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5월 1주차

BOOK SUMMARY
 인문 

공감 선언

저자 피터 바잘게트(역:박여진)
출판 예문아카이브
출간 20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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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선언


공감의 과학

동물에게 얻은 교훈

다윈은 동물의 행동에 담긴 본능의 기원을 연구했다. 그는 집에서 기르던 반려동물들을 관찰했는데, 다윈의 가족이 기르던 개는 고양이 집을 지나칠 때마다 아픈 고양이에게 동정심을 보이며 고양이를 핥아주곤 했다. 공감의 필수 요소 중 일부는 20세기 원숭이와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처음 발견됐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원숭이와 유인원은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종이다(거의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만 일부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들 중에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1920년대 독일의 심리학자는 원숭이가 구조물 꼭대기에 기어올라가 바나나를 획득하는 과정을 다른 원숭이가 지켜보게 했다. 그러자 지켜보던 원숭이가 바나나를 획득한 원숭이의 동작을 똑같이 따라했다(이것이 초창기 거울신경세포에 대한 실험이었다. 복싱 선수가 링 위에서 경기를 하는 동안 코치가 링 밖에서 선수의 동작을 그림자처럼 따라하는 것도 같은 경우다).


이후 1960년대 초반 미국에 있는 두 대학교에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실험을 진행했다. 한 대학에서는 원숭이에게 버튼을 누르면 약한 전기 충격을 피할 수 있는 훈련을 시켰다. 훈련받은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가 전기 충격을 받는 것을 볼 때도 마치 자신이 전기 충격을 받는 것처럼 버튼을 누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획기적인 실험이 됐다. 몇 년 후 이 실험을 토대로 또 다른 실험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한 원숭이에게 버튼을 누르면 간식을 먹을 수 있게 했는데, 동시에 버튼을 눌러 간식을 먹을 때마다 다른 원숭이가 전기 충격을 받게 했다. 그러자 원숭이는 자신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다른 원숭이가 고통받는 광경을 보고는 먹을 것을 포기하고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모방, 동정심, 이타심 등은 공감 능력이 어디에서 오고 무엇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다.


공감의 정의

공감 능력은 주로 감정과 인지 능력으로 분류되곤 한다. ‘감정적 공감(Emotional Empathy)’은 타인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기가 어른이 혀를 내미는 모습에 반응해 똑같이 흉내 내는(영장류도 이런 행동을 한다) ‘바디 매핑(Body Mapping)’도 포함된다. 바디 매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바로 정서 전이다. 앞서 다른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따라 우는 아기의 사례와 다른 사람들이 웃을 때 같이 따라 웃는 사례를 살펴봤다. 테오도르 립스가 사람들이 외줄타기를 보면 자신이 마치 곡예사가 된 것처럼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고 언급했던 것도 정서 전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상태를 걱정할 때 감정적 공감은 동정심이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공감적 염려(Empathetic Concern)’라고 말하기도 한다. 딸이 괴로워할 때 어머니가 옆에서 그저 울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동정심의 핵심은 고통에 동참하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딸의 어깨를 감싸거나 토닥이는 그런 행동 말이다. 딸의 고통을 보며 우는 것이나 어깨를 감싸는 것이나 모두 감정적 공감이 이뤄진 상태이지만 결과적으로 행동으로 옮긴 것은 후자다.


사람들마다 노숙자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거나 또는 어떤 감정을 느끼기 전에 재빨리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단절(Disconnection)’이라고 부른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단절 현상이 공감의 세 번째 구성 요소로 인정받아야 할 만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감정을 단절시키는 이유는 심리적인 고통이나 극단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깊은 공감을 느낀다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해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안 좋은 뉴스를 접할 때 우리는 ‘단단히 마음을 먹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감정이 고갈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단절은 기본적으로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주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다른 포유류에서도 정서 전이나 걱정 등이 많이 나타나지만 인간처럼 표면적으로 인지적 공감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종은 드물다. 인지적 공감이 인간에게 두드러진 것은 진화적으로 더 오래된 뇌 영역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만, 최근 크게 변화한 뇌 영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는 상상력의 업적이다.


인지적 공감은 크게 두 가지의 중복되는 행동으로 나뉜다. 하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또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발달심리학 이론으로 욕구, 신념, 의도, 지각, 정서 같은 자신과 타인의 마음, 정신적 상태를 이해하는 선천적 능력에 관한 이론_옮긴이)’이다. 상대방의 표정이나 행동, 곤경에 처한 모습 등을 보고 생각이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하나는 ‘관점 수용’이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거나 감정을 상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나 관점을 수용하는 태도에서도 공감적 배려가 나오기도 한다. 관점 수용에 능한 사람일수록 유용한 조언을 잘해주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누군가 길을 물어본다면 모르는 길을 처음 가는 사람이 어떤 심정일지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이코패스는 인지적 공감 능력이 예민하게 발달해서 다른 사람을 대단히 잘 이해하지만 그들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디스토피아

공감이 상실된 시대

2016년 교육심리학자인 마이클 보바(Michele Borba)는 『언셀피(UnSelfie)』를 출간했다. 책에서 보바는 8~18세 사이의 아이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하루에 7시간 30분 이상을 디지털 장비와 접속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미국의 8세 이하 어린이 4분의 3 정도가 집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보고했다.


