한국인들의 ‘나도’ 사랑을 가리켜 ‘냄비근성’이라 비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자신의 존재감을 잃고 싶지 않은 한국인들의 심리적 욕구가 크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인이 말하는 자존감이란 어쩌면 ‘관계 속의 주체성’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사에 치이고, 고된 노동에 치이고, 부족한 휴식에 치여 힘들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나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곧 한국인들의 자존감이 아닐까요. 행복해지고, 성숙해지고, 자아실현에 이르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보다 앞서 나도 잘할 수 있다고, 나도 좀 사회에 존재감을 어필하고 싶다는 그런 절박함, 취업도 안 되고, 일도 잘 안 풀리는 지금의 현실이 분하고 슬픈 나머지, 감추려야 쉽게 감출 수 없이 스며 나오는 어떤 울분, 21세기형 한의 집약체. 그것이 곧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자존감’ 이야기에 숨은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상처 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몇 해 전 공중파 뉴스에서 ‘자존감 열풍’에 대해 짧게 다룬 바 있습니다. 뉴스의 자료 화면에 등장한 어느 드라마 출연자의 대사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면접관 앞에서 울분을 참으며 상처 받지 않을 권리를 당당히 말하던 취업 준비생의 그 모습이야말로 곧 우리가 자존감을 지키려는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 아닐까요. 한국인들에겐 힘겨운 현실로부터 주체성을 유린당하고,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랠 시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 행복하기 위한 자존감 관리 처방전 자기 자신의 변화가 간절히 필요하다면, 자기자비 ‘건강한 자아란 관망하고 행동하는 것’낮은 자존감 때문에 지금 괴롭나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자기자비는 다른 해답을 제시합니다. 인생 속 불행은 필연이고 누구나 그것을 피할 수 없다면, 혹은 우주를 상상하는 것과 같은 압도적인 경험을 마주할 때 매일 치고받는 일상이 덧없다고 느껴진다면, 결국 억지로 애를 써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포장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는 것에는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자존감을 높이려는 것에는 분명 어떤 목적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자존감을 높인 후, 일상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라 믿고 있지요. 예를 들어 높아진 자존감을 통해 연애나 결혼을 하거나,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주변에 어필하여 사회생활을 잘 하거나,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행복한 자신이 되고 싶다거나...... 자존감 높이기를 통해 추구하려는 그 여러 목표들이 과연 얼마나 본질적인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자기자비가 자존감 속에서 불행해 하는 우리들에게 결국 던지고 싶은 물음입니다. 애써서 추구하느라 힘들어 하기 이전에, 먼저 자존감을 추구하려는 그 마음은 왜 생긴 것인지, 결국 그것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자기자비는 어떻게 자존감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무한 자기긍정’보다는 ‘결점을 받아들이고, 정리하려, 행동하는 것이 더 낫다’, 바로 이것이 자기자비가 전하는 교훈입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때로 자신의 단점이나 현실적 한계들을 부정하고 무시하려 합니다. 반면 자기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완전한 자신조차 온화한 태도로 받아들이며, 그런 불완전성이 보편적인 인간 경험의 일부임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들을 개선하고 보완할 수 있을지, 거리를 두어 자기 자신을 균형 있게 관찰합니다. 그 결과 자기자비가 높은 사람들은 좀더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에 소극적으로 대처합니다. 실천 대신 합리화나 방어, 무시 등으로 일관합니다. 소극적 대처는 개인의 마음속에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러한 대처 방식으로는 외부 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자존감이 위협받는 상황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자신을 무리하게 긍정하느라 많은 정신적 부담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자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결점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점을 다스리기 위해 적극적인 실천을 시도합니다. 자기 자신을 마음속으로 긍정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더욱 직접 노력하여 외부 현실 그 자체를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자기자비가 자존감에게 말합니다. ‘건강한 자아란, 생각하기보다 관망하고, 행동하는 것에 있다’고 말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의 끝, 행복을 생각하다 자존감보다는 1명의 소중한 인연에게 집중하기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행복을 얻거나, 행복을 지키거나. 자존감을 추구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존감을 얻거나, 자존감을 지키거나. 자존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길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얻어 ‘행복 안정성’을 추구하고, 서로의 행복을 보듬고 지원하는 ‘행복 네트워크’를 추구하는 길로 연결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자존감을 높이는 쪽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당당해질지,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을지, 막연한 목표를 좇아 헤맸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며 한탄하고 좌절하며 결국 스스로를 비난하곤 했습니다. 튼튼히 기반을 다지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자존감 높이기에만 몰두하면 자존감의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발생합니다. 결국 행복하려고, 더 잘 살려고 관심을 가진 자존감이 오히려 또 하나의 과제가 되고, 부담이 되는 상황이 오는 것이지요. 사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높은 자존감에 대한 집착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과연 자존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결국 자존감을 통해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와 함께 건강한 자존감을 키워내기 위한 든든한 울타리를 구축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울타리가 완성되기 전까지 함부로 스스로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자존감을 병들게 하는 현실에 홀로 맞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 부담스러운 일이니까요. 자존감은 결코 혼자 지킬 수 없습니다. 자존감은 스스로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의 함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지난날의 삶과 자기 자신의 모습을 기특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모색할 것은 다 같이 자존감을 지켜 나갈 수 있는 방안입니다. 즉, 혼자서도 좋지만 기왕이면 모두가 건강한 자존감ㅇ르 갖고 끝내 행복한 삶을 만날 수 있도록 연대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서로가 서로의 자존감을 지킬 때 우리는 더더욱 단단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존감 때문이라며 혼자 머리를 감싸쥐는 것보다 차라리 1명의 소중한 인연을 더 곁에 둘 것. 자존감 하락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