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4월 2주차 |
BOOK SUMMARY | ||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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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지프 버고(역:이영아) 출판 더퀘스트 출간 20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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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 보기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버린 나에게 방어기제란 무엇인가 내가 모르는 ‘나’ 살다가 한 번쯤 스스로도 놀랄 만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거나, 감정을 느끼거나,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서 은밀히 계속되고 있던 뭔가를 불쑥 알아차릴 때가 있다. 사소해 보이는 일 때문에 감정이 폭발하고 나면 ‘내가 이런 강렬한 감정을 계속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구나’ 하고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는 의식하는 자아가 우리의 전부라고 믿지만, 정작 중요한 감정은 몰래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달갑지 않은 의무나 잡일을 ‘잊어버리면’ 사람들은 그 뒤에 무의식적인 동기가 숨어 있다고 추측한다.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망각이라는 행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이다. 배우자가 기념일을 ‘잊어버렸을’ 때 아무 의미도 없는 실수라고 넘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도 남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면 쉽게 발끈한다. 내가 모르는 내 면모를 남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친구가 그런 암시를 보이면 우리는 아니라고 우길 것이다. 혀가 미끄러져 말이 헛나간 거지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직장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저녁 데이트를 잊었다고, 손님 명단에서 이름을 빠뜨린 건 단순한 실수지 그 사람이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나를 무시한 데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고. 자신보다 타인의 무의식적 동기를 더 쉽게 알아채는 이유는 무의식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와 그 이후의 수많은 정신역동 이론가에 따르면, 무의식에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거나 자신의 윤리관ㆍ가치관과 충돌하거나 자아상을 해칠 만한 모든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러니 무의식에 담긴 내용물을 알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 알고 싶은 생각과 감정이었다면 애초에 무의식에 숨었을 리가 없다. 바로 여기서 심리적 방어기제(‘심리적 방어’또는 간단히 ‘방어’라고도 한다)가 등장한다. 우리는 방어기제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을 이용해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과 감정을 의식에서 몰아낸다. 그 과정에서 방어기제는 인간관계나 감정 영역에서 우리의 현실 인식을 미묘하게 왜곡해버린다.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많은 것이 들린다. 참기 어려운 요구, 차마 인정 할 수 없는 분노, 악의적인 시기와 질투, 파괴적인 수치심 등 너무 강렬해서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 말이다. 나는 그들이 그 감정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즉 심리적 방어기제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또, 특정한 방어기제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자기 자신과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로 여기에 심리적 방어기제의 문제가 있다.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누구나 겪는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그 기제가 꼭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너무 깊숙이 박혀버리면 직면해야 할 중요한 감정에 접근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안 좋은 것은 애인이나 가족, 가까운 친구, 직장 동료와의 원만한 관계에 필요한 감정까지 몰아내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돌려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구를 외면하면 타인과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없다.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두려워하는 감정을 표출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자기 안에 숨어버리는 사람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한정적이고 불만족스러운 관계만 맺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족스러운 관계를 가로막는 방어기제를 해체하고, 무의식 속에 든 것을 효과적으로 표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모든 방어기제를 없앨 필요도 없고, 무의식 속에 있는 모든 것과 꼭 대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방어가 너무 단단하게 고착돼 인간관계를 심하게 방해하면, 더 의식적이고 융통성 있게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심리적 방어기제란 무엇인가?무의식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방어라는 개념도 문화적 주류로서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방어적으로’ 보인다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에 관해 어떤 진실을 들었는데 그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흔히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뭔가를 마주하지 않고 피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챈다. 