“건강한 감정 상호작용을 만들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감정과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배우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다. 컴퓨터 모니터, 문자, 트위터, 각종 메시지 등으로 시작하는 인간관계는 아이들에게 감정의 기본을 가르쳐주지 못한다.”


디지털 접속 시간이 가장 긴 국가는 한국이다. 십대 청소년 64퍼센트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5명 중 1명은 스마트폰을 하루에 7시간 이상 사용한다. 다소 불길한 조짐마저 생기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디지털 치매’라는 새로운 고민이 등장한 것이다. 서울의 두뇌발달센터 밸런스브레인 원장인 변기원 박사는 디지털 치매를 뇌 손상이나 정신 질환과 비슷하게 인지 능력이 악화 또는 퇴화되는 증상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많이 보거나 게임을 많이 하다 보면 좌뇌와 우뇌의 균형이 깨진다.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좌뇌가 발달하는 반면 우뇌는 발달되지 않거나 더디게 발달되는 경향이 있다.”


제 2장에서 봤듯이 우뇌는 감정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처리하고, 유머에 함축된 의미를 파악하며, 음악과 자의식을 이해하는 역할을 한다. 우뇌가 제구실을 못하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감소한다. 독일의 신경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Manfred Spitzer)는 유럽에서도 한국과 같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밝히면서 『디지털 치매』를 출간했다. 슈피처 박사는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지나치게 오래하도록 방치하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지나친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은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자칫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중독이 된다고 주장했다.


공감 교육의 힘

20년 전 캐나다의 교사인 메리 고든(Mary Gordon)은 공감의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공감이 주류 교육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고든은 지역 학교를 찾아가 1년 동안 3주에 한 번씩 어머니가 아기를 데리고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이 아기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느낌을 설명하게 했다. 이 과정에 참여한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감정도 이해하게 됐다. 특히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이 유명한 ‘공감의 뿌리(Roots of Empathy)’다. 이 프로그램이 점차 알려지면서 많은 학교에서 4~13세 아이들의 수업에 적용했다. 현재 미국과 영국, 독일, 스위스, 뉴질랜드까지 확산됐으며, 이 수업으로 약 80만 명 이상의 아동들이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는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이 수업 과정을 들은 아동의 ‘주도적 공격성’이 나아졌다고 밝혔다. 주도적 공격성이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기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평가에서도 이 수업 과정에 참여한 아이들의 사회 지식과 감성지능이 향상했으며, 친사회적인 행동이 증가했고, 긍정적인 결과가 오래 지속됐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공감의 뿌리’의 사명은 아이와 어른의 공감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배려하고, 평화롭고, 시민의식이 높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유 중에는 프로그램의 보편적인 본질도 있다. 모든 학생이 남을 괴롭히거나 공격적인 학생을 표적으로 삼기보다는 프로그램에 재미를 느끼고 긍정적으로 참여한다.”


영국의 경우 미란다 맥키어니(Miranda McKearney)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 ‘공감연구소(embryonic EmpathyLab)’를 설립했다. 청소년들의 문해 능력을 기르기 위한 자선활동을 하던 맥키어니는 사이버 폭력이 청소년들의 심각한 공감 결핍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녀는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 주의 깊게 상대의 말을 듣고 대화하는 능력, 상대방의 가치관과 감정을 존중하는 능력, 친사회적인 성향과 행동 등을 공감의 주요 기술로 규정한다.


맥키어니가 정의하는 공감의 핵심 요소는 우리와 친숙하다. 공감하는 소통, 다른 사람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능력, 정서적 인식, 적극적인 상상력, 성찰하는 능력 등이다. 이는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보고 있는 특징들이자 공감 본능을 연구하는 수많은 신경과학자들과 인류학자, 심리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하다.


죄와 벌

공감과 공격

2003년 데릭 졸리프(Darrick Jolliffe)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쓰면서 이 주제에 관한 35개의 연구들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는 낮은 공감 능력이 공격성과 연관이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어쩌면 가족의 붕괴, 빈곤, 낮은 지능이나 충동조절을 하지 못하는 성향 등 다른 요소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졸리프는 공감을 측정하는 수단이 매우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공감에 관한 연구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기본 공감 척도(Basic Empathy Scale)’를 만들었다. 질문들을 통해 낮은 인지적 공감(예: 슬퍼하고 있는 친구를 이해하는 게 어렵다고 느낀다)과 감소된 감정적 공감(예: 다른 사람들이 겁에 질릴 때도 나는 대체로 침착한 편이다)을 테스트한다. 졸리프는 감정적 공감을 개선하는 것이(다른 사람의 감정을 성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반복되는 공격 성향을 끊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봤다. 이는 사이코패스를 대상으로 한 사례이긴 하지만, 한 종류의 범죄로 범위를 좁혀서 연구를 진행했다.


박사 논문을 마친 졸리프는 개인이 법을 위반하는 원인 중 하나인 ‘충동성’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본 공감 척도’에서 개인에게 선천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대담한 사람인지를 묻는다. ‘주로 대담한 편’이라고 답한 사람이나 ‘늘 대담함’이라고 대답한 사람일수록 공격 성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어떤 이는 공감 능력이 높고 어떤 이는 낮았다.


그러나 그다지 충동적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감 능력과 범죄 사이에 명확한 연관이 있었다. 공감 능력 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인 경우가 현저히 높았다. 결국 그는 “공감과 공격성은 관련이 있지만 충동성이 이것을 압도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도 살펴보겠지만, 개인이 자신이 저지른 충동적 행위의 결과를 이해할 수 있을 때 충동적 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행위의 결과를 이해하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 이러한 내용을 배우며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제 3장에서도 말했듯이 처벌보다 설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 능력이 낮으면 반사회적 행동과 범죄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낮은 공감 능력이 원인이 돼 반사회적 행동과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결과로 이어진다기보다 함께 공존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 공격성은 다른 요소들에 의해 유발되기도 하고 낮은 공감 능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졸리프의 최근 연구에서는 ‘어떻게 하면 공격의 순환성을 끊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으며, 원즈워스 교도소 수감자들과 법률을 위반해 보호관찰 조치를 받은 사람들을 비교하는 연구로 이어졌다. 졸리프는 한 가지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교도소가 단기적으로는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해줄 수는 있어도 수감자들을 교화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회복적 사법

2011년 워링턴 데이비드 로저스(Warrington David Rogers)는 아들을 죽인 가해자와 대면하게 됐다. 로저스의 십대였던 아들은 바텐더로 일하던 술집에서 벌어진 싸움에 아무런 잘못도 없이 희생됐다. 가해자인 윌리엄 업턴(William Upton)은 살인죄로 형을 살게 됐고, 2년 후 피해자의 아버지를 만나는 데 동의했다. 그는 법정에서 했던 증언과는 달리, 로저스에게 아들이 자신을 화나게 할 만한 도발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저스는 아들을 잃은 상실의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았지만 윌리엄의 고백이 분노에 마침표를 찍게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만남은 보호관찰업무를 보는 사람들과 회복적 사법을 추구하는 자선단체들이 피해자를 돕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결과다. 만남은 주로 사람에게 가해진 범죄를 대상으로 적용되며 주선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 제도는 가해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어떤 결론에 도달할 기회를 준다. 회복적 사법은 범죄자들에게 피해자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고 잘못을 인정하게 해준다. 이 과정을 통해 범죄자들은 공감을 느끼거나, 느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피해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즉 인지적·감정적으로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회복적 사법을 처음으로 폭넓게 적용한 국가는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에 이미 회복적 사법을 적용했다. 당시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젊은층은 뉴질랜드의 사법 체계와 교도소를 신뢰하지 않았고, 국가에서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회복적 사법을 적용했다. 마오리족 중장년층의 적극적인 참여로 범죄자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또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에서도 범죄학자 하워드 제어(Howard Zehr)의 적극적인 지지로 회복적 사법이 널리 적용되고 있다. 그는 “징벌적 제도는 범죄를 어떤 상태에서 규율을 어겨 일어나는 일로만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복적 사법은 범죄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침해하는 행위로 보는 것이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

의료계가 점점 비인간화되고, 덜 인격적으로 변해간다는 두려움은 영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2011년 800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절반만이 담당 의사가 공감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전에 노스캐롤라이나 프로젝트에서는 수백 명의 암 환자들과 종양학자들이 만나 가장 공포스러운 병에 관해 대화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촬영한 적이 있다. 영상에서 전문가들은 환자가 보이는 공포와 고통의 징표를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겨우 20퍼센트만이 환자의 공포에 공감했다.


독일의 비텐헤어데케대학교에서는 의과대학생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의사가 될 의대생들과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수련의들의 공감 능력이 낮아서 의료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연구를 지휘한 멜라니 노이만(Melanie Neumann) 박사는 진료 초반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하던 의사들이 위중한 환자를 처음 접했을 때 몹시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환자를 ‘비인격화’함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이것이 제2장에서 공감 스위치를 꺼버린다고 표현했던 ‘단절’이다).