이처럼 우리가 방어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프로이트의 초기 연구 덕분이다. 프로이트의 생각은 단순하며, 방어기제라는 당혹스러운 번역어가 풍기는 느낌처럼 기계적이지도 않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때때로 너무 고통스럽고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과 마주하면 그것을 무의식으로 밀어버린다. 고의가 아니다. 의식 밖에서, 대개는 자동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프로이트는 19세기 말 무렵 이 견해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방어기제는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지금 당장 작동한다. 경솔하고 반사적이며 이 순간의 고통을 피하기만 하면 그뿐, 그 뒤에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가금 우리는 마침내 ‘깨어나’ 진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무의식 속에 있던 것이 문득 밖으로 드러나 오랫동안 우리 안에서 몰래 들끓고 있던 것을 깨닫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쭉 그랬듯, 방어기제는 눈에 띄지 않게 작동할 때가 더 많다. 나의 방어기제 알아보기 억압과 부정 - 벽장 속 괴물 억압억압이라고 하면 성적인 문제하고만 연관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20세기에 프로이트의 사상이 성을 중시하면서 오래된 성적 금기를 공격한 영향이 크다. 그러나 억압은 이보다 훨씬 더 넓은 경험을 아우른다. 분노건 죄책감이건 비통함이건 용납할 수 없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은 거의 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게 억눌려 있을지도 모른다. 억압은 프로이트가 확인한 첫 방어기제였다. <억압>이라는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그 개념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억압의 본질은 그저 뭔가를 의식에서 쫒아내 먼 곳에 붙들어두는 데 있다.” 그 ‘뭔가’는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이 될 수도 있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자각일 수도 있다. 프로이트는 억압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억압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억압된 것이 의식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막으려면 정신 에너지를 끊임없이 쏟아부어야 한다. 다시 말해, 억압된 감정이 지하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하도록 가둬두는 전략이 계속해서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신역동 심리치료를 행하거나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대부분 억압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지만, 다른 분야의 과학자와 정신 건강 전문가 중 일부는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억압이나 무의식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행동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인지행동 기법을 익히고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되풀이하면 심리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억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회피하고 있는 고통과 마주할 수 없고 진정한 성장을 이룰 수도 없다. 설령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극복한다 해도 억압되어 있는 것을 계속 저지하기 위해 똑같이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전략을 세울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분노가 사라진 건 아니다. 분노는 계속해서 어김없이 그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부정억압과 마찬가지로 부정이라는 개념도 주류에 들어왔다. 부정이 임상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거의 모든 심리치료사가 부정의 존재는 인정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너 지금 부정하고 있어”라는 말을 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부정의 대상은 대개 어떤 사실이다. 어떤 사실이 우리의 소망이나 믿음과 모순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게 진실임을 부정한다. 부정이 대상이 감정일 수도 있다. 특히 그 감정을 용납하지 않는 문화적 분위기나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그 존재를 스스로에게마저 숨긴다. 고전적인 프로이트 이론에서 부정(그리고 그 밖의 방어기제)의 원인은 ‘갈등’이다. 우리는 자신의 바람과 충동하는 사실, 자신의 가치관과 모순되는 감정을 부정한다. 내 친한 친구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신이 동성애자로 판명 나는 일은 인생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받았던 종교 교육과 동성애에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했다. 갈등이 심리적 방어를 자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나는 고통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성 정체성과 종교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 그에게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분노와 그런 감정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가족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 그에게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통제 - 무력감이라는 공포 무력감과 통제무력감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느낌이다. 그런 무력감을 줄이기 위해 상황을 통제하려 애쓰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토네이도가 잦은 지역의 사람은 대피용 지하실을 짓고 캘리포니아 주민은 집에 지진 대비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루이지애나에서는 육군 공병이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관리한다. 