노이만 박사는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 일반인에 비해 고통을 지각하는 능력이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를 인용했다. 또한 그것이 매우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인용했다. 연구에서는 근심, 긴장, 스트레스가 우리 뇌에 있는 거울신경의 신호를 감소시켜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발견은 의과대학 과정을 밟는 동안 공감 능력이 감소했던 필라델피아의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공감 능력의 저하는 의대생들이 환자를 처음으로 직접 접하게 되는 3학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부 선배 의사들은 맞닥뜨리게 될 의료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으려면 적당히 냉담해지기를 권하기도 했다.


의대 수련 과정뿐 아니라 환경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병원이 크고 효율적인 곳이 돼야 하는 현실도 의료 서비스의 비인격화에 영향을 미친다. 데이비드 캐머런의 전 자문위원인 스티브 힐튼은 2015년 저서 『더 인간적인』에서 ‘공장형 병원’의 등장을 언급했다.


“요즘은 병원에 가는 것이 고행이다. 커다란 주차장에서 이리저리 길을 헤매고, 수 킬로미터처럼 느껴지는 병원 복도를 걸어, 거대한 승강기를 타고 이동해 마침내 영혼 없는 대기실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이름이 불리기만을 끝도 없이 기다린다.”


대형 병원은 공적 자금이 부족한 시대에 두말할 나위 없이 경제적이다. 하지만 힐튼은 “대형 의료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큰 압박에 짓눌리기 쉽고, 환자와 가족들은 누가 책임자인지 물어볼 곳을 알지 못하며, 환자를 비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노이만의 연구에서도 같은 내용이 확인됐다. 심지어 현대의 종합병원 개념을 제안했던 사람들도 병원이 본래의 목적을 잊고 효율성에만 몰두하는 영혼 없는 기계가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직을 작게 만들고, 리더십 자질이 훌륭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작은 병원의 장점들을 종합병원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병원은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곳이고 요양원보다 더 까다로운 검사와 관리를 받을 수 있다.


공감과 치유의 증거를 찾아서

2004년 한국에서는 550명의 외래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의사가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환자의 걱정을 잘 이해할수록 환자가 치료에 더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결과적으로 회복 속도도 빨랐다. 2011년 미국에서는 초기 감기에 걸린 환자 719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연구진은 환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의료적인 관심을 주지 않고, 한 그룹은 평범한 수준의 공감 능력을 지닌 의료진이 환자들을 대했으며, 마지막 그룹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의사들이 환자들을 보살폈다. 연구팀은 이런 측정 방식을 CARE라고 불렀다. ‘상담과 상호관계에서의 공감(Consultation and Relational Empathy)’의 약어다. 그 결과 세 번째 그룹에 있던 환자들이 감기에서 더 빨리 회복됐다.


영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플 때 곧장 종합병원에 가기보다 GP를 더 많이 찾는다. NHS를 이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80퍼센트가 지역 병원을 가는 것이다. 따라서 주치의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2013년 네덜란드에서 발표한 논문 <일반 진료에서 공감 능력의 효과(Effectiveness of Empathy in General Practice)>의 저자들은 공감 능력과 의사에 관한 논문 약 1,000여 편을 검토하고, 이 중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논문 7편을 선정했다. 그들은 공감 능력을 ‘의사가 환자의 상황, 생각,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확인하기 위해 소통하는 능력이자 도움이 되는 치료 방법에 맞게 행동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논문은 의료처치 결과와 의사의 ‘역량(환자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건강 문제를 잘 대처하는가에 관한 능력)’이 병원 연구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결론지었다.



공감 선언

공감 본능은 진정으로 대중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보다 나은 시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감 본능을 잘 이용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미래, 30년 후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제는 공감의 과학이 정책을 주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공감 헌장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보다 공감대가 크게 형성되는 미래를 위한 야심찬 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점진적인 첫 번째 단계들을 정의해야 한다.


공감 헌장

하나. 공감 회로에 관한 뇌 지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간다.

하나. 모든 아이의 공감 회로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춤식 교육과 문화를 준비한다.

하나. 모든 학생의 감성지능을 살펴보고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준비한다.

하나. 공감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특히 어린아이와 청소년을 위한 특별한 지원 체계를 마련한다.

하나. 아동을 보호하고 부모를 교육할 수 있는 온라인 체계를 만든다.

하나. 공감 능력 훈련을 받고, 이 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의사, 간호사, 간병인을 배출한다.

하나. 사람과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만 평가되는 수감자들의 재활에 전념하는 사법 체계를 마련한다.

하나. 편견을 억누르고 다양한 집단을 통합하는 지속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하나.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예술과 대중문화를 장려한다.

하나. 인공지능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에 공감 본능과 인간 정신의 우월함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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