이렇듯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을 통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지만 실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계속 의식하며 살기는 어렵다.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도 못 한다는 걸 의식하면 1초도 제대로 버틸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틀에 박힌 일상을 살고 특정한 전통을 반복하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 질서정연한 생활은 통제하기 어려운 변덕스러운 우주에서 위안을 준다. 가끔은 우리 감정의 예측 불가능성을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이 그 감정을 부추기는지, 이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으니 두려워진다. 모든 방어기제가 그렇듯 통제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을 감당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극단으로 치닫거나 너무 깊숙이 자리 잡아 버리면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자존감과 통제 누군가가 우리에게 중요해지면 그 사람은 우리의 자존감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가 소중히 여기고 존경하는 사람이 나를 등지고 거부한다면 내가 평소에 아무리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도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우리는 인간관계 때문에 더 강해지기도 하지만 더 쉽게 상처받고 다른 사람 때문에 자존감이 흔들리기도 한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자신의 최고 장점을 내세워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특히,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이 중요한 면접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욕구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선망의 대상이 되려는 치열한 노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지나치게 과장하고 왜곡하다가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심리적 방어기제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통제하려는 방어적 노력이야말로 나르시시즘의 핵심이다. 사고 - 무감정 지대 많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많은 면에서 독백이 더 맞는 표현일 텐데 우리는 그걸 ‘사고Thinking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은 이 머릿속 말의 흐름을 통해 자신을 지각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생각은 건설적인 과장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세상사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없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할 수도 없다. 또 생각이라는 걸 하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중대한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수많은 현인이 행동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이 우리의 원수, 골칫거리, 심지어는 고통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생각이 멈추지 않아 잠 못 든 적 없는가? 친구와의 다툼이나 중요한 진로 결정이 신경 쓰여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던 적은? 생각은 아주 강력한 도구지만 끊이지 않는 생각은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생각이 일종의 내적 대화, 우리가 자신에게 하는 중계방송 같은 거라면 이런 문제도 발생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가끔 생각은 내적 거짓말이 돼서 우리를 추악한 진실에서 달아나게 하거나 고통스러운 현실을 은폐해버린다. 그렇다면 사고를 심리적 방어기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합리화 ‘착각 좀 그만해!’ ‘제발 현실에 눈을 떠!’ ‘넌 스스로를 속이고 있을 뿐이야,’ 자기기만에 빠진 듯한 사람을 두고 우리가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린다. 우리는 이를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이라고 부른다. 자기기만이라는 언어적 사고(말로써 이뤄지는 생각)가 거짓말을 돕는 심리 작용이다. 가끔 그 거짓말에는 어떤 감정이나 동기, 행동을 사회적으로 용인되거나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정당화가 뒤따른다. 다시 말해, 불편하게 느껴지면 핑계를 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완전히 책임지고 싶지 않을 때에도 변명, 즉 합리화를 한다. 또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에 치우쳐 자신이 저지른 일이 완전히 합리적으로 보이게끔 논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합리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큰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질서정연한 곳이라고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사실은 별다른 이유 없이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변덕스러운 곳인데 말이다. 주지화방어기제로서의 합리화가 특정 사실에 대해 진실보다 더 그럴듯한 설명을 시도한다면 주지화는 모든 불쾌한 감정을 막아버리려고 한다. 합리화가 가끔 자기 자신을 속이는 ‘악의 없는 거짓말’이라면, 주지화는 계속 진행 중인 새빨간 거짓말로 불쾌한 감정은 거부하고 냉정한 생각만 취급한다. 합리화가 이따금 나타나는 개별적인 방어기제라면 주지화는 한 사람의 성격 전체를 스며들어 영향을 끼친다. 내가 보기에는 주지화를 주의attention와 우리가 그 주의를 어디로 돌리는지의 측면으로 생각하는 편이 유용할 것 같다. 자신의 경험을 주지화하는 사람은 머릿속을 지나가는 생각에 너무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다. 몸의 감각에 주목하면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차오르는 눈물, 답답한 가슴, 떨리는 숨, 이런 감각은 우리가 슬픔을 느끼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생각하느라 바쁘면 이런 감각을 알아채지 못할 테고 그래서 계속 자신의 감정을 알지 못한 채 지낼 수밖에 없다. 어떤 슬픔이 인식돼도 몸의 감각에서 생각으로 금방 주의를 돌려 달아나버린다. 다시 말해, 주지화란 감정을 알려주는 몸에서 무감정 지대인 지성으로 주의를 돌리려는 거대하고 지속적인 노력이다. 방어기제 해체하기 변화를 원한다면 방어기제의 강도방어기제는 우리가 인지한다고 해서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평생에 걸쳐 길러진 정신적 습관으로 우리 뇌 속 신경연결망과 경로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방어기제가 강화될수록 신경경로에 더 깊이 새겨진다. 수치심과 연관해서 설명했듯이, 아기에게 필요한 감정적 영양분을 양육자가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하면 아기의 뇌는 비정상적으로 발달하고 그 상태가 지속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의 성격과 방어기제에는 어릴 적 경험의 흔적이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뇌의 해부학적 구조가 영구적으로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말을 아무리 외쳐도, 인지적 행동 기술을 배워도 위안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그걸 이겨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변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통찰력을 갖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이미 가해진 손상을 일부나마 상쇄해줄 새로운 신경연결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속적이고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치유나 완전한 변신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의 문제점과 그에 대처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인지해야 성장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감정 세계를 잘 항해하게 도와줄 새로운 기술과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감정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계속 정신이 팔리면 작동 중인 방어기제를 인지할 수 없다. 현대인은 하루 종일 딴 일에 신경을 쓰느라 내면을 들어다볼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직업과 가정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이 끊임없이 우리의 자기탐구를 방해한다. 누구나 즐길 거리가 필요하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빼앗긴 기운을 되찾기 위해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하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이런 기분전환도 꼭 필요하고 어쩔 수 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다른 일들도 있지만, 그 사이에 공간을 비워둬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주의산만 자체가 하나의 방어기제다. 우리는 텔레비전, 음악, 이메일, 인터넷으로 끊임없이 한눈을 팔면서 알고 싶지 않은 사실로부터 달아난다. 수많은 감각적 소리가 고통을 삼켜버리게 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그 소음 속에 고요한 공간을 일궈내고 자신의 감정에 주파수를 맞출 줄 알아야 한다. 마음챙김최근 마음챙김 수련이나 명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원래 불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 중 하나인 마음챙김은 불안감과 강박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정신적ㆍ심리적 질환을 완화해주는 한 방법으로서 서구 심리학에 통합됐다. 부처는 우리의 신체 기능, 감각, 감정 그리고 생각과 지각을 차분히 인식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마음챙김을 행하기를 권했다. 명상 수련을 할 때 우리는 특정한 신체 경험(보통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 마음이 딴 곳으로 흘러갔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서서히 초점을 다시 맞춘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런 명상 수련의 궁극적 목표는 깨달음이다. 그 경지에 이르면 분노와 증오 같은 감정이 극복되고 우리 마음에서 사라진다. 특히 사고를 주된 방어기제로 사용하거나,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남을 자주 탓하는 사람들은 머릿속 말에 잠식당하고 휩쓸리기 쉽다. 우리는 언어적 사고 과정 ‘안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한다. 호흡에 집중하면 생각의 흐름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머릿속 말들을 지각할 수 있다. 목표는 완벽한 마음챙김이 아니라 감각을 의식하고 평소에 우리가 잘 휩쓸리는 생각의 흐름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 흐름에서 벗어나 강둑에 서서 흘러가는 생각을 관찰하는 것이다. 물론 하루 종일 마음챙김 상태로 있을 수야 없지만, 머릿속에 고요한 시간을 잠깐이라도 만들어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용기와 연민방어기제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라면,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 고통을 느끼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고통이 얼마나 강할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가 아주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고통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는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으려면 고통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변화를 원한다면 용기를 내야겠지만 자신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지 말고 한계 또한 인정해야 한다. 좋은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것처럼, 연민과 기대 사이에서 균현을 잘 잡아야 한다. 고통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용감하게 맞서되, 견딜 수 없는 일을 자신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모든 기법이 그렇듯, 이런 인내력을 기르려면 시간이 걸린다. 고통을 한 번에 모두 마주할 필요는 없다.*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